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4화 (14/309)

14화. 비운의 2인자 (14)

따악 ~ !!

“와아아 ~ !!”

경기는 흘러 5회 말, 슈퍼루키는 2번 째 타석에서도 바깥쪽 공을 절묘하게 밀어쳐 안타를 만들어냈다.

숀 마컴은 정교한 제구로 타자를 잡아내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지만 사실은 빠른 볼과 슬러이더를 주무기로 앞세우는 파워피처에 가깝다.

이런 투수가 좌타자를 상대할 때 주무기로 삼을 공이 뭐가 있을까. 당연히 슬라이더, 이인영은 상대가 결정구를 던지기 전에 빠른 볼을 공략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말이야 쉽지 결과를 내는 건 별개의 문제, 그동안 저 녀석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있는 박한우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세를 잡은 성운 라이온즈는 존 워커의 호투와 타선의 활약을 앞세워 3대 0으로 앞서 나갔고 경기는 이제 7회 말로 접어들었다.

‘자 ··· 이제는 어떻게 나올까.’

3번째 타석을 앞둔 이인영은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상황은 1아웃 주자 1루, 경기를 포기할 만큼 점수 차가 벌어진 것도 아니다.

상대배터리는 병살을 유도하는 볼배합을 하겠지, 하지만 그것도 녹록치가 않다.

이인영은 좌타에 발도 빠른 편, 느린 타구 유도는 병살이 어렵다. 그렇다면 뜬 공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 몸 쪽으로 높게 들어오는 패턴도 고려했다.

‘안 되네’

초구를 던진 문휘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높낮이는 커녕 좌우제구도 잘 안 되는 투수들이 많은 kbo의 현실, 몸 쪽 높은 코스를 노려봤지만 완전히 높게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포수는 몸 쪽을 요구, 문휘상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 우익수 정면으로 갑니다. 아 ~ 이건 노렸던 것 같은데요. 이인영 선수도 아쉬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컨택에 재능이 있네요. 그리고 어린 선수답지 않게 볼배합을 읽어내는 능력도 좋은 것 같습니다. 향후 대표팀의 10년 이상을 책임질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네요.”

아웃은 됐지만 박한우 감독은 돌아온 양아들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조금만 더 중심에 맞았어도 까마득하게 날아갔을 타구, 거기다 몸쪽은 타격하기 쉬운 코스가 아닌데도 제법 괜찮은 타구를 날렸다.

‘누구랑은 다르네, 누구랑은…’

박한우 감독은 한 선수를 떠올렸다.

한때 팀 동료였고 대한민국 역대 최고 타자라는 평가를 받는 한승규, 한승규는 박한우 감독과 함께 성운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전설이다.

통산 안타 대비 장타가 40%가 넘었던 선수, 4년 연속 40홈런(7년 연속 30홈런 이상 포함)을 날린 기록은 지금도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다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몸쪽,

kbo에선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제구에서 한 수 앞서는 npb에선 말 그대로 호구가 잡혔다.

기본적으로 컨택이 좋던 선수가 아니라 승부를 길게 끌어가지 못했던 것도 단점, 이런 약점 때문에 국제대회에선 컨택 능력이 앞서는 박한우 감독이 한승규보다 더 안정적인 활약을 펼친 게 사실이다.

‘저 녀석은 한승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박한우 감독은 마음 속으로 이인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승규의 그늘에 가려진 커리어 때문에 질투심을 품은 건 사실이지만, 누가 봐도 잠재력은 저 녀석이 한 수 위, 한승규는 국내용이지만 이인영은 그 이상도 노려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다음엔 친다.’

한편 슈퍼루키는 찬물로 속을 다스렸다.

조금 더 앞에서 때려냈어야 했는데 살짝 어긋난 타이밍, 더그아웃 통로 뒤에서 배트를 쥔 채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듭했다.

한 타석 더 나갔으면 좋겠는데 하위타선이라 기회가 올 지는 모를 일, 다행히 동료들의 활약 덕분에 8회 말 공격에서 4번 째 기회를 얻었다.

“우우 ~ 우 ~ ”

하지만 자이언츠는 칠 만한 공을 던져주지 않았다.

점수 차가 벌어진 경기에서 공격을 하지 않는 건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일수도 있지만 그건 흐름이 빠른 축구, 농구에서나 통용되는 개념, 정적인 야구에서 이런 흐름을 누가 좋아할까.

어서 승부하라는 야유가 쏟아졌지만 이인영은 볼넷으로 1루를 밟았다.

박한우 감독은 바로 대주자를 기용,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루키는 박수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물러났다.

이날 성운 라이온즈는 7대 0, 무려 3년 만에 개막전 승리를 거두는 감격을 누렸다.

간만에 재미있었던 경기, 홈팬들은 승장 자격으로 인터뷰에 나선 박한우 감독에게 환호를 보냈다.

“감독님, 개막전 승리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초반까진 팽팽한 승부가 계속됐는데요. 경기 흐름을 바꾼 계기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인영 선수의 한 방이죠. 그게 결정적이었습니다.”

박한우 감독은 숀 마컴을 무너뜨린 건 이인영이라고 못을 박았다.

작년 시즌 좌타자에게 홈런을 한 개 밖에 내주지 않은 선수가 루키에게 홈런을 맞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거기다 숀 마컴은 2번 째 승부에서도 이인영에게 안타를 내주며 홈런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에이스가 흔들리면서 무너진 자이언츠, 라이온즈 팬들도 그 말이 옳다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번트나 지시하는 감독으로 알고 있었는데 간만에 마음에 드는 인터뷰, 앞으로 재미있는 야구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감독님은 이인영 선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성운 라이온즈 역사 상 최고의 선수가 될 자질을 갖췄습니다. 밟지 않고 애정을 준다면 반드시 꽃을 피울 겁니다.”

“네, 지금까지 성운 라이온즈의 박한우 감독님이었습니다.”

마이크는 이제 존 워커에게 넘어갔다.

오늘 성적은 7이닝 4피안타 무실점 9탈삼진, 흠잡을 데 없는 활약은 팬들에게 홈런 못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일본에서의 실패로 막다른 골목까지 몰려있던 용병은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고, 그렇게 평범한 질의가 이어졌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Honestly, I thought Koreans don’t like foreigners like me, but everyone was nice and gentle. so, i'm right at home in this country"

= 솔직히 한국인들은 나 같은 외국인에게 불친절 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모두들 상냥하고 친절하다.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다.

존 워커는 한국을 택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은 한국이 아니라 대만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한국은 투수도 투수지만 타자 용병 수요가 많은 리그, 그에 비해 대만은 극심한 타고투저 때문에 타자 용병이 거의 없다.

마지막 타자 용병이 2016년에 나왔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거의 확정된 대만 행에서 들어온 오퍼, 계약 조건도 이 쪽이 훨씬 좋아 망설임은 없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친절하다는 건 진심, 어느 루키 덕분에 그런 이미지는 더 확고해졌다.

“오늘 박한우 감독님이 이인영 선수의 홈런이 흐름을 바꿨다는 말을 하셨는데 동의하시나요?”

“Yes. that changed the momentum of the game. He maybe can hit more than 30 home runs with high batting average."

= 물론입니다. 그 홈런이 게임의 흐름을 바꿔 놨죠. 아마 그 친구는 올 시즌 높은 타율과 30홈런 이상을 기록할 겁니다.

존 워커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30홈런은 무난하게 쳐낼 거라는 평가, 루키에게 이만한 극찬이 어디 있을까, 앞선 사람들이 자리를 깔아준 덕분에 칭찬이 이어졌지만 이인영은 겸손한 반응을 내놨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좀 더 보완해서 좋은 선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갑자기 너무 겸손해지신 거 아닌가요?”

리포터는 눈치 없이 옆구리를 찔렀다.

전지훈련 인터뷰에서 슈퍼 루키는 리드오프가 되면 홈런을 칠 기회가 늘어서 좋다는 말을 늘어놨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겸손을 떨다니,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극적인 발언을 유도했다.

“이거 겸손 떨라고 마련한 자리 아닌가요?”

이인영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자신감 좀 드러냈더니 건방지다 뭐다 말이 많았던 팬들, 그래서 얌전하게 굴었는데 건방 떨라면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가.

귀여운 반항에 리포터는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팬들의 반응도 호의적, 하지만 이인영의 활약에 웃지 못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성운 라이온즈의 전설 한승규,

한승규는 박한우 감독의 발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현역시절, 한승규와 박한우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앙숙, 박한우 감독은 한승규에게 질투심을 품었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한국시리즈에서 결정적인 활약으로 팀의 우승을 이끈 사람이 누구인가. 정규시즌은 몰라도 마지막 무대의 주인공은 박한우였다.

거기다 한승규는 팬들에게 불친절한 태도 때문에 명성이 많이 깎였고, 그 반대로 행동했던 박한우 감독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현재 위상은 완전히 역전됐다.

커리어에서 박한우를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도 성운 라이온즈 감독으로 발탁되지 못한 것도 그런 배경 때문, 당연히 한승규는 박한우 감독의 발언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인영 선수는 성운 라이온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겁니다.”

그냥 웃으면서 흘려버릴 수도 있지만, 한승규의 귀엔 성운 라이온즈의 역사에서 내 흔적을 지워버리겠다는 도전처럼 들렸다.

이인영이라는 선수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박한우 감독이 상대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법, 이때부터 한승규는 슈퍼루키에게 명분 없는 앙심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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