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비운의 2인자 (7)
[몸 만들어 와라]
전지훈련을 앞두고 성운 라이온즈 감독 박한우는 선수들에게 통보를 내렸다.
지금부터 전지훈련이 시작 되는 2월까지 단체훈련은 금지, 알아서 몸을 만들라는 통보에 선수들은 각지로 흩어졌다.
[이인호, 해설위원 은퇴]
이 시기에 맞춰 이인호는 해설워원에서 물러났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아들 지도에 집중하기로 한 것, 필요한 물건을 챙겨 들고 아들을 다그쳤다.
“다 좋은데 왜 산이에요?”
하지만 이인영은 아버지의 훈련 방식에 반발했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산에서 체력을 단련하나. 너무 구식 아니냐는 말에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라니, 잠자코 있던 제 3자가 폭소를 터뜨렸다.
“뭘 알아야 아들을 가르치지”
“이거 왜 이래, 내가 코치 생활을 몇 년 했는데 ··· ”
“그게 몇 년 전 일인데요? 해설한 기간이 더 길잖아요.”
아내의 타박에 이인호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산을 타는 것도 엄연한 훈련인데 그걸 몰라주다니, 어쨌든 착한아들은 그냥 아버지의 뜻에 맞춰드렸다.
그렇게 등산에 나선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 힘이 넘치는 이인영은 벌써부터 헉헉거리는 아버지의 엉덩이를 슬쩍 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대체 누가 누굴 훈련시키는 건지, 두 부자는 얼마 못 가 산중턱에 자리를 잡았다.
“코치보다 에이전트를 하시는 게 어때요?”
아들의 말에 이인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4억 5천이었던 계약금을 7억으로 부풀린 아버지, 이 정도면 코치보다 에이전트가 낫지 않을까.
일리가 있는 말,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체면은 세우고 내려가기로 했다.
“힘드시면 그냥 내려갈까요?”
“됐다 이 녀석아”
이인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아버지 뒤를 따라갔다.
내려가자고 했으면 코치 자격 실격이라고 하려 했는데 빼앗긴 대사, 그렇게 한참을 올라 산 정상에 이르렀다.
뭐 대단한 훈련법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말없이 경치를 둘러보는 아버지, 그래도 별 말 없이 근처를 기웃거렸다.
“너 지금까지 아빠한테 서운했던 거 있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솔직히 말 해 인마, 이런 건 둘이 있을 때 하는 거야.”
그제야 이인영은 아버지의 본심을 알아챘다.
훈련은 핑계고 사실은 아들과 속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것,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딱히 없는데요.”
“정말이냐?”
“네.”
이인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쪽은 찔리는 게 제법있는데 아들이 기억이 안 난다니 무슨 말을 하겠나? 이 때 뭔가를 떠올린 피해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네요.”
“뭐가 말이냐?”
아들은 제법 오래 전 일을 떠올렸다.
가족들과 산에 놀러갔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아버지는 아들을 떼어놓고 도주, 깜쪽 놀란 아이는 서둘러 그 뒤를 쫒았다.
하지만 아빠는 아들이 따라붙었다 싶을 때 도망치고 다시 다가가면 도망치는 걸 반복, 못 된 장난은 아들이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계속됐다.
[나중에 크면 나도 아빠 괴롭힐 거다. 나한테 했던 것처럼 산에 놔두고 올 거다. 그때는 내가 아빠보다 더 빨라져 있을 테니까.]
얼마나 분했으면 겨울방학 숙제 일기에 이런 말을 적었을까. 일기를 본 선생님이 이게 무슨 말이냐며 추궁까지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했다.
“그때 왜 그러셨어요? 해명할 기회 드릴 게요.”
팔짱을 낀 아들의 추궁에 아버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산에서 벌어졌던 일, 아빠 쫒아오다 넘어지기라도 했으면 큰 일 아닌가. 어쩌자고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인데, 나름대로 변명을 내세웠다.
“글쎄다. 그냥 널 놀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아버지 기억 속의 아들은 누구보다 필사적이었다.
금방 빽 ~ 하고 울 줄 알았는데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녀석, 아빠를 절대 놓쳐선 안 된다는 간절함이 눈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처지는 아빠를 밀어주고 끌어주고 있으니, 흘러간 세월이 실감됐다.
“저 먼저 내려갈게요.”
“왜?”
“왠지 아빠를 따돌리고 싶어졌어요.”
옛 일을 떠올린 아들은 먼저 하산을 시작했다.
조금 기다려 줄 만 한데 순식간에 저만큼 가버린 녀석, 아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아버지는 불안에 휩싸였다.
진짜 날 따돌리기로 결심한 건가. 그것보다 급하게 내려가다 사고라도 나면 큰 일, 뿌린 대로 거둔 아버지는 한참을 불안감과 싸우다 주차장 입구에서 아들과 조우했다.
“너 진짜 아빠 떼놓고 간 거냐?”
“그런다고 했잖아요. 제 기분을 이제 이해하셨어요?”
보기보다 속이 좁은 녀석,
그래도 아버지는 한 번 앞서간다고 마음먹은 이상 뒤도 안 돌아보는 아들의 냉정함이 마음에 들었다.
프로세계에서 상대를 기다려주는 경우는 없다.
앞 서 갈 수 있으면 저 멀리 달아날 뿐, 아버지는 산을 오를 때 내심 아들이 자신을 앞지르길 바랐다. 하지만 착한 아들은 내 뒤를 밀어줄 뿐, 그래서 옛 기억을 들춰냈다.
“프로에선 늘 냉정해야 한다. 팀 동료라고 해도 너와 주전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니까.”
이인호는 아들에게 냉정한 마음을 계속 주입시켰다.
고교시절 이인영의 주 포지션은 3루수, 하지만 내 실력이 프로 레벨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모른다.
거포 유망주가 수비 때문에 1루, 그것마저 안 되면 외야로 밀려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지만 그건 대부분 용병 몫, 성운 라이온즈에는 홍현구, 김재화, 정일훈 등 주전 3루수를 노릴 만한 재원이 얼마든지 있다.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아군으로 여긴다면 그건 착각, 이인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3루를 차지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수비를 좀 더 가다듬었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일리가 있네요. 그럼 그렇게 해요.”
야구에서 우 타자가 많은 건 당연, 거기다 kbo는 우 타자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다.
그뿐이랴, 좌 타자들도 밀어치는 스윙을 즐기기 때문에 3루수가 차지하는 수비비중은 메이저리그보다 더 높다고 봐도 좋다.
프로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조건, 하산하자마자 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가장 신경을 기울인 건 전진 스텝, 아시아 야구 특성상 3루 느린 땅볼은 피할 수 없다.
글러브 핸들링이 아무리 좋아도 한발 늦은 스텝 때문에 내야 안타를 주는 일이 허다, 프로에서 유격수 - 2루수 - 3루수를 모두 경험한 이인호는 한 발 더 뻗는 스텝을 강조했다.
먼저 가서 맞이하면 공을 한 번에 잡지 못해도 일단 막은 다음에 송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수비를 포구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감독들이 있는데, 아버지는 그건 편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배우면 다 응용할 데가 있겠지.’
이인영은 말없이 훈련에만 열중했다.
세상에 모든 문제의 답을 풀어줄 수 있는 절대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맞는 공식을 대입하는 게 현명, 아버지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먹힐 상황도 있지 않을까?
일단 어떤 기술이든 익혀두는 게 중요, 가르치면 뭐든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 제자 덕분에 일일코치도 의욕을 불태웠다.
* * *
성큼 다가온 2019년 1월, 전지훈련을 앞둔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체력테스트를 치렀다.
균형 잡힌 몸은 프로선수의 조건, 하지만 그 기본도 못 지키는 프로도 적지 않다.
다른 구단은 통과 기준을 정해두고 그 조건에 맞으면 합격통보를 내리지만, 성운 라이온즈는 하위 20%를 걸러내는 방식을 유지해 왔다.
무조건 좋은 기록을 내야하는 자리, 상대가 선배라도 앞지를 수 있으면 앞지르는 게 이 세계의 룰이다.
양보 따윈 없는 경쟁, 개막전 로스터를 노리는 이인영은 1500m 장거리 달리기에서 초반부터 치고나갔다.
‘멍청한 녀석,’
박한우 김독은 그런 루키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의욕만 앞세우고 혈기뿐인 애송이, 그런 바보는 죻아 하질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
‘따라잡을 수가 없어.’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 외로 흘러갔다.
떨어지기는커녕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루키, 반환점을 지나쳤을 땐 상위권과 거의 반 바퀴 차 선두를 유지했다.
저 큰 덩치로 어떻게 저렇게 잘 달릴 수 있는 건지, 운동하면 나름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도 혀를 내둘렀다.
결국 선두로 들어선 루키, 현장에 나와 있던 차명석 단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계약금 7억을 줬으니 이 정도 해줬으면 하는 기대치가 있는 게 사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저 녀석은 기대 이상이다.
전지훈련 참가는 당연, 감독과 협의를 거쳐 2월 14일부터 시작하는 연습경기 때 스타팅 멤버로 투입하는 것도 고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