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6화 (6/309)

6화. 비운의 2인자 (6)

[동산고 우승 인정 못한다.]

이 와중에도 몇 몇 팬들은 동산고의 우승을 폄하했다.

다른 야구부는 청소년 대표 차출로 전력이 약해져 있었고 덕분에 동산고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 거기다 왜 이인영이 청소년 대표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뒷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 불과했다.

고교야구는 매년 4월부터 8월까지 살인적인 일정으로 채워져 있다.

청룡기, 대통령배, 봉황기가 열리는 시기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 거기다 낮 경기가 많아 선수들은 초주검이 된다.

얄궂게도 이 시기와 맞물린 청소년 대표 팀 차출,

협회 관계자들은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선수 선발 기간을 조정하고, 메이저 대회 출전 기간에 합숙훈련을 하는 대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전력약화를 우려한 우승권 야구부들은 격하게 반발, 이게 올해 5월에 일어난 일이다.

선수차출 문제는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 거기는 야구부라도 많지 한국은 겨우 80여개다. 다들 싫다고 하는데 그럼 대회는 어떻게 치르나?

송병호 대한야구소프트볼 위원장이 강제차출 카드를 꺼내들면서, 무작위 차출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또 문제가 된 게 드래프트, 일부 학생들은 6월 1차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구단 소속이 됐다.

차출을 하려면 프로 구단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상황, 비싼 계약금 주고 영입한 학생의 차출을 바랄 구단이 어디 있나.

청소년 대회는 국제대회처럼 병역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쳤을 때 무슨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몇 몇 구단은 교육리그 참가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붙여 학생들을 빼돌리는 게 현실, 선수 수급이 어려워지자 대표 팀의 김고우 감독은 2차 드래프트를 앞둔 학생들도 차출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때 이인영은 차출 명단에 포함됐고, 동산고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거다.

‘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동산고의 김재호 감독은 봉황기 출전으로 맞불을 놨다.

청룡기, 대통령배, 봉황기를 모두 출전할 의무는 없지만 대통령배에서 준우승에 그친 동산고는 지금이 아니면 우승할 기회가 없다며 출장을 강행했다.

깜짝 놀란 김고우 감독은 이인영은 차출 명단에 포함된 선수라며 반발했지만, 이미 동산고는 출전선수 명단을 대한야구협회에 제출한 뒤였다.

대회 기간과 겹친 대표팀 합숙훈련, 대한야구협회는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김고우 감독은 이인영을 차출명단에 올렸을 뿐, 이를 공식으로 협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동산고의 봉황기 출전 명단 제출이 한발 빨랐던 것, 결국 동산고 야구부에 통보만 하고 넋놓고 있던 김고우 감독의 안일함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그 책임을 학생에게 물어야 하나?

이렇게 청룡기, 대통령배, 봉황기를 모두 치른 이인영은 고교생의 인권보호라는 제도에 따라 청소년 대회 출전이 무산 됐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는 팬들은 알아서 입을 다문 일, 이인호는 아들을 둘러싼 논란은 무시하고 프로구단 계약에 집중했다.

일단 성운 라이온즈는 니시테츠 호크스의 지명해제 요구를 거절한 상황, 9월 7일, 차명석 단장은 마지막 담판에 나섰다.

“계약금 7억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저희도 성의를 표했다고 생각합니다만 ··· ”

“그렇군요. 더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2차 드래프트 이후 열흘을 끈 줄다리기, 정식 계약식이 남았지만 이인호의 사인을 받아낸 성운 라이온즈는 바로 계약을 공포했다.

프로야구 역사상 신인선수로 2번 째로 많은 계약금, 이렇게 이인영은 여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이인영 선수, 성운 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으셨는데 혹시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선수가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질문을 던진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성운 라이온즈는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한 명문 구단, 그냥 형식적이라도 누굴 닮고 싶다는 말을 하면 될 텐데, 혹시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까.

가려운 곳을 슬쩍 긁어줬다.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어떤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는 있으십니까?”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최고의 선수가 될 건데 누구를 본받겠다는 건가. 그제야 롤 모델이 없다는 말을 이해한 기자들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역대 두 번 째로 많은 계약금을 받으셨는데 어디에 쓰실 예정입니까?”

“부모님께 전부 드렸습니다.”

“오 ··· 제대로 효도하셨네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용돈 안 드리는 조건으로 드린 거니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이어지는 질문에 이인영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답을 내놨다.

“앞으로 연봉이 늘면 부모님께 드릴 용돈도 늘어나겠죠. 그럴 바엔 계약금으로 퉁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이 아까워 계약금으로 합의를 봤다니, 이걸 진담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들 옆에 앉은 아버지는 말없이 미소만 지을 뿐, 기자들의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어쨌든 보기보다 유쾌한 선수라는 건 분명, 마이크는 차명석 단장 쪽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이인영 선수를 어텋게 육성하실 겁니까?”

“이인영 선수의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구단의 입맛에 맞추는 것보다 그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생각입니다.”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기습 질문을 받은 박한우 감독은 답을 망설였다.

3년 동안 내 고집대로 팀을 꾸렸지만 결과는 최악, 이 정도면 잘못을 받아들일 만도 한데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자들 앞에서 단장과 대놓고 충돌할 순 없는 일, 남은 계약기간은 1년뿐이고 여론의 반응도 좋지 않아 일단 고개를 숙였다.

“재능이 있는 선수입니다. 앞으로 팀에 큰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포지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홍현구 선수도 3루를 볼 수 있는 걸로 아는데, 두 선수 중 하나는 외야로 돌릴 생각이십니까?”

이어지는 질문에 박한우 감독은 얼굴을 붉혔다.

홍현구는 왜 안 쓰냐고 여론에서 난리를 치는 선수, 감독은 난데 왜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건가.

이미 이인영을 스타팅 멤버로 보고 있는 기자들, 기분이 상했지만 그건 천천히 생각할 일이라며 답을 얼버무렸다.

* * *

“와아아 ~ ”

12월 4일, 대구 산격동 체육관에서 성운 라이온즈 팬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성적이 안 좋으니 이런 행사라도 해야 팬들의 마음을 되돌릴 거 아닌가.

분위기를 끌어올린 건 성운 라이온즈가 자랑하는 치어리더 군단, 걸그룹 연습생 출신이 대거 포함된 늘씬한 미녀들의 과격한 동작은 추위마저 녹여버렸다.

“우리 여기에 올 이유 있었나요?”

이인영은 선수들이 모인 대기실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치어리더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우리는 뭘 해도 눈에 띌 수가 없다. 눈 버렸다는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 정곡을 찌르는 발언에 선수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지금 뛰쳐나가 백 댄서라도 하는 게 욕을 덜 먹는 짓 아닐까. 이인영은 선배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무대 위로 난입했다.

“우왓!!”

“꺄아악 ~ !!”

생각보다 격렬한 팬들의 반응, 치어리더들도 깜짝 놀랐지만 프로답게 율동을 이어갔다.

이인영도 그 사이에서 곁눈질로 치어리더들의 율동을 흉내, 그냥 따라하는 수준이 아니라 절도 있는 동작에 분위기는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성공적으로 끝난 무대, 사회자는 치어리더를 따라 무대 뒤편으로 들어가는 난입자를 붙들었다.

“아니, 차례도 아닌데 왜 나오셨습니까?”

“대기실에서 봤는데 치어리더 임팩트가 너무 강하더라고요. 그 다음엔 뭘 해도 호응이 없을 것 같아서 묻어가려고 나왔습니다.”

솔직한 답변에 관객들은 폭소만발, 원래 이렇게 재미있는 선수였나.

고교야구 대회에서 진지한 모습만 보여줬던 선수라 팬들의 눈은 흥미로 반짝거렸다.

“팬들 앞에 서는 첫 공식 무대인데, 기왕 나왔으니 한 말씀하고 가시죠.”

“으음 ··· 누가 저한테 곰이라고 했어요?”

갑자기 취조 현장으로 변한 분위기, 팬들은 요즘 이인영에게 곰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곰은 미련하고 왠지 둔하다는 인상, 하지만 본성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말 둔했다면 어떻게 육상 최강의 포식 동물이 됐을까.

거기다 높은 곳에 달린 먹이를 도구를 써서 떨어뜨리는 지능까지 갖춘 동물, 190에 가까운 덩치에 잘 달리고 야구 센스도 뛰어난 이인영의 플레이는 마치 그라운드를 휘젓는 곰 같았다.

“저 그거 마음에 안 들어요. 다른 별명으로 해주세요.”

“그럼 춤추는 곰은 어떻습니까?”

사화자의 드립에 관객석은 다시 달아올랐다.

물론 당사자는 뭐 씹은 얼굴, 사회자를 빤히 바라보던 이인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상한 아저씨야. 저 갈래요.”

깜짝 놀란 사회자가 가지 말라며 붙잡았지만 춤추는 곰은 뒤도 안 돌아보고 무대 뒤로 퇴장했다.

이 날 사건으로 이인영은 새로운 별명을 획득, 거기다 사인회에서 친절한 모습을 보였기에 성운 라이온즈 팬들의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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