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왕벌 --> 하연이의 가르침으로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된 미실트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며, 자신은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등의 말이었다. 아직 어리숙하게 표현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알아듣고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한때 투레스탄이라는 신을 수호하는 사도 중 하나였던 듯했다. 하지만 신성력이 떨어져 퇴출당했고 쓸모없어진 그녀는 노예로 팔리게 됐다.
정작 본인은 노예로 팔렸다는 사실을 자각 못 하는 듯하지만, 막스핀의 배에 나와 함께 타고 있던 게 바로 그것을 증명할 만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버림받은 것과는 모순되게 신성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충만해서 교황조차 그것이 신성력일 거라고 감히 생각하지 못했을 뿐.
미실트 본인은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면, 투레스탄의 13번째 사도로써 투레스탄의 권능 일부를 직접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말해준 그 날, 나는 그녀의 권능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너무도 신성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존재가 미실트 몸에 깃들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미실트는 열세 번째 사도가 아니라, 내가 직접 선택한 첫 번째 사도다. 미실트의 신뢰를 얻어라. 그리하면 위기에서 너를 구해주마.’라고 말이다.
꽤 많은 말을 남겼던 것 같지만 정확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미실트의 신뢰를 꾸준히 쌓아 올렸다. 그러면서도 그녀와 대화하며 능력에 대해 틈틈이 연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유용한 몇 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손톱자국 같은 검은 문신이 있는데, 이것이 회색빛으로 변하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두 번째는 그녀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지키고자 하는 대상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태여야 했다. 끝으로 지키고자 하는 대상이 미실트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했다.
만약 미실트를 믿는 마음에 조금의 의심이라도 섞여 있으면 투레스탄의 권능이 실현되지 않는 듯했다.
그 덕분에 나는 오늘 처음으로 미실트의 권능을 직접 불러낼 수 있었다. 사실 도박이긴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미실트가 없으면 정말 죽음 목숨이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믿어준 대가는 조금 전 본 것처럼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나는 잠든 미실트를 보며, 흐뭇함에 웃음이 절로 나오고 있었다. 셀리안 한테 머핀 많이 좀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네.
*
플로어로 돌아온 나는 아직 이름 하나 모르는 초대장 전달 남이 마련해준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엔 지하 감옥처럼 어두컴컴했는데.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는 조교를 위한 온갖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런 건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채찍, 집게, 칼을 비롯한 수술용 도구 같은 살벌한 장비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이런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나는 고개를 들어 여왕벌을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잠에 빠진 채, 벽 한편에 결박되어있었다. 옆에 있는 사슬은 뭔가 싶어서 당겨보니 조작하는 것에 따라 묶여있는 여왕벌의 자세가 변한다.
어우…. 야……. 이거 너무 선정적인 거 아닌가?
옷을 입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리를 쫙 벌린 채 잠에 빠진 그녀의 모습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웠다. 나는 다시 사슬을 내려서 그녀를 원래 자세로 복구했다.
이제 추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 여인의 복종도를 빠르게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안하지만 조금 과격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일어나!”
“꺄아아앗!”
양동이에 물을 퍼 그녀에게 뿌리자 퍼뜩 눈을 뜬다.
“여기 어디야? 너 뭐야!”
비록 소리는 지르고 있지만 낯선 장소에 겁을 먹은 모습이다.
“며칠간 너를 말 잘 듣도록 교육해줄 사람이지.”
“꺄아아악!!!”
어둠 속에서 걸어 나가며 모습을 보이자 그녀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른다. 초대장 남이 준비해준 장비 중에서 가면이 있기에 골라 썼는데, 그게 심적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하얀 가면에 입은 없고 두 눈만 공허하게 뚫린 모습은 나라도 밤늦은 시간에 본다면 엄마를 찾고 싶을 정도니까.
“안 나가져……? 너 지금 무슨 짓 한 거야?!”
게임에서 나갈 생각이었나 보다. 이 게임은 이벤트가 발생 중일 때는 게임에서 나갈 수 없다. 강제로 끌 순 있지만, 다시 접속하기 위해서는 강제로 꺼야만 했다는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며, 다시 접속한다고 해도 큰 페널티를 얻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강제로 끄는 것마저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초대장 남이 강제로 끌 수 없게 장치를 해놨다는데, 여왕벌이 말하는 투를 들어보니 정말로 못 끄는 것 같다.
어떻게 한 걸까? 이거 버그 같은 거 악용한 건 아니겠지?
“날 풀어줘! 내 애들……. 어디 있어……?!”
“다들 널 버리고 도망가던데?”
“거짓말하지 마……!”
도망갔다는 말에 여왕벌이 눈동자가 휘둥그레져서는 목소리가 떨려온다.
“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너 가만 안 둘 거야! 이거 풀어! 당장 풀라고!!
나는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간다.
“꺄아아아!!! 싫어!! 다가오지 마!!!”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묶인 사슬을 철그렁거리며 몸부림친다. 사슬에 묶인 손발이 쓸리며 붉어진다.
“밖에 누구 없어? 나 게임 좀 꺼줘!! 제발……. 부탁이야…….”
눈물을 흘리며 얼굴이 목까지 새빨개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 댄다. 생각보다 너무 무서워하는데……? 사냥터에서 그렇게 비매너 짓 하던 여자 맞아? 혹시, 이 가면 때문에 그러나……?
그녀는 내 행동 하나하나에 호감은 쭉쭉 떨어지고 굴복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흐윽… 흑…….”
그녀가 울부짖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가면을 벗어주었다. 진짜 범죄를 저지르는 듯한 기분이라 기분이 찝찝했음이다.
여왕벌은 가면을 벗은 내 모습을 보더니 확실히 조금 전보단 안정적인 모습이다. 가면에 무슨 효과라도 붙은 건가…….
“돈을 원해? 돈이라면… 줄 테니까 풀어줘……! …누가 시킨 거야 이거? 나, 가만 안 둘 거야아!!!”
“시끄럽네.”
“알았어! 알았어. 소리 안 지를 게 그거 쓰지 마……. 제발……. 으, 흐윽…….”
이제는 가면에 손만 가져가도 기겁을 한다. 말을 잘 듣게 하는 마법의 가면이라 이거지?
여왕벌의 턱을 잡고 올리자 흘린 눈물이 내 손가락을 타고 흐른다.
“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러. 앞으로 넌 그 단어에 익숙해져야 할 거야.”
초대장 남이 나에게 요구한 사항 몇 가지가 있었다. 여왕벌을 훈련시키면서 주인님이라는 말을 입에 붙게 할 것. 남성의 물건에 친숙해지게 할 것. 맞는 것으로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도할 것.
이것만 성공하면 2억 셀을 추가로 지급해준다고 했다.
사실 그 조건을 처음 들었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그동안 조교 흉내만 냈을 뿐이지. 이런 제대로 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조교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만약 의뢰를 받게 된다면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거라는 불안감이 두피를 마사지하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조건을 수락했다. 말을 잘 듣도록 복종만 시켜도 2억 셀. 복종시키는 김에 그의 조건까지 들어주면 추가로 2억 셀. 불과 며칠 만에 현금 5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만지게 해준다는 말은 그냥 넘기기엔 너무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현실이었다면 생각할 필요 없이 거절했겠지만……. 게임이니까 한다. 불법도 아니고 얼굴에 철판만 조금 깔면 되는 일이니까.
“그럼, 주인님이라고 불러봐.”
“이, 미친 새끼야……! 흐윽. 내가 할 것 같아……?”
역시나 거부하는 건가. 솔직히 나도 주인님이라고 불리는 거 원하지 않는다. 부끄럽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건 딱 질색이거든?
그렇지만 돈을 준다는데 못할 게 어딨겠는가? 연기자랑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맡은 배역에 싫은 장면이 나오더라도 열정적으로 임하는 자세. 그것이 진정 프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내가 부르는 것도 아니고 듣는 건데 뭐 어때.
나는 여왕벌의 극렬한 거부에 벗어둔 가면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러자 효과는 즉시 나타난다.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그녀는 훌쩍거리다가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소리로 말한다.
“주, 주인님…….”
귀가 좋아서 이 정도는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말하게 시키는 걸 원하는 건 아니다. 입에 붙도록 제대로 지도할 것을 다시 상기시키며 여왕벌의 고개를 확 잡아 올린다.
“똑바로 말해. ‘주인님 옷 벗겨주세요.’라고.”
“말이 달라졌잖아……!”
“마지막 경고야, 한 번 더 내 말에 토 달거나 거역하면 경고 없이 강제로 널 다룰 거야……. 하지만 말만 잘 들으면 금방 풀어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빨리해. ”
“흑……. 으흑. 이 변태, 쓰레기 새끼……. 흑!”
울고불고하면서도 협박은 무서웠는지 시키는 대로 곧잘 따라 한다.
“주, 주인님. 흑… 옷… 벗겨주세요…….”
“잘했어.”
“으흐윽……. 나한테 이런 취급한 사람 없었어! 이런 사람 없었다고!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아아앙-!”
여왕벌의 울부짖음을 무시한 채 그대로 그녀의 옷 정중앙을 뜯어버렸다.
그러자 그녀의 동공이 커지며 충격에 휩싸인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꺄아아악!! 이 미친 변태 새끼야!! 너! 성폭행범으로 고소할 거야! 나 변호사도 있어! 나 여기서 못 나가게 한 거! 강제로 성폭행한 거! 정신적으로 피해 입힌 것까지 해서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할 거라고!!!”
신고라는 말에, 가슴이 순간 두근거렸다. 계속해도 괜찮은 건가……? 만약 이 여자가 정말 나 때문에 정신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면……?
불안한 마음에 행동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귓속말로 초대장 남의 음성이 들려왔다. 귓속말 아이템이 있는 모양이다.
-‘무시하십시오. 어차피 말뿐입니다. 불과 한 달 전쯤 있었던 판례에 의하면 가상현실에서 발생한 정신적 피해는 기기의 오작동이 아닌 이상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있습니다. VR 및 가상 현실에서 발생한 상황은 현실과 다르며 인간의 뇌파가 그것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진술적 조사 자료를 기기 업체 측에서 제시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숨도 안 쉬고 말하네……. 확실한 건 그냥 해도 된다는 거지?
하기야 가상현실이 처음 나왔을 때 그런 문제로 시끌시끌했으니까. 지금쯤이면 관련법 개정이 됐으리라 본다. 더군다나 이런 큰 게임사에서 그런 걸 신경 안 썼을 리도 없고.
문제없다면 잠깐이지만 날 겁먹게 한 이 여인을 제대로 벌할 생각이다.
얼굴에 가면을 쓴 뒤 각종 도구가 나열된 테이블 앞에 선다.
“어떤 게 좋을까…….”
테이블 위는 여왕벌의 위치에서도 보이기에 두려운 도구에 손을 올릴 때마다 겁먹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철제도구를 건드릴 때마다 울리는 철금성이 심적 공포를 더 크게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이야……. 이런 바늘은 대체 어디에 쓰는 거야? 정보가 열린다.
〈대바늘〉
고통과 쾌락을 줄 수 있는 바늘.
이걸 설마 사람 몸에 쓴다고……?
“아… 하으으……!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흑… 으흑…….”
30cm 정도 되는 대바늘이 있기에, 뭔가 싶어서 집으니 질겁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안 쓰던 존댓말까지 쓰다니… 나도 이런 건 혐오스러워서 쓸 생각 없는데 말이다.
일단 이런 상황에서 대표적으로 쓰이는 게 초와 채찍 아니겠는가? 이건 일반 향초처럼 보이는데.
〈향초〉
최음 성분이 가미돼 있어 심신의 안정과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일단 켜둘까? 향초에 불을 붙이고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려둔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안정을 찾아준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