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45화 (144/147)

<-- 길드전 -->                               주태성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말을 건다.

“주태성. 네가 크게 착각하는 사실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착각을 해? 무슨 착각을 말하는 걸까?”

“만약 여기서 내가 너를 죽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정말 네 말대로 아무 일 없을 것 같아? 미리 경고하는데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벌어질걸?”

얘기를 듣던 그가 피식 웃는다. 내 말을 그저 시간 끄는 행동으로만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태도는 오히려 나를 더 기쁘게 한다.

지금 내 말을 거짓으로 받아들여야 실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받게 될 충격이 더 클 거거든.

“시도는 좋았어. 제법 흥미로운 발언인데?”

“왜 거짓말 같아?”

“그래, 네 말대로 날 죽여서 내게 문제가 생긴다고 하자. 무슨 문제이든 간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럼 여기서 하나 질문. 내게 문제가 생기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네 여자친구에게 문제가 생기는 게 먼저일까?”

“으흐윽……!

주태성은 일레이나를 앞에 세우고 그 목에 칼을 깊이 들이민다.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행동한다. 그대로 놔둘 순 없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모습으로 대응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린다.

“그 질문은 대답하기 어려운데? 하지만 이제 곧…….”

내 옆에 선 석환이라는 유저의 위치를 곁눈질로 확인하면서 주태성의 자세를 눈여겨본다.

“알게 되겠지.”

마음의 준비를 마친 뒤 아이셀을 손에 꽉 쥔다.

“아이즈!”

아이즈를 불러서 주태성의 칼 잡은 팔을 얼린다. 그는 살이 에이도록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에 그는 칼을 떨어뜨린다.

“크아아악! 내 팔!”

주태성의 부하들이 아이즈를 내쫓으려 하지만 아이즈는 쉽게 잡혀주지 않는다.

석환이 주태성의 비명에 한눈을 파는 사이 그의 손목을 붙잡고 각인을 사용한다.

“끄으아아아아아악-!”

뼛속까지 엄습하는 각인의 고통에 우올로가 떠내려갈 듯 소리친다. 주태성과 석환이 내는 두 개의 불협화음이 꺼림칙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화생방 훈련이라도 받듯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석환을 문밖으로 잡아 던진다. 그 즉시 볼테이온을 소환한다.

“볼테이온! 물어가!”

“끼이이이이악-!”

밖으로 밀려 넘어진 석환은 볼테이온에게 얼굴을 물린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날아간다. 포식이나 했으면 좋겠구나 우리 볼테이온.

석환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 주태성에게 다가간다. 그는 얼어붙은 팔이 얼얼한지 계속 털어대면서 다가가는 나를 경계한다.

“네 여자친구가 죽을 거라고 했을 텐데? 걱정도 안 되나 보지? 그게 아니면 와닿지 않는 건가?”

그는 여전히 일레이나의 목을 감고 나를 협박한다. 검도 못 주울 정도면서 말만은 청산유수지.

“다들 뭐 하고 있나! 저놈 빨리 잡지 않고!”

주태성의 일갈에 넋 놓고 지켜보던 NPC 수십 명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죽고 싶으면 계속 와 봐. 어디.”

내 말에 다들 주춤한다. 이미 내 얼굴을 두 번 보는 NPC도 있을 거다. 또다시 죽기는 싫었는지 수십 명이나 되는 적이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있다.

그 순간.

-‘데카스가 당신에게 압도되었습니다.’

-‘타이모스가 당신에게 압도되었습니다.’

-‘베르힘이 당신에게 압도되었습니다.

-‘돌카리아가 당신에게 압도되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 이곳에 있는 모든 선원이 내 한마디에 전원 압도되어 꼼짝도 하지 못한다.

“조용히 나가. 니들 보스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들은 하나 같이 대꾸도 못 한 채 이곳을 빠져나간다. 어느 순간부터 수준 이하의 적들은 나에게 손끝 하나 대기 어려워졌다. 아무래도 각인의 능력이 강해진 덕인 것 같다.

“니들 지금……!”

주성태조차도 그들의 행위가 기가 찼는지 말을 하다말고 끊는다. 이제 놈을 도와줄 적들은 없다.

“하아, 그래 어차피 일회용이니까 도움 될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그래서 뭐 어쩔 거지?”

“어쩌긴 널 죽여야지.”

“네 여자친구가 내 손에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나 보군. 내 말이 그토록 신뢰가 없었나? 뭐, 좋아. 포기하지 네가 이겼어. 여자친구를 데려간 다음에 나를 죽이라고.”

이렇게 쉽게……? 그가 일레이나의 등을 떠민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내게 등 떠밀리는 일레이나. 그러나 그녀의 몸이 주성태를 향한 내 시선을 가리는 그 짧은 순간. 주성태가 기어이 일을 벌이고 말았다.

“끄아으윽!!”

일레이나의 심장을 뚫고 내 가슴 일부까지 파고든 칼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칼날은 연약한 복부를 연이어 찢고 나온다. 일레이나가 눈물을 떨어뜨린다.

통증 반사적으로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 손등을 때린다. 누군가의 눈물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졌던 적이 있던가…….

일레이나는 내가 지켜보는 바로 앞에서 뜬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죽음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바로 앞에 있었는데……. 눈앞에 있는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조차 막아내지 못한 무능을 저지르다니…….

“안돼……. 크흐으윽…….”

바닥에 무릎을 꿇고 힘없이 쓰러지는 일레이나를 품에 안는다.

“이제……. 여자친구네 집에 가서 상태라도 확인해 보는 게 어때? 그럼 내 말이 진짜인지 어떤지 알게 되겠지?”

“크흐흐흑…….”

“뭐야? 우는 거야? 웃는 거야?”

“크흐흐읍……. 재밌네…….”

참아보려고 했는데 웃음이란 건 한 번 터지면 도저히 참기가 어렵다. 남을 속인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 일이었구나 싶다.

입가에 머금은 웃음기를 쫙 빼고 그에게 말한다.

“생각해보니까……. 네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었네…….”

“뭐?”

“내 여자친구…….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이야. 요즘 시험 기간이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거든?”

끌어안고 있던 일레이나의 몸이 내 품에서 서서히 사라져간다. 사실 그녀는 하연이가 아니다. 그녀는 특수제작으로 만들어진 일레이나를 닮은 일회용 NPC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네가 죽인 거 사람 아니라고. 내 여자친구는 더더욱 아니고.”

그가 뒤늦게 내 말에 의미를 알아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 * *

동맹 길드를 정리하면서 살펴보는 사이 이성열이 다가와서 물었다.

“기단 씨. 이번에 기단 씨 여자친구도 길드 전에 참전하나요?”

“하연이요? 네, 잠깐 정도는 와서 구경하고 싶다던데…….”

“그러지 말라고 하세요. 이번 전투에 한지파 보스 주태성이 모습을 드러낼지 몰라요. 만약 여자친구 이번에 데려왔다가 인질로 잡히기라도 하면 전에 제가 당했던 것처럼 하연 씨도 위험에 질지 몰라요.”

이성열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인간들은 당사자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까지 피해를 주는 특성이 있으니까.

“기단 씨. 대신 저한테 당신 여자친구를 이용할 좋은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무슨 말인가 싶다. 내 여자친구를 이용한다니 어감이 그리 좋진 않은데.

“이상한 거라면 듣지 않겠습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일단 들어봐요. 제가 놈들한테 일레이나가 기단 씨 여자친구라는 정보를 몰래 흘릴 거예요. 그럼 놈들이 일레이나를 인질로 삼아서 기단 씨를 협박하려 들겠죠? 바로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이성열이 손짓하자 일레이나가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 하연이……? 하연이 지금 안에 있는데……. 왜 저기서……?”

“여기 있는 일레이나는 하연 씨가 아니에요. 제가 플로어에 있을 때 특수제작 NPC로 놈들의 아지트를 알아낸 적 있죠? 그런 거예요.”

정말 모습이 하연이의 캐릭터인 일레이나와 똑같다. 어쩜 이럴 수가 있나…….

“여기 있는 가짜 일레이나가 주태성을 죽일 수 있도록 당신한테 일조할 거예요. 당신을 대신해서 주태성을 암살한다거나, 뛰어난 연기로 사람을 홀린다거나. 제 말 아시겠죠?”

* * *

바로 이렇게 된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분명 사람이라고 나왔……! 커헉!”

자리에서 일어난 뒤 그의 목을 세게 틀어쥔다. 조여오는 숨통에 캑캑거린다.

“끄어으으극……! 너 내가 죽여버릴……! 끄으윽!!!”

“계속 짖어봐. 이 개자식아. 사람들이 네 앞에서 기어주니까 여기서도 네가 최고인 줄 알지? 넌 이 게임에서 아무것도 아닌 약골 아저씨일 뿐이야. 항상 괴롭히던 입장에서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니까 어때? 기분 엿 같지? 근데 앞으로 조금 더 엿 같을 거야. 왜 그런 줄 알아?”

그가 반항할수록 목을 쥔 손에 힘을 더욱 강하게 쥔다.

“크으윽……!

“성열 씨가 네 몸에 바이러스를 심었거든? 그거 너만 심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너 여기서 죽으면 네 숨겨진 아지트고 뭐고 싹 다 밝혀져서 경찰에 넘어가게 될 거야. 어떻게 생각해? 아직도 내 말이 거짓말 같아?”

“너……! 이샊……! 끄아아아아아아악-!”

-‘각인의 흔적이 ‘그란테’에게 새겨집니다.’

“이거 많이 아플 거다. 내가 성열 씨한테 들었는데. 이 기술이 니들 하는 것처럼 고통 제어 시스템을 무시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사람한테 함부로 사용 안 하려고 했거든? 근데 네가 내 동료를 죽였다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 경찰에 넘기지 말고 나도 너 그냥 죽일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야!”

“끄어어어어그윽-!”

-‘그란테가 당신에게 압도되었습니다.’

-‘각인의 흔적이 진성각인으로 변화합니다.’

사실 고통 제어 시스템 무시한다는 말은 단순히 겁주기 위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겁을 먹어줘야 각인이 더 빨리 걸릴 테니까.

“콜록! 콜록! 콜록!!”

그의 목을 풀어주니 피를 토할 정도로 기침을 해댄다.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가짜 일레이나의 피가 묻은 칼을 주워서 그의 손에 쥐여 준다.

그는 진이 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정신이 압도된 채 각인에 걸린 이상 이 칼로 나를 공격할 순 없다.

“기회를 줄게. 스스로 가장 고통을 느끼면서 자결하도록 해.”

그는 멍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칼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냥한다.

“이건……. 말도 안 돼…….”

입으로는 절대 거부하면서도 그의 몸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다.

“잘 가. 주태성.”

그리고는…….

푸욱-! 일레이나를 찔렀던 검이 그의 두개골을 관통하며 악당다운 최후를 맞이한다. 쌀 포대처럼 맥없이 쓰러지는 그란테를 피해 한 걸음 물러난다.

“다 끝났어…….”

땀이 맺힌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 인간 하나 잡는데 왜 이리도 심력을 크게 소모한 건지……

이제 나머지는 이성열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그러나 내겐 아직 확인해야 할 게 남았다. 나는 쓰러져 있는 주성태를 지나쳐 하나의 방 앞에 선다.

주성태가 내 동료 얘기할 때마다 쳐다봤던 이곳. 부디 문을 열었을 때, 모두가 살아있기를 바라며 문고리를 잡는다.

떨리는 마음을 따라 손조차 극심하게 떨린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방안의 펼쳐진 광경을 목격한 순간 하릴없이 바닥에 몸을 주저앉힌다. 울컥 치솟는 분노와 슬픔으로 현기증이 밀려온다.

“하……."

눈앞에는 내가 사랑하는 동료들이 전부 살아있다고 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바닥에 늘어져 있다. 피부에 난도질당하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더 이상 자세히 보고 있기 힘들어 고개를 떨군다.

“하아……. 으…….”

눈물이 난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현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다신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먹먹한 슬픔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모두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감싸 쥐고 하염없이 눈물을 떨군다.

“크흑…….”

이 빌어먹을 게임 시작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런 감정 느끼고 싶어서 게임을 한 게 아니었는데……. 이게 게임이라고? 이렇게 슬픈데 이게 어떻게 게임이야.

“씨발 진짜…….”

이 망할 게임, 욕을 안 할려야 안 할 수가 없어…….

“으흐흑……!”

테레이스가 방안으로 뛰쳐 들어온다.

가만히 내 손을 잡아주는 테레이스의 작은 손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 테레이스를 바라보니 내 아이셀을 들고 있다.

“언니들 살리고 싶어?”

테레이스의 말이 내 귀를 붙든다. 이 물음은 설마 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사, 살릴 수 있어……?”

살릴 수 있냐는 말에 테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단, 조건이 있어.”

“말해. 말해 줘.”

그녀들만 살릴 수 있다면 난 뭐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실로 속단하기 어려울 만큼 위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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