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40화 (13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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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미리 대비책을 세워놓길 잘했군요.”

초대장 남의 목소리가 바로 뒤편에서 들려온다. 분명 눈앞에 얼어 있었는데, 사라지고 어느샌가 뒤에서 나타난 것이다. 내가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라면 이건 분명 공간이동 마법이다.

그리고 공간이동 따위의 마법은 이 게임에서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마법이다.

“이런 걸 체크메이트라고하나요? 돌아보진 마십시오. 돌아보면 죽일 겁니다.”

“안 돌아봐도 죽일 거 아냐?”

“맞습니다. 그 대신 천천히 죽겠죠.”

“그거 참 좋은 팁이야.”

에르나와 미실트를 내 앞으로 소환한다.

-‘진성각인의 효과로 ‘에르나’를 불러옵니다.’

-‘진성각인의 효과로 ‘미실트’를 불러옵니다.’

외침과 동시에 고개를 숙이자 미실트와 에르나가 나를 피해 초대장남을 공격한다.

후욱-! 앞으로 몸을 굴려 거리를 벌린 후 그를 쳐다보니 완드 하나로 미실트와 에르나의 공격을 손 쉽게 방어해내고 있다.

퉁-! 퉁-!

완드에서 마법진이 그려지며 닿는 공격을 완벽히 차단한다. 미실트와 에르나의 공격을 저리도 가볍게 막아낼 줄이야…….

“동료를 이용하시다니 살기 위해선 최고의 판단이나, 동료를 아끼신다면 최악의 판단이군요.”

공격을 막아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던 그가 완드를 내뻗는다. 그 순간 검은 연기가 완드 주위를 빠르게 돌더니 미실트를 향해 쇄도한다.

“왕녀님!!”

위기를 느낀 에르나가 미실트를 밀어내며 방어마법을 발동한다. 그러나…….

“안 돼 에르나!!!

방어마법을 쓰기 무섭게 에르나의 마력이 완드로 빨려 들어가며 그대로 심장을 퀘뚫린다.

“커허억……!”

검은 연기는 뱀처럼 에르나의 몸을 휘감더니 빠르게 솟구치며 온몸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끄아아아아아-!”

에르나는 비명을 지른다. 피부가 날카롭게 찢기며 핏물이 사방으로 튄다. 단단한 갑옷이 한순간 박살 나고 속옷은 넝마 쪼가리로 변해 간다.

“그만해! 이 자식아!!!”

고통받는 에르나를 더는 보고 있을 수 없다. 추진력 신발을 이용해 급히 튀어 나간다. 내 공격에 앞서 미실트가 먼저 막으러 달려가지만 역으로 감염되듯 퍼져나가는 기술에 미실트마저 삼켜지고 만다.

“끄으으으으윽!

“죽어!!!”

그는 미실트와 에르나에게서 완드를 거두고 나를 향해 완드를 내뻗는다.

찌지징-! 검은 전기가 완드 끝에서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뻗어 나온다. 아이셀을 들어 막는다.

-‘아이셀이 6291의 피해를 흡수하였습니다.’

적의 공격을 흡수함과 동시에 즉시 피해를 방출한다.

“흡?!”

찌지징-! 그가 번개를 막으며 뒷걸음질 친다.

-‘[공격권]을 발동합니다.’

멀어지는 그를 추격해 들어가며 연계적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모든 공격이 완드에 막힌다. 그렇지만 지팡이에 달린 시간차 공격 효과를 이용하면 빈틈을 만들 수 있다.

먼저 상단!

퉁-! 역시나 완드에 가로막힌다. 그러나 1초 뒤면 다시 상단 공격이 발동될 것이다. 그때 맞춰 하단을 공격한다.

바로 지금!

파악-! 상 하단 동시에 들어가는 공격에 맞고 그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으음……. 제법이군요.”

그러나 당혹스럽긴 나도 마찬가지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 죽음을 1회 견뎌냈다는 시스템 메시지까지.

“근성인가요……? 살아남으셨군요.”

워낙 빠르게 반격이 들어온 터라 대처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복부를 부여잡은 채 의식을 잃은 에르나를 바라본다. 미실트가 다친 몸으로 부축하려 노력하지만, 에르나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다.

미리 사둔 힐링 포션 두 개를 미실트에게 던진다.

“미실트 그거 사용해!”

미실트는 에르나의 입에 힐링포션을 흘려 넣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가 말한다.

“모르시나 보군요. 죽은 자에게는 어떤 포션도 듣지 않습니다.”

그 말에 미실트는 자신의 포션마저 에르나에게 먹이지만,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진짜……. 죽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소용없을 거라고.”

“그 주둥이를 닥치는 게 어때?”

처음 맞는 동료의 죽음에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너… 진짜 내가 가만 안 둔다.”

“저 여인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건가요? 당신에겐 그저 NPC일 뿐이지 않습니까?”

“NPC인데 그게 뭐? 감정을 교류할 수 있으면 그게 돌멩이라도 키우는 세상이야. 하물며 인간하고 똑같이 생긴 동료가 죽었는데, 아무러면 태연하게 넘어갈 수 있겠냐!!”

파삭-! 그에게 치고 나아가 지팡이를 강하게 휘두른다. 하지만 그는 너무 쉽게 피해낸다.

“지금 어디를 맞추시는 겁니까?”

그가 비웃는다. 나도 따라서 비웃어주마.

“직접 보지 그래? 난 제대로 맞췄거든?”

크랭크에 걸어놓은 걸쇠가 지팡이에 맞고 풀리면서 공중에 달려있던 거대한 우올로 무기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아 이런…….”

쿠웅-!

외마디 말과 함께 깔리고 만다. 무기가 어찌나 무거웠던지 갑판을 부수고 아래층까지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는다.

“아직 안 죽은 거 아니까. 빨리 튀어나와!”

나오라는 말에도 깜깜무소식이다. 긴장된 상태로 한참을 기다린다. 어디서라도 튀어나올 걸 대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1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않는다.

진짜 죽었나……? 보통 이런 걸로는 안 죽던데……. 아니면 나를 유인하는 거냐?

“알겠어. 네 뜻대로 해주 마.”

구멍 뚫린 갑판 아래로 과감히 몸을 던진다.

*

파아앙-!

몇 분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아래층에서 높게 튀어 오른다. 몸에 붙은 불길을 두드려 가며 놈을 바라본다.

“그 정도로 제 목숨을 거두실 수 있겠습니까?

정말 끔찍할 정도로 강한 녀석이다. 내가 놈을 이길 수 있을까……?

심연의 팔찌……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심연을 발동시키려 손목을 터는 순간, 눈앞에서 나타나는 그에게 목을 쥐어 잡히면서 기술이 강제 취소된다.

“커억!”

“제가 조금 더 빨랐군요. 아쉽습니다. 당신이라면 저를 멈춰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크흐, 윽……. 너도 혓바닥이 참 길구나……. 나 아직… 안 죽었어!!!”

아이셀을 방출하려 손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 즉시 마법진이 손 주위를 감싸며 움직임을 봉한다.

“크윽……!

“허튼짓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가 완드를 들어, 내 몸을 향해 마법진을 그려낸다.

“그럼 죽어주십시오.”

아직 죽음을 한 번 더 견딜 가능성이 있어. 한번 죽음을 견디고 놈이 방심하기를 기다린다. 그 이후 아이셀에 쌓아놓은 피해를 방출하면 승산은 있어.

“참. 이번에도 근성으로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마십시오. 상태이상 공격이라 살아나도 즉시 죽을 겁니다.”

뭐?! 안돼……!

마법진이 빛나며 내 가슴을 찢어 놓으려던 그때였다.

푸확-! 정체불명의 물체가 사내의 가슴을 뚫고 내 가슴 앞까지 튀어나온다.

“커억……!”

목을 조르던 손의 힘이 풀리자 재빨리 거리를 벌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한다.

“하아……. 우리 자기한테 좀 떨어져 줄래……?”

“에……. 에르나……?”

“안녕 자기?”

죽은 줄 알았던 에르나가 멀쩡한 모습으로 손가락을 흔들며 인사한다.

에르나인 것 같은데……. 에르나가 아니야? 저 말투와 표정은 성관계에 심취했을 때 나타나는 그 모습과 비슷한데 마치……. 진짜 서큐버스와 닮아있다.

심지어 사내의 심장을 꿰뚫은 그것은 에르나의 꼬리다.

“아아……. 간만에 깨어나니 기분 참 좋네…….”

그녀는 요기로운 모습으로 기지개를 켠다. 그녀가 부드럽게 몸을 풀자 꼬리도 덩달아 움직인다. 그 때문에 꼬리에 심장이 꿰뚫린 사내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린다.

“끄으으윽!”

“으으응, 비명이 매력적인데……? 더 들려줄래?”

에르나의 꼬리에 연기가 나기 시작하며 사내의 심부가 자글자글 끓는다.

“끄아아아아아아!!!”

“아아아……. 짜릿해……! 역시 인간의 비명이 최고라니까?”

촤아악-! 에르나가 꼬리를 싹 뽑아내자 피가 울컥 쏟아진다. 그가 힘없이 무릎을 꿇는다.

“자, 이제 자기 마음대로 해. 난 아까 뚫려버린 가슴이 너무 아파서 치유 좀 해야겠으니까…….”

에르나는 미실트 옆에 다가가서 자리를 잡는다.

“왕녀님? 이 에르나 가슴이 너무 아픈데 살살 문질러 줄래요?”

“응…….”

“엇? 아아앗!!”

미실트가 에르나의 가슴에 손을 얹자 빛이 폭발하며 에르나의 신형이 튕겨 나간다.

“으, 아프잖아! 투레스탄 이 저질 노인네가……. 나를 방해하다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마무리할 건 해야지.

사내에게 다가가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만연한다.

“흐흐……. 드디어 저는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건가요? 이렇게 허망하게 달성할 줄은 몰랐지만……. 속은 후련하군요.”

갑판 밑에서 그와 나눴던 이야기. 그것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럼 어서 끝내주십시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그러나 손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NPC일 뿐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야…….

“제 말을 너무 담아두진 마십시오. 당신은 원래 하려던 걸 하시면 됩니다. 그저 우리 세계를 지켜주시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래……. 그의 말이 맞다.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 없어. 나는 그저 하려던 걸 하면 된다. 그러면 돼.

지팡이에 힘을 실어 그의 목숨을 끊어 놓는다. 그가 쓰러진 자리 하얀색 조그만 칩이 떨어져 있다.

-‘VAC-00902011를 획득하였습니다.’

칩을 손에 쥔 채 여전히 맹렬한 사투가 치러지는 전장을 바라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무르익는 싸움의 열기를 느끼며 마음을 다잡는다.

* * *

현식은 빠르게 좁혀져 가는 전세 현황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압도적인 전력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백병전에서 빠르게 좁혀지는 전황을 보니 답답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석환아! 데미에서 해준다는 지원은 어떻게 됐어?”

“오고 있대요!

“뭐? 아직도 오고 있어? 이 개새끼들이 진짜! 날 엿먹이려고!”

현식은 뒤늦은 지원에 욕을 바가지로 쏟아냈다. 워낙 큰 싸움이기에 큰 길드에 미리 지원요청을 해놓았지만, 이전부터 워낙 기 싸움이 잦았던 길드들이라 일부러 지원을 늦춰서 주는 것 같았다.

“지원을 이따위로 해놓고 기여도는 빨아먹겠다는 거지?”

데미길드의 길드장에게 귓속말을 걸면서도 현식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큰소리로 쏘아붙였다.

“야! 너 지금 장난하냐?! 만약 이 싸움 졌담 봐. 다음에 니네 길드 타깃 갈 테니까! 표적 되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해!”

-‘아니, 가고 있다니까 왜 이렇게 성깔을 부려? 누구 생각해서 일부러 최신 기종으로 뽑아서 가고 있구만……. 조금만 기다려 봐. 적 팀 다 쓸어줄 테니까.’

비록 지원이 늦어서 화는 났지만, 현식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데미길드의 공중전은 여러 길드 사이에서도 이미 정평이 나 있었기에 그들이 온다면 전세를 굳힐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노예사기단의 숨겨진 전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

“메, 멜티어 함대!”

미실트의 고국에서 날아온 멜티어 함대가 그 위용을 뽐내며 전력을 대폭으로 끌어올린다. 지난번에는 4대뿐이었지만 오늘은 무려 12대 거대 우올로가 전장을 압도하며 등장한다.

데미길드인지 뭔지 적들의 새로운 지원군은 멜티어 함대의 등장에 힘도 못 쓰고 처참히 땅 아래로 침몰해간다.

“어떻게 벌써 왔지……?”

대륙 간 거리는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분명 한 시간 전 에르나의 입에서 멜티어 함대를 끌어올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처음 나왔는데, 어느새 도착해서 전장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만 해도 왕복에 2달이 걸렸는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내 옆으로 에르나가 팔짱을 껴오며 자그맣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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