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06화 (105/147)

<-- 여왕벌 -->

레벨 100 수준의 필드 던전 에키. 이곳은 중상위 레벨의 유저들이 거쳐 가는 유명한 던전 중 하나였다. 이곳의 등장하는 몹은 ‘플로에키’, ‘테로에키’ 라는 괴수형 몬스터였다.

몹 수가 상당히 많고 경험치가 짭짤한 반면, 몹의 이동속도는 타 사냥터에 비교했을 때 기어 다니다시피 하는 수준이라 원거리 캐릭터들의 놀이터에 가까운 던전이었다.

단, 몹이 리젠 되는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게 흠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유저가 많을수록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두 명의 마법사로 이루어진 파티가 에키 던전에 들어섰다.

“레이레이님 우리 저기 가서 사냥해요. 저기 몹 많은 것 같아요.”

“네, 가요.”

평소 같았으면 많은 사람으로 몹 구경하기도 힘들었을 테지만, 오늘따라 왠지 몬스터 보다 유저의 모습을 더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곳에 처음 방문한 그들은 원래 유저가 적은 건지, 아니면 오늘이 유독 적은 날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제가 먼저 어그로 끌게요.”

“네.”

한 명의 유저가 스태프를 휘두르자 끄트머리에 달린 보석에서 불똥이 크게 튀었다.

“꾸우우우우!!!”

불똥에 맞은 플로에키 하마 같은 몸집에 걸맞지 않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자신을 공격한 마법사의 뒤를 엉금엉금 뒤따랐다.

이동속도는 느리지만, 단 한방으로도 행동불능에 빠질 수 있기에 마법사는 열심히 도망치면서 주변의 다른 플로에키들을 한대 씩 치고 빠졌다.

약 20마리 정도 되는 플로에키가 마법사의 도발에 모여들었다. 그 모습이 흡사 피리 부는 사나이를 연상케 했다.

곧이어 가만히 보고만 있던 한 명의 마법사가 영창 하던 주문을 시전했다.

“하아아압!!”

플로에키 무리는 늪에 빠진 것처럼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어그로를 끌던 마법사는 그저 신기하게만 바라봤다.

“와……. 애들 기본 이속이 느려서 그런가? 거의 못 움직이네? 전 일부러 안 배웠는데 그 마법 엄청 좋네요.”

“제가 이날을 위해 이 마법을 열심히 갈고 닦았죠! 이 던전에 한해서 최강마법이나 없대요. 그러니까 당분간 절 모시고 다니세요.”

“하하, 네 알겠슴다. 이제 느긋하게 딜 넣어볼까요?”

그들이 마음 놓고 강력한 마법을 영창 하려던 그때 한 사내가 다가와서는 정중한 말투로 부탁했다.

“님들 죄송한데 여기 자리 있거든요? 다른 곳 가주실래요?”

말투만 정중했을 뿐 그 내용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에 필드 던전에서 자리 타령이라니……. 누군가 본다면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경을 칠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두 마법사는 공손하게 받았다. 괜한 다툼으로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자신들이 이곳에 규칙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도 가진 듯했다.

“그럼 저희, 이것만 잡고 자리 옮길게요.”

두 마법사가 모아놓은 몹을 처리하기 위해 마법을 영창하며 조금씩 딜을 넣었다. 그러던 와중 한 명의 유저가 나타나더니 그들이 애써 모아놓은 플로에키를 모조리 때려잡기 시작했다.

마법사 유저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저기요……! 그거 저희가 잡던 몹인데요?”

플로에키를 사냥한 유저는 자신의 채찍을 돌돌 감아 말아 쥐고는 말했다.

“어쩌라는 거야? 여기 내 자린데? 자리 스틸 범들이 말이 많아. 그리고 여기부터 보이는 영역은 다 우리 자리니까 니네 수준에 맞는 던전으로 꺼져. 딜도 안 나오는 것들이 꾸역꾸역 잡으려고 애쓰지 말고.”

분통 터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다. 이후 나타난 십여 명의 사나이가 당장이라도 PK 걸 기세로 몸을 밀어붙였기 때문이었다.

“꺼져라. 우리 자리니까. 사냥할 거면 계속해. 다 스틸해 줄 테니까.”

불량배들이 따로 없었다. 그들은 채찍을 든 한 여인을 중심으로 필드 사냥터를 독점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아야. 저쪽에 몬스터 몰아놨어 가자.”

“어, 땡큐.”

민아라고 불린 여인이 움직이자 그 뒤를 기차 놀이하듯 남자들이 따랐다.

여왕벌민아. 아이디에 걸맞게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남자들이 뒤를 따랐다. 그녀는 반짝반짝 잘 닦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세로 게임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하는 게임마다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 길드를 차리고 항상 뭉쳐 다니곤 했다. 그녀는 다수라는 이점을 악용해서 캐릭터를 빠르게 성장시키곤 했는데, 이 때문에 이미 다른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

나는 우올로 위에서 에키 던전의 상황을 주시했다. 저기 보이는 저 여자가 의뢰 목표라는 말이지? 진짜 매너 없네.

[퀘스트 발생! – 여왕벌 사냥][난이도: 매우 높음]

‘여왕벌민아’라는 캐릭터를 포획해, 의뢰인에게 전달하세요.

〈목표〉

1. ‘여왕벌민아’를 포획하세요.

〈추가목표〉

여왕벌 민아 포획 후 조교를 마치세요.

〈보상〉

200,000,000셀

퀘스트 내용은 별거 없다. 저기 보이는 채찍 든 여자를 포획하는 것. 단순 의뢰라 그런 건지 오로지 보상으론 돈뿐이지만,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압도적인 보상임은 틀림없다.

이거 성공하면 월급 버는 거야. 드웍프 잡아서 죽여놓는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그럼 문제는 이제 어떻게 저 여자를 잡느냐 이건데……. 저기 있는 애들이 전부 유저인데다가 레벨도 100을 훨씬 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여왕벌이라는 유저는 몬스터를 4, 5대 정도 치니까 죽는 반면, 저들은 기술 한두 방으로도 쉽게 보내 버린다. 오히려 주변을 따라다니는 저놈들이 훨씬 강하다.

보아하니, 여자라면 무조건 좋다고 따라다니면서 레벨업이라도 시켜주는 하이에나 무리들 같은데……. 왜 하필 의뢰가 유저를 대상으로 나온 거야? 저런 애들하고 얽히면 피곤한데…….

그나마 이 게임은 커뮤니티 사이트가 없어서 다행이지, 만약 있었으면 그런대서 친목 다지면서 여론몰이나 하고 있었을 종자들이다.

“미실트.”

“응.”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네 생각을 말해 봐.”

“머핀 줘…….”

그놈의 머핀 타령……. 하연이가 말을 꾸준히 가르친 덕분에 이제는 말을 어느 정도 하지만, 입만 열면 한다는 소리가 머핀 달라는 말이다. 셀리안이 만든 머핀에 한 번 꽂히더니 밥도 안 먹고 이것만 먹는다.

그래도 그 덕분에 별도의 조교 없이도 복종도 올리긴 쉬웠다. 벌써 80%가 넘었으니……. 세상에 몸으로 하는 대화 없이 음식만으로도 애정이 쭉쭉 올라가는 캐릭터는 처음 봤다.

나는 셀리안이 만들어준 머핀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미실트 앞에 보였다. 역시나 환장하면서 손을 뻗는 미실트.

“안 돼. 기다려.”

나는 그녀의 행동을 당장 중지시켰다. 여전히 머핀에 시선이 꽂힌 채 내 말에 복종한다. 말을 안 들으면 도로 집어넣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

그녀가 일어난다.

“앉아.”

그녀가 앉는다.

그 이후로도 손, 발, 재롱 등을 요구하며 미실트를 훈련시켰다.

“뒤집어. …옳지 잘했어. 미실트.”

“어우, 오빠!”

몸을 바닥에 뉘인 미실트의 배를 칭찬하듯 살살 긁어주자 옆에서 지켜보던 하연이가 내 등짝을 사정없이 때린다.

“아오! 하연아……! 아파!”

“미실트가 개도 아니고 그런 것 좀 하지 마!”

아직 시킬 게 많았지만 하연이의 눈총으로 더 했다가는 등짝이 남아나질 않겠다. 나는 머핀을 미실트에게 쥐여주고는 여왕벌 납치 계획을 생각했다.

하아……. 그래도 이런 쪽에선 드웍프가 머리를 잘 굴렸는데……. 날 배신만 안 했어도 내 오른손으로 써줄 생각이었건만, 어리석은 꼬맹이 같으니…….

*

작전 따위 귀찮다. 유저를 상대로 하찮은 작전이 먹혀들 리도 없고. 그냥 정공법을 노리자.

잠깐 그 전에…… 에키인지 뭔지 저거 한 마리만 잡아 볼까? 그래야 상대의 전력과 나를 비교할 수 있을 테니.

“흐압!!”

“꾸우우우우!”

지팡이로 때리자 보기와 달리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집채만 한 몸집으로 나를 향해 돌진한다.

-‘2,300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느리긴 느려도 꽤 강력한 무력을 자랑하는구나. 그럼 맷집은 얼마나 좋은지 볼까!

“하아압!! 엇?!”

달려들기 위해 다리를 박찬 순간 엄청난 추진력이 생긴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플로에키를 향해 당황해서 지팡이를 휘두르자, 거대한 몸집이 내 힘에 밀려 뒤로 발라당 넘어간다.

와…….

심연에서 산 아이템. 이게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이야…….

맨발에는 착용할 수 없으며, 착용 시 10초에 한 번 추진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공중에서 사용할 경우 이단 점프도 가능하다는데, 잘 샀네. 호기심에 구매하긴 했다만 오백만 셀이면 충분히 괜찮은 값인 것 같다.

“꾸우우익!!”

근처에 떨어져 있는 플로에키 두세 마리를 잡아본 결과 얼추 4, 5방이면 쓰러진다. 피해량만 놓고 보면 내가 그 여왕벌이라는 여자랑 엇비슷한 수준인가 보다.

“저기요. 여기 자리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주세요.”

피해량을 따져보고 있는 와중 한 사내가 다가온다. 여왕벌의 수족인가 보다. 조금 전까지는 근처에 보이지도 않더니 슬슬 몹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기어들어 오는 꼬락서니 봐라.

“필드 던전에 자리가 어딨습니까? 그쪽이 전세라도 내셨어요?”

“네, 전세 냈는데요.”

저렇게 말하니까 말문이 턱 막히네. 이 게임에 내가 모르는 자리 전세시스템도 있었나 보다. 아주 웃기고 자빠지셨다.

“아, 전세 내셨구나. 이 게임에 전세시스템 같은 거 없는데 사기당하셨네요. 그쪽. 그러게 잘 알아보고 내시지 그랬어요. 멍청하게 왜 그러셨을까? 빠가사리도 아니고…….”

나는 그의 신경 긁는 말을 내뱉으며 일부러 사냥을 계속했다.

“계속하겠다는 거죠? 맘대로 하세요. 그러면.”

그가 태연한 척 말하며 내 주변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길드원을 호출했는지 곧 몇 명의 사내가 오더니 의도적으로 내 주변의 몹들만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이,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앞으로 사냥 힘들어지기 싫으면…….”

한번 해보자는 거지? 어차피 난 사냥에 관심 없었어.

나는 아이즈를 호출해서 바닥을 꽁꽁 얼리고 놈들이 움직이는 방향마다 의도적으로 얼음벽을 생성해서 방해 공작을 펼쳤다.

“아 뭐야! 바닥!”

“이 얼음 뭐냐?”

그들은 얼음 바닥에 미끄러지고 얼음벽에 길이 막혀 온갖 짜증을 부린다.

아이즈는 각인으로 인해 내 명령대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시스템상 아이즈의 기술을 내 공격으로 판단하진 않는다. 그 때문인지 직접적인 공격 명령만 아니면, 이 정도 방해에는 PK 경고가 뜨지 않는다.

그러니 이 이점을 적극적으로 살려, 놈들의 사냥을 최대한 방해할 것이다.

“여기 왜 이래? 뭐 있었어? 웬 얼음이…….”

“민아야. 저 새끼가 자리 있다는 데도 안 비키고 일부러 방해한다니까?”

드디어 여왕벌께서 행차하셨나 보구만.

그녀는 나를 향해 다가온다. 우선 저 여자한테 각인을 새겨야 하는데 어떻게 새기지……? 주변의 적들을 다 쓰러뜨리기엔 너무 위험해 보이고……. 아, 그 방법이 있지…….

“야, 너. 우리 길드에 들어올래?”

엥? 자리 비키란 소리나 할 줄 알았더니 전혀 다른 말을 하네? 따라다니던 사내놈도 나처럼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는 듯 옆에서 한마디 한다

“민아야! 왜 저런 놈을 길드에 넣겠다는 거야?”

“그냥, 잘 생겼잖아?”

그럼 그럼, 내가 이걸 얼마나 공들여 만든 캐릭인데. 알아봐 주는 거 보니 안목은 있는 싸가지 인 것 같구나.

“저게 뭐가 잘 생겨? 캐릭터잖아 그냥.”

“그럼 너넨 왜 캐릭터라도 잘 생기게 못 만들었어?”

“그래서 진짜 쟤 길드에 넣는다고? 그것 좀 아닌 것 같은데…….”

극성인 사내들의 반발에 여왕벌도 민심을 꺾을 순 없었는지 길드에 날 넣겠다는 말은 번복했다. 듣자 하니 친목 길드인 것 같은데, 저런 길드에 들어가는 건 나도 싫다.

만에 하나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건 내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 그럴 뿐 다른 의도는 없을 것이다.

그럼 길드 권유가 취소됐으니 예정대로 그 방법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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