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비운의 2인자 (13)
시범경기 마지막 날, 경기를 앞둔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몸풀기 훈련에 돌입했다.
피칭머신을 앞에 둔 슈퍼루키는 평소처럼 스윙을 돌렸지만 한상우 코치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피칭머신을 거의 정면에서 바라 볼 정도로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은 자세, 저러다 다치는 건 아닌지 염려됐다.
따악 ~ !~
그러건 말건 이인영은 경쾌한 스윙을 이어갔다.
어깨가 일찍 열리는 현상을 방지하고 최대한 공을 몸에 붙여치기 위한 훈련법, 그 속뜻을 알고 있는 박한우 감독은 별 다른 참견을 하지 않았다.
오후 1시에 시작 된 경기, 최근 7번으로 기용되고 있는 이인영은 2회 초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첫 타석을 맞이했다.
‘저 자식, 왜 이렇게 들이 대지?’
선화 이글스의 투수 신민석은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은 자세에 불쾌감을 느꼈다.
몸에 맞아도 상관없다는 건가. 그렇다고 몸쪽으로 붙이긴 껄끄러운 상대, 일단 바깥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따악 ~ !!
“엇?!!”
가볍게 밀어낸 타구는 3루수 머리 위를 지나 파울 라인 안쪽에 떨어졌다.
좌익수가 허둥거리는 사이 타자 주자는 2루까지 진출, 박한우 감독은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했다.
박한우 감독은 현역시절 밀어치는 타격으로 안타를 쌓은 스프레이 히터, 통산 안타의 1/3 정도를 밀어쳐서 만들었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나.
저 녀석도 그 기술을 차근차근 갈고 닦고 있는데, 타고난 파워와 손목 힘 덕분에 타구질은 여느 선수와 차원이 다르다.
보통 장타자들은 체중 이동과 몸의 회전력으로 비거리를 늘리는데, 이인영은 상체 회전과 손목 힘만으로 비거리를 내는 스타일, 이 때문에 해설위원에게 근본 없는 스윙이라는 조롱 아닌 조롱을 듣기도 했다.
한 마디로 타고난 장사, 여기에 선구안도 나쁜 편이 아니다.
저 재능에 컨택능력까지 플러스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래서 히팅 범위를 늘리도록 허락해 준 것, 볼 카운트 싸움보다 적극적인 타격을 주문했다.
아웃이 되도 좋고 안타가 되면 더 좋고, 이대로 성장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올해 결과를 못 내면 모가지를 당할 텐데, 내년에도 저 녀석의 활약을 볼 수 있을까.
일단 밀어줄 수 있는 곳까지 밀어주기로 했다.
‘이제 집에 가자.’
시범경기 일정을 5승 3패로 마무리한 성운 라이온즈는 대전에서 대구로 이동, 긴 출장을 마친 슈퍼루키는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구단에서 준 계약금으로 이사한 집, 20평 남짓한 빌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인영은 48평이나 되는 널찍한 공간을 탐험했다.
“엄마도 새 집이 좋죠?”
“글쎄다. 아직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 ”
어머니는 아들의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18년을 산 집을 두고 떠나려니 뭔가 섭섭했던 게 사실, 얼마 전 시장에서 장을 봤는데 자기도 모르게 옛집으로 가고 있었다는 비화를 털어놨다.
“엄마, 이제 거기 우리 집 아니에요. 정신 바짝 차리세요.”
“그래야지. 엄마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
쓸데없는 말에 아들은 인상을 구겼다.
이렇게 좋은 집은 내 생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 이인영은 돈 많이 벌면 또 이사 갈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로 이사 가려고?”
“대구에서 제일 좋은데요. 한 20억이면 사겠죠.”
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차를 한 대 사달라는데, 아들은 그건 반대했다.
“엄마는 길눈이 너무 어두워서 안 돼요.”
“왜, 엄마 친구들은 다 운전하고 다녀.”
“안 돼요. 엄마는 운전대를 잡을 운명이 아니에요.”
“그럼 난 평생 걸어다니라는 거니?”
“운전기사 있잖아요. 아빠 데리고 다니세요.”
해설위원 은퇴하셨으니 앞으로 할 일도 없는 아버지, 그럼 엄마 운전기사 해도 나쁠 것 없지 않은가.
어머니는 그것도 괜찮겠다며 깔깔거렸고, 마침 잠시 외출했던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왔다.
“기사님 오셨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이인호는 아들에게 눈치를 줬다.
하지만 지금 이 집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건 아들, 늙은 호랑이는 고개를 숙였다.
평생 일해서 빌라 하나 장만 하고 자식 키웠는데, 아들은 계약금 한 방으로 이만한 집을 사버렸으니, 참으로 허망한 인생사 아닌가.
밥 얻어먹으려면 운전기사든 뭐든 해야겠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새 차 한 대 뽑아드려요?”
“차? 무슨 돈으로?”
“제가 사면 되죠.”
집에 이어 차까지 쏘겠다는 아들, 계약금 조공으로 퉁치는 거 아니었나. 끝을 모르는 서비스에 아버지는 거부감을 표했다.
“그 돈 있으면 돈 모아서 장가 가라.”
“장가는 혼자 가요?”
“너 소개 시켜달라는 사람이 줄을 섰다 줄을”
아버지는 아들에게 고급정보를 흘렸다.
장래가 탄탄한 아들에게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사실, 친구들 중에도 한 번 엮어보려고 들이대는 녀석들이 있다.
하지만 슈퍼루키는 출세가 먼저라는 입장, 연애는 당분간 생각하고 싶지않다고 선을 그었다.
* * *
3월 25일,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 2019 시즌의 막이 올랐다.
작년 시즌 평균 관중 8000명에 그쳤지만 오늘만큼은 만석, 간만에 들어찬 자리에 차명석 단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성적만 내면 되는데, 시범경기에서 5승 3패를 한 만큼 올 시즌에 대한 기대는 분명 남달랐다.
거액을 주고 영입한 슈퍼루키는 평소처럼 좌익수로 선발 출장, 박한우 감독과 협의를 거쳐 당분간 7번으로 기용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제는 실전에서 터져주길 바랄 뿐, 그 마음은 팬들도 다르지 않았다.
“자, 오늘 NA 자이언츠는 숀 마컴이 개막전 선발로 나섭니다. 작년시즌 성적은 13승 9패 평균자책점 3.44, 팀 내 최다승과 최다이닝을 기록했습니다.”
막판까지 시간을 끌다 겨우 재계약을 했죠. 사실 선발진이 불안정한 자이언츠 입장에선 놓쳐선 안 될 선수였습니다.
문제는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
숀 마컴은 작년 시즌 유일하게 200이닝을 넘긴 투수였다. 일본으로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별 수 있나.
아쉬운 쪽이 고개를 숙이기 마련, 1년 130만 달러를 조건으로 한국에서 2년 차 시즌을 맞이했다.
거기다 좌완에 최고 150km를 던질 수 있는 선수, 좌타자인 이인영에겐 제법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성운 라이온즈가 야심차게 영입한 존 워커도 만만치 않은 투수, 양 팀은 2회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1루를 밟지 못했다.
[7번 타자 좌익수, 이 ‧ 인 ‧ 영]
그렇게 경기는 흘러 3회 말 홈 팀의 공격, 기다렸던 선수의 등장에 관중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개 숙일 이유 없지.’
이인영은 주심이나 포수에게 고개를 숙이는 절차도 생략했다.
별로 좋게 봐달라고 애교 부릴 생각도 없고, 서로 프로 답게 할 일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차분하게 초구를 기다렸다.
“초구는 바깥쪽, 들어옵니다.”
“마컴 선수가 작년 시즌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0.239, 홈런은 하나 밖에 내주지 않았거든요. 바로 이 제구력 덕분인데, 이인영 선수가 어떻게 상대를 할지 지켜보겠습니다.”
2구도 바깥쪽(볼), 시범경기 때부터 예상했던 패턴 이린가. 이인영은 당황한 기색없이 먹잇감이 타격 범위 안에 들어오길 기다렸다.
따악 ~ !!
“좌익수 높게 뻗어가는 타구 ··· 어? 계속 가는데요?!! 좌익수는 계속 뒤로 ~ !! ··· 담장 밖으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솔로 홈런!! 고교 선수 최초로 데뷔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합니다!!”
“지금은 이인영 선수 본인도 놀란 것 같네요. 잠시 타구를 잃어 버렸는데 그냥 베이스 돌면 됩니다.”
2루 근처를 얼쩡 거리던 슈퍼루키는 홈런을 알리는 3루심의 사인을 보고 베이스를 돌았다.
설마했던 데뷔타석 홈런, 한국에 와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숀 마컴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 홈을 밟은 이인영은 마중을 나온 감독을 거쳐 동료들과도 하이라이트를 나눴다.
치긴 했는데 뭔가 꿈속을 떠다니는 느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
볼을 꼬집어 봤지만 역시 현실, 평생 기억에 남을 타석을 이대로 흘려보내도 되는 건가.
납득할 수 없는 일, 방송국 중계팀이 제공하는 VTR 화면을 되돌려봤다.
'저게 나라니, 반하겠어.'
첫 타석을 확인한 슈퍼 루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스윙, 무의식적으로 나온 스윙이라는 게 더 만족스러웠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미남은 너무 염치없고, 자세 미남이라면 괜찮겠지.’
팬들은 오늘 응원가 속에 미남이라는 말을 섞어줬다.
하지만 그건 양심 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 그래도 자세 미남이라면 남들도 납득해주지 않을까.
오늘부터 자세미남이라는 별명을 마음속에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