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드전 --> “이리와……!”
“아하응!! 으읏!”
체르엘의 팔을 잡아당겨 앉은 자세로 바짝 붙는다. 땀으로 젖어 든 금발이 그녀의 모습을 더욱 매혹적으로 느끼게 한다.
찌걱-! 찌걱-! 찌걱-! 찌걱-!
“흐아앙-! 으아읏! 흐윽! 크흣! 날 정녕! 미치게 할! 흐윽! 하악-! 꺄앗! 앗! 앗! 핫! 끄하앙!”
황소처럼 허리를 흔드니, 말하다 말고 고개를 떨군 채 농염한 신음을 툭툭 던진다. 내 목을 휘감은 왕녀의 팔에 힘이 들어가 있다.
“이까짓……! 굴복하지 않아……! 쯉! 흐읍!”
볼을 꽉 붙잡고 내게 키스를 해온다. 굴복하지 않는다면서 행동은 이미 쾌락에 굴복한 모습이다. 그냥 단골 멘트인가?
체르엘은 곧 절정을 맞고 재차 몸을 늘어뜨린다.
“끄흐아아아아앙! 흐아아앙……! 안 된다아……! 아아아앗!”
나도 슬슬 간다.
체르엘의 양팔을 잡고 허리 뒤로 감은 뒤, 몸을 꽉 껴안는다. 열중쉬어 자세로 몸을 결박당한 체르엘은 비바람처럼 휘모는 쾌락에 더욱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아앗! 푸, 풀어라! 흐아앙! 꺄아앗! 진정 죽을지도 모른다앗! 아아앗! 꺄아앗! 흐아아아아아아아-!”
물대포처럼 터져 나오는 사정액에 그녀는 전쟁터에서 장렬히 전사한 병사의 모습으로 몸을 늘어뜨린다.
“흐으윽……. 흐윽…….”
잡고 있던 팔을 풀어주자 침대 위에 풀썩 쓰러지며 게슴츠레 허공을 응시한다.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조르륵-
그녀는 화장실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침대에 그대로 누워 실례를 범하고 있다.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할 왕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못 본 척해주자.
*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약혼자가 아니라는 거지?
“내가 그대 말고 다른 사내를 만날 수 있을 리 없지 않느냐…….”
그녀는 더 이상 거짓말하고 싶지 않은지 순순히 사실을 털어놓는다. 마주 보고 있으니 그녀가 미소 짓는다.
“그대를 다시 보게 되어 기쁘구나. 그대와 떨어져 있는 동안은 하루하루가 거짓 같아서 너무도 괴로웠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주 보고 있으니. 너무나 행복해서 이 또한 거짓 같구나.”
이상한 망상증을 가진 것만 제외한다면 순정파로써 굉장한 매력을 지닌 여인. 그것이 체르엘이다.
“아까 했던 얘기. 내가 들어줄 수 있다. 물론 성내 가신들과 이야기는 해봐야겠지만. 제테니어의 행보는 우리에게도 충분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다들 협조해주리라 생각한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다오.”
“부탁……?”
그녀는 우물쭈물 입술을 들썩거리더니, 진중한 모습으로 고백하듯 말한다.
“나를 그대의 아내로 맞이해다오.”
“뭐……?”
순간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여기서 아내가 생긴다면 앞으로 내 앞날 설계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곤란한 내 마음을 알아챈 건지 결정 내릴 여유를 주려는 듯 말을 덧붙인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좋다. 언젠가……. 그대의 첩이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아내로 맞이할 거라는 약속만 해준다면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들어주마.”
왕과 왕비가 속상해할지도 모를 발언을 이렇게 말해도 괜찮은 건가? 뭐… 별일 있겠어……?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뭐, 당장은 어려울지 몰"라도 언젠가는 당신을 아내로 맞이할게.”
“저, 정말인가?”
그녀의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아무래도 한번 거절 받은 처지라 이번에도 큰 기대는 없었던 듯하다. 아내로 맞겠다는 대답에 저렇게 행복해하다니…….
“그럼 첫째 아들 이름은 그대가 정하도록 하여라. 둘째 딸은 내가 정할 테니……!”
결혼식 얘기도 안 나왔는데 벌써 자식 이름부터 정하라니 얼마나 앞서가는 거야? 심지어 성별도 정해졌어……?
“우리 자녀는 분명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모를 자랑할 것 같구나.”
체르엘은 황당해하는 나를 두고 벌써 셋째 아이의 이름을 짓고 있었다.
*
부아아앙-! 지평선을 가득 메운 150여 척의 우올로가 이곳을 향해 다가온다. 무려 미실트의 고국에서 지원해준 우올로다. 멜티어 함대를 빌려줬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게 어디냐?
그 나라도 전쟁 복구비로 큰 비용을 소모했을 텐데, 저 정도 우올로를 지원하는 걸 보면 확실히 자금은 넘쳐나는 모양이다.
몇 주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식의 지원을 받아온 덕에 길드 전투력 수치는 어느새 8만을 넘겼다. 그 덕분에 한 달 내 빠르게 성장 중인 전쟁 길드 10위권 안에 나의 자랑스러운 노예사기단 이름이 올랐다.
전투력 상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역시나 미실트와 체르엘에게 받은 지원이었다. 역시 왕녀들의 힘이란…….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판단하며 길드 회관으로 들어선다. 이미 입구부터 때 빼고 광낸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들은 전부 우리 길드의 명성을 듣고 동맹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다.
“음……. 스펙은 괜찮네요. 일단 알겠습니다. 조만간 정리해서 결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방에 들어서니, 드웍프가 면접관 차림으로 사람들을 시험하고 있다. 면접자를 내보내고 내가 들어온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는지 밝은 모습으로 인사한다.
“형님 쉬고 오셨습니까?
“제법 그럴싸한데? 자세가 좀 나온다 너?”
“전 오히려 이런 쪽도 취향에 맞는 것 같습니다. 근데 바빠도 너무 바쁘네요. 이번 전쟁의 파급력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동맹 신청자들 덕에 밤낮없이 면접자를 받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 얻게 될 이점이 이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게 아닌가 싶다.
현재 승리 시 얻게 될 예상 수익이 개인당 8천만 셀. 현금으로 환산하면 80만 원이 조금 넘는다. 거기다 길드 전 특성상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어느 팀이 이길 건지 정해서 돈을 걸 수 있다.
전쟁에서 한쪽 팀이 지게 되면, 패배한 팀에 걸린 돈은 승리 팀에게 일부 배당된다. 이 때문에 승리 시 얻게 될 수익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는 것이다.
이러니 탐이 날 수밖에…….
“이제 너도 들어가서 쉬어라. 여기부턴 내가 할게.”
“예. 알겠습니다. 전 들어가서 면접자 좀 추리고 있을게요.
드웍프를 쉬게 하고 면접을 이어받는다. 그럼 힘내서 다시 면접을 시작해볼까?
*
한 사내가 제테니어 길드의 마스터 현식을 찾으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현식이 형! 노예사기단이라는 길드가 우리한테 전쟁 선포한 거 알아요?”
“알지.”
같은 길드 동생의 물음에 현식은 바쁘게 자료를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길드회관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전쟁이 선포되기 전부터 누군가 자신들을 공격해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벤지길드의 그란테. 그가 미리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현식은 길드 창을 열어 노예사기단의 스펙을 살폈다. 생성된 지 이제 고작 한 달 남짓. 그런데도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어떤 적들을 상대하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머릿속에 조금도 담아두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겨야 해.’
현식은 이번 전투에서 사용하기 위해 지금껏 모아둔 돈을 털어 값비싼 장비까지 맞춰 놓았다.
누가 본다면 게임에 하나에 목숨 거냐 하겠지만, 현식에겐 단순 게임으로 치부하기에 실제 목숨이 오락가락할 협박을 받아왔다.
만에 하나 이번 전투에서 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란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건 불 보듯 뻔했다.
예상 전쟁 날짜는 1주 후. 그 안에 현식은 모든 전쟁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있었다.
*
후우……. 끝없이 몰려드는 동맹 신청자에 이제 슬슬 지친다. 처음엔 한 명씩 보던 면접도 이젠 5명을 동시에 보고 있다. 이젠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이 괜찮은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 사람은……. 장비도 좋고, 제법 강하게 생겼어. 하지만……
“탈락입니다.”
“예? 제가 왜요?”
“당신에겐 큰 결함이 있어요.”
“결함이요? 그게 뭔데요?”
“그 결함을 모르는 게 당신의 결함입니다! 나가세요!
“뭔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나가. 쫓아내!”
저런 사람들의 스펙은 볼 필요도 없다.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기분 나쁘게 생겼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트롤짓 할 것처럼 생겼다. 외모로 사람 따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이건 캐릭터다.
충분히 사람처럼 만들 수 있는 걸 가지고 트롤처럼 만든다는 것은 캐릭터에 애정이 없다는 거다! 내 길드이고 내 논리이기 때문에 반박은 듣지 않겠다.
다음 그 옆에 앉은 사람은…….
“아……. 스펙은 조금 부족하시네요. 괜찮습니다. 이정도야 뭐 누구나 부족 한 건 있으니까요. 그래도 서포트 쪽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쁘다.
“합격.”
“정말요?! 이렇게 쉽게요?”
어쩜 이쁜 데다 목소리도 귀엽네……. 캐릭터를 아주 애정 있게 키운 모양이야. 만족스러워.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하하,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요.”
그녀가 나가자 옆에 앉아있는 하연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오빠……. 적당히 좀 하지……?”
더 했다간 쏘아보는 시선에 피부가 뚫릴 것 같기에 자중하기로 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면접자를 끝으로 모든 동맹을 구했다. 얼추 추려낸 동맹 길드만 해도 80여 곳이 넘는다. 대부분이 소규모지만, 그래도 전력 상승엔 충분히 도움이 됐다.
전투력 15만. 아직 전투력이 20만인 제테니어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러나 제테니어는 인원이 많아서 그럴 뿐 인원대비 전투력은 우리 쪽도 만만치 않다.
이길 수 있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
제테니어로 진격하는 길의 하리다메스 상공.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인원이 무리 지어 이동하는 새떼처럼 하늘을 수놓는다.
이곳에 모인 인원만 추산 5천 명 가까이 된다. 처음에 예상 인원을 수치상으로만 살폈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눈에 담으니 엄청난 일을 벌였다는 게 새삼 실감 난다.
참가인원이 많은 만큼, 이 싸움에 걸린 금액도 엄청나다. 승리 시 1인분의 기여를 한 사람이 받게 될 금액은 3억 2천만 셀. 최후까지 생존하면서 잘 싸울 경우 배당금은 더 불어난다. 이 정도 금액이 걸린 길드 전은 처음이라고 한다.
아마 우리가 질 거라고 여긴 관중들이 제테니어쪽에 돈을 많이 걸어서 그런듯하다.
그 덕분에 반드시 이기겠다는 동맹 길드의 투지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제 전쟁 시작까지 3분 남짓.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우올로는 조금씩 자리를 이동하며 괜찮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이제 곧 시작인가…….”
평소와는 다른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조금의 상쾌함도 느낄 수 없다. 숨 막힐 정도로 먹먹한 긴장감이 사방을 에워싼다.
저마다 긴장한 얼굴의 유저와 NPC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느껴지는 공포는 실제에 버금갈 정도로 사실적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려는 유저는 보이지 않는다.
승리 목표는 저들을 모두 무찌르고 제테니어 공국까지 진격해 그들의 성을 함락시키는 것.
“뭘! 이거 받아.”
페로렌이 다가와서 아이셀을 건넨다. 지금껏 그녀가 열심히 조율해준 아이셀. 그러나 특별히 변화된 점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셀]
요구 레벨 제한 1 *아이셀 착용 시 레벨업 할 수 없습니다.
희소성: 신화
〈소질〉
-여신의 방패-
더 이상 잠재로 건강이 증가하지 않는 대신에, 피해 종류에 상관없이 사용자의 잠재 능력 40배에 해당하는 수치만큼의 피해를 전부 흡수합니다. 해당 능력은 방어 무시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여신의 거울-
여신의 방패로 3회 누적한 피해를 방출할 수 있습니다.
-여신의 자비-
여신의 거울이 피해를 방출할 때 누적한 속성을 강화해서 발동시킵니다.
-여신 해방-
모든 힘을 소모하여 여신의 힘을 해방합니다.
여신 해방? 이건 뭐지? 새로운 효과가 생겼으나, 도저히 무슨 기술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슬쩍 사용해봐도 사용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다는 시스템 메시지만 반복될 뿐이다.
천천히 알아가는 수밖에 없나……?
“고마워.”
페로렌에게 전달받은 아이셀을 풀어지지 않게 손에 감는다.
“저기 뭘……!”
“응?”
“저……. 이번 싸움 끝나면…….”
말끝을 흐리는 페로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으응, 아니야. 아무것도…….”
‘나중에……. 나중에 말하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서 기분을 읽어봐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기분만 읽힌다. 일단은 곧 시작될 전투에 집중하자.
이제 곧 시작 전쟁의 서막이 시작될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