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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사기단-118화 (117/147)

<-- 악마의 소굴 -->                               나는 송민성 누나인 민선 씨에게 도움을 받아, 김민철이 자주 들락거리는 장소를 알아냈다.

“저기에요. 저기는 오빠가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근처도 안 가요.”

“고마워요. 민선 씨도 여기 나갈 수 있으면 빨리 나가요. 동생 걱정시키지 말고…….”

“네……. 그럴게요…….”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문으로 향한다.

문고리를 조용히 돌리니 잠겨 있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내용에 귀를 기울인다.

“야! 김민철! 이 미친 새끼야! 우리 언니한테 손대지 마!!!”

이건……. 하란이 목소리?

“넌 입 좀 다물고 있어!”

“꺄아악!”

김민철 목소리도 들린다.

“하연 씨. 이거 강기단한테 줄 선물이니까 웃어보라고. 아니 우리 곧 떡칠 사이인데 그렇게 울면, 내가 강제로 하려는 것 같잖아? 서로 즐기면서 하는 모습 보여줘야 강기단 그 새끼가 더 열 받아 하지 않겠어?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이 오빠가 테크닉 하나는 끝내주거든? 아마 한 번 맛보면 그놈 다신 못 찾게 될걸?”

김민철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나는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쾅! 쾅! 쾅! 세 번을 발로 차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김민철이 당황한 모습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뭐, 뭐야?”

옷이 반쯤 찢어져 속옷이 드러난 채 공포에 떠는 하연이. 그 앞에서 팬티만 입은 채 캠코더로 하연이를 촬영하는 김민철.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선 폭력적인 감정을 제어하는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김민철 이 개자식아!!!”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김민철의 턱주가리에 온 힘을 실은 주먹을 꽂아 넣는다.

빠악-!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김민철이 바닥에 나무토막처럼 쓰러진다. 쓰러진 그의 복부를 사정없이 걷어찬다.

“이 개만도 못한 쓰레기 새끼가!!!”

퍽! 퍽! 김민철은 단 한 방으로 눈이 돌아가서 비명도 못 지른 채 뻗어 있다.

“하아……. 하……. 개자식……!”

진짜 죽을 때까지 패주고 싶지만, 지금은 하연이를 챙기는 게 먼저다.

“오빠……! 오빠아…….”

“하연아. 이제 괜찮아……. 곧 경찰도 올 거야. 너도 하란이도 다 무사해.”

내 얼굴을 보고 안심했는지 하연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하연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등을 토닥여준다.

“오, 오빠 얼굴에 피가……!

“나 괜찮아. 조금 찢어진 거야.”

고개를 돌려 하란이를 살펴보니 두꺼운 케이블타이로 양손이 테이블 다리에 묶여 있다.

“하란이 너는 괜찮아……?”

“응, 기단 오빠가 제때 나타나서 정말 다행이야.”

“잠깐만 하연아, 하란이 먼저 풀어주자.”

하연이는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케이블 타이를 살펴보니 너무 두껍다. 그냥은 안 끊길 것 같은데……. 잠시 후 하연이가 어딘가에서 가위를 찾아서 건넨다. 아마 자신의 옷을 난도질한 그 가위인 것 같다.

“됐다.”

“고마워 기단 오빠.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는데……. 근데 기단 오빠 정말 괜찮아? 피 많이 나는데…….”

“응. 괜찮아.”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지금 당장 쓰러질 것 같다고 해도 안전하게 나가기 전까지 쓰러질 순 없다. 아직 이곳은 악마의 소굴이니까.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하연이와 하란이를 뒤로 물리고 문밖을 주시한다.

“민철이 형님?! 이 새끼!”

아니나 다를까 김민철의 부하들이 눈치채고 몰려든다. 방에 들어온 인원은 3명이고. 밖에 더 있는 듯하다. 솔직히 전부 이길 자신이 없다. 흐르는 피 때문에 눈이 뻑뻑하고 아까 맞았던 게 회복이 안 된 건지 머리는 계속 어지럽다.

그렇지만 지켜야 할 사람이 있기에 물러설 수도 없다.

“야! 저 새끼 죽여!”

몇 명이 달려온다. 두 명? 아니, 한 명이지……? 아까부터 시야가 두 개로 보이는 증상이 반복되고 있다. 우선은 피해야 하는데…….

퍽-!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몸이 휘청거린다.

“오, 오빠!!”

“하지 마. 이 나쁜 놈들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얼굴을 가격당했다. 너무 아프다. 눈물샘이 충격을 받았는지 울고 싶지 않았음에도 눈물이 저절로 떨어진다. 고통을 이기고 반격을 시도하지만, 제대로 된 타격이 들어가지 않는다.

*

그 이후로 몇 대나 맞았는지 가물가물하다. 11대까지는 정신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모르겠다. 그냥 쓰러지지만 않을 뿐.

그런데 이제 서 있는 것도 한계다. 어쩌지……?

지켜줘야 하는데…….

그때였다.

“꼼짝 마! 이 새끼들아!”

구세주처럼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존재들.

“아아아악!”

“야 튀어!”

그들은 럭비 선수가 태클하듯 조폭들을 단번에 밀어 눕히고 수갑을 채운다. 이성열이 말한 형사들인 모양이다. 나의 구세주들. 이 시대의 영웅이 있다면 이런 분들께 자격을 수여해야 한다.

때마침 와줘서 다행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내 의식이 차츰 흐려진다. 그러나 그다음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꺄아아악!!!”

“오빠아-!!!”

하란이와 하연이의 비명이 동시에 들리고…….

“야! 야! 저 새끼 잡아!!!”

형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내 앞에 김민철의 매서운 눈동자가 나를 쳐다본다. 비열하게 웃음 짓는 입가에선 내 주먹질에 의한 피가 똑하고 떨어진다.

떨어지는 피를 따라 시선을 내려보면 그의 손엔 짧은 주머니칼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그 주머니칼은 내 좌측 복부에 정확히 꽂혀 있다.

아 따가워라.

태어나서 처음 칼에 맞은 감상이 참 보잘것없다……. 찔린 당시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저 조금 시큰한 느낌만 있을 뿐. 그 뒤는 조금 따가운 느낌이 들다가, 찔렸구나 하는 판단이 설 무렵부터는 죽을 것같이 아프기 시작한다.

“아……. 으윽…….”

형사들이 달려와 김민철을 밀어 넘어뜨린다.

“이거 놔!!!”

김민철이 형사에게 제압당해 발악하는 사이 다른 형사는 김민철이 놓친 칼을 저 멀리 차 놓는다.

피…….

배를 감싸 쥔 손에는 새빨간 피가 흥건하다. 그 이후로는 어지러움이 심해져서 눈을 감았다. 곧 시끄럽던 주변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이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조금 전 발생한 상황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흘러 내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지다가, 선명했던 기억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이날의 길었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

보육원에 다시 들어선 페로렌 일행은 쫓겨나기 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뭐가 달라졌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파스텔이었던 그림이 어쩐지 모노톤의 색채로 변해 있는 느낌?

그것 이외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바로 앞의 아이들은 여전히 돌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없던 자루 하나가 생겨 있었다.

“이얍! 와 맞았다!”

“역시 저거 놓고 하는 게 더 잘 맞네.”

셀리안은 그걸 보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가씨……. 저 자루, 왠지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요?”

페로렌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분명히 자루가 움직였다. 마치 생명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얘들아. 저 안에 혹시 뭐……. 들었어?”

“어? 또 왔네? 안 말해줄 거예요! 테레사가 누나들이랑 말하지 말랬어요. 우리 계속하자. 이번엔 네 차례야.”

몰라도 된다고 하기엔 자루 속에 있는 무언가는 돌에 맞을 때마다 심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페로렌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자루를 열었다.

“헉?!”

“누나! 뭐 하는 거예요!! 우리 노는데 왜 방해해요!””

자루 안에는 한 아이가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소녀의 이마와 얼굴엔 돌에 맞아 생긴 상처가 가득했다.

“흐윽…….”

“야! 이 씨! 너 소리 내면 맞는다고 했지!”

“꺄악! 으아아앙……!”

돌을 던지던 아이가 들고 있던 돌로 자루 안에 있던 아이의 머리를 찍었다.

“울지 말라고! 너 진짜 죽어 볼래?!”

“너희 그만해! 이게 무슨 짓이야?!”

도저히 평범한 아이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악랄한 행동이었다.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는 게 더욱 소름 끼쳤다.

“사람을 자루에 넣고 돌을 던지다니!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쟤한테는 그래도 돼요! 테레사가 그랬어요! 쟤는 악마의 자식이라고!”

악마의 자식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여리고 작은 소녀였다. 셀리안은 소녀를 자루에서 빼내 주었다.

“왜 쟤를 도와요? 누나들도 혹시 악마예요?”

“악마다! 테레사 불러오자!”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실트 말대로 이곳은 악마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것은 악마를 실제로 본 적 없는 페로렌도 셀리안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괜찮니? 이름이 뭐야?”

“테미…….”

테미라는 아이는 너무도 순수한 눈망울을 가졌다. 도대체 왜 이 아이를 악마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한테서, 좋은 기운이 느껴져…….”

테미는 페로렌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페로렌의 품에 손을 넣어 보석 하나를 꺼내 얼굴에 비비기 시작했다.

“엇?! 얘 그거……!”

“우응……. 기분 좋아…….”

소녀가 페로렌의 품에서 꺼낸 건 아이셀이었다. 페로렌은 위험할까 봐 제지했지만, 의외로 소녀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 벌어진 일이었다.

“어……?”

“아이의 상처가 낫고 있어요……!”

돌에 맞아 찢어지고 파였던 상처들이 점차 낫고 있었다. 아이가 아이셀을 얼굴에 비빌수록 아이의 얼굴엔 활력이 깃들었다. 이 현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문득 환상 속 보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페로렌은 아이의 손을 잡아보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네가 테레이스니……?”

“테레이스. 응! 그게 내 진짜 이름이야. 아……! 테레사가 말하면 안 된댔는데……. 또 혼날 거야…….”

이 아이였다. 눈앞의 아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테레이스였다. 페로렌은 왠지 모르게 복받치는 감정에 아이를 끌어안았다.

“너였구나……. 네가 테레이스였어…….”

테레이스는 자신을 끌어안는 페로렌을 이상하게 보면서도 같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테레이스 혹시 언니랑 같이 안 갈래……?”

“언니랑……? 어디……?”

“너 가고 싶은 곳 어디든…….”

테레이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갈래!”

그러나 뭐가 그리 두려운지 울상이 되더니, 다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 돼. 테레사가 화낼 거야……. 테레사 화나면 괴물처럼 변해.”

“괜찮아. 언니가 지켜줄게.”

“응, 그럼 언니랑 갈래.”

“지금 뭣들 하는 거죠?!”

테레이스를 끌어안고 있으니 누군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세웠다. 테레사였다. 그녀는 기분 나쁘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크게 내며 걸어왔다.

페로렌은 그녀를 보면서 테레이스의 손을 꽉 잡았다.

“이, 아이 저희가 데려가고 싶어요. 그렇게 해도 될까요? 신원은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지 테미?”

테레이스는 테레사의 쏘아보는 시선을 받고는 튼실한 미실트의 다리 뒤로 숨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군요.”

“원하시는 게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릴게요.”

“다만 이 아이. 테미를 우리가 데려가게 해주세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신원도 명확했고 페로렌에게 차고 넘치는 게 돈이었으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러나 테레사는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돈? 억만 셀을 줘도 테미는 못 보내요! 당신들처럼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한테 우리 테미 못 보내니까 어서 나가요! 테미 빨리 이리 오지 못해?!”

테레사의 불호령에 테레이스는 우물쭈물하며 미실트의 뒤에서 나왔다. 그러나 미실트는 테레이스가 더 나가지 못하도록 앞을 가로막았다.

“악마…….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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