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20화 (119/147)

<-- 여신의 아이 -->

“끄아아아아아아악!!!”

테트라마인의 몸덩이가 수십 개로 분열되어 각각의 덩어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흉악한 목소리의 합창은 정말 지옥의 소리라는 말 외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잠시 후 테트라마인의 먼지가 물에 씻겨나가듯 깨끗하게 사라졌다. 단 한 덩어리만 빼고 말이다.

다들 주먹만 하게 떨어진 괴상한 덩어리 앞으로 다가갔다.

“꾸우우에엑!”

덩어리는 꿈틀거리며 입 모양을 만들더니 핏덩어리를 울컥 뱉어냈다.

“이게……. 그 테트라마인인가 뭔가 그 괴물의 실체야……?”

“으……. 징그러워요.”

테트라 마인은 속에 든 것을 전부 게워냈는지, 뻐끔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인… 간……. 이여……. 너희는……. 내……. 소유…….”

콰직-!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레이스의 발이 테트라마인 덩어리를 짓뭉개 놓았다.

“테, 테레이스……?”

“싫어! 테레사 정말 싫어!!”

콰직! 콰직! 테레이스는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지 테트라마인을 호떡처럼 납작해질 때까지 짓밟았다. 아마 저 정도라면 다시 살아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후우……. 우으……. 드디어……. 벗어났어……. 언니들……. 나 그동안 너무 무섭고……. 싫었어……. 매일 누군가 나를 구해주길 기다렸어. 그래서 언니들이 왔을 때 너무 기뻤어. 너무 기뻐서…….”

페로렌은 기쁨과 슬픔에 젖어 울고 있는 테레이스를 꼭 안아주었다.

“그래서 내가 본 환영 속에서 줄곧 내 손을 놓지 않았구나……. 그래서 네가 나를 애타게 불렀던 거였어. 이곳이 너무 두려워서……. 이제 걱정하지 마. 언니들이 항상 너 지켜줄 테니까.”

“고마워……. 언니…….”

셀리안과 미실트는 그 모습을 내내 흐뭇하게 지켜봤다.

“이제 가자 너한테……. 소개해 줄 사람이 한 명 더 있어. 성격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너도 마음에 들 거야.”

“응……!

‘근데, 이 인간은 왜 소식이 없지……? 하루 한 번 말 걸기로 약속했으면서……”

페로렌은 연락이 없는 뭘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테레이스를 데리고 보육원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뒤편에서 셀리안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악!”

뒤를 돌아보니 테트라마인이 몸뚱이에서 새끼손가락 두께의 촉수를 뻗어 셀리안의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그걸 본 미실트가 재빨리 촉수를 찢어 놓고 본체를 향해 빛무리를 날렸지만, 빛무리는 어이없게 사라지고 말았다.

“미실트의 공격이… 안 먹혀……?”

덩어리는 꿈틀거리며 분해와 결합을 반복하더니 이내 풍선처럼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 아아… 이……. 모못…. 데……. 려려… 가가가가……!”

“느낌이 안 좋아……! 모두 도망쳐!”

말을 이상하게 내뱉으며 점차 부풀어가는 테트라마인을 내버려두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가는 앞길마다 촉수들이 뻗어 나와 발목을 묶으며 방해했다.

미실트가 열심히 잘라내며 가고는 있지만, 전투에 취약한 셀리안과 페로렌은 촉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윽고, 테트라마인의 덩어리가 성장을 멈췄다. 그 덩어리에 붉은 반점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이내 온몸이 빨개졌다. 그 순간 페로렌은 위험을 직감했다.

“모두 엎드려……!!!”

그리고는 테트라마인이 터져나가자 땅이 움푹 팰 정도로 강대한 폭발이 일었다. 그리고 붉은색 연기 폭풍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연기는 휩쓰는 모든 것을 녹여버렸다. 나무, 돌, 생명체 가릴 것 없이 집어삼켰다.

공포, 절망, 우울이라는 지옥의 악감정이 모여서 만들어진 핏빛 안개는 준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여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때, 테레이스가 페로렌의 손을 놓고 앞으로 나섰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달려나간 테레이스는 핏빛 안개에 그대로 삼켜졌다. 페로렌은 허탈한 얼굴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테레이스……. 왜……?”

그런데 그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핏빛 안개에 파묻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다들 어떠한 피해도 받지 않고 멀쩡히 서 있었다.

“저, 저기 봐요!”

자세히 보니 핏빛 안개는 소용돌이치기만 할 뿐 더 이상 퍼져 나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연기가 중심부로 빨려들며 사라져갔다.

“저기 봐요! 테레이스에요……! 저기 테레이스가 살아있어요……!”

영락없이 죽었겠다고 생각한 테레이스가 핏빛 안개의 중심에 굳건히 서 있었다.

“저건? 아이셀……?”

테레이스에 손에는 아이셀이 들려 있었는데, 그 중심에 블랙홀이라도 열린 것처럼 공포의 붉은 연기는 삽시간에 빨려 들어갔다.

뭘이 아이셀을 사용한 장면을 몇 번 보긴 했지만, 테레이스처럼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사용한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곧, 붉은 연기가 모두 사라지고 페로렌은 테레이스에게 다가갔다.

“방금……. 어떻게 한 거야……?”

“우리 엄마는 날 항상 지켜주니까…….”

‘엄마……? 아 참 그렇지. 이 아이는…….’

테레이스의 말을 듣고 페로렌은 자신이 본 환영을 떠올렸다.

이 아이는 분명 그레이아 여신의 딸. 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였다. 아이셀은 테레이스를 보호하기 위한 그레이아 여신의 마법으로 그녀가 아이셀을 만져도 이상이 없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페로렌은 안도와 놀라움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 페로렌을 보며 테레이스도 덩달아 같이 웃음 지었다.

셀리안은 테트라마인에 의해 움푹패인 자리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또 안 살아나겠지……?

“악마 냄새……. 없어져가…….”

그녀들은 행여 또 나타날까 봐 뒤를 계속 돌아보며, 보육원을 빠르게 벗어났다.

* * *

“으음…….”

정신을 차려보니 알싸한 소독약 냄새. 새하얀 천장의 병원이다. 팔뚝엔 바늘이 꽂혀 있고 머리엔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어떻게 된 걸까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야! 기단이 깼다.”

친구 놈들의 얼굴이 먼저 보인다.

“괜찮냐? 웬 인상……? 그렇게 아프냐?”

“아니……. 새로 태어난 기분인데, 네 얼굴이 먼저 보이니까 순간 짜증이 나서…….”

“이 새끼 농담하는 거 보니까 다 나았네.”

“이야, 강기단! 출세했네 칼도 맞고!”

칼……? 손을 들어 복부를 만져보니 붕대가 감겨 있다. 그거 꿈 아니었구나. 살다 살다 영화에서나 보던 칼침을 현실에서 맞아보게 될 줄이야. 진짜 친구 놈 말대로 출세했다.

곧 부모님과 의사가 들어와 내 상태를 진찰한다. 천만다행으로 장기까지 칼이 들어가진 않아서 상처만 아물면 지장이 없을 거란다. 그래도 마취가 풀리면 아플 거라는데 지금 당장은 뇌진탕 때문에 머리가 더 아파 죽겠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나 깨어난 걸 보신 뒤 바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친구들과 편히 있으라며 자리를 피해 주셨다. 그 와중에 하연이를 만나신 건지 너무 예쁘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가셨다. 미리 소개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나 보다.

어머니가 나가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열리고 두 여자가 들어온다.

“오라버니 괜찮으십니까?”

“어, 채린이 너도 왔었냐?”

채린이 뒤를 이어 하연이도 들어온다. 무사한 모습을 보니 이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오빠……. 괜찮아? 많이 아프지……?

“하연아……. 오빠 괜찮아. 다 나았어. 너 왜 이렇게 눈이 부었어? 울었어?”

“으응……. 아니야.”

애틋한 눈빛으로 하연이의 손을 꼭 잡으니 임채린이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잠깐잠깐……! 오라버니 너무 한 거 아니야?! 하연이랑 나랑 대하는 태도가 왜 이렇게 달라?”

“뭐가?”

“또! 또! 지금도……! 말의 온도가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닙니까?! 아이고,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오빠들……. 채린이 기단 오빠 차별 때문에 너무 슬포요…….”

“누가 우리 귀여운 채린이 울렸냐! 강기단! 이 새끼 이거……. 우리 몰래 하연이랑 꽁냥꽁냥하더니 아주! 사람들 눈에 핑크색 페인트를 뿌리고 다녀 아주! 울지 마, 채린아. 아주 그냥! 오빠가 호온내줄게!”

“웅, 웅. 채린이 안 울어요.”

얘들은 왜 이렇게 죽이 잘 맞나 몰라……? 저럴 거면 아예 사귀지 그러냐…….

“채린아, 우리 오빠 아프잖아. 이제 그만 놀려.”

“꺄! 우리 오빠래 들었어? 하연이 너 많이 늘었는데……? 근데 하연이 너도 그렇다. 내가 그동안 연애 병아리인 너한테 가르친 게 얼만데 너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둘이 합심이라도 해서 나한테 한턱내야 하는 거 아니야?”

사실 하연이 소개해준 채린이에게 그동안 보답이라고 해준 건 커피가 전부라 나중에 거하게 한턱내긴 해야겠다.

“그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긴 했다. 한번 날 잡아. 제대로 한턱낼 테니까. 근데 하연이한테 뭘 가르쳤다는 거야?”

“아, 그게 뭐냐면…….”

하연이가 채린이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는다.

“아, 안 돼! 말하지 마……! 말 안 하기로 했잖아……!”

“읍으?! 우으 우으브 으읍으.”

하연이가 당황하는 걸 보니 뭔가 있긴 한 모양이네.

“푸하! 하연이 곤란하니까 그냥, 곧 재밌는 걸 보게 될 거라고 알아두세요. 오라버니.”

재밌는 거라……. 뭘까? 하연이 반응 보니까 엄청 궁금하네.

*

3일 뒤. 열심히 회복 중인 나에게 김성열이 찾아왔다.

“몸은 좀 괜찮아요?”

“네……. 덕분에요…….

솔직 이 사람 볼 면목이 없다. 어떻게 보면 나 때문에 일이 늘어난 거니까.

“그러게 같이 들어가자니까, 왜 말을 안 들어서는…….”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일 망친 것 같아서.”

“뭐 당신 때문에 망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죠.”

보통 이런 때는 말만이라도 나를 감싸줘야 하는 거 아니냐……? 뭐, 그게 이 사람 성격이니 뭐라고 할 순 없겠지……. 실제로 내가 잘못하기도 했고.

내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가 씩하고 웃는다.

“농담이에요. 나 괜찮아요. 만약 당신이 내 말대로 했으면 내가 당신한테 더 미안해했을 거예요. 그때 안 들어갔으면 당신 여자친구 큰일 당할뻔한 건 사실이니까요.”

이해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도 제가 지금까지 노력한 게 당신 때문에 물거품이 된 건 참 아쉽긴 해요……. 앞으로 경계도 더 심해질 텐데…….”

“제가 할 말이 없네요…….”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당신 덕에 김민철이라도 잡았으니 캐내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죠.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김민철 입을 안 열면 다시 밑바닥부터 해야겠지만 말이에요. 이게 다 그쪽 탓인 거 알죠?”

뭐 미안해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하. 장난이에요. 장난. 당신 놀리는 게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니까요? 크흠, 장난은 그만하고 …사실 부탁 하나 하고자 왔습니다.”

“부탁이요?”

귀찮은 밀고 당기기 끝에 드디어 그가 찾아온 본래 목적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

김성열은 최근 게임 속 한지파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했다. 김민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텐데도 오히려 숨지 않고 성매매 시장을 키우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가 내게 부탁한 것은 이것이었다.

“그 자식이 대놓고 나를 도발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당신한테 부탁할게요. 놈들을 완전히 무너뜨려 줘요.”

“네……? 저더러 깡패랑 싸우라고요?”

칼 맞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칼 맞을 짓을 하라는 건가……?

“당신 게임 잘하잖아요? 게임 안에서라면 깡패든 뭐든 이길 수 있지 않겠어요?”

“게임 안에서요……?”

“게임안에서 놈들의 사업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열 받아서 튀어 나오게끔 해보자고요.”

“하지만……. 그러다가 저를 찾아서 해코지라도 하면…….”

한 번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더니 두려움이 생겼다. 조폭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으니 다시는 놈들과 현실에서 얽히고 싶지 않다.

나는 김민철이 내 정체를 알아낸 뒤 하연이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김성열에게 말했다. 두 번 다시 위협을 겪고 싶진 않았으니까.

“음……. 그러면 그놈들이 당신을 누군지 모르게만 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 정도야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바이러스도 안 걸리는 당신의 정체를 김민철이 알아낸 건 예상외긴 하지만, 한 번 실수했으니 똑같은 실수는 없을 거예요.”

“어? 제가 바이러스 안 걸리는 걸 어떻게 아세요?”

“아 참……. 그거 모르죠? 당신이 고른 부랑자 캐릭터 말이에요. 사실 그 캐릭터 자체가 디버그용인지 테스트용인지 그런 캐릭터라서 구성 코드가 다르대요. 놈들이 퍼뜨리는 바이러스는 캐릭터마다 범용으로 사용하는 특정 코드를 바꿔치기해서 유저들의 정보를 빼 올 수 있는데, 당신 캐릭터는 그 특정 코드가 없어서 괜찮다는 거예요. 바이러스가 걸려도 바꿔치기할 코드가 없으니까 실제로 바이러스는 걸렸어도 아무 이상이 없는 거죠. 사실 저도 모르는 영역이라 대충은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바이러스에 영향을 안 받는 캐릭터라 이거지? 부랑자 캐릭터에 그런 기능이 있었다니……. 나름 전용 캐릭터 기술이라면 기술이네…….

“아마 김민철이 당신의 정보를 알아낸 건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저처럼 게임사 측 인맥을 통해 알아낸 것 같아요. 제 친구한테 부탁해서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할게요. 어차피 김민철 말고는 당신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까…….”

“뭐……. 그렇다면……. 한 번 해볼게요.”

“좋아요……!”

간절해 보이는 눈빛에 거절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김성열은 승낙의 말에 해냈다는 듯 주먹을 꽉 쥐어 보인다. 내가 망친 것도 있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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