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16화 (115/147)

<-- 영원한 죽음 -->                               나는 그렇게 플로어와는 완전히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막스핀과 만났던 당일 길드를 탈퇴하겠다고 말하지 않아서? 그게 아니면 애써 모았던 자료를 불태우지 않아서?

오늘 길드를 탈퇴하겠다고 말한 뒤 페로렌과 합류할 생각이었는데 어느샌가 나는 캐릭터가 삭제될 위기에 처했다.

“크으으윽……!”

김민철이 내 어깨에 박힌 사브르를 뽑아낸다. 칼로 생긴 구멍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온다. 이미 하나의 목숨을 잃었다. 남은 생명마저 곧 소진될 듯하다.

죽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모르겠다. 나를 지켜줄 아이셀은 페로렌에게 있고, 주변을 지키는 놈들은 너무도 막강하다. 모든 마법이 차단된 건지 아이템도 마법도 아이즈도 소환도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하드코어 캐릭터로서는 안 죽고 잘 버텨왔지만, 대놓고 나를 노리는 적들에게서 벗어나기엔 나 자신의 준비가 너무 안 돼 있었다.

“이야 그동안……. 두 마리 쥐새끼가 나를 가지고 놀면서 얼마나 재밌었을까? 안 그래?”

우측을 쳐다보면 그쪽에도 드웍프가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잡혀 있다. 어떻게 김민철이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보아하니 드웍프도 갑자기 들키게 된 이유를 잘 모르는 듯하다.

김민철이 내 앞에 선다.

“형씨. 내가 형씨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길래 신상 정보를 알아보려고 했거든? 근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우리한테 게임 접속자 정보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인데 말이야. 그래서 나는 혹시 뭐 짭새라도 뜬 거 아닌가 하고 다른 방법으로 뒷조사를 좀 했어. 근데. 내가 엄청난 사실을 하나 알아냈지 뭐야……?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아?”

“글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짐작 가는 바는 있지만, 그게 아니기 바라며 시치미 뗀다. 그러나 김민철은 한 번 피식 웃더니 안색을 바꾸고 귓가에 조곤조곤 얘기한다.

“야, 강기단. 너 죽고 싶냐?”

순간 소름이 끼쳤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김민철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날 죽일 듯한 얼굴이다. 그러나 곧 살가운 척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아니, 씨X 구면이었으면, 아는 척 좀 하지 그랬어? 더 잘해줬을 텐데. 안 그래요. 형님?”

“아는 척하고 싶은 인간이 아니니까 안 했겠지?”

역겨운 얼굴 보기도 싫다. 직설적으로 내뱉으니 다시 벌레 씹은 얼굴이 돼서는 얼굴에 칼을 들이민다.

“야, 강기단. 송민성 너희 둘 이거 아직도 게임 같지? 특히 송민성 이 씨X놈아! 너는 내가 너네 누나 데리고 있는 거 실감이 안 나? 네가 그딴 식으로 하면 내가 어떻게 나올지 대가리가 안 돌아가?”

“크윽!”

김민철의 폭력을 막아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바이러스라는 거 말이다. 유저의 통증 제어 시스템도 건들 수 있는 모양이라 지금 드웍프가 겪는 고통은 현실과 비례할지도 모른다.

“둘 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 무슨 일어나든 그건 니들 책임이니까 알겠지?”

그리고는 사브레가 드웍프 이어서 내 목을 단번에 꿰뚫고 들어온다. 찌릿한 느낌과 함께 눈앞에 처음 맞게 되는 시스템 메시지가 보인다.

-‘당신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영원한 죽음.

그렇게 나는 하드코어 캐릭터로서의 두 번째 죽음. 즉, 앞으로 다시는 이 캐릭터로 접속할 수 없다는 영원한 죽음을 맞았다.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결말이다.

* * *

발데린 공화국의 샤울로드. 몇 달 전 뭘이 거쳐 간 그 장소에 페로렌 일행이 도착했다. 페로렌은 자신이 본 환영의 발자취를 따라 한 장소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가씨……. 저 안에 있는 거 확실해요……?”

“응……. 확실해. 저기에 테레이스라는 아이를 위협하는 큰 위험이 존재해.”

“그렇지만 저긴……. 보육원이잖아요?”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페로렌은 환영 속에서 벌레 떼만큼이나 끔찍한 생김새의 악마를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러나 정작 도착한 곳은 끔찍한 악마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보육원이었다.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니 귀여운 아이들이 한데 모여 놀고 있었다. 원을 그려 넣고 그 안으로 돌을 집어 던지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던진다. 제발! 제발……! 아…….”

“아하하! 튀어 나갔다! 이제 내 차례야!”

페로렌은 그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안녕……. 얘들아?”

“어?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가까이 다가가자 따로 떨어져 있던 아이들도 페로렌 일행에게 호기심을 느꼈는지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 나는 페로렌이라고 하는데……. 저기 혹시 얘들아. 여기에 테레이스 라는 아이가 있니?”

아이들은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아이는 없어요.”

“테레사는 있어요.”

“테레사……?”

“아가씨 혹시 그 아이 일지도 몰라요.”

셀리안의 지적에 페로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본명을 그대로 쓰고 있으라는 법은 없었으니, 이름이 비슷한 테레사라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테레사는 아이가 아니었다.

“누구시죠? 제가 테레사인데요……?”

자신을 테레사라며 지칭하고 나온 여성은 몸집이 과장 좀 보태서 오우거만큼 커다란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곳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아, 혹시 테레이스라는 아이가 있나 해서 찾아왔어요.”

“테레이스……. 아니요……. 그런 아이는 없어요.”

“그런가요……?”

페로렌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으아아앙……!”

“제미나! 괜찮니?”

“미실트……!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실트가 자신의 곁에서 손을 잡은 아이를 밀친 것이다. 그 덕분에 아이는 물론이고 주변의 아이들까지 같이 넘어져서 피해를 받았다.

“갑자기 보육원에 들어와서 아이한테 폭력을 쓴다니요! 이게 무슨 짓인가요! 신고 안 할 테니 빨리 나가주세요!!”

일행은 테레이스를 찾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페로렌은 갑자기 이상행동을 벌인 미실트를 문책했다.

“미실트! 왜 그랬어?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싫은 냄새……. 싫은 냄새 나…….”

페로렌은 기가 찼다. 아이가 무슨 잘못한 것도 아니고 냄새가 좀 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밀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하물며 냄새에 민감한 페로렌도 아무렇지 않게 있었는데 미실트가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조금 이상했다.

그러나 셀리안은 페로렌을 말렸다.

“아가씨 그만 하세요……. 미실트 씨 떨고 있어요.”

셀리안이 손을 꼭 붙잡으니 미실트의 떨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후회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나 곧 이어진 미실트의 말에 페로렌은 잠시 얼어붙었다.

“싫은 냄새……. 악마의 냄새…….”

“악마의 냄새라고……?”

악마의 냄새. 페로렌이 환영에서 본 그 장소에서도 끔찍한 냄새가 흘러나왔었다. 정체불명의 냄새였지만, 만약 악마에게서 냄새가 난다면 이런 냄새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끔찍했다.

거기다 미실트는 악마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누구보다 악마를 가까이서 마주해온 그녀이기에 이런 말을 그냥 내뱉진 않았을 터였다.

“미실트. 네가 밀친 아이한테서 악마의 냄새가 났던 거야?”

미실트는 보육원을 가리켰다.

“악마가 사는 곳……. 전부…….”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저곳이 악마의 소굴이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미실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저 안에 뭔가 있어.’

페로렌은 미실트와 셀리안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단단히 일러두었다. 보육원에 다시 들어가게 되면 지금처럼 아무 일 없이 나오지는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 *

게임을 끄고 나서 1시간째 멍하니 앉아있었다. 몇 달간 열심히 해온 캐릭터가 한순간 날아간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허탈한 기분이다.

차라리 그것뿐이라면 다행이지만 더욱 심각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니 답답함이 태양풍처럼 밀려온다.

김민철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한 채 앉아만 있어야 한다니…….

맞아. 드웍프……. 우선 민성이한테 전화해봐야겠다. 걔 누나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핸드폰……. 내가 핸드폰 어디에 뒀더라……?

“어……? 하연이가……?”

정신없이 핸드폰을 찾아서 확인하니 30분 전부터 하연이의 부재중 전화가 12통이나 와있었다. 그리고 떠 있는 한 통의 음성 메시지.

무슨 일이지……?

전화를 안 받으면 딱 한 번만 걸고 마는 하연이 성격상, 30분 동안 12번이나 전화를 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뭔가 일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먼저 남겨져 있는 음성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연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 오빠……! 하란이! 하란이가 김민철한테 끌려간 것 같아……! 어떻게 해? 나 무서워……. 내 동생 잘못되면 나 어떻게 해…….”

하란이가 잡혀갔다고……? 예상대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하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무한정 반복되는 통화 연결음.

왜지……?

왜 이렇게 불길한 거지? 나는 하연이에게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전화 좀 받아 하연아……!

“하연아, 오빠가 지금 갈 테니까! 메시지 받으면 연락 줘!”

음성메시지를 남기고 나서 택시를 잡아탄다.

*

하연이가 살고 있는 빌라에 도착한 나는 즉시 그녀의 집으로 올라간다.

“문이…….”

문고리가 파손된 채 문이 열려 있다.

“하연아!!!”

서둘러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신발장 일부가 부서져 내려 앉아있고 하연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하연이 핸드폰이 보인다. 전에는 멀쩡하던 액정이 바닥에 세게 부딪혔는지 거미줄 모양으로 깨져 있다. 화면을 켜보니 11112라는 숫자가 떠 있다.

“아, 안돼……. 하연아…….”

두려움에 떨면서 신고 번호를 눌렀을 하연이를 생각하니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버튼도 제대로 못 누르고…….

내가 제때 전화만 받았더라면…….

“아무 죄도 없는 사람한테 왜……!!! 김민철 이 새끼……! 크흐윽…….”

퍽-! 퍽! 주먹에서 피가 나도록 바닥을 내리쳐도 손보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수백 배 더 아프다.

후우……. 안 돼……. 정신 차리자……. 지금 이성 잃으면 안 돼……!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하연의 핸드폰을 들고 내용을 살핀다.

하연이가 동생 하란이와 통화한 이후, 몇 초 뒤‘절대 신고하지 마’라는 메시지가 동생의 번호로 와 있었다.

전화는 통화 중 갑자기 끊긴 듯하다. 이후 협박인지 안심인지 모를 의문의 메시지에 하연이는 납치 신고도 못 했던 것이다.

그 뒤에는 나한테 전화를 했고, 전화를 받지 않자 음성메시지를 대신 남겼다. 그 뒤로도 몇 차례나 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한 30분 사이 하연이는 납치를 당했다.

정황상 김민철이 하연이와 하란이를 데려간 건 확실하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지……? 어떤 단서도 증거도 찾을 수 없는데 무슨 수로 찾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 혼자서는 하연이를 찾을 수 없어. 신고하지 말라는 건 단순 협박에 불과해. 그놈도 두려우니까 신고하지 말라는 거야. 신고하자. 그래야 하연이를 구할 수 있어.

마음을 다잡고 핸드폰을 든다. 그런데 가슴 한편에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내 손을 붙든다.

신고했다가 정말 놈들이 작정하고 하연이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만 아니었어도 하연이도 하란이도 아무 일 없었을 텐데…….

“젠장……. 젠장……!”

숨기지 못할 죄책감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문득 핸드폰에 남겨둔 김성열의 연락처가 떠올랐다.

그래……. 그 사람이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연락처를 뒤져 김성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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