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비운의 2인자 (10)
[이인영, 연습경기에서 대형 홈런 작렬]
이 강렬한 한 방의 여파는 일본을 넘어 한국까지 닿았다.
이런 선수를 기다렸던 대구 팬들의 반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 덕분에 아버지인 이인호의 커리어도 주목을 받았다.
통산 130홈런을 겨우 넘겼을 정도로 파워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1500안타를 넘긴 꾸준한 선수, 그렇다고 특별한 커리어는 세운 것도 아니다.
커리어하이는 1999년의 타율 0.319(리그 3위), 19홈런, 163안타(리그 2위). 34도루(리그 5위),
공교롭게도 아들이 태어난 해였다.
뭣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만능플레이어로 주목을 받았던 시절, 하지만 이인호는 그해 31홈런으로 신인 역대 최다 홈런을 날린 오창민에게 밀려 신인왕 2위에 머물렀다.
그뿐이랴, 수비 중 당한 부상으로 기량이 하락하면서 신인 시절의 활약을 더는 보여주지 못하고 은퇴했다.
그날부터 이인호를 따라다닌 별명은 불운의 선수, 2인자라는 비아냥 섞인 조롱 뿐, 이인호는 나는 몰라도 내 아들은 최고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키우며 살아왔다.
그런데 왜 팬들은 나의 과거를 들추며 아들과 비교하는 건가, 기자들 앞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제 아들은 절 월등히 넘어설 겁니다. 그러니 제 과거와 비교하진 말아주십쇼.”
내 재능은 몰라도 불운까지 닮질 않길 바라는 게 솔직한 속마음, 비교할 상대가 필요하다면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빛낸 전설들과 해달라며 선을 그었다.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민감하게 반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인영은 기자들의 질문에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스포츠 세계에서 부자가 비교되는 건 흔한 일 아닌가. 아버지보다 못한 선수도 있지만 그 명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아버지가 불행했다고 나까지 불운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다 근거없는 미신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분들은 아버지가 불운 했다, 2인자였다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제겐 닮고 싶은 목표입니다. 아버지와 비교되는 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아들의 반응에 생각 있는 팬들은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세상에 아들이 자기보다 못되길 바라는 아버지가 있을까. 그런데 왜 아버지의 불운을 근거로 아들의 미래를 점치는 건지, 저주를 넘어 악담에 가까운 행위 아닌가.
대구 팬들은 이인영은 분명 아버지보다 훌륭한 선수가 될 거라며 격려의 응원을 보냈다.
[왜 그런 말을 했냐?]
“당연한 말을 한 것 뿐이에요.”
그날 밤, 두 부자는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나눴다.
아비 체면 세워주겠다고 스스로를 낮춘 속 깊은 아들, 하지만 이인영은 아버지를 넘고 싶은 건 사실이라며 본심을 드러냈다.
“저는 아직 실전에서 안타 하나 못 쳤잖아요. 최고가 되려면 아버지는 당연히 넘어서야죠.”
이인호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들은 내 입장을 생각해 준 게 아니다. 아버지는 최고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중간보스 같은 존재, 그렇게 생각하면 여론의 참견쯤은 웃으면서 흘려버릴 수 있다.
그런데 난 왜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까.
과거의 아쉬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신세, 앞날이 창창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아들과 너무 비교됐다.
[너 아빠 기록은 6년 안에 넘어야 된다.]
“6년에 어떻게 1500안타를 쳐요?”
[홈런은 넘을 수 있잖아. 아니냐?]
한 시즌에 20개 중반 정도만 치면 가능한 일, 잠시 말이 없던 아들은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답을 내놨다.
“뭐 ··· 홈런이라면 4년 안에 깰 수 있겠죠.”
[ ··· 뭐라고? 진심이냐?]
“저 농담 못하는 성격이에요. 아시잖아요?”
이인호는 아들의 건방에 할 말을 잃었다.
4년에 130홈런 이상을 친다? 최소 30개 중반을 매년 쳐야 하는데, 이 녀석이 프로를 너무 물로 보는 건 아닌지. 하지만 이인영은 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홈구장도 작은데 그 정도도 못 치면 누가 인정을 하겠어요.”
[ ······ 그래, 그런데 그런 말은 남 앞에서 하지 마라. 입만 산 놈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알아요. 아빠니까 이런 소리 하는 거죠”
통화를 마친 이인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들을 높게 평가하지만 프로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걱정이 앞섰다.
* * *
[성운 라이온즈 또 패배]
[연습경기 3연패, 작년과 달라진 게 없다.]
이인영은 연습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갔지만 팀은 그렇지 못했다.
작년 시즌 기록은 리그 9위, 구단 역사를 새로 썼다. 이러다 올해는 정말 바닥을 기는 게 아닌지, 아직 개막전도 치르지 않았지만 박한우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지난 3년 동안 지휘봉을 쥐어줬으니 기회는 줄 만큼 줬다는 것, 쏟아지는 원성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있는지 박한우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지난 3년이 성공적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방향이라니요?”
“성운은 언제나 기동력이 떨어지는 팀이었죠. 그리고 그게 팀 우승에 걸림돌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성운 라이온즈는 창단 초기부터 수많은 거포를 배출했다.
덕분에 인기몰이를 하며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구단이 됐지만 우승과는 이상할 정도로 인연이 없었다.
문제는 장타력에 의존하는 타선, 다른 팀은 기동력을 살려 꾸역꾸역 득점을 냈지만 성운은 언제나 중심타선의 활약에 의존했다.
스타가 쳐주지 못하면 지는 팀, 이게 우승을 못한 절대적인 이유는 될 수 없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타선이 삽질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우승과 거리를 두다 1998년에 첫 우승을 차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 창단 17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다.
박한우 감독도 당시의 주역, 장타력은 중심타선에 비해 부족했지만 정교한 타격과 활발한 주루 플레이로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국시리즈 mvp는 덤, 이후 박한우 감독은 소속 팀을 세 번이나 더 우승으로 이끌며 성운 라이온즈의 전설로 남았다.
내가 타선의 윤활유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팀이 우승할 수 있었을까. 박한우는 자신의 야구스타일에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거포 중심으로 팀을 육성하려는 구단과 늘 충돌한 것, 사실 박한우 감독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문제는 지금이 2019년이라는 것, 달리는 것보다 멀리 치는 야구가 효과적이라는 건 통계로 증명됐다.
본인의 전성기를 기준으로 야구를 논하는 건 위험, 기자회견은 불 붙은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러다 이인영을 리드오프로 쓸 분위기네.]
->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아 더 불안하다. 이인영 대통령배, 봉황기에서 1번으로 뛰지 않았냐?
-> 장타력 포텐 최강인데 리드오프는 절대 안 된다. 잘못하면 볼카운트 놀이하는 그저 그런 선수 된다.
팬들의 반응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 2001년, 성운 라이온즈는 경인대학의 유망주 신성우를 영입했다.
신성우는 대학야구를 뜨겁게 달군 거포 유망주, 성운 라이온즈는 신성우를 2번으로 기용했다.
당시 성운은 3번 박승우(32홈런), 4번 패트릭 그로스(31홈런), 5번 강서균(27홈런)이 중심을 이룬 강타선을 보유했다.
거포는 충분했기에 당시 감독이었던 김하규는 선구안이 좋고 발재주도 있는 신성우를 테이블세터로 돌리는 여유를 부렸고, 이 선택이 유망주의 잠재력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굳이 네가 홈런을 칠 필요는 없다.”
신성우는 감독에게 장타보다 출루에 집중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평생 해오던 기술이 완전히 부정당한 것,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스윙을 하다 폼을 잃어버렸다.
10년 동안 프로에서 기록한 홈런은 겨우 81개, 10홈런을 넘긴 건 겨우 2번뿐이었다.
이인영이 제 2의 신성우가 되는 건 결사반대, 박한우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전 리드오프도 상관없는데요.”
“어째서죠?”
“리드오프로 나선다는 건 타석이 더 늘어난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홈런이 늘어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이인영은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1번으로 나서면 장타력이 줄어든다니 이게 무슨 논리인가.
스윙을 바꾼다면 모를까 전혀 근거 없는 소리, 신인이라 한 타석이라도 더 나가는 게 좋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쩜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지, 성운 라이온즈 팬들은 우리 곰돌이 하고 싶은 거 하라는 신뢰를 표했다.
‘리드오프로 나오면 홈런이 늘어난다고?’
‘프로를 물로 보는 거냐?’
하지만 다른 팀 팬들은 슈퍼 루키의 발언을 곱게 보지 않았다. 나와 마주할수록 네가 쳐 맞는 빈도가 늘어난다는데 누가 좋다고 하겠나.
기분 나쁜 건 프로선수들도 마찬가지, 4번 째 연습경기에서 성운 라이온즈와 마주한 st 위너스는 건방진 루키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그래도 맞는 건 찜찜하지’
‘내가 희생양이 될 필요는 없잖아.’
투수들은 어느새 승부를 피하기 시작했다.
연습경기에서 친 홈런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녀석, 괜히 정면 승부했다가 맞으면 나만 망신 아닌가.
거기다 일본에서 주전급 선발로 뛰는 투수의 공을 공략한 녀석,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 정면 승부를 하기도 애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