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화 (1/309)

1화. 비운의 2인자 (1)

‘밀렸네….’

2018년 6월, 프로야구 드래프트 1차 지명 결과를 확인한 학생은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1차 드래프트는 연고지를 기준으로 하는 드래프트, 라운드 당 구단은 한 선수만 지명할 수 있다.

인재가 넘쳐나는 서울이라 순위가 뒤로 밀릴 수는 있겠지, 하지만 학생이 소속한 학교는 대전 동산 고등학교다.

1차 드래프트에서 밀린 내가 전국권 선수들과 경쟁하는 2차 드래프트에서 얼마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6월에 열린 청룡기 야구대회에서 타율 0.455, 홈런 3개, 좋은 활약을 펼쳤기에 이번 드래프트는 나름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명을 받은 건 청주고의 정학영, 아쉬움을 뒤로 하고 7월에 열리는 대통령기 야구대회에 집중했다.

대통령배가 끝나면 8월에 대한체육협회 대회 그리고 봉황기, 10월 전국체전으로 이어지는 강행군, 1차 드래프트는 잊어버렸다.

[선배, 실망하지 마세요. 2차가 있잖아요.]

-> 날 동정하지 마라.

그런 속도 모르고 위로를 건네는 후배들, 이 때 한 녀석이 심기를 건드렸다.

[선배, 선배는 고교야구 최강의 2인자예요.]

-> 헐 너 죽고 싶냐?

-> 피바람 불겠다.

단톡방은 난리가 났다.

매번 1인자 근처를 머뭇거리는 선배, 그래도 그렇지 대놓고 2인자가 뭔가. 하지만 너그러운 선배는 2인자도 감지덕지라며 고맙다는 반응을 남겼다.

[이틀 뒤 합숙이니까. 늦지 말고 와라]

-> 넵!!

동산고 야구부 단톡방은 우승을 향한 의지로 불타올랐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동산고의 진격, 그 흐름에 승리를 향한 투지를 불어넣어준 사람이 누군가.

장난도 친형보다 더 살갑게 받아주는 캡틴, 그런 리더 덕분에 부원들은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 했다.

* * *

“아니, 내 아들이 왜? 어째서?”

이곳은 평범한 가정집, 1차 드래프트 결과를 확인한 남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무배트를 쓰면서 저하되기 시작한 고교야구 수준, 장타를 날리기 어려워지자 지도자들은 타격기술보다 맞추기 급급한 스윙을 가르치고 있다.

대회에서 홈런 1개 치고 홈런왕이 되는 현실, 이런 고교야구에서 홈런 3개 친 선수가 돋보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도 거품이 잔뜩 낀 평균자책점에 혹한 구단 관계자들, 남자는 사람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며 불만을 중얼거렸다.

“당신이 선택권을 쥔 것도 아닌데 억울하면 단장해요.”

“흐음 ··· ”

아내의 타박에 남자는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남자는 한 때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이영호, 통산 1517안타, 137홈런을 남기고 유니폼을 벗었다.

슈퍼스타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팀의 주전노릇은 했던 수준, 아들만은 1인자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초등학생 때부터 열의를 다해 가르쳤다.

그리고 그 기대만큼 성장해준 아들, 그런데 왜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는 걸까.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름이 문제인가 ··· ”

“지금 뭐라고 했어요?”

“이름이 문제라고, 이인영, 뭔가 그렇잖아.”

어질 인(仁)에 오래도록 영(永)자를 쓰는 아들, 나름 좋은 뜻으로 지어줬는데, 성까지 합치면 이인자만 영원히 하라는 뜻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정상 문턱에서 한 번 미끄러진 아들, 2차 드래프트 앞두고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마침 귀가한 아들, 얼마 전까지 합숙생활로 집밖을 누비던 신세라 귀빈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1차 드래프트 지명을 놓친 아들은 부모님 보기 민망할 뿐, 이인호는 그런 아들의 체면을 세워줬다.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을 뿐이다. 넌 할 만큼 했어.”

이인호는 쌍 엄지를 펼쳐보였다가 하나는 슬쩍 내려놨다. 이인자 취급 받는 아들에게 쌍 엄지는 오히려 놀림거리, 부모님 덕분에 기분이 풀린 아들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쉬워 할 거 없다. 2차 드래프트에선 상위 지명 받을 거다.”

“상위 지명보다 계약금이나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1차 드래프트에서 4차 지명을 받은 김상훈(서울 봉화고교)은 무려 5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포수라는 포지션만 따져보면 역대 최고 금액, 1차 지명을 받은 권민이 3억 원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프로의 가치는 성적과 돈이 말해주는 법, 현실적인 생각에 이인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넌 이번에 6억 받을 거다.”

“그렇게 줄 팀이 어디 있어요.”

“아니다. 너는 그만큼 받을 자격이 있어.”

계속되는 아부에 아들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살가운 분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엄격하게 야구를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인가.

그때는 원망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 아들 하나 스타로 만들겠다고 평생 노력하셨으니 조금이라도 기대에 응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 * *

“자 동산고의 2회 초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타자는 이인영 선수, 이번 대회에서 10타수 8안타, 홈런 없이 5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투고타저 바람이 불고 있는 고교야구에서 아주 인상적인 타격을 보여주고 있죠. 1차 드래프트에선 지명을 받지 못 했지만 많은 구단이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해설위원의 말대로 곳곳에 자리 잡은 구단관계자들은 눈을 크게 떴다.

한 때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이인호 선수의 아들, 해설위원으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아버지 덕분에 이인영은 나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u-18 대회 출전도 유력한 몸, 최근 한국야구는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유소년 야구도 마찬가지, 2008년, 황금세대라 불리는 라인업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2010년 대회 7위, 2012년 5위, 2015년엔 3위를 차지했지만 일본에게 14대 0 떡실신을 당하고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2017년도 미국과 일본에게 연달아 영봉패, 이인영은 몰락한 대한민국의 중심타선을 살려줄 수 있을까.

호쾌한 스윙으로 답을 대신했다.

따아악!!

“우왓!!”

“간다!!”

특유의 풀스윙에서 터져나오는 장타, 안타만 깨작거리던 캡틴의 대포에 동산부 야구부의 사기는 하는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전광판 뒤로 넘어가는 대형홈런, 저게 정말 고등학생인가.

투수를 보러 왔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의외의 수확에 미소를 지었다.

휴스턴의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는 조 프리즈는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에 정보를 요청, 그러나 돌아온 답은 현실과 거리가 있었다.

‘키 188cm에 81kg?’

조 프리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81kg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한 눈에 봐도 200파운드(90kg)는 됐던 덩치, 이런 엉터리 자료가 어디 있느냐며 재청구를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그게 맞다는 말 뿐, 도대체 자료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건가. 따져봤자 달라질 것도 없는 분위기, 직접 조사에 나섰다.

‘역시 좋은 스윙이야.’

조 프리즈는 이인영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몸을 비틀어 파워를 쥐어 짜내는 게 아니라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스윙을 하는데, 뭣보다 스윙 궤적이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관통하고 있다.

어떤 코스의 공이든 대응할 수 있는 토대는 갖춘 셈, 빠른 볼이나 변화구에 대한 대응능력은 아직 물음표가 달렸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드님을 미국으로 보낼 생각은 없으십니까?]

“뭐, 뭐라고요?”

휴스턴 구단의 연락을 받은 이인호는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거렸다.

제시 받은 계약금은 80만 달러, 이 정도면 싸게 긁는 로또가 아니라 진심으로 눈여겨보고 있다는 뜻 아닌가.

드디어 아들의 가치를 알아주는 구단이 나타나다니, 당장 계약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50만 달러는 나중에 지급해도 되겠습니까?”

“네? 뭐라고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상한 제안에 이인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이저리그 국제 드래프트는 라운드 당 쓸 수 있는 금액이 정해져 있다. 그 범위를 초과하면 사치세를 부과, 하지만 30만 달러 미만 계약은 사치세 대상이 아니라 얼마든지 남발해도 된다.

30만 달러로 발표하고 나머지는 뒷돈으로 주겠다는 건데 남의 아들 인생 망칠 생각인가.

걸렸다간 계약해지는 당연하고, KBO 복귀도 안 되는 운명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노!! 땡큐!!”

하나 걸렸나 싶었는데 똥파리였다니, 아무리 아쉬워도 귀한 아들을 그런 구단에 보낼 순 없지 않은가.

이인호는 아들의 가치를 알아봐 줄 구단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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