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43화 (142/147)

<-- 길드전 -->

“현식이 형님!”

“닥쳐!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나가 있어!”

쾅-! 어느덧 역전돼버린 전세에 현식은 책상을 내리쳤다. 지금은 말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동료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어떻게 그런 놈들을 섭외한 거지……?’

노예사기단 마스터 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한 명의 유저 때문에 지금껏 열심히 쌓아 올린 길드의 명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데미길드조차 공중전에서 밀릴 만큼 강력한 지원군에, 성벽을 단방에 부수는 타이탄까지……. 하나같이 말도 안 나올 만큼 강력한 무력을 지닌 지원군이었다.

“안에 있나?”

“나가 있으라고 했잖아!”

현식은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방에 들어온 사내에게 물병을 집어 던졌다. 그러나 들어온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한 탓에 성급했던 자신의 행동을 곧장 후회했다.

그는 사내가 현재 가장 두려워하는 그란테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란테는 물병에 맞지 않았지만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란테님……! 죄송합니다. 도, 동생인 줄 알고…….”

“흠……. 괜찮아. 표정 풀라고. 사람이라면 실수할 수도 있지.”

특별히 물고 넘어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현식은 안도할 수 없었다. 그란테가 이렇게 자비로울 때면 어떻게 해서라도 흉악한 속내를 곧 드러내곤 했으니까.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던데……. 내가 준비한 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

서버 점검 문제 얘기였다. 점검이 예정대로 됐다면 길드전은 미뤄졌을 테고, 그때까지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 터였다. 유저들의 반발이 심했는지 결국 점검은 취소되고 그와 함께 현식의 작은 야심도 무너졌다.

“그러니까 원래 예정대로 현식 씨가 나서서 모든 걸 수습해야 해. 내가 현식 씨를 내치지 않도록 말이야. 이번 싸움 이길 수 있겠지? 지는 건 실수라도 용납해줄 생각이 없으니까.”

“예……. 믿어주십시오.”

“그래, 조금만 버텨준다면 도와줄 지원군을 모아보도록 하지. “그동안 내 사업을 망가뜨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내가 이 정도까지 신경 써주는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니 말이야.”

말을 마친 그란테는 방에서 나갔다.

현식은 두통에 머리를 문질렀다. 역시나 좋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면 죽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자꾸 재촉하듯 피를 말려오는 그란테 때문에 현식은 더욱 미칠 것 같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돈에 눈이 멀어 그란테의 손발이 되는 짓은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잘라서라도 막고 싶은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식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전황은 이미 적들이 코앞까지 밀어닥쳤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죽인다.’

현식은 급히 길드원 동생을 호출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부탁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 * *

음……. 저렇게 준비를 하고 있단 말이지…….

한 대의 우올로. 성벽 안의 인원은 기껏해야 3, 40명 남은 인원은 성벽 위에 모두 자리 잡았다. 멀리서 본다면 흡사 장난감들을 배치해놓은 광경이다.

최종장. 마지막 공성 전 치고는 생각보다 부실한 전력을 꾸리고 있지만, 저들을 최후의 보루로 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전력이 없어서 저렇게 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절대 질 것 같진 않다. 이미 전투력 차이는 우리가 따라잡은 지 오래고 이제 마지막 전투 만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적들은 성을 향해 후퇴를 외치고 있다.

이미 승기는 우리에게 넘어왔다.

“음?”

-‘기단 씨! 이성열입니다! 지금 제테니어 성 뒤쪽으로 빨리 가줘요! 주태성이 나타났어요! 지금 지원군을 요청하러 가는 것 같아요! 놈을 죽여준다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부탁해요. 기단씨!

한지파 보스 주태성. 이성열의 말대로 정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금액을 쏟아부은 사업채가 망가질 위기에 처했는데, 앉아서 지켜보는 건 성미에 안 맞는 모양이지?

덕분에 직접 찾을 수고는 덜었다.

성 뒤편으로 가 시야를 돌리다 보니 그리 크지 않은 우올로 한대가 보인다. 성으로 들어가려는 대부분의 우올로와 달리 저 하나만은 반대로 성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여러 가지 판단이 들 수 있겠으나 그중 가장 적합한 판단을 내려보자면, 저 우올로엔 분명 주태성이 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럼 가보실까!

“끼이이이이악-!”

콰아아앙-! 커다란 볼테이온의 몸집이 우올로에 내리꽂힌다. 뒤집힐 것처럼 흔들리는 선체에 적들이 균형을 잃고 이리저리 춤추준 우왕좌왕한다.

“콜록! 콜록! 뭐야……?!”

“뭐긴 뭐야? 쓰레기 수거반이지.

“그란테님! 저 녀석 노예사기단 길드의 마스터입니다!”

주태성이 감정 없는 눈길로 이쪽을 쳐다본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한다면, 아마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적들이 점차 몰려든다. 위에서 볼 땐 몰랐는데, 막상 적진으로 뛰어들고 나니 생각보다 적이 많다. 그렇지만 두려운 마음은 없다.

딱 보니 강한 녀석들은 성안에 몰아넣고 혼자만 뒤로 빠질 생각이었나 보다. 그러니 적들이 신경도 안 쓸법한 이런 작은 우올로를 선택했겠지.

주태성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찾는데 애 좀 먹을 줄 알았는데, 알아서 기어 나와 주시네. 주태성.”

“아아……. 이성열 기자님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그 친구인가? 내 이름을 아는 거 보니,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들었을 텐데. 젊은 친구가 참 패기 있게 사는군.”

조폭한테 칭찬받아봤자 하나도 기쁘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도, 알아주니 고맙네. 그럼 내가 여기 왜 왔는지도 잘 알겠지?”

“글쎄……. 왜일까? 내가 문제 풀이에는 소질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걸?”

“네가 하는 사업에 찬물 좀 끼얹어서 물거품 좀 내보려고.”

그란테가 웃는다. 그 웃음은 조롱 섞인 비웃음에 가깝다.

“네가 어떤 식으로 나한테 찬물을 뿌리겠다는 거지? 제테니어를 무너뜨리는 거? 잘 모르나 본데, 그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어. 더 나은 길드를 찾으면 그만이니까. 왜 쓸데없는 일에 목숨 거는지 모르겠군.”

내 말이 가소롭게만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도 알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걸.

그렇지만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이성열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떤 신분이더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남자니까. 그리고 이미 그의 영향이 주성태를 곤경에 빠뜨렸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쓸데 있는지 없는지는 겪어보면 알게 될 거야.”

“이것도 이성열이 시킨 건가? 그럼 타깃을 잘못 잡은 거라고 가서 전해.””

아닌 척하지만 지금 그의 말이 현 상황에 불안한 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제테니어는 당신을 망가뜨리기 위한 몸풀기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그런 말을 하려거든 그냥 나한테 얘기해. 성열 씨의 부탁과는 별개로 이건 내 의지로 하는 거니까. 물론 부탁한다고 해도 봐줄 생각은 없지만.”

“나한테 원한이 깊은가 보군. 난 그쪽을 오늘 처음 보는데 말이야……. 그럼 처음이고 하니 충고하나 할까? 나한테 깊은 인상 남겨 봤자 좋을 건 없을 거야. 그것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가 손짓하자 주변의 부하들이 하나둘 무기를 빼 들기 시작한다.

“당장 내 배에서 내려준다면 이런 무례한 행동쯤은 눈감아주도록 하지. 내가 조금 바빠서 말이야.”

조폭이 무서운 얼굴을 들이밀고 말한다면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나오겠지. 솔직히 직접 얼굴을 마주한 채 듣는다면 나라도 무서울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우습기 짝이 없다. 벌레만도 못한 쓰레기한테 짓밟혀줄 정도로 약한 내가 아니니까.

“말은 그렇게해도 지금 꽤 초조하지? 초조할 거야 아마. 열심히 공들인 사업체는 망가질 위기에 처했고, 바이러스는 듣지도 않고, 자꾸 방해하는 날 협박하고 싶어도 누군지 알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끝까지 날 막겠다. 이건가? 도무지 대화라는 게 통하지 않는 친구로군.”

“당연하지. 쓰레기랑 말이 통하는 순간 그건 내가 쓰레기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니까. 그럼 슬슬, 죽어주셔야겠어. 당신을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게 내가 이성열한테 받은 퀘스트였거든?”

“이런……. 후회할 텐데…….”

조롱하듯 말하니 주변에 들릴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쉬며 나를 노려본다. 어이구, 무서워라. 조폭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난 이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릴 넘치게 재밌어서 두 번 정도는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명에 따라 존재감 없는 꼭두각시들이 내 주변을 에워싼다. 말로는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제 깨달았나 보다.

“이런 애들로 나 잡을 수 있겠어? 아까 나한테 소용없는 짓 하지 말랬지? 진짜 소용없는 게 뭔지 보여줄까?”

어느샌가 바닥에 액체가 찰랑찰랑 깔린다. 그들은 흥건하게 깔린 물을 자기도 모르게 밟고 선다.

“우리 어머니께서 그러셨지. 어디를 가나 항상 발밑을 조심하라고…….”

깔린 물에서 냉기가 서린다. 그 순간 물을 밟은 적들의 몸이 하나같이 꽁꽁 얼어붙는다.

“어어어어으억-!”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시, 찬 기운은 그들의 숨마저 얼어붙게 하며 행동을 그대로 멈춰 둔다.

“너희도 항상 명심해라. 어머니 말씀은 언제나 옳으니까.”

이제 지팡이를 꺼내 들고 주태성에게 다가간다. 게임에서만 죽는 것이니 여전히 여유만만이다. 본인이 죽었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럼 죽어라.”

지팡이를 내려친다. 그 순간 퍽-! 하고 밀어치는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콰아아앙-!

-‘531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음을 2회 견뎌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내 몸은 갑판 아래 푹 꺼져 있었다. 간신히 몸을 털고 일어난다. 벌써 2번의 죽음. 이렇게 허망하게 두 번째 목숨을 날리다니.

나를 공격한 적을 바라본다. 에일리언의 머리 모양처럼 생긴 특이한 창에 어깨에는 하늘하늘 끈이 달린 사내다. 처음 보는 얼굴이나, 누군지는 알 것 같다.

제테니어 길드의 마스터. 별칭은‘창보이’다.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듯 괴상하게도 생긴 창을 들고 있다.

“현식 씨. 마침 제때 나타났구만……. 저 녀석 처리를 부탁하지.”

주태성은 창보이에게 명령한다. 확실히 제테니어의 마스터라 그런가 장비에서부터 압도되는 느낌이다.

굳이 이런 놈과 맞붙을 필요는 없어. 우선은 주태성을 죽인다.

놈을 무시한 채 주태성을 향해 달린다. 그렇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창을 내질러오는 창보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을 거둬야 했다.

-‘5211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저 정도 피해가 이 인간한텐 그냥 평타 수준인 건가? 창보이의 공격을 아이셀로 막아내면서 시선은 주태성에게 향한다.

언제든 빈틈이 생기면 주태성을 공격할 심산이다.

“싸우다 말고 어딜 봐!”

“으앗?!”

그가 내 신체를 밀고 들어온다.

-‘5211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둔기처럼 휘두르는 창에 밀려 신체가 우올로 바깥으로 떨어진다.

후우웅-! 창보이가 뒤따라 뛰어내린다. 날개도 없는데 어쩌려고 나를 따라오는 거지? 차라리 잘됐어. 이거라면 주태성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성각인의 효과로 에르나를 소환합니다.’

“에르나! 저 배에 타고 있는 적들을 전부 죽여줘요!”

“진하게 충전해주면 생각해볼게.”

“이번 전쟁 끝나면 충전이든 뭐든 해줄게요! 그러니까 빨리!”

충전을 보채는 에르나에게 약속을 하니 자연스럽게 날아서 주태성이 탄 우올로로 향한다.

창보이는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는 에르나를 보고는 몸을 빙글 회전시킨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다.

“어딜!”

“뭐야 이건? 아앗?!”

손에서 뻗어 나간 족쇄가 에르나의 다리에 걸리더니, 창보이와 함께 떨어져 내린다. 곧 내 몸에도 똑같은 족쇄가 걸린다.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가 없다.

마력에 강한 에르나조차 풀 수 없는 걸 보니 풀릴 때까지 강제로 버텨야 하는 기술인 것 같다.

“에르나 저놈부터 죽여요!”

“마력이 안 써져!”

확인해보니 정말 마력이 사용할 수 없도록 봉인돼 있다. 사슬의 효과인가? 창보이는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사슬을 당겨 창을 내지른다.

“이야아압!”

“크윽-!

-‘4122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다행이다. 아이셀은 발동돼. 그러나 떨어지는 와중이라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막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이대로 떨어지다간 곧 죽겠어!

‘볼테이온! 나 좀 살려줘!’

마력이 봉인돼 있어서 소환할 수가 없다. 다행히 의지전달은 가능해서 내 목소리를 들은 볼테이온이 빠르게 몸을 접고 하강해온다.

“죽어라!”

-‘4513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조금의 쉴 틈 없이 찔러 들어오는 공격. 에르나도 나를 위해 열심히 싸워주지만, 마력을 봉인 당한 떨어진 에르나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흐아아아!”

나 역시 놈의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을 시도하지만, 그는 커다란 창을 방패로 써가며 내 공격을 가볍게 막는다. 1m 남짓의 짧은 지팡이로 저 거대한 창을 상대하는 건 도저히 쉽지가 않다.

몸이 자유롭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끼이이이이악-!”

“흐음?!”

번개처럼 내리치는 강공격에 조금씩 정신력이 흐트러지는 사이 볼테이온이 내 옷을 물고 재빨리 날아오른다. 급격히 틀어진 몸의 방향에 창보이가 허공을 찌른다.

볼테이온은 안전한 지상을 찾아 빠르게 움직인다. 창보이는 다시 공격하려는 듯 팔을 뒤로 길게 뺀다.

푸화아악-! 창보이의 거대한 창 날이 볼테이온의 피부를 꿰뚫자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진다.

“끼이이이악-!”

“크윽……!”

-‘2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피해. 최대한 지상으로 왔음에도 상당한 낙하 피해를 받았다.

떨어진 곳은 제테니어의 한 주택가다. 워낙 촘촘히 세워진 공간이라 같이 떨어졌음에도 창보이는 보이지 않는다.

이놈의 사슬은 여전히 연결돼 있다. 사슬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니 꺾여진 골목 사이로 이어져 있다.

그 순간!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내 몸을 끌어당긴다.

“크으앗!”

바닥을 끌며 저항해봐도 엄청난 힘에 그저 당기는 대로 몸이 따라간다. 도르레에 사슬을 묶어서 당기는 것 같다.

이대로면 잡히겠어……!

‘에르나! 나 끌려가고 있는데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 시간 좀 끌어줄래?’

‘좋은 방법? 뭔데요?’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생각한 좋은 방법이란 것을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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