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27화 (126/147)

<-- 몬스터 테이밍 -->                               샤울로드에서부터 대륙 건너 아르멜데인 왕국으로 향하는 우올로. 공주님 방처럼 예쁘게 꾸며 놓은 방 한편에서 아이셀을 든 채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는 한 여인이 있었다.

“어?! 보인다! 테레이스 네가 보여준 거랑 똑같아!”

“응, 그게. 나를 지켜줘.”

‘이게 아이셀의 본질……?’

페로렌은 확대경을 통해 아이셀의 본질 찾기에 열중했다. 아이셀은 무수히 많은 세월을 거쳐왔고 그에 따른 다양한 힘이 숨어 있었다. 그중에 아이셀이 핵심이 되는 본질 자체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같았다.

그러나 테레이스의 도움으로 본질의 형태를 알아내고, 필요 없는 것들을 걸러내자 아이셀의 본질이 정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것만 원하는 위치로 조율해 넣을 수만 있다면 그토록 원하던 아이셀의 최종 진화를 볼 수 있을 터였다.

페로렌은 세공 도구를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아이셀의 본질을 건드렸다.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처럼 안 되네…….’

아이셀의 본질은 미약한 황금빛을 띠며, 언뜻 보기엔 삼지창의 모양처럼 생겼다. 작은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것이 조율을 어렵게 했다.

페로렌도 액세서리를 이 정도까지 조율해 본 적은 없기에, 막상 본질을 찾긴 했어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본질을 둘러싸고 있어서 조율이 안 돼.”

“언니. 그거 그런 물건으로 못 해. 보호 마법이 걸려있어서 그 본질에 직접 충격을 줄만 한 물건을 사용해서 마법을 깨야 해.”

‘본질에 충격을 주라고……? 그치만 아이셀은 충격을 흡수하잖아……? 결국 일반적인 걸로는 못한다는 거네…….’

아이셀의 본질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고 나니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앞을 가로막았다.

페로렌은 한 걸음 나아간 데에 만족하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갑판으로 나왔다.

“나를 낳아준 분을 엄마, 아빠라고 해요.”

“엄마……. 아빠……. 응. 셀리안은 엄마, 아빠 좋아해……?”

“그럼요. 제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분들인걸요? 엄마는 지금 만날 수 없지만 누구보다 절 아껴주고 사랑해주셨던 분이셨어요.”

셀리안이 미실트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기존에 미실트를 가르치던 일레이나는 몇 주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뭘과 함께 얼마간 안 보이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나마 뭘은 다행스럽게 연락이 닿았지만, 일레이나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다만 그들이 모르는 일레이나의 사연은, 최근 복학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에 접속이 뜸한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를 알 도리 없는 페로렌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오늘은 그럼, 여기까지 할까요?”

“응.”

“머핀 구워드릴게요. 미실트 씨”

“응, 셀리안 머핀… 맛있어.”

“저도 미실트씨가 맛있게 먹어주셔서 좋아요. 어? 아가씨……!

부엌으로 들어가던 셀리안은 먼발치에 서서 지켜보던 페로렌을 발견했다.

“조율한다는 건 다 끝나셨어요?”

“아니, 그냥 또 막혀서 머리 좀 식히려고.”

“제가 머핀 구울 테니까 아가씨도 잠깐 앉아 계세요.”

“응, 고마워.”

페로렌은 미실트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순간.

쿠웅-! 선체가 뒤집힐 듯 요동치더니 일어나 있던 페로렌과 셀리안이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으……. 뭐야?”

고개를 돌려보니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많은 수십 대의 우올로 함대가 자신들을 앞질러가고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의도적으로 공격한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행태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미 그들로 인해 우올로의 외벽 일부는 미약한 손상을 받았다.

“제테니어……? 저건 뭐 하는 집단이야?”

그들이 달고 있는 깃발엔 ‘제테니어’라고 쓰여있었다.

“꼭 전쟁이라도 치를 기세네요.”

어마어마한 수의 함대. 대륙은 횡단하는 상선이야 눈을 돌리면 보이는 거라지만, 그들을 상선이라고 치부하기엔 무장 수준이 막강해 보였다. 셀리안의 말대로 마치 전쟁을 나서는 함대라고 봐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들은 현재 페로렌 일행이 향하는 아르멜데인 왕국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해 나갔다.

* * *

이러한 움직임은 아르멜데인 왕국에서도 벌써 눈치채고 있었다.

아르멜데인 왕국의 국왕 게르멜 앞에 긴급 전언이 도착했다.

“전하! 제테니어 길드에서 우리 아르멜데인 왕국에 선전 포고를 해왔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이 시국에 전쟁이라니요!”

“큰일이군요…….”

전언을 들은 가신들과 아르멜데인 국왕의 얼굴엔 근심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짐작은 하고 있던 듯, 국왕은 예상보다 담담한 모습이었다.

“진정들 하시게. 흥분한다고 풀릴 일은 아닐세.”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데, 어찌 진정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명의 가신이 국왕 게르멜에게 따지듯 쏘아붙였다.

“왕이시여! 이건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니었습니까? 왕께서 무력행사만 제때 하셨어도 이렇게까지 일이 번지진 않았을 겁니다!”

“그게 전하께 무슨 무례 되는 말씀입니까!”

“무례가 아니라 올바른 말입니다! 그대들은 무조건 왕의 편만 들고 선다면 그것이 참된 가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결코 아니지요! 쓴소리 조금 했다고 그것이 무례로만 보이면 당신들은 왕의 가신으로서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다들 말씀해보십시오! 제 말이 틀렸는지!”

입을 다물고 있는 가신들의 말에 게르멜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아니, 틀린말이 아닐세. 내 잘못이 맞네.”

땅속에 엄청난 금광맥을 보유하고 있는 아르멜데인 왕국은 예로부터 많은 적국의 타깃이 되었다. 그러나 호전적이지 못한 국왕의 성격상 막아내기만 할 뿐. 상대를 역습하자는 가신들의 의견은 모조리 묵살해왔다.

이 때문에 쿠데타가 일고 정권을 뒤바꾸려는 움직임이 몇 차례 있었지만, 오랜 통치를 이어온 왕실 가문의 막강한 힘 덕분에 그러한 조직은 쉽게 와해하고 말았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이러한 국왕의 약점을 노린 주변 나라와 많은 신생 길드가 아르멜데인 왕국에 대놓고 전쟁 도발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자금력으로 병사들을 끌어모아 국지적인 도발을 잘 막아냈지만, 오래 이어온 괴롭힘 끝에 이제 징병 가능한 병사도 바닥을 보이는 상태였다.

군사력이 바닥난 아르멜데인은 몇 년 아니, 어쩌면 고작 몇 달 사이에 만들어진 제테니어라는 신생 길드조차 막기 어려울 만큼 상황이 열악해졌다.

‘이게 다 내가 자처한 일이거늘…….’

국왕은 자신의 무능함에 속으로 울었다. 도둑맞은 딸도, 파문시킨 왕비도 이제는 빼앗길지도 모르는 나라까지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게 통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언제까지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번 전쟁선포는 나라가 아닌, 단일 길드에서 걸어온 싸움이었다.

비록 그들의 무력이 막강하다고는 평가되나 이번 공격을 잘 막아 내서 아르멜데인이 건재하다는 것을 주변국에 과시하면 차후 몇 년간은 전쟁을 선포 받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나라의 국력을 강화하고 주변국들과의 사이를 더욱 돈독히 하는 데 힘쓴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평화로운 왕조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번만큼은 우리도 적들에게 강경하게 나서야 합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전하!”

왕은 근엄 있는 목소리로 전언을 알려온 가신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 당장 모든 기사단을 소집하고 멜티어 함대를 불러들여라! 그리고 현재 우리를 지원할 국가가 있는지 알아보거라!”

“예! 전하!”

* * *

“으아아악!!!”

쿠와아아앙-!!! 거대한 돌덩이가 땅을 내려치자 고막이 터져나갈 듯한 굉음이 울린다. 바닥의 진동한다. 주변의 동물들은 소리에 놀라 저 멀리 달아난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다.

-‘24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작 옆에 튄 파편에 맞고 이 정도 피해가 말이 되냐고…….

며칠간 에르나와 함께 돌아다니며 인기 없는 레이드 몹들을 찾아다녔다. 이유는 당연히 내 전력으로 삼기 위해서. 그런데, 인기 없는 레이드가 왜 인기가 없는지 알 것 같다.

주는 건 더럽게 없으면서 강하기만 더럽게 강하니 말이다. 눈앞에 서 있는 저 22m짜리 거대 타이탄도 마찬가지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도 눈동자 보기가 힘들다.

눈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있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벌써 10시간 넘게 사투 중인데도 저 타이탄이란 놈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땅바닥에 방공호로 써도 될법한 구멍을 가뿐히 뚫어 놓는다.

그냥 도망갈까……. 난 솔직히 볼테이온과 아이즈, 그리고 최근 포획한 슬로이만 있으면 무엇이든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한 번에 나가떨어지는 수준이란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나마 에르나가 저 위에 매달려 열심히 상대해주고는 있지만…….

“끄아아핫!”

이제 그마저도 거의 한계다.

“볼테이온!”

“끼이이이이악!”

22m 머리 높이에서 추락하는 에르나를 볼테이온이 날아서 잘 받았다.

이후 볼테이온은 내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나를 태우고 하늘 높이 난다.

기울어지는 볼테이온의 등위에 갈기를 잡고 서서 타이탄을 내려다본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타이탄의 약점은 역시나 심장 부근의 핵. 저 근처에 다다라서 타격을 입힌 뒤 각인을 걸면 끝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외벽이 워낙 단단해서 이제 겨우 구멍만 뚫어놨을 뿐이다. 한 사람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작은 구멍 말이다.

문제는 저 구멍이 7시간 전부터 저 상태 그대로라는 건데……. 그것 때문에 곧 뚫릴 거라는 일말의 가능성 하나 보고 포기도 못 한 채 이러고 있다.

구구구궁-! 움직임 한 번에 대지가 진동할 정도로 엄청난 녀석이다.

“슬로이! 타이탄의 움직임을 묶어!”

내 명령에 최근 잡은 슬로이는 잽싸게 기어서 타이탄의 무릎 관절 사이에 몸을 욱여넣는다. 슬로이는 슬라임 형태의 몬스터로 체내가 엄청나게 끈적거린다. 때문에 타이탄의 발을 묶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체급 차이가 워낙 크기에 사실상 별 효과는 없다.

안 되겠다. 지금은 전력을 하나라도 더 끌어모아야 해.

-‘민성아! 듣고 있냐?’

-‘인생사 공수래공수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요.’

-‘무슨 말이야? 야 비르미스의 망치 어떻게 됐어? 빛인지 뭔지 되찾았어?’

-‘비르미스는 처음부터 빛을 잃은 적 없습니다. 다만 사용하는 이의 빛을 투영시킬 뿐.’

오래간만에 연락했더니 얘가 해탈이라도 했나, 웬 현자 같은 말투로 대꾸한다.

-‘그래서 뭐 됐다는 거야 안 됐다는 거야? 나 지금 엄청 급하거든?! 타이탄이라는 놈의 몸체를 부숴야 돼! 비르미스 망치로 부술 수 있겠냐? 이거 엄청 단단한데!”

-‘이 세상에 비르미스의 망치로 가공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물질을 이루는 근본을 뒤흔들면 그 어떤 신이 가호를 내렸다 한들 비르미스가 내리는 균열을 피해갈 순 없습니다.’

대체 벨라프라는 녀석이 뭘 했길래 민성이가 며칠 사이에 이렇게 바뀐 거야……?

-‘아무튼 가능하다는 거지? 소환할 테니까! 보이는 대로 공격 좀 해 봐! 간다!’

-‘맡겨주시지요.’

자신만만한 드웍프의 말에 망설임 없이 행동을 개시한다.

“볼테이온! 높이 날아!”

수우우웅-!

명령에 따라 볼테이온이 하늘 높이 치솟는다. 타이탄이 이쪽을 향해 손을 뻗는다. 커다란 볼테이온을 한 손으로 움켜쥘 만큼 거대한 손이 바로 아래까지 쫓아온다.

지금이다.

“가라! 드웍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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