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17화 (116/147)

<-- 악마의 소굴 -->                               -‘여보세요.’

“여보세요? 성열 씨! 저 강기단인데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바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연이한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니 불행 중 다행스러운 말을 전해온다.

-‘안 그래도. 유정이한테 낚여서 찾아온 놈의 뒤를 캐다가 김민철이라는 사람의 아지트로 보이는 곳을 발견하긴 했어요. 그곳에 여자들을 가둬 놓고 있다가 놈들의 본거지로 옮기는 것 같아요.’

“거기가 어디죠?!”

이 사람이 알아낸 장소라면 하란이가 잡혀간 곳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다음 김성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멀쩡히 이성을 유지할 수 없게 했다.

-‘미안하지만, 당장은 알려줄 수 없어요. 놈들이 본진으로 여자를 보낼 때 그 뒤를 캐야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데, 당장 급하다고 앞뒤 안 재고 들이닥치면 결국 김민철 하나 밖에 못 잡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 말은 지금! 거기서 사람이 죽든! 썰려 나가든 신경 안 쓰겠다는 건가요?! 그 안에 사람이 잡혀있다고요! 그 안에 잡혀있는 사람들은 일 분, 일 초 뒤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지금 그놈 하나밖에 못 잡는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해요?!”

-‘흥분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지금 기회를 놓치면 놈들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날이 또 언제 올지 몰라요. 그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거기 잡혀있는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길 거고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하고 들어주기엔 나는 너무도 절박하다.

“부탁드릴게요. 성열 씨. 제 여자친구가 잡혀갔어요. 제 여자친구 그런 환경 못 견딘단 말이에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성열 씨……!”

낯선 남자에게 낯선 환경으로 잡혀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하연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저랑 친한 형사분께서 수사에 착수했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기다려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기다리라는 말. 끝내 지금 당장은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형사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김성열에게 무언가 말하던 중 한 장소를 언급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제대로 듣지 못할 작은 말임에도 나는 똑똑히 들었다.

이때만큼은 내 좋은 귀가 이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

전화를 끊은 뒤 즉시 들었던 장소로 향했다. 차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장소는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술집이었다.

이런 곳으로 사람을 납치해온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술집은 근처에서부터 커다란 노랫소리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입구에는 어깨 큰 형님들 사람을 가려 받으며 받고 있다. 저기는 술집인데…….

그렇지만 들었던 장소는 여기가 확실해. 일단 들어가 보자.

“잠깐, 잠깐. 혼자 왔어요?”

“예.”

다가가니 나를 막는다. 키는 나와 엇비슷하지만,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서 양복을 찢고 나올 기세라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혼자 왔다는 말에 그가 손짓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왜 안 되는 거죠……? 여기 술집 아닌가요?”

“2인 이상.”

“안에서 찾을 사람이 좀 있는데 잠깐만 둘러보면 안 되겠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라고 새끼야.”

그 말에 어깨 형님의 인상이 험상궂게 변하더니 나를 밀치려 손을 뻗는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손을 확 쳐냈다. 그러자 갈 곳을 잃은 그의 손이 허우적거린다.

의식하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몸에 밴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마치 게임 속에 있는 것처럼…….

그는 금세 부어오른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며 당황한 듯 목소리를 키운다.

“이런 씨X 안 꺼져?”

곧 싸움을 걸 기세다. 아직 하연이를 못 찾았는데, 일을 키우면 안 돼.

일단은 물러서서 다른 곳부터 확인하자.

*

험상궂은 문지기를 피해 뒷길로 오니 내부가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짙게 선팅한 봉고차 수십 대가 서 있다.

곧 한 대의 봉고차가 골목으로 들어오더니 그 안에서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우르르 내려서 안쪽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한 대의 봉고차가 또 들어온다. 이번에는 여자들이 바로 내리지 않는다. 곧 건물 입구에 있던 남자들이 봉고차 안에 잠들어 있던 여자들을 한 명씩 건물 안으로 실어 나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하연이는 저기 있다. 저놈들한테 잡혀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잡혀있는 여인들은 분명 납치돼서 온 것이다.

스스로 걸어 들어갔던 여자들과 잠들어있던 여자들의 차이. 그 복장만 봐도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저 안에서 하연이가 나를 기다린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이봐요.”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잡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꺾어 바닥에 엎어친다.

“커허어억!”

“너 뭐야?! 김민철 부하야? 김민철 저 안에 있지? 팔 부러지고 싶지 않으면 말해!”

“기단 씨……! 접니다. 김성열……!”

“김성열? 당신이……?”

나는 서둘러 손을 놓는다.

이 사람이 김성열이라고? 게임 속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훤칠하고 잘생긴 사람이다. 다만 피곤함에 절었는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와 있다.

“아오, 팔이야…….”

그는 팔을 흔들며 내게 말을 건다.

“혹시나 해서 왔는데 정말 기단 씨였군요. 전화가 갑자기 끊겨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말해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알 방법은 있어요. 저기죠? 납치당한 사람들 저기에 갇혀있는 거 맞는 거죠?”

김성열은 한숨을 내쉬더니 눈썹을 긁적거린다. 말해주면 내가 곤란한 행동을 할 거란 걸 직감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냥 확인 차 물었을 뿐.

“그래요……. 뭐 알고 물어보시는 거겠지만, 저 안에 있어요. 최근에 잡혀 온 여자 중에서 당신 여자친구도 있을 거예요. 아마.”

그거면 됐다. 하연이가 저기 있다는 걸 알았으니 구해야 한다. 김성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내 손목을 붙잡는다.

“혼자 가서 뭘 어쩌려고요? 입구에서부터 저 무시무시한 조폭들 돌아다니는 거 안 보여요?”

“그 무시무시한 조폭들 때문에 떨고 있을 내 여자친구 걱정돼서 이대로 못 있습니다!”

“하아……. 당신 표정 보니 내가 말리기는 틀렸고 형사님께 지원요청 해놨으니까 형사님 오시면 같이 가요. 혼자 위험해서 안 돼요.”

“아니요. 저는 혼자 갑니다. 하연이랑 하란이. 저런 곳에 1초라도 더 내버려 뒀다간 김민철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잡힌 손목을 풀고 여자들이 들어간 문으로 걸음을 옮긴다.

*

“어이, 여기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 아니니까 가라.”

문에 다가가니 역시나 나를 제지한다. 나는 그들의 말을 무시한 채,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간다.

“뭐야 저놈?

문안에 들어온 나는 즉시 문을 잠근다.

“야! 야! 이거 안 열어?!”

놈들의 당황한 음색이 문밖에서 들려온다. 저들을 신경 쓰고 있을 여유는 없다. 따라오기 전에 빨리 하연이부터 찾자.

*

안쪽을 살펴보니 아직은 누가 잡혀있는 모습은 발견할 수 없다. 술집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고, 봉고차로 들어온 여성들도 어떤 방에 모여 평화롭게 쉬고 있는 것 같다.

경계하며 조금 더 들어가니 김민철의 부하로 보이는 사내들의 잡담 소리가 들려온다.

“야, 이번에 민철이 형님 데려온 애들 뭐야?

“형님이 누구 데려왔어?”

“아니, 아까 엄청 빡친 것처럼 나가더니 갑자기 어디서 애들을 데려오더라고.”

“작업 친 애들이겠지.”

“민철이 형님이 작업친 애들 저렇게 데려온 적이 있던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글쎄다. 모르겠네. 그보다 나이가 서른이 넘으셨는데, 저런 애들은 어떻게 만나시나 몰라?”

김민철……. 나이도 속였냐? 어쩐지 많아 보인다고 했어.

나는 놈들이 있는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아, 이번 주말은 좀 쉬어야겠다. 피곤이 쌓였나 왜 이렇게 피곤하냐……. 응?”

한 명의 어깨를 툭 건드니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방금 말했던 여자애들 어디 있어?”

“너 누구냐?”

“방금 김민철이 잡아 왔다던 여자애들 어디 있냐고.”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다.

쿵-! 의자를 차서 넘어뜨리고 바닥에 머리를 찍어 기절시키니 나머지 한 명이 헐레벌떡 일어나 공격하려 든다.

놈의 팔을 잡고 부러지기 직전까지 힘을 싣는다.

“끄아아악!”

“말해! 방금 말한 애들 어디 있는지!”

*

몸이 이상해진 것 같다.

나는 싸움을 배워본 적 없다. 운동도 헬스장 몇 번 기웃거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것 없다. 눈과 귀가 좋은 것 말고는 신체적으로 뭔가 특별하게 뛰어나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4명이나 되는 조폭들을 쓰러뜨린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방에 있던 놈에게 하연이의 위치를 묻는 동안 문밖에 있던 두 놈이 뒤따라와서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했지만, 큰 부상 없이 싸움에서 이겼다.

머리를 세게 맞아서 살짝 어지럽긴 해도 움직일 수만 있으면 된다.

주룩-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를 닦으니 손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땀인 줄 알았는데, 피였구나. 눈썹 쪽이 찢어진 모양이다.

피나는 부위를 지압하며 김민철을 찾아 계속 움직인다.

*

어? 여자다. 근데 낯익은 얼굴이다.

저 여자……. 송민성 누나 같은데……? 드웍프가 보내줬던 영상에서 봤던 그 여자다.

“저기요!”

“엄마야?! 깜짝이야……. 뭐에요? 당신 괜찮아요?”

내 얼굴에 피 때문에 깜짝 놀랐나 보다.

“미안해요. 놀라게 할 생각 없었는데, 그쪽 혹시 송민성 누나 아니에요?”

“민성이? 제 동생 맞는데요? 왜요?”

뭔가 다르다……? 영상에서 봤던 그녀는 폭행당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녀의 모습은 결코 납치당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 저는 민성이 아는 사람인데……. 민성이가 당신 김민철한테 납치당했다고 하던데…….”

그녀는 사실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납치요? 아니에요. 민철 오빠……. 가끔 무섭게 화내긴 해도 사람을 납치하거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치만 김민철이 당신을 때렸다고 하던데……?”

아……. 그건. 제가 잘못한 거니까……. 제가 오빠를 떠나려고 해서 그런 거예요. 오빠는 저를 너무 사랑해서 감정이 살짝 격해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다 이해해요.”

사랑해서 그런 식으로 폭행을 한다고? 김민철……. 인간이 어디까지 쓰레기가 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구나.

“아니에요! 그거 사랑 아니에요! 세상에 사랑하는 여자를 협박과 폭력으로 대하는 남자는 없어요! 잘 들어요. 김민철이 민성이한테 시켜서 당신이 진 빚 갚게 하고 있어요. 매일 같이 협박하고 끔찍한 폭행을 가하면서 당신이 빌린 돈 대신 갚게 하고 있다고요!”

“빚이요? 무슨 빚이요? 저 민철 오빠한테 돈 빌린 거 없어요.”

나는 그동안 민성이와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그 안에는 그동안 김민철에게 얼마를 보냈고, 그에게 얼마나 고통받았는지에 대한 내용과 누나가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등의 마음을 터놓고 말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 어떻게……. 정말 이거 우리 민성이가 보낸 거예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지만 전부 사실이다.

“못 믿겠으면 민성이한테 직접 확인해봐요.”

“우리 민성이 몸 약해서 그런 일 당하면 안 되는데……. 민철 오빠가 왜 그런 일을…….”

“당신 김민철한테 속은 거예요. 그 인간 조폭이고 악질적인 사람입니다. 제 여자친구도 지금 그놈한테 잡혀서 여기 어딘가에 들어와 있어요. 부탁이에요. 제 여자친구 찾을 수 있도록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그녀는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더니 나를 돕겠다며 나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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