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07화 (106/147)

<-- 여왕벌 -->                               “당신이 여왕벌인지 뭔지 그 사람 맞지?”

“날 알아?”

“당연히 알지, 당신 싸가지없다는 소문이 밑바닥까지 쫙 퍼졌거든? 그래서 사실 내가 당신 잡으러 온 거야. 근처에 있는 애들까지 죽이고 싶지 않으면, 물리고 당신만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걸?”

“싸가지……?”

“야, 내가 저 새끼 말한 거 잘못 들었냐?”

내 도발적인 말투에 여왕벌 대신 주변의 꿀벌무리가 더 열심히 날갯짓이다. 여왕벌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기만 한다.

“요즘 왜 이리 짜증 나게 구는 애들이 많아?”

“민아야 여기 우리한테 맡기고 넌 사냥하러 가. 오빠들이 처리해줄게.”

“아니, 나 당장 저 새끼 무릎 꿇는 거 보고 싶어. 나 지금 기분 엿 같으니까 누가 쟤 좀 잡아서 스트립쇼라도 시켜 봐. 그래야 풀릴 것 같아.”

“알았어. 저 자식 금방 조져줄게.”

여왕벌이 꿀벌 무리에 채찍질하자 한 놈이 앞에 나서서 투척용 칼을 빼 든다. 암살자 계열인가 보다. 던져라. 정당방위를 할 수 있도록 딱 한 대만 막아줄 테니.

그 순간 놈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러더니 등 뒤에서 기척이 들려온다. 설마 하는 마음에 급히 뒤를 돌았지만, 이미 등골을 깊게 꿰뚫린 뒤였다.

“커억-!”

-“3855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음을 1회 견뎌냈습니다.”

-‘독공격을 저항했습니다.’

나는 후속타가 들어오기 전 재빨리 손목을 털어 심연의 팔찌를 효과를 발동했다.

-‘심연이 당신을 집어삼킵니다.’

“흡?!”

심연의 팔찌를 발동함과 동시에 암살자와 거리를 벌린다. 이제 심연이 사라지기 전까지 이곳은 내 필드다.

솔직히 당황했다. 저놈이 갑자기 저렇게 공격해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직 많은 유저와 전투를 겪어 본 게 아니다 보니 적들이 어떤 기술로 공격해올지 감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터.

내 기술은 어디에서 평범하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대처 방법도 생소할 것이다. 그를 증명하듯 벌써부터 꿀벌들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거 뭐야?!”

“연막탄이야?”

“처음 보는 마법인데?”

그래, 그동안 몇 차례나 써봤지만, 아직 심연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야! 나 어두운 곳 싫어!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민아야! 너 어딨는데?!”

“아 몰라!!! 나 여깄으니까! 빨리 여기로 와!”

여왕벌이 나 여기 있소 하면서 위치를 알리는구나. 나는 그녀가 내뱉는 파장에 따라 사냥 본능을 키워가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여왕벌은 겁에 질려 채찍을 꺼내 든다. 주변에 애들이 몇 명인데 저거 휘두르면 괜한 사상자만 나올 텐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마구잡이로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차아아악-!! 공기가 매섭게 찢기는 소리와 함께 여왕벌 근처에 서 있던 꿀벌 3, 4마리가 피해를 입었다.

이런 젠장……!

“끄아아악!!”

“아아악!”

“윽! 뭔가 내 볼을 스쳤어!”

광역 기술인가보다. 눈치채고 거리를 벌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어…….

여왕벌 근처에 다다른 나는 채찍 쥔 그녀의 손목을 재빨리 잡아챈다.

“꺄아아악!!! 누구야!!”

“민아야. 오빠야. 걱정하지마.”

“오빠……? 어떤 오빠?!”

어떤 오빠인지 내가 알 게 뭐야. 정확한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나를 믿고 따라온다.

“진짜 아무것도 안 보여! 빨리 내보내 줘!”

나는 여왕벌의 손목을 잡고 유저가 적은 심연의 외곽으로 빠진다. 심연이 사라지기까지는 최소 7분에서 길게는 15분까지 매번 다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그 안에 여왕벌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납치한다.

-‘페로렌 아가씨! 제가 알려주는 위치로 우올로 좀 옮겨줘요!’

-‘왜 또 나야? 나, 이거 조종 어렵단 말이야……!’

-‘믿을게요!’

드웍프가 없는 지금. 페로렌이 우올로 조종해본 유일한 경험자이기 때문에 불안하더라도 맡길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내가 지정한 장소로 우올로가 정확히 내려온다. 나는 심연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우올로를 향해 뛰었다.

“야! 네가 왜?! 얘들아!!!”

여왕벌이 뒤늦게 나를 알아채고 벗어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셀리안 연주!!”

미리 준비시켜 둔 셀리안의 연주가 시작되고 여왕벌은 급격한 졸음이 몰려오는지 눈이 반쯤 감긴다.

“나 여기 있……. 어…….”

수면제를 사발로 들이킨 사람처럼 힘없이 늘어져 쿨쿨 코를 고는 여왕벌의 모습에 셀리안의 연주 효과를 다시금 실감한다.

급히 우올로를 띄우고, 여왕벌을 우올로 감옥에 잘 묶어 놓았다.

“오빠……. 정말 이런 거 해도 괜찮을까……?”

갑판으로 올라오자마자 하연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온다.

“괜찮아, 어차피 나쁜 인간이고 때 되면 풀려날 거야.”

“나도 게임이니까 말리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오빠 이미지가 안 좋아질까 봐.”

말로는 나를 걱정한다고 해도, 본인이 노예시장에 팔려간 기억이 있다 보니 아직은 피해자를 걱정하는 눈치다. 다 내가 자처한 일이니까 이런 경험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긴 하다.

“미안해. 걱정시켜서. 하연이 네가 하지 말라면 안 할게.”

아마 이렇게 말해도 하연이라면 말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연이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역시 내 의견을 존중해준다.

“아니야……. 불법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오빠 이걸로 돈 벌고 있는데 내가 그걸 말리는 건 아닌 것 같아. 대신……. 안전하게만 해줘. 들어보니까 앙심 품고 현실에서 보복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서…….”

“그래 알았어. 위험하게는 안 할게.”

하연이를 안아주면서 안심시키고는 플로어로 향하는 방향을 잡기 위해 사령실로 들어섰다.

*

파아앙-! 적의 우올로에 달린 대형 화포가 무지막지한 불길을 내뿜으며 우리 갑판을 거침없이 때려 부순다.

-‘우올로가 171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아 씨……. 안 되는데…….”

어느덧 연기가 피어오르는 갑판 위를 보니 난감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다. 앞으로 저런 공격을 두 방 더 허용한다면 그대로 공중분해 될 판이다.

“뒤에 불붙었어! 셀리안 양동이 어딨어?”

“아가씨! 여기 있어요! 제가 끌게요!”

“나도 도울게요!”

다들 열심히 돕고 있지만, 전황이 너무도 안 좋다. 거리를 벌린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

적의 우올로는 우리 편의 우올로와 체급 상으론 엇비슷해 보인다. 그렇지만 티어 자체가 다른 건지 이동속도부터 공격력까지 우리 우올로의 모든 성능을 압도하고 있다.

우리 쪽에서도 한참 전부터 반격을 시도하고는 있다. 그러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제 고작 베리어만 부쉈을 뿐이다.

안 되겠어. 이대로라면 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내가 직접 나서야 해.

나는 점차 가까워지는 적의 우올로를 바라본다. 에키 던전 심연 속에서 재빨리 벗어난 몇 명의 유저와 NPC로 보이는 선원이 빽빽하다. 저들 사이로 뛰어드는 건 자살을 기도하는 일이라지만…….

믿는 구석이 있기에 적선을 향해 주저 없이 몸을 날린다.

“흐아아압!!!”

약간은 멀다. 그러나 추진력을 받아 공중을 한 번 더 박차고 뛰니 충분히 닿을 거리다.

피슈우-!

“저기 뭔가 온다!”

“야! 저 새끼다! 잡아!”

두 팔 벌려 나를 마중하는 이들에게 아이셀을 뻗어 누적시켜 놓은 피해를 그대로 방출한다.

콰아아아앙-!!!

공중에서부터 엄청난 범위로 터져 나오는 아이셀의 얼음 폭발에 선원 NPC의 상당수가 끔찍한 피해를 입는다.

“끄아아아악! 내 다리……!”

“무슨 캐스팅도 없이 저런 마법을……?”

피해 규모로만 따지면 40여 명의 선원 중 절반은 얼음 조각으로 변해 공중으로 흩날렸다. 개중엔 유저도 있을지 모른다. 역시 어마어마한 파괴력이다.

“콜록! 콜록! 야 도망 못 가게 붙잡아!”

“쟤 아까부터 냉 속성 공격 쓰거든? 저항 올려줄 게 얘들아!”

아이셀의 폭발로부터 살아남은 적들이 나를 빙 둘러싼다. 에키 던전에 있던 몇몇이 보인다. 한 명의 유저가 얼음 저항을 올려주는 마법을 써주니 기세가 등등해 보인다.

만약 이 녀석들도 내 척추를 노리던 암살자 정도의 수준이라면 내가 쉽게 이기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좋은 말로 할 때 민아 풀어줘라. 개박살 나고 싶지 않으면.”

“얘들아 그럴 생각이 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혼자 왔겠니?”

“하기야 네가 생각이 있었으면 여길 혼자 오진 않았겠지.”

나는 한 명. 적들은 다해서 20명? 30명? 꽤 많다. 사실 조금 더 많았으면 했는데 아쉽다. 한계가 어느 정도일지 제대로 시험해 보려 했는데.

“근데 사실 나, 여기 혼자 온 건 아니거든.”

“뭔 소리 하는 거야?”

“네 말대로 내가 생각이 있었으면 적의 소굴에 혼자 왔겠니?”

자신감에 차서 소리치자, 저마다 자기 옆 사람 얼굴을 쳐다본다. 나 말고 누가 또 있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나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간 끌지 않겠다는 태도는 아주 현명하다.

초록빛을 휘감은 창 날이 거칠게 회전하며 심장을 찢어발길 기세로 짓쳐들어온다. 나는 아이셀을 들어서 막는 대신에 한 여인에게 명령을 내렸다.

-‘미실트. 이리 와서 나를 지켜라.’

-‘진성각인의 효과로 ‘미실트’를 불러옵니다.’

복종도 80이상의 캐릭터에게 사용할 수 있는 진성각인의 특수기술로 미실트를 전장에 소환한 그 순간이었다.

내 주변에서 눈이 아플 정도로 환한 빛무리가 화악-! 뻗어 나왔다. 천사의 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포근한 기운이 전신을 감싸며, 여인의 목소리가 귀를 사뿐히 덮어준다.

“내가 너를 지켜주마.”

햇살보다 따사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고는 빛 섬광이 시야 끝에서 끝까지 이어졌다. 이후로는 적들의 비명이 끔찍하게 울려 퍼졌다. 아니, 실제로는 어떤 비명도 나지 않았다. 빛이 사라지고 난 뒤 보이는 광경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을 뿐.

“헉……!”

이 정도로 강하단 말이야……?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뭉개지고 뒤틀린 적들. 오죽하면 고어 효과를 끄고 싶을 정도로 잔혹하게 펼쳐진 현장 앞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1분도 안 될 법한 시간에 일어난 참상.

우올로에 남은 생존자는 나와 미실트 이외엔 없었다. 우올로 어딘가에 숨어있는 적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화악-! 미실트가 다리를 추켜올렸다. 그 후……!

콰아아아앙!!!

다리를 내려찍는 순간 우올로 아래층에 있는 모든 집기들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직! 우지직-! 우올로의 갑판이 뒤틀리며, 나무 살이 괴이한 형태로 튀어나온다. 간간이 절규에 가까운 살려달라는 외침도 들려온다.

이윽고 우올로의 선체가 쩌적-! 갈라졌다. 이제 아마 이 우올로에서 살아남은 이는 나와 미실트 뿐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미실트는 멈추지 않고 공격을 감행한다.

“으윽…….”

위태롭게 흔들리는 우올로 안에서는 멀쩡히 중심을 잡고 서기가 힘들다. 나는 적의 우올로가 완전히 박살 나기 전에 미실트를 불러세웠다.

“미실트! 고마워! 이제 됐어.”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미실트가 내 말을 인식했는지 곧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어?! 안돼!”

나는 서둘러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자칫 뒤틀린 갑판에 밀려 밖으로 떨어질 뻔했다.

미실트의 몸에서 뿜어지던 광채가 서서히 사라져간다.

나는 절반이 쪼개져서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우올로에서 미실트와 함께 가까스로 탈출했다.

“오빠, 괜찮아? 미실트는 어떻게 된 거야?”

“그냥, 힘을 많이 써서 잠든 것 같아. 미실트 덕분에 살았네…….”

신들의 신이라는 투레스탄의 13번째 사도 미실트. 내가 그녀의 능력을 제대로 알 게 된 건 불과 며칠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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