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4화 (4/309)

4화. 비운의 2인자 (4)

“이건 아니죠. 다시 한 번 고려해주십쇼.”

이인영의 프로 무대 입단은 처음부터 암초에 부딪쳤다.

성운 라이온즈는 거포를 육성하기 위해 최근 3년 동안 홈 구장을 꾸준히 정비해 왔다.

문제는 감독이라는 인간이 뛰는 야구를 표명하면서 구단 정책과 엇박자를 이뤘다는 것,

심지어 kbo엔 대학 야구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10라운드 안에 대학출신 선수를 최소한 한 명 이상 뽑아야한다는 정신 나간 규정이 존재한다.

당연히 성운 라이온즈도 울며 겨자 먹기로 영입한 대학선수들이 있다.

실력이 있다면 써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만, 박한우 감독의 대학선수 사랑은 지나칠 정도, 이런 감독 밑에서 아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인호는 성운 라이온즈가 정말 아들의 재능을 원한다면 그에 맞는 육성정책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거기다 선수 측의 요구는 계약금 5억, 구단의 제시액은 4억 3천, 차이가 제법 있어 협상은 난항에 부딪쳤다.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아도 kbo에서 발급한 계약서가 동봉되지 않은 계약은 무효, 선수 측 아버지가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

[아직 한 경기도 못 뛴 선수가 구단 정책까지 좌지우지 하려고 하는 건 횡포 아닌가?]

-> 뭐가 횡포야, 박한우가 양아들만 기용하는 거 모르냐? 거기다 홈런 구장에서 뛰는 야구라니 정신이 나간거지. 이인호는 프로생활 했던 사람이라 그걸 아는 거다. 내가 저 입장이라도 아들을 위해 할 말은 했을 거다.

-> 홍현구는 한 경기도 못 뛰었어. 아버지 입장에서 구체적인 육성방침 요구하는 건 당연한 권리다.

문제는 역시 박한우 감독,

박한우는 평생을 성운 라이온즈에서만 뛰었고 15 시즌 동안 타율 0.284, 191홈런, 778타점을 기록, 우승반지도 4번이나 낀 레전드다.

이런 화려한 배경 덕분에 성운 라이온즈와 4년 계약을 맺고 지휘봉을 잡았지만 지나치게 편협한 선수기용과 정신 나간 작전으로 팬들의 뒷목을 강타한 희대의 역적으로 몰렸다.

첫 시즌은 리그 8위, 그 다음 시즌은 7위, 그리고 작년엔 9위로 구단 역사를 새로 썼다.

차명석 단장도 박한우 감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계약기간이 있으니 본인이 사퇴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일단 설득에 나섰다.

“여기서 굽히면 계속 끌려 다닐 겁니다.”

박한우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신인 주제에 구단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다니, 여기서 버릇을 잘못 들이면 나중에 골탕을 먹는 건 구단이라며 이인영을 중용 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당신이 그런 말 할 입장이 아닐 텐데?”

차명석 단장은 그동안 쌓인 불만을 쏟아냈다.

하라는 거포 육성은 안하고 똑딱이만 굴리는 주제에 이게 할 말인가. 이인영은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비거리와 홈런 쇼를 보여준 초특급 유망주, 선수와 그 아버지를 설득하는 건 우리 몫이라며 압박을 가했다.

“그럼 알아서 잘 해보십쇼.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박한우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작년에 9위를 찍은 감독이 이건 무슨 배짱인가.

팬들도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요지부동, 차명석 단장도 박한우의 목을 날리고 싶었지만 계약규정 때문에 화를 억눌렀다.

“당신 너무 콧대 세우는 거 아니에요?”

한편, 선수 쪽 부모도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들을 원하니 구단에서 지명을 했겠지만 너무 배짱을 부리면 우리 손해 아닐까. 그 세계를 잘 모르는 엄마 입장에선 이러다 계약이 백지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아니야. 잘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이인호는 우린 지금 잘 하고 있다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계약이 무슨 갑과 을의 주종관계를 맺는 의식인가. 선수는 구단과 동등한 입장이고 육성계획에 대해 물을 권리가 있다.

막말로 선수가 지명 거부하고 대학가면 어쩔 건가. 계약이 이뤄지지 않아도 지명권은 2년 동안 유지되지만, 그 이후 선수는 자유의 몸이 된다.

성운 라이온즈가 정말 그렇게 되는 시나리오를 바라고 있을까. 현역시절 구단의 뜻대로 끌려 다닌 이인호는 아들만은 그 전철을 밟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품었다.

[이인영,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제의 받았다.]

여론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구단에서 영입 제의가 온 건 사실, 이 정도의 유망주를 원한다면 구단에서 성의를 표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한 번 호구 잡히면 평생 호구, 줄다리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전인규, 선화 이글스와 계약금 4억 5천 만 원에 합의]

분위기는 선수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인영을 포기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선화 이글스는 보란 듯이 전인규에게 많은 계약금을 안겨줬다.

졸업 시즌에서 홈런 하나 친 고교생이 이 정도 대우를 받았는데 17개를 친 선수는 얼마를 받아야 하나. 5억도 적은 편, 이인호는 전인규의 계약을 근거로 성운 라이온즈에 6억 원을 요구했다.

[아니, 얼마 전에 5억 요구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옛말이죠. 이제 와서 5억으로 퉁칠 생각입니까?”

이 사람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이인영의 입단을 환영했던 성운 라이온즈 팬들은 이러다 극성 아버지 탓에 아들이 피해를 보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인호는 우리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반박, 정당한 대우를 해 줄 생각이 없다면 지명권을 철회하라고 구단을 압박했다. 해외로 나가겠다는 뜻, 정식 계약은 논의는 8월이 넘도록 결론이 나질 않았다.

* * *

“아직 사인 안 하셨다면 저희에게 보내주십쇼.”

9월 2일, 협상이 난관에 부딪쳤다는 소식을 접한 니시테츠 호크스는 이인호와 접촉했다.

요즘 NPB는 해외 유망주를 육성하는 일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 덕분에 2군 시설은 대폭 개선됐고, 선수를 위한 육성 방향도 구단에서 철저히 관리하는 편, 특히 이인영은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선수다.

고교생이 나무 배트로 저런 스윙을 하다니, 어느 구단이 군침을 흘리지 않겠는가.

메이저진출 아니면 대형계약금을 받고 한국에 눌러 앉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런 기회가 오다니,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최근 구단 인스트럭터로 전직한 이나마 요시노부를 파견하는 성의를 표했다.

“이인영 선수는 분명 대성할 겁니다. 저희에게 보내주신다면 NPB 최고의 선수로 육성할 자신이 있습니다. 물론, 기량이 절정에 오른다면 MLB 진출도 적극 돕겠습니다.”

이인호는 니시테츠의 적극적인 구애에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아들의 뜻, 봉황기를 치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 녀석이라 지금 당장 여기로 불러오는 건 무리다.

해외진출도 좋지만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게 우선이라고 했던 아들, 여론의 말대로 나는 너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건가.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저도 보내고는 싶지만 성운 라이온즈에서 지명권을 풀지 않으면 어려울 겁니다.”

“그건 저희들에게 맡겨 주십쇼. 어떻게든 설득을 하겠습니다.”

보아하니 아들을 정말 원하는 모양, 이인호는 아들과 구단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그물 안에 거의 다 들어온 물고기, 이나바 요시노부는 바로 성운 라이온즈의 차명석 단장과 접촉했다.

“절대 안 됩니다. 포기 못한다고요.”

[아니 ··· 그래도 일단 설명을 들어보시는 게 ··· ]

“안 된다면 안 되는 겁니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십쇼.”

전화를 끊은 차명석 단장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설마 했는데 지명권을 풀어달라는 요구가 농담이 아니었단 말인가. 계약금 6억 원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면 지명권이 날아갈지도 모를 일, 백기투항을 선택했다.

“계약금 7억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드님은 책임지고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로 육성할 테니, 저희들을 믿어주십쇼.”

[으음 ··· 글쎄요. 일단 아들의 뜻이 중요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이인호는 마지막까지 시간을 끌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너무 유순한 아들, 내가 극성을 부리지 않으면 누가 그 입장을 변호해주나,

프로에서 경쟁을 하다보면 성격이 변할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는 아들의 보호막을 자처했다.

* *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금은 결승전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봉황기 결승전을 앞두고 이인영은 기자들의 관심에 둘러싸였다.

해외진출 논란에 계약금 7억 원 제의를 받았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데 이런 화젯거리를 어떻게 방치하겠나. 하지만 이인영은 끝내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번 봉황기는 후배들과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7억? 분명 큰돈이지만 실제로 보고 만져 본 것도 아니라 실감이 안 됐다.

돈 관리는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시니 나는 야구만 열심히 할 뿐,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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