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비운의 2인자 (2)
[지금부터 동산고와 복수고의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열흘 동안 이어진 대통령배 결승전, 결승전이라는 타이틀답지 않게 주변 분위기는 한산했다.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경기력, 복수고는 준결승전에서 차명고를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4대 3승리를 거뒀지만 그 과정에 청춘의 드라마, 그리고 감동 따윈 없었다.
플라이볼 거리 측정도 못해 공을 빠트리는 외야진, 평범한 땅볼도 안타로 만드는 수비력, 이게 정말 프로를 목표로 하는 엘리트 학생들의 경기력인가.
현장에선 고교생의 프로무대 직행에 부정적인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상위 지명을 받고도 1군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사라지는 고교생들, 차라리 대학을 거쳐 실력을 가다듬는 게 낫지 않을까.
분위기가 묘해지면서 좋은 활약을 하는 선수들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대로 하면 돼.’
남들이 고교선수에 대해 색안경을 쓰던 말던 이인영은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집중했다.
불경기에도 돈을 쓸어 담는 사람이 있듯이 될 놈은 되는 법, 내가 잘하면 알아봐 줄 구단은 얼마든지 있겠지. 경기에만 집중했다.
‘오늘은 네가 돌격대장이다.’
1회 초 동산고의 공격, 동산고 야구부 감독 김재호는 이인영을 과감하게 1번으로 세웠다.
농구나 축구는 패스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지만 야구는 그게 안 된다.
잘 치는 선수가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나가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몫을 해야 승리를 할 수 있는 종목, 특히 최근 고교야구는 실책이 아니면 5점 이상 내기 어려울 정도로 야수진의 기량이 떨어져 있다.
이인영은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실력을 지닌 애제자, 한 타석이라도 더 나가는 편이 우승에 가까워진다고 판단했다.
‘거르면 되지’
복수고는 볼넷으로 맞불을 놨다.
8월에 열리는 2차 드래프트에서 상위지명이 유력한 선수가 무리한 플레이를 할까? 이인영은 바로 그 통념을 깨버렸다.
“좋아요!! 나이스!!”
“역시 캡틴!!”
과감한 도루 시도, 그동안 중심타선으로 뛰던 선수라 복수고는 상대의 도루 능력을 좌시하고 있었다.
50m를 5.8초에 끊는 주력과 타고난 주루센스, 고교선수 중 단연 두드러지는 파워, 여차하면 포수도 볼 수 있는 능력까지, 왜 1차 드래프트에서 외면을 받았을까.
대전 팬들은 이게 선화 이글스의 작전이라고 판단했다.
작년 순위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2차 드래프트, 작년 시즌 10위를 기록한 선화 이글스는 2차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손에 쥔다.
지금 뽑으나 나중에 뽑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아닐까. 오랫동안 거포 부족에 실망한 대전 팬들에게 이인영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유망주, 조만간 이글스 유니폼을 입을 거라 굳게 믿었다.
따악 ~ !
한편, 캡틴의 도루에 힘입은 동산고는 진루타와 보이지 않는 실책을 등에 업고 선취점을 냈다.
대전에서 이름 좀 날리는 사립학교로 한때 전국야구대회 우승도 차지했던 야구 명문, 하지만 그것도 옛일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 김재호 감독의 지도하에 맹훈련을 거듭한 야구부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영광을 위해 내달렸다.
그리고 눈앞까지 온 우승, 고교 시절 동안 변변한 수상실적이 없는 2인자도 이게 마지막이라는 각오를 불태웠다.
‘그렇게 간단히는 안 되나.’
하지만 상대팀 복수고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권에 집중된 야구부, 지방 야구부는 서울에서 주전을 잡지 못한 학생들이 내려와 팀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동산고도 사정은 마찬가지, 거기다 학생수가 매년 줄어 올해는 신입생이 284명으로 줄었다. 이런 배경에서 지방팀이 결승까지 올라온 건 대단한 일 아닐까.
하지만 동산고 야구부는 2등도 잘한 거라는 말 따윈 듣고 싶지 않았다.
[대전에선 높은 곳에 올라봤자 뒷동산]
최근 한 팬은 7년 동안 하위권을 맴도는 선화 이글스를 조롱하는 글을 남겼다.
너희들이 높은 곳을 향해봤자 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정해져 있다는 뜻, 정기적으로 선화 이글스 경기를 관람하는 동산고 야구부는 조롱에 치를 떨었다.
마침 모교 이름도 동산 고교, 우리는 영원히 뒷동산만 오르내리라는 건가.
절대 물러날 수 없는 한 판, 의지로 뭉친 동산고는 5회까지 2대 2, 팽팽한 접전을 유지했다.
‘뒷동산이라고? 뒷동산의 저력을 보여주마.’
6회 초 동산고의 공격, 오늘 두 타석 모두 볼넷으로 출루한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뒷동산의 반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야구판을 뒤흔드는 혁명의 불길로 바꿔버렸다.
따아악 ~ !!
“멀리 가는 타구! 담장 너머로 멀리 멀리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솔로 홈런! 동산고가 다시 앞서 나갑니다!!”
“간만에 물건이 나온 것 같은데요. 나무 배트로 이런 스윙을 하는 고교생이 있었나요? 이번 대회에서도 4번 째 홈런입니다.”
“졸업시즌에 17홈런을 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투수를 선호하는 구단들도 생각이 바뀌겠죠.”
복수고의 정찬호 감독은 고개를 떨궜다.
동산고는 이인영의 원맨 팀으로 생각하고 걸렀는데, 후속타자들이 잘 해주면서 볼넷이 모두 실점으로 연결됐다.
결국 이인영을 잡아야 했던 게임, 승부를 지시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중심타선을 과감하게 1번으로 배치한 이재호 감독의 용병술도 인정해야 했다.
“누가 뒷동산이냐?!!”
“동산고 파이팅!!”
한산한 분위기에도 응원단은 있는 법, 한 자리를 차지한 학부모와 기타 등등은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만 이기면 정상, 제일 높은 산에 올라 전국을 호령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기분 좋지 않은가.
역전 홈런에 느슨해졌던 부원들은 아직 안 끝났다는 캡틴의 목소리에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앗!!”
이어지는 6회 말 복수고의 반격, 동산고의 유격수 박헌호(2학년)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타구를 빠트리고 말았다.
그렇게 연습을 시켰는데 이 중요한 상황에 알까기라니, 김재호 감독은 정신 바짝 차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이인영은 어쩔 줄 모르는 후배를 다독였다.
감독님은 후배의 재능을 높이 사서 틈이 나면 호통을 치는데, 저 녀석은 의외로 섬세한 마음을 지녔다.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낸 만큼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은 법, 감독님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은 캡틴의 지위를 이용해 커버했다.
“나이스!! 나이스!!! 그렇지!!!!”
이어지는 6 - 4 - 3 병살플레이, 위기를 넘긴 뒷동산 분위기는 다시 달아올랐다.
공이 전달 될 때마다 높아지는 캡틴의 목소리, 얼핏 들으면 방정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간절함을 알고 있는 부원들은 누구도 미소를 짓지 않았다.
‘너는 우승만 하면 된다. 그럼 만사 OK야.’
김재호 감독은 애제자를 기특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 정도 재능이면 서울로 올라가 야구를 했어도 주전자리를 차지했을 거다.
그런데 서울로 가면 돈도 많이 들고 부모님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며 동산고로 왔다는 녀석, 정말 뛰어난 선수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태도는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그뿐이랴, 선배인데도 권위라는 게 전혀 없는 녀석, 후배들에게 받는 존경심은 감독보다 더 높다.
실력 - 인덕 모두 갖췄는데 왜 다른 복이 없는 걸까. 지방 야구부라는 한계도 있겠지만 그동안 이상할 정도로 여론의 눈에 띄지 못한 비운의 고교생,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3년 동안 꾸준히 전력을 가다듬은 동산고교, 연습이라면 어느 야구부보다 많이 했다.
뒷동산을 명산 반열에 올려놓은 김재호 감독, 본인의 명예도 중요했지만 뭣보다 제자들이 잘 되길 바랐다.
따악 ~ !
“아, 다시 안타가 나오는군요. 여기서 투수를 교체하나요?”
“그런 것 같네요. 이인영 선수가 3루에서 마운드로 자리를 옮깁니다.”
7회 말, 동산고는 투수를 교체했다.
2학년까지 에이스를 책임졌던 캡틴, 하지만 올해 동료들 기량이 급상승하면서 3루에만 전념했다.
그래도 중요한 상황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 부원들은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