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42화 (14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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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임조윤 대리. 호출한 적 없을 텐데?”

민형태는 임조윤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이 얼굴에 담겨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이번 긴급점검 건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그 이야기라면 운영팀에 전달했으니까 건너서 들어.”

“이미 소통했습니다. 부장님 지시라면서 자기네들은 제대로 아는 게 없다고 하더군요. 부장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발팀과 관련된 문제인데, 개발팀이 모른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똑 부러지는 임조윤의 말에 민형태는 의자를 돌려 책상 위에 두 발을 올려두었다.

“그럼 김유전 팀장이 오라고 해. 자네는 대리가 부장한테 다이렉트로 업무를 묻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대체 어느 회사에서 그따위로 행동하라고 가르쳐?”

“팀장님과 과장님은 외근출장으로 부재중이고, 해당 문제가 긴급 사안인 만큼 업무 연관자인 제가 직접 와서 상황을 들어보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조윤은 자신이 정리한 자료를 민형태 부장 앞에 정중히 내려놓았다. 마음 같아선 아버지의 원수인 그의 얼굴에 과감히 던져버리고 싶지만, 참아야 했다. 한순간의 실수로 일을 그르칠 순 없었다.

“저희가 전해 들은 바로는 벨라프 산맥에서 발생한 셧다운 문제 때문에 긴급점검을 내리는 거라고 들었는데 그 문제가 확실한 겁니까?”

“그래.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야.”

벨란트 산맥은 유저의 진입이 매우 적은 곳이었다. 애초에 그곳은 콘텐츠가 개발되지 않았기에 한 달에 한두 명 지나가다가 들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런 곳에서 문제가 한다고 굳이 긴급점검을 하면서까지 유저들의 원성을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문제라면 이미 해결했습니다.”

이미 해결했다는 임조윤의 말에 부장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네가 무슨 수로 그걸 해결했다는 거야?”

“제가 드린 자료를 보시면 알 겁니다. 누군가 개발 서버에서 작업하던 사항을 실수로 본 서버에 덮어씌우면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그 문제가 전부라면 점검은 필요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니, 점검 그대로 진행할 거야.”

임조윤은 그 문제를 발생시킨 인물이 누구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물은 문제가 해결됐음에도 여전히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 유저들이 대량으로 참여한 길드 전이 진행 중입니다. 그걸 무시하고 점검을 진행하면, 유저들의 반발이 심할 겁니다. 이미 운영팀에서도 유저들의 불만 사항을 대량으로 접수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고쳐질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사람 많은 데서 문제 터지면 네가 독박 쓸래? 유사 문제 생기지 않게 이번 기회에 싹 다 다시 점검해.”

“내부 사람 중 누군가 의도적으로 게임을 망치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같은 문제가 생길 리 없습니다.”

“하라면 해. 콘텐츠 개발 안 된 지역들.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거 따로 분리해서 관리해. 현재 구조로는 뭐 하나만 잘못 들어가도 전체 다 문제 발생할 수 있으니까. 그거 개선부터 하라고.”

“오늘 발생한 문제는 그것 때문에 일어난 문제가 아닙니다. 애초에 이번에 일어난 오류는 우리가 사용하는 코드 구조상 일어날 수 없는 시스템 오류였습니다. 지금 지시하시는 사항은 원인이 앞에 있는데, 옆을 보고 해결하라는 말씀과 진배없습니다.”

부장은 책상에서 다리를 내렸다. 그리고는 임조윤의 말에 붉은 핏대를 세우더니 크게 소리쳤다.

“뭐? 이 새끼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원인이 어쩌고저째?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너 개발 몇 년 차야! 너 내가 앉아서 펜대만 굴린다고 실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아?! 내가 이 바닥에서 못해도 너보다 10년은 더 굴렀어! 만년 대리주제 어디 건방지게 부장을 가르치려 들어? 이번 문제! 제때 관리 못 한 개발팀에게 책임 물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이 새끼야!!”

속이 끓어오름에 임조윤을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대할 때도 딱 이런 목소리였다.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 목소리와 태도는 이성을 쉽게 유지할 수 없게 했다.

“해당 문제가 개발팀에서 발생한 게 아닌데 책임을 물으시겠다는 겁니까? 본 서버에 오류코드를 덮어씌운 기록이야 찾아보면 전부 나오는 자료입니다! 제가 그 자료까지 드려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이 새끼가 어디 눈을 똑바로 뜨고! 너 정말 한번 해보자는 거야! 뭐야! 이 개 같은 새끼가 눈에 거슬리는 거 가만 놔뒀더니!”

민형태는 쌍욕을 내뱉으며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조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때리면 맞아줄 생각이었다. 다리가 잘리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민형태 앞에서는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

“어쭈? 이 새끼 봐라? 끝까지 눈 안 깔지? 어!”

민형태의 손이 올라가던 그때였다.

벌컥-! 부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임조윤의 삼촌이자 개발 2팀 팀장 김유전이었다. 김유전이 들어오자 민형태 부장의 행동은 즉시 멈췄다. 성격은 개차반이라도 남의 눈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임조윤! 나가 있어.”

“팀장님……!”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침착하게 둘러보던 김유전은 임조윤을 뒤로 물리고 민형태에게 다가갔다.

“민형태 부장님 저랑 얘기하시죠. 저 없는 사이에 개발 쪽 문제가 터진 것 같던데.”

“김 팀장 끼어들지 마. 나 저 싸가지 없는 새끼랑 할 얘기 남았으니까! 야! 너 거기 안 서! 인마!”

민형태는 조용히 나가려는 임조윤을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김유전의 민형태의 팔을 잡아 자리에 반강제로 앉혔다.

“저랑 얘기 나누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민형태 부장님. 이 안건이 회장님 귀에 들어가야 속이 후련하시겠습니까? 부장님께서도 귀찮아지실 텐데요?”

체격이 좋은 김유전이 얼굴을 들이밀며 협박 조로 말하자, 민형태는 화를 삭이며 긴급점검 건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

김유전은 굳어진 얼굴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번 건으로 그간 꾸려온 모든 계획이 자칫 틀어질 수 있기에 임조윤은 긴장된 얼굴로 김유전의 방을 찾았다.

“팀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긴급 서버 점검……. 진행하란다.”

그 말에 임조윤은 이를 까득 씹었다. 정말 이놈의 회사가 진절머리나는 순간이었다.

“팀장님! 진짜 그거 아닙니다! 이번 오류는……!

“그래서 내가 말했다. 긴급 서버 점검 내리고 싶으면 네가 개발팀장 하시라고. 월권행위는 용납 않겠다고.”

“그 말씀은…….”

긴급점검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지가 부장이면 다야? 어디서 내 권한을 넘봐? 거기다 우리 개발팀 가장 엘리트인 널 빼놓고 그런 회의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그건 나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위지. 어린놈의 시끼가. 건방지게…….”

점검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개발 팀장의 몫이었다. 제 아무리 부장이라한들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영역도 있는 것이다.

김유전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니 고마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의 생각하는 건 역시 김유전 밖에 없었다.

“네가 거기 놓고 간 자료 대충 읽어봤다. 마지막 서버 접근기록이 민형태 부장 IP던데……. 이번 일도 그 인간이 한 거냐?”

물음에 임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갈 데까지 갔구나 그 인간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다가 제풀에 꺾일 것도 모르고 쯧쯧…….”

김유전은 하품하면서 의자에 몸을 쭉 늘어뜨렸다.

“나, 외근 갔다 와서 피곤하니까 네가 대신 좀 운영팀에 전달 좀 해라. 점검할 필요 없다고.”

“알겠습니다. 팀장님!”

임조윤은 최근 들어 가장 즐거운 듯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김유전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자식……. 평소에도 그렇게 웃으면 좀 좋냐.”

* * *

-‘안녕하세요. GM입니다. 10분 후 예정되어 있던 긴급 점검 예정은 취소되었습니다.’

-‘게임 이용에 혼선을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서버 점검이 취소됐다. 불과 몇 분 전 이성열이 대화를 걸어서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진행하면 될 거라더니 정말 그 말대로 됐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내부적으로 모종의 거래가 있던 모양이다. 그걸 이성열의 지인이 나서서 해결한 것 같고.

그럼 이제 끝장을 보면 되는 건가? 얼마 안 남았다. 최종까지 진격하자.

*

반나절의 사투 끝에 제테니어가 슬슬 후퇴의 기미를 보인다.

“적들이 퇴각한다! 제테니어 성까지 밀어붙이자!”

드디어 제테니어가 후퇴하고 공성전에 들어간다. 제테니어에 돈을 건 관중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하다. 아마 난리를 피우고 있겠지.

설마 우리가 이 정도까지 밀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거야?

제테니어 도시의 거대 성벽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도 두꺼운 성벽. 쉽게 부수긴 어려워 보인다. 그 앞에는 여전히 100여 대가 넘는 우올로가 우리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그렇지만 땅이 있는 한 문제 될 건 없다. 드디어 네 힘을 발휘할 때가 왔구나.

“타이탄! 성벽을 부숴라!!”

-‘진성각인의 효과로 ‘타이탄’을 불러옵니다.’

22m 무려 성벽의 높이와 엇비슷한 크기의 타이탄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며 등장한다.

그 위대한 존재감에 모든 이의 이목이 자연스레 한곳으로 쏠린다.

“커헉?!”

“세……. 세상에…….”

“괴물이다……. 엄청 커!”

놀라울 만한 크기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 나 또한 다시 봐도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놀랍기만 하다.

“저거 뭐야……?

“타이탄이잖아?!”

구구궁-! 작은 움직임에도 타이탄은 귀가 아릴 정도의 굉음을 내며 군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벽 못 때리게 다들 공격해!”

타이탄이 팔을 올리자 한 유저가 외친다. 제테니어의 전 병력은 우왕좌왕하더니 이내 정신 차리고 타이탄을 공격한다.

펑! 펑! 펑! 거침없이 직격하는 포탄. 드래곤도 잡을 수 있을법한 엄청난 포격 세례에도 조금의 돌조각만 떨어져 나갈 뿐, 타이탄은 모기에 물린 코끼리처럼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행동을 이어나간다.

펑! 펑! 펑!

“조심해라!!”

이윽고.

후우웅-! 거대한 주먹이 뻗어 나가며 폭풍 같은 바람을 일으킨다.

콰아아앙-! 대지가 울릴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나가는 듯한 폭발음이 전장을 들끓게 한다.

“저 타이탄 우리 팀인가 봐! 우리도 같이 공격하자!”

타이탄의 공격이 먹혀들자 아군의 사기가 대폭 상승한다. 이미 오래 이어오는 싸움에 다들 지쳤을 법도 하지만, 고지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기세가 등등한 모습이다.

후두두두둑-! 타이탄이 주먹을 천천히 빼내자 성벽에 균열이 가며 돌덩이가 사방으로 떨어져 내린다. 타이탄은 멈추지 않고 재차 주먹을 장전한다. 세계 최강의 총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법한 위압감이다.

“또 온다!

쿠아아아앙-! 단 두 번 만에 엄청난 두께의 성벽이 단번에 무너진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다.

“이런 미친?!”

“아……! 안돼! 성벽이 무너졌다!!!”

“이렇게 빨리……?!

사실상 길드 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을 꼽자면 이 공성전이다. 이곳에서 짧으면 하루, 길면 최장 일주일까지 시간을 버릴 수 있다고 하는데, 최강 병기 타이탄으로 인해 단 몇 분 만에 성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타이탄! 적들을 물리쳐라!”

한참 멍하니 있던 타이탄이 뒤늦게 명령을 알아듣고는 손을 크게 휘두른다.

후우웅-! 타이탄의 손길 한 번에 바로 옆에서 포격하던 우올로 3대가 동시에 나뭇조각으로 변하며 바닥에 처박힌다.

“다들 총공격!!!”

타이탄의 등에 업은 동맹군은 엄청난 군세를 몰아치며 외벽 안으로 침입해 들어간다.

“모두 무찔러라!”

거침없이 밀고 있는 동맹군을 보니 이제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이제 도시 안으로 들어왔으니 어떻게 마지막을 장식했는지 살짝 확인해볼까?

“볼테이온!”

-‘진성각인의 효과로 ‘볼테이온’을 불러옵니다.’

“성까지 한번 날아보자!”

“끼이이이이악-!”

볼테이온의 속도를 체감하며 서서히 불어오는 승리의 바람을 만끽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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