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5화 (5/309)

5화. 비운의 2인자 (5)

“자, 동산고의 1회 초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 됩니다. 선두타자는 이인영 선수, 이번 대회에서 타율 5할 홈런 없이 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선두타자로 출장을 했는데요. 이게 정말 답인지는 결과를 지켜봐야겠죠.”

동산고의 김재호 감독은 지난 대통령배 결승전부터, 이인영을 꾸준히 1번으로 기용했다.

집중견제를 받으면서 폭등한 볼넷, 홈런 타자를 장기말로 활용하는 게 정말 최선인가.

여론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동산고는 결승까지 올라왔고, 이번에야 말로 우승으로 답을 해 줄 생각이었다.

‘굴리면 돼’

타석에 선 김한용(2학년)은 코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를 보호하라는 지시, 어지간한 공은 배트를 내기로 했다.

'안 쳤네.'

슬금슬금 1루에서 멀어지던 이인영은 그대로 2루로 뛰었다.

타자가 움찔할 가치도 없는 바운드 볼, 히트 앤 런은 주자를 보호하는 게 목적이지만 상황에 따라 도루로 전환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이인영은 그 센스를 갖춘 녀석, 김재호 감독은 멋지게 2루를 훔쳐낸 제자에게 박수를 보냈다.

'저 녀석이 프로에 뛰어들면 어떤 성적을 낼까.'

kbo 최초의 40 - 40달성도 꿈이 아닌 잠재력을 지닌 녀석, kbo든 일본이든 하루 빨리 재능을 펼치길 바랐다.

그 전에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봉황기 우승, 여기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 아닐까.

프로 입단을 앞둔 녀석이라 무리한 주루는 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야구부의 기둥은 오늘도 기꺼이 장기 말을 자처했다.

저런 선수에게 우승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건 하늘의 죄, 김재호 감독뿐만 아니라 야구부원들 모두 승리 외의 답은 인정할 수 없었다.

“너 어디로 가는 거냐?”

배명고의 2루수 박민수(3학년)는 경기가 잠시 중단 틈에 화제의 인물과 대화를 시도했다.

일본이냐 한국이냐 선택은 자유재재, 그런데 이 중요한 경기에서 한가하게 친목질이라니, 깨끗이 무시한 이인영은 2루에서 멀어졌다.

따악 ~ !!

“2루수 옆을 빠져나가는 안타!!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김한용 선수의 적시타!! 동산고가 가볍게 선취점을 추가합니다!!”

“지금 달리는 거 보세요. 승리를 향한 의지가 눈에 보이네요.”

배명고의 포수 이정환은 주자 진로를 막아섰다가 바로 길을 열어줬다.

느린 타구라 송구를 해봤자 뻔한 결과, 여기에 황소만한 놈이 전력으로 달려드는데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동산고는 여세를 몰아 추가득점에 성공, 하지만 지난 대통령배에서 역전을 당한 경험이 있으니 방심 따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전국 메이저대회 6회 우승에 빛나는 배명고, 2000년대 초만 해도 배명고는 옛 명성과 거리가 있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다 공격적인 스카우트로 전력을 가다듬더니 2016년 청룡기 우승, 15년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달성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 기세를 몰아 전국대회에서 전통의 강호 마산고까지 격파하며 또 우승, 동산고가 도망치면 바로 따라붙는 저력을 발휘했다.

5회 초까지 양 팀은 6대 5(동산고 리드) 팽팽한 균형을 유지, 이인영을 피했다가 낭패를 본 배명고는 진압작전으로 선회했다.

승리를 위해 반드시 잡아내야 하는 상대,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활용할 줄 아는 이선용을 마운드에 올렸다.

‘안 나온다고?’

바깥쪽을 찌르는 제구,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볼넷을 두 번이나 얻어냈으니 이 정도면 약이 올라 반응을 했을 텐데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녀석, 타석을 꽉 채운 위압감에 이선용은 자기도 모르게 도망치는 투구를 택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배명고의 노승태 감독은 맞더라도 집어넣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또 내보내면 루상을 유린할 놈, 동산고 선수들의 타격감이 괜찮은 편이라 볼넷은 자멸이라고 판단했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펜스까지 굴러가는 동안 2루를 지나 3루!! 3루에 안착합니다!! 이인영 선수의 3루타!! 동산고가 다시 득점권에 주자를 올려놓습니다!!”

“지금은 커브로 보이는데 무릎이 주저앉으면서 걷어 냈어요. 뭐 이런 고등학생이 있습니까?”

제대로 한 방 맞은 배명고 벤치는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변화구가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나기 전에 걷어 내다니, 지금은 한 눈에 봐도 스트라이드를 꽤 넓게 했다.

190에 가까운 선수가 저 자세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며 타구를 걷어냈다? 타격센스는 둘째 치고 유연성이 얼마나 좋은 건지, 노승태 감독은 저건 괴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집중해서 한 점 더 내자!!”

그 사이, 이인영은 목소리를 높이며 부원들을 독려했다.

오늘 감이 좋은 후속타자 김한용은 외야 플라이로 전진수비를 무력화시켰고,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면서 스코어는 7대 5로 벌어졌다.

서울권에서도 손꼽히는 강호를 상대로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우세한 흐름, 7회초 공격에서 한 점을 더 내면서 분위기는 동산고 쪽으로 넘어갔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다녀와라!!”

“네!!”

드디어 마지막 9회 말, 동산고의 김재호 감독은 다시 한 번 제자들을 다독였다.

야구부 역사상 첫 메이저대회 우승은 이제 코앞, 8회부터 마운드를 넘겨받은 이인영은 캡을 눌러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난 대통령배에서 내가 플라이를 허용한 탓에 역전을 내주지 않았던가. 이게 내 마지막 경기라는 각오로 모든 걸 내던졌다.

딱 ~ !

“밀립니다. 오 ··· 지금은 148km가 나왔네요.”

“2학년까지 에이스를 책임졌던 선수죠. 그리고 매년 구속이 상승하고 있는데, 본인이 야수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고교야구에서 야구 좀 한다는 학생은 요즘 거의 다 투수로 데뷔한다.

문제는 130 ~ 140km 대의 구속에서 큰 진전이 없다는 것, 구단은 당연히 그 이상의 발전을 고려하고 선수를 영입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수가 구속 상승은 커녕 제구도 못 잡고 방출 수순을 밟는다는 것, 고교 3년 동안 뚜렷한 구속 상승을 보여준 선수가 관심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지역 연고 구단인 선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지 못했으니, 본인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2차 드래프트에서도 1라운드 2순위, 고교야구 대회에서도 준우승만 2번 차지한 비운의 2인자, 이제는 화려한 비상을 눈앞에 뒀다.

첫 두 타자는 가볍게 땅볼 처리,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이인영은 주위를 빙 둘러봤다.

청춘의 기억을 공유한 부원들, 웃은 날보다 고된 훈련에 땀 흘리던 기억이 더 많지만 마지막은 웃으면서 헤어져야겠지.

눈물 따윈 흘리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딱 ~ !

“뜬 공!! 하지만 내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경기 종료!! 동산고가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23년 만의 쾌거!! 대통령배에서 흘렸던 눈물은 승리의 환호로 바뀌었습니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이인영은 글러브를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배명고 학생들이 근처에서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제 홀가분하게 은퇴하고 새로운 길을 갈 뿐, mvp 시상식에서도 덤덤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인영 선수 우승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기 전부터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는데요. 아마 많은 야구팬들도 듣길 원하는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인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성운 라이온즈는 지금도 지명권을 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이 법정 다툼으로 갈수도 있다는 것,

npb는 드래프트 신청서를 낸 선수만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을 수 있고, 지명을 받지 않은 선수는 해외진출도 가능하게 길이 열려있다.

하지만 kbo는 고교야구 위원회에 등록된 선수는 모두 자동으로 구단의 지명 대상이 된다.

이 문제 때문에 해외진출을 노렸던 대학선수가 구단에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는데, 법원의 판례는 경우에 따라 달랐다.

일단 국내 여론은 일본에 유망주를 뺏겨선 안 된다는 분위기, 선수 본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은 하면 할수록 논란을 더할 뿐, 이인영은 부모님과 상의해 조만간 결론을 내리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제가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러시는 겁니다. 딱히 절 이용해 구단과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니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의 입장을 변호하는 말도 덧붙였다.

평생 들을 욕은 다 먹고 있는 아버지, 지금 본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구단과 기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 자식이 그 입장이라도 그렇게 했을 사람들이 왜 내 아버지만 극성이라고 몰아세우는 걸까.

의젓한 모습에 여론은 잠잠해졌고, 이인호는 본인 때문에 논란에 휩싸인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 더는 시간을 끌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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