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44화 (14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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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꺾어 들어가니 그의 모습이 보인다. 곧 나를 죽일 거란 사실을 각인시키듯 정신 나간 괴물의 눈을 하고 있다.

그는 한쪽 팔로 사슬을 감아 당기며 창을 든 팔로는 공격 자세를 취한다.

“잘 가.”

그가 창을 내지르는 순간.

“아직! 아니야!”

바닥을 쓸면서 쥐었던 모래를 눈에 뿌린다. 자잘한 모래 조각이 먼지 폭탄처럼 터져 나가며 시야를 텁텁하게 가린다.

“으아아악!”

눈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창은 정확히 내 우측 어깨 노리고 쇄도해온다. 그러나 집중이 흐트러진 공격쯤 피하기 어렵지 않다.

다가오는 창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추진력 신발을 이용해 뛰어오른다.

“에르나! 지금!”

어느새 뒤로 다가온 에르나가 창보이의 목을 콱-! 문다. 이미 정신을 빼앗긴 창보이는 에르나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대로 물리고 만다.

“아아악! 이런 빌어먹을……!”

귀찮은 모기를 쫓아내려는 듯 몸을 세차게 흔들면서도 그 모습에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게 보인다.

에르나는 상대를 깨무는 것으로 마력과 체력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여러 악마 종족 중 에르나의 종족이 가진 특수 능력인데 봉인된 마력과는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크으으윽!”

그가 무릎을 꿇으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간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몸을 누인다. 그가 쓰러지자 우리를 얽맨 족쇄는 풀리면서 사라진다.

창보이에게 끌려오기 직전 몰래 계획했던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어서 다행이다.

“나이스 에르나…….”

“잘했으면 충전 좀 해줄래? 이상하게 마력이 안 돌아와.”

“우리 아직 전쟁 중인 거 잊었어요?”

얼굴을 들이미는 에르나를 피해 시선을 피한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한들 내가 전쟁 중 바지 내릴 일은 없을 것이다.

“마력이 없어서 힘을 하나도 못 쓰겠는데 정말 안 해줄래?”

“곧 돌아오겠죠.”

근데 잠깐……. 마력이 아직 봉인돼 있잖아……? 디버프를 건 대상이 죽으면 디버프는 자연스레 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직도 마력이 봉인돼 있다는 건……. 설마!

“조심해요!”

서둘러 에르나를 감싼 뒤 아이셀을 내뻗는다. 그러자 거대한 창이 바로 앞을 습격해온다.

탕! 탕! 탕! 탕! 탕! 탕!

창보이의 창이 아이셀에 드릴처럼 연달아 부딪혀오며 눈이 시도록 불똥을 튀긴다.

“크으으윽……!”

“네가 나를 이기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탕!! 탕!! 탕!! 탕!! 탕!! 탕!!

-‘7522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7747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8373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8503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창의 진동이 점차 세지며 피해량도 증가한다. 최대 2만까지 버틸 수 있는 아이셀로 못 막을 정도는 아니지만, 피해량이 증가하는 속도로 봤을 때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

“으으윽!!”

창은 폭발 직전의 폭탄을 연상케 하듯 붉어지며 엄청난 열기를 뿜어댄다.

아이셀을 든 손이 저릴 정도로 강한 힘이다. 더 이상은 한 손으로 막고 서 있을 수가 없어 두 손을 사용함에도 힘이 든다.

“죽어라!!!”

창이 큰 빛을 뿜으며 장렬한 폭발을 일으킨다.

파아아앙-! 주택가 골목이 완전히 파손되며, 무려 만 오천이 넘는 피해가 아이셀로 빨려 들어온다.

후드득- 온몸 가득 뒤집어쓴 잔해를 털고 일어나니 쓰러져 있는 에르나가 보인다. 미간을 찌푸리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죽진 않은 듯하다. 그러나 폭발의 충격이 컸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크으…….”

미칠 듯이 강력하구나. 꼴에 길드 마스터라 이거냐?

몸을 털고 일어나니 창보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걸 막아냈다고……? 너……. 정체가 뭐야……? 어디서 너 같은 게 튀어나와서 내 일을 다 망쳐 놓는 거냐고!!”

“그러니까 누가 그딴 인간 밑에서 일하래? 그만 징징거리고 빨리 끝내자. 니들이 이 도시 소유하는 시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지팡이를 고쳐 쥔 채 손목의 팔찌를 턴다. 심연이 나를 집어삼키며 그의 마지막 모습이 보인다.

“특별히 내가 아껴둔 기술인데 너한테 써줄게.”

말을 마침과 동시에 사방이 어둠에 잠긴다.

-‘[타이탄의 분노]를 발동합니다.’

-‘대상의 물리 방어를 무시합니다.’

-‘대상 타격 시마다 피해량이 263만큼이 증가합니다.’

어디 한 번 끝장을 보자.

*

심연이 걷힌 뒤. 내 몸통에 걸린 족쇄를 잡고 바닥에 주저앉는다.힘들어 죽겠다.

나와 상대했던 그는 여전히 두 발로 서있다. 그러나 그리 그도 멀쩡해 보이진 않는다. 사실상 창으로 지탱하고 몸을 지탱하고 있다.

“쿨럭…….”

그가 기침 한 번에 대량의 피를 바닥으로 뱉어낸다.

저 상태로 버티다니……. 참으로 징하다. 타이탄의 분노가 끝날 무렵. 내 평타 피해량은 한 방에 14,000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원킬을 방지하는 버티기 기술과 공격을 막아내면 피가 차는 저 괴물 같은 창 덕분에 나는 결국 놈을 죽이지 못하고 지쳐버렸다.

“족쇄를 걸 줄이야……. 머리 좀 쓰네.”

처음 심연에 삼켜졌을 때 그는 다른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나한테 기습공격을 받으면서 내 몸에 족쇄를 걸었고 사슬로 내 위치를 가늠해서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잠깐의 위기가 있었지만, 창보이는 끝끝내 아이셀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공격을 단 한번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너 이제 한계지? 무기도 망가진 것 같은데. 항복해라. 험한 꼴은 면하게 해줄 테니까.”

그가 실성한 듯이 웃는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공격을 맞다 보니 머리가 돌아버린 듯하다. 하기야 성을 뺏길 위기에 처했으니 누구라도 멀쩡하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한다. 마치 시체가 말하듯 걸쭉한 피를 늘어뜨리며 중얼거린다.

“적들이 나랑 싸우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아? 절대 혼자는 안 죽거든? 내가 죽는다면…….”

파악-! 창보이는 내가 내려치는 지팡이에 맞고 숨을 거둔다.

“고맙게 빈틈을 보여주네. 얘기는 다음에 기회 되면 듣도록 하자.”

원래 사람이란 게 말할 때 가장 빈틈이 많이 보이는 법이거든.

조금 치사해 보일 순 있지만 놈의 집중이 분산되지 않으면 솔직히 내가 이기리란 보장도 없었으니까. 이게 나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쓰러진 에르나에게 다가가 힐링포션을 먹인다. 어느 정도 정신은 차렸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치료하는 게 좋으니까.

“으……. 머리가……. 뭘 님……?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제가……?”

눈을 뜨더니 혼란스러워 보이는 모습으로 묻는다. 아무래도 본래의 에르나로 돌아온 모양이다. 그녀의 상황을 설명한 뒤 잘 부축해서 일어난다.

길드 마스터까지 쓰러뜨렸으니 승리하기 위해선 아군이 성을 포위하면 전쟁은 끝난다.

전투 전황을 살펴보면 이미 적진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수치상으로는 이미 우리가 5배 정도 우위에 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고작 한두 대의 우올로만이 하늘을 지난다. 아까부터는 사방에서 울려 퍼지던 포탄 소리도 많이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함성소리 같은 게 더 많이 들린다.

자세한 전황을 묻기 위해 드웍프에게 대화를 건다. 그런데 의지 전달을 하자마자 들려온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너무도 다급한 목소리였다.

-‘형님!! 왜 이제 연락하신 거예요! 큰일 났어요! 우올로에 웬 놈들이 쳐들어오더니 전부 데려갔어요!’

‘전부 데려가다니 무슨 말이야 그게?’

-‘형님 동료요! 페로렌, 셀리안 할 것 없이 전부 다요! 저는 간신히 빠져나오긴 했는데……! 다들 상태가 조금 이상했어요! 싸우기는커녕 반항도 안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 같아요!’

하……. 창보이가 말한 혼자 안 간다는 게 설마 이런 거였나?

서둘러 동료들을 소환한다. 그놈들 한테 잡혀있게 할 수는 없다.

-‘진성각인의 효과로 소환할 대상이 없습니다.’

소환할 대상이 없다고……? 동료를 소환하려고 하니 떠오른 메시지다. 모든 동료 전부 해봐도 마찬가지다. 진성각인으로 그 누구도 소환되지 않는다. 이런 메시지는 아예 처음 보는데…….

-‘아가씨 대답해 봐요!’

대화를 걸면 퉁명스럽게 말하던 페로렌도…….

-‘셀리안! 거기 있어요?!’

언제나 강아지처럼 나를 반기던 셀리안도…….

-‘미실트! 미실트!’

미숙한 말투로 대답만큼은 꼬박꼬박 해주던 미실트마저 내 대화에 어떠한 반응을 보내지 않는다. 그래도 어디 있는지 위치는 보여.

“에르나, 위험하니까 저 따라오지 말고 여기 있어요.”

다들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바이러스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에르나는 대륙 건너에서 온 NPC이기에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

“흑……. 언니…….”

동료들의 흔적을 따라온 곳은 주태성의 우올로다. 그곳에서 테레이스는 혼자 울고 있었다.

“테레이스……! 왜 여기 혼자 이러고 있어? 다들 어디 가고?”

“저 안에 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언니가 비명을 지르는데……. 도와줄 수가 없어…….”

“비명을 질러……?”

테레이스가 가리킨 장소로 다가간다. 테레이스의 말과 달리 문은 너무도 쉽게 열린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주태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음, 분명히 잘 되는데……. 왜 아깐 안 됐던 건지 모르겠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서늘하게 갈린 칼날이 내 목에 닿는다.

“움직이지 마.”

내 목에 칼을 들이민 사내는 이 배에 있던 다른 NPC들과는 달라 보인다. 아마 유저라고 생각된다.

주태성은 앞에서 검 하나를 든 채 나를 돌아본다. 그가 든 검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묻어 흘러내린다.

“석환 씨라 그랬나? 그놈 좀 잘 막아주면 현식 씨 자리 네가 갖게 해줄게. 좋은 기회니까 잘 잡으라고.”

“예 알겠습니다.”

칼을 더 바짝 들이미는 사내를 무시한 채 주태성에게 말한다.

“내 동료들… 어딨냐…….”

떨리는 소리로 그에게 물으니 그가 비열한 미소를 띤다. 불길한 생각이 울컥 치솟는다. 저 놈이 든 칼에 묻은 피가 내 동료들의 것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축하해. 계획대로 내 사업체 하나를 제대로 망쳐 놓으셨구만.”

주태성은 칼을 굴리며 그 끝에 맺힌 핏방울을 가지고 논다.

“네가 내 걸 망쳐놨으니 나도 네 걸 망쳐 놔야 타산이 맞는 것 같아서 말이야. 데려와 얘들아.”

주태성이 손짓하자 안쪽 방에서 익숙한 얼굴이 끌려 나온다.

“이거 놔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일레이나……. 그녀는 잡혀 오면서 거세게 저항한다.

“네가 올 것 같아서 여자친구는 특별히 살려놨어. 잡아 온 애 중에 얘 한 명만 진짜 사람이더라고. 얘, 네 여자친구 맞지? 역시 젊은 게 좋다니까. 나도 여자친구와 게임이나 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야…….”

여자친구는 살려놨다는 말……. 다른 동료는 전부 죽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주먹을 꽉 쥔다. 정신을 이어주던 가느다란 끈이 툭 끊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열 받아서 머리가 핑 도는 기분도 굉장히 오랜만이다.

“이성열한테 들어서 잘 알겠지? 내가 네 여자친구 여기서 찔러 죽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래서, 사람을 죽이겠다고?”

“그러니까 꼬마야. 덤비더래도 상대를 보고 덤볐어야지. 내 사업체야 돈은 좀 들겠지만 새로 파면 그만이고, 네가 날 죽여도 살아나면 그만이야. 게임이니까 말이야. 근데 네 여자친구는 어떨 것 같니? 여기서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그래, 이런 상황은 미리 예견된 일이었다. 이놈들하고 싸우겠다고 다짐했을 때 언젠가 하연이에게 또 위험한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그대로 벌어질 줄이야. 예상과 조금도 빗나가지 않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아저씨, 저 죽고 싶지 않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일레이나가 애원하듯 말한다. 그녀의 애달픈 눈빛이 주태성을 향해있다.

“고통은 잠깐이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마.”

안심시키려 하는 주태성의 말에는 배려를 뺀 사악함만이 깃들어 있다. 그는 칼을 들어 일레이나의 목을 살며시 긋는다. 그러자 곧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흐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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