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신의 아이 --> 테레이스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며 페로렌은 테레사를 추궁했다.
“진짜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요! 저희가 여기 들어왔을 때 이 아이는 자루에 갇혀 아이들이 던지는 돌에 맞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당신이 이 아이를 악마의 자식이라고 했다던데요?!”
“내가요? 아니요.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인데요?”
아이들의 증언이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니 테레이스가 그동안 얼마나 심한 짓을 당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건 테미가 원하는 일이에요! 아니! 테레이스가 원하는 일이에요! 테레이스가 우리와 함께 가길 원한 거라고요!”
“테레이스라니……. 당신들이 어떻게 그 이름을……? 테미! 혹시 네가 말했니?!”
“아니요! 아이는 잘못 없어요! 저희가 테레이스를 찾아 이곳에 온 거니까요! 테레이스라는 자신의 이름이 있는데도 아이에게 테미라는 가짜 이름을 사용하게 하는 그 저의가 뭐죠?”
“테레이스라니……. 어떻게 그 이름을……. 그럴 리가 없어…….”
테레이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테레사는 불안한 모습으로 입술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당장 나가요! 당신들이 나가지 않겠다면 내 손으로 쫓아내는 수밖에……!”
“꺄아악!”
거대한 테레사의 손이 페로렌을 확 잡아끌었다. 거칠고 투박한 테레사의 손길에 페로렌은 손목이 빠져나갈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이봐요! 그만두지 못해요?! 꺄앗!”
말리려던 셀리안도 테레사의 손길 뿌리침 한 번에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도와줘. 미실트!”
부탁이 떨어지기 무섭게 미실트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미실트의 정강이가 테레사의 겹겹이 쌓인 살집을 강타하며 파묻히자 피부가 물결처럼 요동쳤다.
“으아아악!”
테레사의 육중한 몸이 바닥을 쓸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너무 심하게 대처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페로렌은 자신이 도와달라고 부탁했기에 따질 수는 없었다.
“큰일 났다! 테레사가 무섭게 변한다. 숨어!”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테레사가 쓰러지자 소리치며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테레이스 역시 몸을 웅크렸다.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페로렌과 셀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레사를 쓰러뜨린 건 미실트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테레사를 더 두려워했다.
쓰러진 테레사가 혼잣말을 누운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애들은 데려갈 수 없어……. 한 명도 보낼 수 없어. 내 아이들을 뺏어 간다는 건 내 생명을 빼앗는 일이야…….
테레사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 모습은 조금 전과 달리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눈동자가 새까맣게 변해 있고 얼굴에 물집인지 뭔지 모를 수포가 자글자글 올라와 있었다.
“저, 저게 뭐죠……?”
“셀리안, 페로렌……. 내 뒤로…….”
미실트의 말에 페로렌과 셀리안은 테레이스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테레사의 얼굴에 난 수포가 터지면서 얼굴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뼈는 기형적으로 뒤틀리고 피부는 고목처럼 쩍쩍 갈라지더니 그 모습이 점차 괴물의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테레이스가 말했던 괴물처럼 변한다는 말이 바로 저걸 두고 말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저게 뭐야……?”
“악마…….”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 어려울 정도로 징그러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테레사를 지켜보는 미실트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매서운 날을 세우고 있었다.
미실트가 움직였다. 잔상조차 따라가기 힘들 빠른 속도였다. 테레사는 여전히 변형하며 꿈틀거렸지만 미실트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단지 저 생물이 행동하기 전에 처단하는 게 옳다는 판단이 섰을 뿐.
파악-! 미실트의 발이 곧게 뻗어지며 테레사의 배라고 여겨지는 부분을 가격했다. 그러나 테레사의 배에서 뼈 모양의 손이 확-! 튀어나오더니 미실트의 강력한 공격을 가볍게 무산시켰다.
“내 아이……! 절대 못 데려가!!!”
테레사는 미실트의 발을 잡고 붕! 들어 올려서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미실트는 고통스러움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비명은 악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힘의 근원. 그렇기에 비명도 두려움도 느껴선 안 됐다.
미실트는 재차 일어나 테레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테레사는 지금껏 미실트가 상대해오던 마족들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한없이 미약한 존재로구나.”
쑤욱-! 덩어리 사이에서 튀어나온 촉수 하나가 미실트를 튕겨냈다.
“으…….”
미실트는 테레사가 가한 단 한방의 공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너희는 오늘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
테레사의 몸은 어느샌가 인간의 형태를 완전히 탈피하고 괴상한 덩어리들의 집합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실트는 숨쉬기가 곤란한지 헛숨을 골랐다.
“미실트가 저렇게 힘없이……. 저 괴물의 정체가 뭐길래……?”
“테트라마인…….”
“테레이스 방금 뭐라고 했어?”
“테트라마인. 테레사 본명이야. 언니, 난 괜찮으니까 지금이라도 도망쳐. 나만 여기 있으면 테레사도 언니들을 쫓지 않을 거야. 항상 그랬어…….”
수집과 집착의 악마 테트라마인. 그녀는 마계 서열 상위에 속하는 악마였다. 괴특한 생김새에 다이아몬드보다 강력한 피부, 제국의 두꺼운 성벽조차 가볍게 부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셀리안도 그 이름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말했다.
“테트라마인이라면 전설 속 악마예요.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저게 제가 알고 있는 그 악마라면……. 우리 어쩌면 정말 여기서 죽을지도…….”
셀리안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미실트는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지만 일어나기가 무섭게 테트라마인의 속공이 펼쳐졌다.
파파파팍-!!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빠른 공격. 이후엔 공기가 위협적으로 터져나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볼링공 두께의 촉수가 미실트의 피부를 강타하며 검붉은 피멍을 잔뜩 새겨놓았다.
계속해서 밀어치는 테트라마인의 강타에 의식이 금세 혼미해졌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귓가에 한 음성이 들려왔다.
쓰러지지 마라 미실트. 너를 기다리는 이들이 슬퍼한다.
누군가가 계속 그렇게 말을 던졌다. 항상 말을 걸어오던 교황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굉장히 온화하고 신성한 목소리였다. 어쩌면 교황님보다도 따사로운 목소리였다.
‘응, 미실트……. 쓰러지지 않아……. 모두 슬퍼해……. 그런데……. 나 너무 아파…….’
너는 나의 첫 번째 사도다. 네 안에 잠들어 있는 내 힘을 너의 것으로 만들어라. 그리하면 아픔 또한 지나갈 것이다.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던 목소리를 따라 미실트는 집중했다.
‘내 안의 잠들어 있는 힘…….’
힘에 끌려다니지 마라. 내 힘을 이끌어라. 너라면 가능하다. 나를 따라오너라.
미실트는 내면에서 움직이는 목소리 형태에 따라 몸 안에 내재 되어있던 힘의 근원을 찾았다. 꾹꾹 눌려 있던 힘을 톡 건드리자 거대한 빛이 터져나갔다.
그 빛은 미실트의 몸에서도 확 나타나더니 번개처럼 사라졌다. 그러더니 잠시 후 미실트의 다리에 환한 빛무리가 생겨났다. 미실트가 다리를 올려치자 빛무리가 확 뻗어 나갔다.
미실트를 사정없이 난타하던 테트라마인의 촉수 3개가 동시에 잘려나가며 검은색 피를 이리저리 흩뿌렸다.
“끄아아악!”
테트라마인은 비명을 질렀다. 도끼로 강하게 내리쳐도 잘리지 않을 정도로 질긴 촉수가 단번에 잘려나가다니…….
“끄으윽! 이 힘은……?!”
그러나 미실트가 날린 빛무리는 거기서 사라지지 않고 촉수가 잘려나간 부위에 머물며, 신체를 갉아 먹듯 지속해서 태워 나갔다.
자작자작 타들어 가는 아픔을 참다못한 테트라마인은 직접 촉수를 잘라내며 고통에서 해방됐다.
“으으으!! 하찮은 인간이!!
그녀의 쩍 벌어진 입 사이에서 지렁이 같은 혓바닥 수십 개가 꿈틀거렸다. 잠시 후 그 입에서 갈라진 촉수가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미실트는 신성력을 재차 끌어 올려 다리에 휘감았다. 투레스탄을 몸에 직접 강림시킬 때보다 파괴력은 떨어지더라도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미실트는 다시 공격을 가하려 했다. 그런데…….
“아아아악! 살려줘요!”
길게 뻗어있던 촉수가 숨어서 지켜보던 아이들을 사로잡아 방패로 삼았다. 미실트는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멈추지 않고 공격을 감행했다.
페로렌과 셀리안은 아이를 거침없이 공격하는 미실트를 보면서 화들짝 놀랐지만, 미실트가 그런 판단을 내린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촤악-! 잡혀 있던 아이는 미실트의 공격으로 인해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아아아악!!!”
아이는 몸이 쪼개지며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아이의 피가 아닌 수백 개의 혐오스러운 벌레 다리였다.
“이 애들 진짜 아이들이 아니에요……!”
보육원에 진짜 아이는 오직 테레이스 하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테트라 마인이 퍼트려 놓은 덫에 불과했다.
“간파하다니 제법이군.”
정체가 들통나자 보육원의 모든 아이가 악마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곤충 몸통에 갈라진 인간의 얼굴. 심장처럼 박동하는 살덩어리에 날개 달린 괴물. 하나 같이 정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윽……!”
비위가 약한 페로렌은 역겨운 냄새와 모습에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셀리안은 그런 페로렌을 돌봐주며 다가오는 작은 악마들을 경계했다.
미실트가 작은 악마를 먼저 처리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자, 테트라 마인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기다란 촉수가 꿈틀거리더니 미실트의 온몸을 초로록- 휘감았다.
“미실트 씨!”
“이 몸을 상대로 다른 곳을 신경 쓰다니!”
“으……. 큭…….”
강력한 힘에 미실트의 얼굴에 붉은 핏대가 섰다. 부러진 갈비뼈에 엄청난 통증이 가해지면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미실트조차 눈물을 떨어뜨렸다.
다리에 휘감은 빛무리는 미실트의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점차 사라져갔다.
‘미실트 씨를 구해야 해.’
셀리안은 작은 악마를 경계하면서 바이올린을 들었다. 악마에게는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야 했다.
‘전투에 자신이 없으면 좀 어때요? 그런 걸로 조급해하지 말아요. 셀리안. 당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예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손을 가졌고, 당신의 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만 잊지 말아요.’
언젠가 뭘이 해줬던 그 말대로 힘을 사용하기 위해 셀리안은 바이올린을 켰다.
‘뭘 님. 저 모두를 웃을 수 있게 하는 연주가가 되고 싶어요. 동료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해줄 수 있는 그런 연주가가 될래요! 저를 지켜봐 주세요!’
“슈르르르르게!!”
작은 악마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셀리안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4개의 선율에서 만들어지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곡조는 페로렌과 테레이사 미실트에게 살랑거리는 나비처럼 다가와 마음을 치유해 주었고, 악마들에게는 생살에 대못을 때려 박는 듯한 고통을 전해주었다.
“이건 무슨……!”
셀리안의 연주가 고조되면서 미실트를 묶고 있던 촉수는 힘이 서서히 약해졌다. 미실트는 그 틈에 다리에 감긴 빛무리를 수직으로 그어 올려 자신의 몸을 붙든 촉수를 썽둥 썰어냈다.
“끄아아아윽!”
“슈레레레레끄!”
악마조차 역겨움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듯 속 깊은 곳에서 검붉은 액체를 토혈하며 바닥에 하나둘 뭉그러졌다.
어느덧 아이의 탈을 쓰고 있던 작은 악마들은 모두, 녹아내린 초콜릿처럼 바닥 곳곳에 지저분하게 퍼졌다.
이제 남은 건 테트라마인 단 하나. 미실트는 최후의 공격을 다리를 하늘 높이 추켜올렸다.
테트라마인은 그녀를 막으려 했다. 그런데…….
“왜……. 왜 몸이……!”
분명 촉수를 뽑아내야 했건만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부터 들려오는 이상한 바이올린 연주 때문에 테트라마인을 이루고 있는 몸의 덩어리들이 전부 제각각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악마……. 처단.”
외마디 말과 함께 미실트는 추켜올린 다리를 땅으로 강하게 찍었다. 그 순간 바닥이 들썩이며 땅 밑에서 빛줄기가 하늘 높이 뻗어 나갔다. 빛에 휩쓸린 테트라마인은 하얗게 몸이 불타며 공중으로 산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