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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일인자-11화 (11/309)

11화. 비운의 2인자 (11)

[성운 라이온즈 오늘 귀국]

2월 28일, 연습경기 일정을 마무리한 성운 라이온즈는 대구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3월 12일부터 시작되는 시범경기 일정, 원래 각 구단 당 18경기를 치르는 시범경기는 2016년에 12경기, 그리고 2018년 들어 8경기로 확 줄어들었다.

시범경기는 정규시즌과 달리 엔트리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이런 저런 선수를 써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게 8경기로 줄었으니, 구단 입장에선 어떤 선수를 어떻게 기용해야 하는지도 고민거리, 성운 라이온즈의 단장 차명석은 이인영을 3번으로 기용하길 원했다.

전지훈련 연습경기에서 타율 0.412, 홈런 2개, 4타점을 기록한 유망주, 하지만 박한우 감독은 하위타선에 두고 마음껏 스윙을 하게 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시작부터 중심타선을 책임지면 부담이 될 겁니다.”

그럴듯한 주장에 차명석 단장은 일단 동의했다.

무슨 일이든 사사건건 반대하고 의견이 맞질 않는 박한우 감독, 일단 두고 보겠지만 기회를 틈 타 날려버리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술 쳐 먹지 말고 자라]

그러건 말건 박한우는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에 충실했다.

전지훈련 기간 동안 철저히 단속한 선수들의 외박, 시범경기 개막까지 여유가 있으니 이 사이에 풀어지는 선수들이 적지않다.

특히 걱정되는 요주의 인물들, 원래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거친 문자로 염려를 표했다.

“뭐래?”

하지만 문제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자리를 마련했다.

슈퍼루키도 거의 반강제적으로 참가, 아직 짬이 없어 거절하기가 애매했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네”

이인영은 엉겁결에 술잔을 받았다. 아버지에게도 못 받은 술잔을 여기서 받을 중이야, 일단 눈치를 살피다 선배들에 맞춰 술잔을 기울였다.

“크악 ~ ”

생전 처음보는 맛에 슈퍼루키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졌다. 없는 쌍꺼풀이 생길 정도, 점 점 깊어지는 표정에 선배들은 대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입에 안 맞냐?”

“네, 이런 걸 무슨 맛으로 드세요?”

“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것 뿐이야.”

선배들은 보란듯이 술잔을 비워냈다.

나보다 오래 살았다고 해도 겨우 네 다섯 살 차인데 어른인 척 하다니, 뭣보다 이런 맛없는 술맛 따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 ··· 또 문자오네.”

“누가?”

“민머리, 왜 사생활까지 건드리고 xx이야.”

그렇게 언마나 지났을까. 문자를 확인한 홍현구가 불만을 중얼거렸다.

전지훈련 때는 그렇다고 쳐도 지금은 쉬는 날 아닌가. 한 달만의 술자리까지 간섭하는 감독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

이인영은 말 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필요 이상의 간섭일 수도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선수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뜻 아닐까.

감독으로서의 자질은 둘째 치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본인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탓에 욕을 먹는 입장, 조금은 안타까웠다.

“야, 집에 있는지 사진 찍어 보내래.”

“풋. 무슨 애인도 아니고, 미친 거 아냐?”

“무시해 버려. 자느라 못 받았다고 하면 되잖아.”

잘못된 관심 때문에 이젠 선수들에게도 외면 받는 신세, 이런 게 무슨 감독인가.

3년 동안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으니 어지간한 사람이라먼 다 내려놨을 텐데, 무슨 미련이 있기에 지금까지 감독의 자리에 연연하는 건가.

이인영은 이런 더런 생각을 중얼거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나한테는 문자도 안 오네.’

그건 그렇고 왜 나는 문자를 안 주는 건지, 조금의 애정도 없다는 건가, 은근 짜증 나는 상황, 한 두잔. 계속 먹다보니 술기운이 슬슬 발동했다.

“여기 술 한 병 더 주세요.”

이젠 알아서 추가 주문까지 하는 녀석, 특유의 친화력에 술도 잘 마시니 어떻게 안 예뻐할 수 있겠나.

그렇게 선배들과 친목을 쌓은 이인영은 취기가 한 껏 오른 몸으로 귀갓길에 올랐다.

“잠깐, 가기 전에 전화 한 통 해야지.”

택시를 기다리다 문뜩 떠올린 얼굴, 새벽 두 시가 넘었지만 박한우 감독은 전화를 받아들었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처음부터 내 전화번호 따윈 등록도 안 해놨다는 건가. 그동안 가슴 속에 눌러뒀던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저 이인영인데요. 감독님한테 불만 있어서다 전화 했습니다.”

[ ··· 뭐가 말이냐?]

“왜 다른 선수들한테는 일찍 들어가라고 하고 저한텐 문자 안 넣으셨어요? 제가 그렇게 싫으면 아예 라인업에서 빼버리라고요. 네?!!”

박한우 감독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한 잔 걸친 걸 보니, 선수들은 오늘도 내 지시를 어긴 모양, 무시를 당한 건 둘째 치고 이 녀석이 전화를 걸 줄은 예상도 못했다.

[취했으면 일찍 자고 내일 전화하자.]

“춰하긴 누가 취했다고 그래요? 네?!! 취한 사람이 이렇게 말 잘하는 거 봤어요?!!”

점 점 격해지는 목소리, 괜히 자극해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박한우 감독은 달래기에 나섰다.

[그래, 그래, 내가 미안하다. 얼른 들어가서 자라.]

“됐고요. 저한테도 문자 하나 보내세요. 감독이라는 사람이 선수 그렇게 차별하는 거 아닙니다.”

[그래, 지금 당장 보낸다. 그러니까 그만 해라.]

박한우 감독은 서둘러 문자를 보냈다.

3년 동안 선수들에게 무시만 당했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 문자를 확인한 이인영은 마침 도착한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숙면모드, 다 왔다는 기사의 독촉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술 많이 마셨니?”

“조금요.”

걱정많은 어머니는 늦게 들어온 아들 뒤를 따라다녔다.

선배들과 술을 마신다는 통보는 받았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게 사실, 냉장고 앞에서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아들을 말없이 지켜봤다.

‘내가 왜 그랬지?’

찬물에 정신이 번쩍든 이인영은 감독에게 항의 전화를 건 걸 떠올렸다. 감독이 날 곱게 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 이번 일로 미운털 확정,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뭐하나.

일단 한 숨 자고 나머지는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 * *

“가즈아!”

“안타 가즈 ~ 아!!”

3월 12일,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 첫 시범경기가 열렸다.

작년 시즌 성운 라이온즈의 경기 당 관중 동원력은 약 8000여 명, 관중석의 1/3도 못 채웠다.

성적은 둘째 치고 박한우 감독의 재미없는 야구가 주 원인, 하지만 올해는 시범경기 첫 경기부터 1만 관중을 넘기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왜 내가 3번이지?’

대기 타석에 선 이인영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라고 술기운에 거하게 터뜨렸는데 하위타선에서 3번으로 승격될 줄이야.

더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겠다는 감독의 술책은 아닌지, 몸을 풀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3번 타자, 좌익수 이 • 인 • 영]

와아아 ~ !!

춤추는 곰의 홈 데뷔전, 이 날을 기다렸던 홈팬들은 열정적인 응원구호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딱 ~ !!

“초구!! 파울입니다. 역시 공격적인데요.”

“이인영 선수가 공을 오래보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볼을 오래보면 몸 쪽 공에 반응이 늦으면서 사구를 맞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은 깊숙한 공도 잡아당기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한진 타이거스 배터리는 신중하게 사인을 주고 받았다.

이인영은 홈플레이트에 약간 가깝게 붙는 스타일, 몸에 맞더라도 바깥쪽으로 도망치는 볼을 치겠다는 뜻이다.

몸쪽으로 붙인 다음에 바깥쪽 승부를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달려드는 녀석, 어정쩡한 몸쪽 승부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변화구로 방향을 틀었다.

따아악 ~ !!

“잡아 당긴 타구가 우측 높게!! 담장을 넘어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투 런 홈런!! 벼락같은 스윙으로 팀에 리드를 안깁니다!!”

“지금은 타이밍을 뺏겼는데 손목 힘만으로 넘겨버렸거든요, 정말 근본도 없는 스윙입니다.”

해설위원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타이밍을 완전히 뺐긴 상황에서 상체만으로 이런 타구를 날리다니, 기술이고 뭐고 무시한 파워에 해설위원은 물론 한진 타이거스 배터리는 넋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에 비해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 방송국이 수익문제로 연습게임은 물론 시범경기까지 중계 거부를 하고 있으니, 팬들은 슈퍼 루키가 홈런을 쳤다는 소식만 들었지 두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었다.

오늘 드디어 두 눈으로 확인한 파워, 간만에 등장한 거포 유망주는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드높였다.

“잘 했다.”

마중을 나온 박한우 감독은 양손을 내밀었다.

관심 안 주면 큰일 나는 자식, 또 술 먹고 협박전화 하기 전에 관심을 표했다.

찔리는 게 있지만 루키는 태연하게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벤치에 착석,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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