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검사 에르나 --> 맹기리온의 숲. 레벨 90제 사냥터로 레벨 제한은 낮은 편에 속하지만 몬스터 하나하나가 일반 사냥터의 레이드 몹 수준이라 만만히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이듯 곳곳에는 100렙도 넘는 유저들이 다인 구성의 파티를 이루고 있다.
촤르륵-!
에르나가 손을 뻗자 마력으로 이루어진 사슬의 형태가 사람 몸집만 한 날벌레를 포박한다.
“하아아압!”
“끼르르륵!”
꼼짝 못 하는 날벌레의 정확히 정중앙을 양단 내면서 단 한 칼에 몬스터를 경험치로 환산시켰다.
와……. 뭐야? 이 여자 엄청 강하네?
분명히 다른 유저들이 잡을 때는 한참을 때려도 안 죽던데, 에르나는 단 한 칼이라니,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싶다. 마도사들이 원래 이렇게 강한 건가?
“정말 강하시네요.”
“아까 사주신 재료를 이용해서 공격력을 증폭하는 마법을 걸어서 그렇습니다.”
“그 마법 혹시 저에게도 걸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내 정신 좀 봐……. 물론이죠. 다만 재료를 조금 만들어야 해서 자리를 조금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몬스터가 덜 나오는 장소가 나올 겁니다.”
그녀를 따라서 숲 깊은 곳으로 계속해서 들어간다. 에르나가 찾고 있는 밀레민 꽃은 이 숲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호수 밑에서 자란다고 하는데, 매번 그곳까지 도달하기 전에 무기가 파손돼서 항상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 왔다고 한다.
그래도 이번엔 연조 파우더와 물약 상점에서 구매한 갖은 재료 덕분에 수월하게 진행 중이었다.
“저기 보십시오! 호수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 징그러운 몬스터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황홀한 장관이다.
“그럼 이쪽에서 잠깐 자리를 잡고…….”
그녀는 들고 있던 봇짐을 하나씩 풀러놓더니 공격력 증폭을 위한 재료를 직접 조제하기 시작한다.
마법을 사용하는데도 재료가 드는 건 처음 알았다. 마법사들도 은근히 돈이 많이 드는 직업이구나.
에르나는 성분을 알 수 없는 가루와 고체의 나무뿌리를 잘 갈아서 나무 그릇에 담더니 그걸 잘 젓는다. 그러자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꼭 연금술사가 하는 작업과 비슷하다.
“거의 다 됐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네. 기껏해야 3분. 이제 그녀는 손을 뻗어 만들어놓은 재료에 자신의 마력을 주입한다. 그녀의 주변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더니 몸에 푸른 빛이 띤다.
“제 손을 잡으시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데 눈빛에서부터 신비로운 마력이 전해지는 것 같다.
그녀의 손을 잡으니 마치 파스를 뿌렸을 때처럼 시원한 느낌이 전신 가득 퍼져나간다.
-‘에르나가 당신에게 [그리던의 근원]을 시전합니다.’
-‘1시간 동안 치명타 확률이 10% 증가합니다.’
-‘1시간 동안 치명타 피해량이 3,000% 증가합니다.”
와, 치명타 피해량이 3,000%나 증가하니까 그것들이 한 방에 죽은 거였구나. 재료가 비싼 이유가 있었네.
“아…….”
“에르나, 괜찮아요?!”
나에게 버프를 걸어준 에르나가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오늘 하루 동안 먹은 거라곤 감자 2개가 전부인 데다, 마력이 많이 드는 버프까지 사용했으니 멀쩡히 서 있는 것도 무리가 있을 터.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사주고 오는 건데…….
“마력이 차면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호수 근처까지 왔으니 다른 몬스터는 안 나올 겁니다.”
“그래도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제가 주변을 경계할게요.”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누가 만든 건지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잘 들어맞을 때가 있다.
부글부글-!
호수 밑바닥부터 엄청난 물거품이 일더니, 사자처럼 갈기를 세운 새 한 마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공중으로 비상한다.
“끼이이이이익-!”
“보, 볼테이온?!”
에르나가 놀란 목소리로 외친다. 저게 바로 볼테이온이라는 건가? 거대한 날개에 사자 같은 갈기.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동자. 거기에 모자라 악어의 가죽 같은 걸 온몸에 두르고 있다.
척 봐도 위험 분류 대상 ‘고위험’군에 들어갈 법한 생김새에 오금이 저린다.
“야행성이라 자고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볼테이온은 5m는 될법한 날개를 팔락거리며 이쪽을 노려보는 중이다.
대체 왜 새가 물속에서 나온 거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시간도 없이 볼테이온이 우리를 향해 육중한 몸을 날린다.
“위험해!”
나는 기운을 못 차리는 에르나를 번쩍 들어 반대편 나무 뒤로 피신한다.
콰자작-! 우리 뒤편에 있던 100년은 묵었을 법한 나무가 힘도 못 쓰고 꺾여 나간다. 저런 괴물을 무슨 수로 잡아……?
“우리 일단, 도망칠까요……?”
그러나 에르나는 단호하다.
“안 됩니다! 방금 볼테이온의 입속에서 밀레민 꽃을 봤어요……. 밀레민 꽃은 많이 피지 않아요. 만약, 그게 마지막이라면 전 그 녀석을 잡아야 합니다.”
이미 삼킨 꽃을 배를 갈라서 빼내겠다는 거야……?
그 순간 퀘스트 메시지가 뜬다.
[퀘스트 발생! – 호수의 지배자 볼테이온!][난이도: 매우 어려움]
맹기리온 숲 깊은 곳 호수에는 그곳을 지배하는 볼테이온이 살고 있습니다. 볼테이온은 활동 영역이 매우 넓어 숲 근방을 지나다니는 여행자를 자주 습격한다고 합니다. 볼테이온을 쓰러뜨려 여행자들이 안전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목표〉
볼테이온을 쓰러뜨리세요. (0/1)
〈보상〉
잠재 15 획득 / 경험치 획득
아, 하필 저렇게 세 보이는 녀석한테 이런 퀘스트가 뜨다니.
몰랐는데, 이렇게 즉석에서 발생하는 퀘스트는 만렙 때까지 뜨는 횟수가 정해져 있어 바로바로 깨는 게 좋다고 한다. 취소하면 잠재를 올릴 기회만 날리는 거다.
즉석 퀘스트는 하드코어 캐릭터들에게 잘 뜨는 편이며 잠재 같은 보상도 일반 캐릭터에 비하면 높게 받는 거라고 하니, 깰 수 있을 때 깨는 게 낫겠지…….
“좋습니다. 잡읍시다.”
“네? 저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아, 뭘 님도 볼테이온을 잡기 위해 오셨던 거였죠?”
사실 너 때문에 그러는 것도 없잖아 있는데 말이다.
에르나는 마나 재생력을 높여주는 아이템을 꺼내서 먹더니 현기증이 회복됐는지 제 발로 선다. 나도 그녀를 따라 재생 물약 하나를 꺼내 마신다.
-‘체력 재생 물약을 섭취하였습니다. 생명력이 10초마다 200씩 차오릅니다. 이 효과는 1시간 동안 지속합니다.’
“뭘 님도 아시겠지만 놈의 약점은 정수리 바로 뒤쪽입니다. 그곳에 칼을 찔러 넣을 수 있으면 아마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을 거예요.”
말이 쉽지 정수리를 찌르려면 일단 올라타야 하는데, 날아다니는 놈을 올라타는 게 가능한가?
뭐든 시도부터 해야지. 우리는 볼테이온이 기다리는 호수로 다시 돌아갔다. 그놈은 호수 근처를 돌며 물에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한다.
이내 곧 우리를 발견했는지 공중에서 날개를 접고 재빠르게 하강한다.
“제가 잠시 붙잡겠습니다!”
에르나는 다가오는 볼테이온을 보면서 쫙 뻗은 손을 내밀더니 재빨리 주먹을 움켜쥔다.
“죄어들어라!”
그 순간 사슬이 마구 튀어나와 볼테이온의 몸을 구속한다. 사슬에 의해 주춤하기는 하지만 힘이 얼마나 좋은지 마력으로 만든 두꺼운 사슬이 금방이라도 끊겨 나갈 듯 팽팽해진다.
에르나는 재빨리 볼테이온 턱에 난 갈기를 잡고 단번에 등까지 튀어 오른다. 그녀의 가벼운 몸놀림에 감탄만 나올 뿐이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그녀를 따라 가속 점프 후 갈기를 꽉 잡는다. 추진력 신발이 있음에도 꽤 높아서 목 아래의 갈기를 겨우 잡았다. 그때.
“끼이이이이익-!”
볼테이온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사슬이 끊어지며 완전히 사라진다. 그 즉시 볼테이온이 공중으로 높게 날아오른다.
후우우웅-!
엄청난 속도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갈기를 놓치지 않게 단단히 부여잡으며 에르나가 있는 목 뒷부분으로 조금씩 몸을 옮긴다.
가까스로 목 뒤까지 위치를 옮기니 에르나가 혼자 고전하고 있다.
“이 녀석 성체라서 목 뒤를 보호하는 비늘이 자라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녀가 가리키는 위치를 보니 정말, 단단한 비늘이 있다. 마치 바위 같은 질감이다. 에르나의 무기는 검이라서 비늘을 쉽게 파괴할 수 없는 듯하다.
“제가 할게요! 제 무기는 둔기류라서 쪼갤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끼이이이이익-!”
볼테이온이 우리의 이야기를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갑자기 바닥으로 몸을 급강하한다. 그러더니 곧 호수를 향해 거칠게 입수한다.
“크으읏!”
“꽉 잡아요!”
풍덩-! 강하게 밀어내는 수압으로 금방이라도 손을 놓칠 것 같다. 에르나는 물에 들어온 즉시 내게 손을 뻗어 마법을 걸어주었다.
-‘에르나가 당신에게 [수중 호흡]을 걸었습니다.’
이 녀석이 계속 물속에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에르나 덕분에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
에르나는 마법을 걸면서 손에 힘이 풀렸는지 갈기를 놓치고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다행히 정신은 잃지 않아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은 볼테이온에게도 저항이 있는지 곧장 하늘로 날아오른다.
푸후우우우-!
갈기에 묻은 물이 단번에 날아갈 정도로 빠른 속도다. 나는 지팡이를 들어 놈의 비늘을 내리찍는다.
그런데 물에 젖어서 그런지 생각만큼 타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즈!”
“아이! 아이!”
“놈을 얼려!”
오랜만에 보는 아이즈의 힘을 빌려 볼테이온의 머리부터 온몸을 꽝꽝 얼려간다.
“끼이이이악-!
그러나 얼어붙는 느낌에 위기감을 느낀 볼테이온이 몸을 빠르게 회전하며 날개로 아이즈를 쳐서 날린다.
타격을 입었지만 다행히 죽진 않은 모양. 아이즈는 화가 난 얼굴로 뒤따라오고 있다.
그래도 아이즈 덕에 머리의 비늘은 얼어붙었다. 나는 지팡이를 들어 비늘을 강타한다.
파악-! 꽁꽁 언 덕분에 비늘이 쫙-! 쪼개지며 숨어있던 볼테이온의 두피가 드러난다. 이곳을 찌르면 된다.
볼테이온은 다시 급강하를 시작한다.
수우우웅-!
“으윽-!”
번지 점프를 할 때 철렁하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 물로 들어갈 생각인가? 마음대로 하게 둘 순 없지!
“아이즈! 호수를 얼려!”
“아이!”
잽싸게 호수로 날아간 아이즈는 호수의 한부분을 꽁꽁얼리기 시작한다.
“끼이이이이악-!”
갑작스럽게 얼어붙은 호수에 놀란 볼테이온이 몸을 급격하게 상승시킨다.
“죄어들어라!!”
그때 에르나의 사슬 마법이 볼테이온의 목을 묶어 강하게 끌어당기자 볼테이온은 바닥으로 거칠게 곤두박질친다. 나는 떨어지는 볼테이온 위에서 뛰어내려 안전하게 착지했다.
“에르나! 비늘을 깼어요! 찔러요!”
볼테이온은 단단한 두개골 사이에 틈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찌르려면 내 지팡이보단 에르나의 검이 더 적합할 것이다. 에르나는 쓰러져있는 볼테이온에게 빠르게 달려가더니 두개골 사이에 칼을 겨냥하고 힘차게 꽂아 넣는다.
“끼이이이악-!”
고통스러운 울부짖음과 함께 날아오르려던 볼테이온은 금방 힘을 잃었는지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하아……! 하아……. 잡았어요……!”
“정말 잡았네요! 에르나 멋있어요!”
쓰러진 볼테이온을 보니 저만한 몬스터를 멋지게 잡아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런데 뭔가 잊고 있는 느낌이 든다.
왜 퀘스트 완료가 안 뜨지……? 퀘스트 내용은 분명 볼테이온을 잡는 게 목적이다. 분명 죽은 것 같은데도 볼테이온 퀘스트가 안 뜬다는 건 뭔가 더 남은…….
설마?!
“떨어져요. 에르나!”
그 순간 죽은 척하고 있던 볼테이온이 눈을 번쩍 뜨더니 몸을 일으킨다. 나는 서둘러 에르나에게 달려간다.
“끼이이이악-!”
“끄아윽!”
그러나 한발 늦은 탓에 볼테이온의 부리는 에르나의 복부를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날아오르는 볼테이온의 갈기를 잡고 다시 몸에 올라탔다.
놈도 멀쩡한 상태는 아닌지 날갯짓을 제대로 못 한다. 이 정도 상태라면 각인이 먹일지 모른다.
-‘각인의 흔적이 ‘볼테이온’의 몸에 새겨집니다.’
볼테이온은 잔뜩 흥분해서 몸을 흔든다. 그러나 이놈을 그대로 풀어줄 순 없다. 놈의 갈라진 두개골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집요하게 몸을 붙든다.
손에 묻어나는 끔찍한 느낌에 당장이라도 손을 빼고 싶지만 조금만 참자.
“얌전히 좀! 굴어라!”
바로 그때였다. 내 각인이 새로운 수준의 능력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