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3화 (3/309)

3화. 비운의 2인자 (3)

“자, 복수고의 공격, 전인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대회 성적은 타율 0.450 홈런 없이 4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안타가 없지만 경계를 해야 할 선수죠. 이인영 선수가 신중히 사인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잘 치는 타자를 상대할 때, 배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구위를 믿고 던지는 것도 좋지만 타자의 심리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안타가 없고 팀은 뒤지고 있는 상황, 이름 값이 높은 선수일수록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활용할 상황, 이인영은 초구부터 커브를 던졌다.

190에 가까운 큰 키에서 나오는 빠른 볼을 경계하고 있던 타자는 타이밍을 놓쳤고, 낮게 들어오는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생각보다 타점이 높은데’

복수고의 정찬호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고교생들은 간단한 몸통회전과 슬라이더, 이 정도만 기술만 익히고 바로 마운드에 투입된다.

하체를 활용할 줄 모르니 공에 힘이 안 실리는 건 당연, 제구도 안 되는데 오버핸드 피칭을 어떻게 할까.

그런데 저 이인영이라는 학생은 자신의 큰 키를 활용할 줄 안다. 거기다 지금은 커브를 던졌으니, 타자 입장에선 순간 공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겠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바로 승부하진 않을 거다.’

벤치 사인을 확인한 전인규는 말없이 헬멧을 눌러썼다.

초구를 내줬으니 타자 입장에선 어지간한 공은 따라나가야 하는 상황, 이런 때일수록 스트라이크 존을 좁혀야한다는 감독님의 조언을 떠올렸다.

팡!!

아 ~

2구는 바깥쪽 빠른 볼, 콜이 울리지 않자 포수마스크 에서 격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잡아줄만했던 공이라 배가 됐던 아쉬움, 이인영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투구에 나섰다.

“이번에도 볼, 전인규 선수가 신중히 볼을 고르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활용하고 있는데 배트가 안 나오네요. 양 선수 모두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야 야구다운 야구를 보는 것 같네요. 실책도 거의 없고, 결승전 다운 흐름입니다.”

이인영은 빠른 볼을 몸쪽으로 붙여 파울을 유도했다.

역시 2학년까지 아구부의 에이스를 책임진 실력파라는 건가. 좌우를 가리지 않는 제구에 묵직한 구위, 이렇게 되자 전인규도 더는 스트라이크 존을 좁힐 수 없게 됐다.

‘승부하자’

‘아니’

이인영은 포수 사인에 고개를 저었다.

타자가 부담을 가지는 카운트, 제구가 되는 날이니 한 번 더 몸 쪽을 찔러도 되지 않을까.

거기다 지금 상황은 1사 주자 2루, 볼넷을 주더라도 치기 좋은 공을 던져줄 생각이 없었다.

딱 ~ !

“파울입니다. 생각보다 더 끈질기네요.”

“투수에게 제일 중요한 게 스트라이크 존 좌우를 찌를 수 있는 제구거든요. 높낮이가 타자의 시선을 교란시킬 순 있지만,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긴 어렵습니다. 이인영 선수가 지금 그걸 해내고 있는데, 전인규 선수의 집중력과 배트 컨트롤도 대단하네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두 선수는 칭찬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공을 넘겨받은 이인영은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지만 전력의 깊이는 복수고가 한 수 위다.

내가 여기서 9회까지 마무리 하지 못하면 승산이 있을까. 부원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캡틴인 내가 해내야한다는 책임감을 앞세웠다.

따악 ~ !!

라이트!!

우측 높게 뜬 공, 전진 수비를 하고 있던 우익수는 서둘러 백 스탭을 밟았다.

최근 장타가 급격히 줄어든 고교야구, 거기다 상대는 장타에 재능이 없는 전인규 아닌가.

전혀 예상 못 한 상황이라 다들 허둥지둥거렸다.

유격수 실책 외엔 이렇다 할 실수가 없었던 동산고 야수진, 여기서 타구가 우익수 머리 위로 넘어가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2루 주자는 여유 있게 홈으로 타자 주자는 3루까지, 역전을 눈 앞에 둔 복수고는 환희에 둘러싸였다.

고비를 넘지 못한 동산고는 다들 침통한 표정, 그래도 이인영은 부원들을 다독이며 투구를 이어갔다.

딱 ~ !

“유격수 땅볼, 3루로 주자는 홈으로 쇄도!! 세이프 판정입니다!! 타자 주자도 1루에서 세이프!! 복수고가 오늘 경기 처음으로 리드를 잡습니다!!”

“아 ··· 유격수의 판단이 아쉽네요. 역전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지금은 아웃카운트를 잡는데 집중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실점이 불러온 집중력 붕괴, 하지만 누굴 탓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인영은 후속타자를 잘 처리하고 8회 초 반격을 준비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봤지만 끝내 뒤집지 못한 경기, 동산고는 그렇게 복수고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어째서?!! 어째서야?!!”

몇 몇 학생들은 인정할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는데 아직도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기엔 부족하다는 건가. 그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이인영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직 봉황기가 있어. 다들 정신 바짝 차리자.”

8월의 봉황기 그리고 10월의 전국체전, 설욕할 기회는 얼아든지 있다.

여기서 무너졌다고 좌절하면 끝, 부원들을 수습한 이인영은 그라운드에서 멋진 경기를 함께한 복수고 학생들과 악수를 나눴다.

“좋은 경기였다.”

하지만 전인규의 악수는 그냥 받기 어려웠다.

승자만이 지을 수 있는 여유로운 미소, 진 건 인정했지만 반드시 야구로 갚아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윽! 아픈데?’

악수를 나눈 전인규는 순간 인상을 구겼다. 손이 으스러질 것 같은 느낌, 한 눈에 봐도 장사 체격인데 실제로 손을 맞잡아보니 그 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감이 왔다.

‘두고 보자 이대로 끝나진 않을 거다.’

이어지는 시상식,

이인영은 눈물을 훔치는 후배들을 대신해 트로피를 수여받았다. 분해서 울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스포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력이라고 배웠다.

눈물은 최선을 다한 투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한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뭣보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부원들이 더 동요하겠지. 이 정도로 굴하지 않겠다며 덤덤한 표정으로 시상식을 마무리 했다.

* * *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각 구단은 바쁜 행보를 이어갔다.

2차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쥔 선화 이글스는 얼마 전 열린 대통령배 결승전에 주목, 원래는 이인영을 지명할 계획이었지만 놀라운 집중력과 배트 컨트롤을 보여준 전인규도 끌렸다.

[거포와 똑딱이를 어떻게 비교 해?]

[괜히 헛짓거리 말고 이인영 뽑아라]

[그런데 단장이 바보라 괜히 걱정된다.]

대전 팬들은 이미 이인영이 뽑히는 줄 알고 있다.

전인규가 좋은 활약으로 mvp에 뽑힌 건 인정했지만 장타력이나 종합적인 지표를 따져보면 누가 봐도 이인영을 뽑는 게 맞다.

하지만 선화 이글스는 거포 유망주 양성계획이 모두 실패로 끝난 흑역사 때문에 선택을 망설였다.

똑딱이는 당장 써먹을 수 있지만 거포 유망주는 육성에 시간이 걸리는 것도 단점, 부족한 장타력은 외국인 용병으로 대체해 왔으니 크게 끌리지 않았다.

“그럼 전인규를 뽑을까요.”

“그래야지. 2등 밖에 못 해 본 놈은 마지막까지 2등이야.”

송호영 단장의 말에 측근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게 7년 연속 포스트시즌 근처도 못 간 팀 단장 입에서 나올 말인가. 안 좋은 여건에서 2등이라도 해낸 게 대단한 건데 이게 무슨 망언인지, 그래도 단장 앞이라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좋은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네”

한 편, 이인호는 거듭되는 아들의 해외진출 요구에 결정을 망설였다.

이번엔 애트랜타 시호크스에서 날아든 영입 제안, 계약 조건도 90만 달러로 꽤 높다.

문제는 아들이 투수보다 야수를 원한다는 것, 애틀랜타 관계자들은 아들의 투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2차 드래프트가 시작되기 전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아들을 앞에 앉혀두고 대화를 시도했다.

“안 갈래요.”

“어째서?”

“자기가 원하는 걸 앙보해선 안 되죠. 저도 메이저가고 싶지만 야수를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이인호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순한 얼굴 때문에 다들 오해하지만 주관이 확실한 녀석, 메이저리그는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된 다음에 논의 할 일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2차 드래프트, 대회 준비로 바쁜 아들을 대신해 이인호는 대리인 자격으로 드래프트를 지켜봤다.

“1차 지명은 ··· 복수고의 전인규 선수입니다!!”

선화 이글스의 지명에 다른 구단들은 경악했다.

분명 이인영을 뽑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판을 다시 짜야할 상황, 2차 지명권을 쥔 성운 라이온즈는 서둘러 의견을 정리했다.

‘헛 ~ 바보 아냐? 이인영을 포기해?’

‘저러니까 매년 꼴찌 하지. 제정신이 아니야.’

다른 구단 관계자들도 헛웃음을 지었다.

전인규가 매력적인 고교생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이인영에 비교될 수준인가. 성운 라이온즈도 헛짓거리를 해준다면 우리가 업어가겠지만 그쪽의 차명석 단장은 바보가 아니었다.

원래는 다른 선수를 지명할 예정이었지만 차명석은 바로 이인영을 선택, 아들의 행선지가 결정되자 이인호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것도 운명인가. 나쁘지 않군.’

지금은 대전에 살고 있지만 본적은 경상도, 성운 라이온즈가 연고지를 두고 있는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이다.

명가 재건을 노리고 있는 성운 라이온즈는 최근 몇 년 동안 유망주를 대거 고용하며 리빌딩을 거듭하고 있는 팀,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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