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스터 테이밍 --> -‘진성각인의 효과로 ‘드웍프’를 불러옵니다.’
“구세주 드웍프! 멋지게 등……. 꺄아아악! 엄마야! 저게 뭐야?!!”
조금 전까지 현자 같은 컨셉을 유지하던 드웍프는 타이탄의 크기에 놀라 본래 모습을 단번에 되찾았다. 네가 그럼 그렇지…….
“야! 쫄지 말고 빨리 공격해!”
“아니 형님! 안 쫄 게 생겼어요?! 제가 저런 걸 어떻게 잡아요?!”
“그럼 내가 개미만 한 거 상대하느라 너 불렀겠냐?! 균열인가 뭔가 낼 수 있다며! 타격 입힐 만한 거 뭐든 해봐!”
“아니! 정도가 있지 형님! 사람이 진짜 생각이 없어? 왜 그래 진짜?!”
“너 그게 형한테 할 소리야?!”
불필요한 다툼을 절묘하게 끊어주며, 에르나의 외침이 들려온다.
“다들 꽉 잡으십시오!”
“으아앗!”
곧 거대한 타이탄의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들이닥친다. 에르나는 순간적으로 볼테이온의 갈기를 잡고 당긴다. 그러자 가까스로 방향을 틀며 타이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이스 에르나!”
후우우웅-!! 타이탄의 손길이 휩쓴 자리는 단지 근처에만 있어도 태풍이 부는 것 같다.
“민성아! 저기 가슴 쪽 깨진 거 보이지? 거기 구멍 좀 더 넓혀줘! 할 수 있지?”
“아, 하, 한 번 해볼게요!”
말을 더듬으면서도 이번만큼은 겁쟁이처럼 피하지 않는다. 벨라프가 가르친 정신교육 덕에 시작도 전에 두려워하는 모습은 많이 사라진 듯하다.
“후우……!”
“민성아! 내가 먼저 틈을 만들 테니까, 그때 네가 뛰어서 공격해! 딱 한방만 뒤흔들자!”
비르미스의 망치. 사용자의 레벨과 능력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 신화급 무기, 몬스터를 대상으로 사용할 시 방어력과 보호 마법을 무시하고 부위를 단번에 파괴할 수 있는 히든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레이드에 빼놓을 수 없는 최강의 무기!
라고는 했지만 사실 그게 전부라서 무기 용도보단 대장장이가 장비를 만들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단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그럼 가보자!
“슬로이! 타이탄의 발밑에 납작하게 퍼져!”
명에 따라 슬로이는 바닥에 테니스 코트만큼 널찍한 웅덩이를 만든다. 그다음은 아이즈 차례!
“아이즈! 다음 준비해!
“아이! 아이!
타이탄이 주변에서 성가시게 날아다니는 우리를 잡기 위해 발을 뗀다.
“지금이야! 얼려!”
아이즈는 바닥에 잔뜩 깔린 슬로이를 급속도로 냉각시킨다. 슬로이는 고통을 못 느끼는 생물이라 저렇게 얼려도 금방 살아난다.
타이탄이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꽁꽁 얼어붙은 슬로이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몸을 휘청거린다. 그러나 거대한 체구와 달리 뛰어난 균형감 때문에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형님! 지금 갈까요?!”
“아니! 아직……!”
아직 뛰어들기엔 너무 위험해. 그냥 공격했다간 핵을 보호하려는 저놈의 행동에 몸이 분해되고 말 거야.
“제발 넘어져라!”
“묶어라!”
그때 에르나가 마법을 영창하더니 거대한 사슬을 타이탄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나서는…….
“죄어들어라!”
명령과 동시에 땅으로 당기는 시늉을 하자 사슬이 바닥을 향해 팽팽히 당겨진다. 거대한 타이탄의 몸집이 사슬에 힘을 받고 뒤로 기울기 시작한다. 타이탄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양팔을 등 쪽으로 꺾어 바닥을 지지한다.
그 순간 타이탄의 가슴의 무방비 하게 열렸다.
“드웍프 지금이야!”
“예! 갑니다!”
드웍프는 넘어지지 않게 애쓰는 타이탄을 향해 힘차게 뛰어내린다.
믿는다. 송민성! 하루 한 번 사용 가능한 기술이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사실상 오늘 잡는 건 거의 포기해야 한다. 10시간의 사투가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부디 성공하기 바랄 뿐이다!
“망치-!! 나가신다!!!”
파각-! 드웍프의 망치가 환한 빛을 띠며 타이탄의 가슴에 세차게 때려 박힌다.
파아아아아-!
환한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더니 타이탄의 가슴에 작은 균열이 수백 수천 갈래로 뻗어 나간다. 짜작짜작-! 균열이 더더욱 커지면서 타이탄이 드웍프의 존재를 눈치채고 손을 뻗는다.
그러나 곧 균열이 쪼개지며 타이탄의 돌 파편이 팝콘처럼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
파아아아앙-!
“크으윽-!”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력한 빛이 터져 나오고, 거대한 돌파편이 후두둑 떨어진다. 살며시 눈을 뜨자 타이탄의 핵은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됐다!
“형님! 성공했습……!”
콰앙-! 드웍프는 임무를 완수한 채 타이탄의 손아귀에 삼켜져 장렬하게 전사했다. 성공과 동시에 죽음이라니 이렇게 미안할 수가…….
그래도 너의 희생을 헛되이 하진 않으마.
볼테이온을 타고 타이탄의 드러난 핵을 향해 급강하한다. 드웍프가 만들어준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서 끝장내주마 타이탄!
“후읍!!!”
정면에서 타이탄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뻗쳐온다. 피하지 않겠다! 덤벼라! 타이탄의 손길이 볼테이온을 움켜쥐는 그 순간! 볼테이온의 등을 박차고 몸을 날린다. 그리고 즉시 추진력 장치를 사용한다.
엄청난 속도다. 하지만 견뎌내야 한다. 최대한의 이동속도를 유지한 채 몸을 웅크리며, 타이탄의 손가락 사이로 간신히 빠져나간다.
성공했다!
후웅-! 이대로 떨어지면 핵으로 직행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이탄 손에 가로막힌 볼테이온은 저대로 놔두면 필시 죽고 만다.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 몸을 돌려 타이탄의 손아귀에 잡힌 볼테이온을 주시한다.
타이탄이 손을 쥐는 타이밍에 맞춰서……!
-‘진성각인의 효과로 ‘볼테이온’를 불러옵니다.’
“끼이이이이악-!
볼테이온이 근처에서 나타나고 타이탄의 손이 허공을 움켜쥐는 걸 확인했다. 이제 안심하고 핵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볼테이온의 도움을 받아 타이탄 가슴에 난 구멍으로 안착했다. 거대한 몸집답게 핵조차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혼자 천 년 정도 쓸 화장지를 뭉쳐 놓으면 이 정도 크기는 되지 않을까 싶다.
자! 그럼 핵까지 들어왔으니 천천히 요리를 해보실까? 이제 내 차례야.
*
그렇게 말한 뒤로 일주일이 흘렀다. 이놈의 핵 하나를 부수는데 그만한 시간이 걸릴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지…….
타이탄에게 각인을 걸기 전에 먼저 치명상을 입혀 약화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유일한 약점인 핵의 보호막은 외벽 강도의 수십, 어쩌면 수백 배는 더 단단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일주일 내내 이놈의 가슴 안에서 살다시피 했다.
타이탄의 돌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아침 이슬을 받아마시고 볼테이온이 물어다 주는 짐승의 고기를 날 것 채로 뜯어먹으며 갓 태어난 아기 새처럼 살았다.
거기다 가끔씩 터져 나오는 타이탄 핵의 방어기제는 안 그래도 악몽 같은 이 생활을 더욱 끔찍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인간이란 자고로 불굴의 집념 아래 원하는 걸 이루어내야 진정한 행복을 맛보는 법.
로빈슨 크루소와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며, 지팡이 하나로 핵만 쳐대기를 무려 7일 하고도 6시간째.
파각-! 드디어 핵의 균열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규……. 균열……! 시, 심 봤다-!!!”
가 아니라 규, 균열 봤다……!
균열에 힘차게 지팡이를 내려찍으니 송민성을 향한 욕설이 절로 나온다.
“크흑, 송민성 이 자식! 좀 도와주면 덧나나!”
와서 비르미스로 한방만 때려줬으면 진작 끝났을 걸 가지고 한번 죽었다고 소환까지 거부해? 나쁜 자식 같으니…….
파삭-! 파삭-! 반쯤 망가진 지팡이로도 설탕 공예품처럼 부서져 나가는 핵을 보니 속이 다 후련하다. 그동안 먹을 걸 지원해준 볼테이온, 멀리서 나를 응원해준 에르나, 같이 죽기 살기로 핵을 공격해준 아이즈와 슬로이까지.
이 영광을 모두 그대들에게 돌리며 최후의 공격을 날린다!
챙-! 핵의 보호막이 부서지고 진정한 타이탄의 근원이 드러난다.
구구구구구궁-! 핵 위로 손을 가져다 대니, 타이탄도 위기를 느꼈는지 몸을 막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넌 끝났어! 이 자식아!!”
근원을 거침없이 움켜쥐고 각인을 발동한다.
-‘타이탄이 당신에게 압도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퀘스트 완료! - 불멸의 거인 타이탄!][난이도: 불가사의]
불멸의 거인 타이탄을 무찔렀습니다. 당신의 영웅담은 후세까지 전해질 것입니다.
-‘잠재가 30 증가하였습니다.’(현재 잠재 246)
-‘경험치가 3510% 상승하였습니다.’(현재 97레벨업 가능)’
-‘히든 기술 ‘타이탄의 분노’를 깨달았습니다. (타이탄에게 입힌‘단일 피해량 80% 돌파’로 인해)
“아아아아!!! 꺴다!!!”
[타이탄의 분노]
히든 기술. 발동 시 3분간 대상의 물리 방어를 무시합니다. 대상 타격 시 타격 횟수마다 대상이 받는 피해가 시전자의 최종 힘 능력치만큼 더해집니다. (시전 시 재사용 대기시간 1일)
뭐지 이 엄청나게 사기적인 기술은?
최종 힘만큼 피해가 증가한다는 거면 잠재로 늘어난 힘까지 적용된다는 말이겠지? 그러면 보자……. 내 잠재가 246이니까 원래 있던 힘 더해서 때릴 때마다 피해량이 247씩 증가한다는 거야……?
거기다 무기효과로 인해 한 번 때릴 때 2번씩 타격이 들어가니까 피해량 증가 수치는 총 494.
한 번 타격할 때마다 494씩 방어 무시 피해량이 추가로 오른다고……?!
오 나의 신이시여……. 비록 3분 사용에 재사용 시간 1일이지만, 전세를 뒤집을 만한 엄청난 기술이다. 만약 두 번씩 때리는 무기효과가 적용 안 된다고 해도 충분히 좋은 기술이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거기다가!
“타이탄! 나를 받들어라!”
타이탄이 내 것이 되었다는 사실! 근데…….
“야! 타이탄! 인마!!”
얘는 왜 말을 안들…….
“으앗?!”
뒤늦게 나를 조심스레 양손으로 받쳐 올린다. 몸집이 워낙 커서 명령 전달이 느린가 보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았으나 다행히 그건 아닌가 보구나.
후우……. 이 거대한 녀석이 정말 내 것이 되다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타이탄의 머리 꼭대기에서 어느덧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니 이놈을 잡기 위해 했던 그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
도시로 돌아가는 길에 에르나를 다시 만났다. 내가 타이탄을 잡는 일주일 사이 왕비의 병세도 확인하고 돈도 벌고 있었나 보다.
밀레민꽃만으로 왕비의 병이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최근 왕비의 상태 호전은 듯하여 기분이 좋아 보인다.
“정말……. 잡으신 겁니까?!”
내 뒤에 거대 로봇처럼 굳건히 서 있는 타이탄을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자랑하려고 데리고 왔지만, 이 이상 타이탄을 끌고 갔다간 왕국의 병사들뿐만 아니라 많은 유저들의 이목을 끌기에 십상이다.
“어때요? 한다면 한다니까요? 저 멋지지 않습니까?”
“네! 정말 멋지십니다!”
에르나는 타이탄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더니 나를 향한 존경의 시선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보낸다. 사실 타이탄을 처음 잡자고 했을 때 그녀는 극구 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힘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무기물인 만큼 엄청 강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무진장 강했고 말이다.
그나마 볼테이온 덕분에 잘 피해 다녀서 그렇지 만약 볼테이온이 없었으면 타이탄 잡는 건 일주일 전에 포기했을 거다.
어쨌거나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타이탄 잡기에 성공했으니, 에르나가 저런 눈빛을 보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콧대가 높아지는군.
“에르나, 내가 아무리 멋있어도 너무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
“아,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더운데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여기 물 드십시오.”
“아 고마워요.”
그녀가 물주머니를 건넨다. 역시 힘든 싸움 끝에 마시는 물이 최고지.
‘물 마시는 모습도 정말 늠름하고 멋지셔. 아……. 또 가슴이 두근거려.’
물 한잔 받아마셨을 뿐인데 왜 또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