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 속으로 --> “저기 여긴 뭐 하는 가게죠……?”
“찾아온 네가 알겠지! 내가 그걸 알려주랴?”
그것도 그렇긴 한데 전혀 감을 못 잡겠다.
노인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모르겠다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궁금증을 정확히 집어서 하나씩 풀어주기 시작했다.
“첫째, 여긴 네가 궁금한 걸 알려주는 가게다. 둘째, 돈은 걱정하지 마라. 네놈처럼 돈 한 푼 없는 거렁뱅이라고 해도 정보는 얻어갈 수 있어.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얼마나 빨리 얻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셋째, 이곳이 처음이라고 신기한 눈으로 이곳저곳 둘러보고 다니면 사기꾼 놈들의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야! 네놈들처럼!!!”
갑작스러운 노인의 호통에 우리는 하나같이 움찔거렸다. 확실히 보통 노인은 아닌가 보네. 내가 돈이 없는 것과 이곳에 처음 온 것까지 다 알고 있잖아?
“그럼 뭐가 궁금해서 왔는지 들어보지.”
“저기……. 드웍프라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그놈을 찾고 싶은 거냐? 아니면 그놈이 가져간 물건을 찾고 싶은 거냐?”
물건을 가져갔는지조차 알고 있어……? 노인의 예리한 눈빛 앞에서 내 모든 게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이런 건 무슨 수로 알고 있는 거야? NPC라고 해도 그런 게 가능한 건가?
일단…….
“둘 다 찾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하나부터. 여기로 찾아가 봐. 네가 원하던 것 중 하나가 있을 테니. 다른 하나는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나는 그가 건넨 종이를 받아 든 채 가게를 빠져나왔다.
*
“본질 자체를 조율하라고……?”
“아까부터 뭘 혼자 중얼거려?
“응? 아, 아니야. 아무것도…….”
페로렌은 그 할아버지한테 질문이 있다면서 조금 늦게 나왔는데, 그때부터 혼잣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나는 종이에 적힌 장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알려준 그 장소가 저기인 거 같은데……?”
장소에 들어가니 공중에 수백 대에 가까운 우올로가 빛 샐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지금껏 많은 우올로를 봐왔지만, 여기 우올로는 어딘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특이한 모양의 우올로는 몇 번 봤어도 UFO처럼 완벽한 원형의 우올로는 여기서 처음 볼 정도니 말 다 했지.
“뭘 님! 저기 봐요! 우리 우올로에요!”
셀리안은 땅에 내려와 있는 우올로 중 한 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정말이다.
우올로 정보를 켜보니 틀림없이 우리 우올로다. 저게 여기 있다는 것은 드웍프도 이 근처에 있다는 거겠지?
나는 우올로 근처로 다가갔다. 한 명의 사내가 내 우올로 앞에서 분해인지 조립인지 모를 짓거릴 하면서 뚝딱거리고 있었다.
“저기요. 내 우올로 가지고 뭐 하는 짓입니까?”
“뭐? 남의 가게에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이거 내 우올로라고요.”
“이게 왜 당신 우올로라는 거야? 엄연히 내 돈 주고 산 내 우올로인데.”
드웍프 이 녀석이 팔아넘긴 게 확실하구나…….
“하아……. 누가 당신한테 이거 팔았죠? 당신한테 우올로 넘긴 사람 어딨어요?”
“판매자한텐 관심 없어. 난 오직 물건에만 관심 있지.”
“잘 들어요! 그 조그만 자식이 내 우올로를 훔쳐서 당신한테 팔아넘긴 거라고요! 당신 지금 내 물건을 가지고 장물 거래를 한 거라고요. 알아요? 좋게 말할 때 빨리 잠금장치 풀고 돌려주시죠!”
그가 망치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낄낄거린다.
“당신 여기 처음이지? 여긴 장물 거래가지고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눈앞에서 대놓고 빼앗은 물건 팔아도 괜찮은 곳이 여기라고. 그러게 이렇게 되기 전에 간수를 잘했어야지. 안 그래?”
“그래서 못 돌려주시겠다?”
“돌려받고 싶으면 돈을 내.”
여긴 빛도 없고 법도 없는 그런 곳이란 말이지? 대충 감이 오네.
“뭐야? 그 막대기는……?”
“당신 말대로라면 빼앗아도 상관없다는 거잖아? 못 돌려주겠으면 직접 빼앗아 줄게.”
“피차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고.”
협박하는 말투로 다가가도 그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뭔가 있나? 주변에 다른 기척은 안 느껴지는데…….
일단은 제압이 먼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간다.
“움직이지 마.”
그러나 그의 말 한마디에 움직임을 즉시 멈춰야만 했다. 그가 든 총구가 조명 빛을 예리하게 반사하며 내 미간을 정확히 노리고 있다.
예전에도 한번 총잡이를 본 적 있지. 그게 이 밑바닥에서 나온 총이었나?
“참고로 말하는데, 이거 웬만한 마법보다 강력한 무기라고. 얌전히 뒤를 돌아 내 가게를 나가줬으면 좋겠어. 뒤에 이쁜이들 다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마법보다 강력하다니 그것참… 무서운데……?”
“당연히 무서워해야지. 지상 촌놈들이 가진 무기랑은 차원이 다르거든?”
“근데 그건 쏠 수 있을 때 얘기 아니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당연히 쏠 수 있…….”
그 순간 총구를 잡은 그의 손에 냉기가 흘러들었다. 짜자작-! 방아쇠에 얹은 손가락부터 시작해 손목까지 한순간에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끄어어어악-!!!”
피부가 세포 단위로 얼어붙는 느낌에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며 아이즈를 불러들였다.
“잘했어. 아이즈.”
“아이!”
아이즈의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 좋은 표정을 짓더니 서서히 내 몸속으로 스며든다.
그는 앞에선 내 모습을 보더니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아직도 쏠 수 있다고 생각해? 어디 한 번 쏴봐.”
“크으으으윽……!”
그의 총 끄트머리를 잡아, 내 미간 가까이 끌어당겨도 그는 비명만 지를 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쏠 생각 없나 보네. 그럼 내 차례야.”
지팡이를 들어 그의 팔을 겨냥한다. 내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그의 호흡이 더욱 가빠진다.
“너 나한테 이러는 거 정말 큰 실수하는 거야……! 난 이 바닥 인맥이 넓다고! 내 손이 부러지면 움직일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괜한 사람 움직이게 하지 말고 우올로만 돌려달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워? 손 하나 잃는 것보다 돈 몇 푼 잃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어?”
“네 작은 행동이 플로어에선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 앞으로도 계속 플로어에 발붙이고 싶다면 이런 행동은 조심하는 게 좋을걸!”
혓바닥 길게 여러 가지 말들을 쏟아 내지만 결국은 못 돌려주겠다는 의미다.
“마지막 기회야. 불필요한 말 생략하고 돌려준다. 못 준다. 로만 대답해.”
“너야말로 자신 있으면 내리쳐봐 어디!”
그는 나를 보는 눈에 힘을 빼지 않고 끝까지 자기 고집을 고수한다. 하찮은 자존심으로 손을 잘라낸다는 선택을 하다니…….
“그럼 사양 않는다.”
“크으읍!!
핑-! 지팡이를 내려치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사내로 인해 내 행동은 원하던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플로어에 입성하자마자 화려한 데뷔식을 치르려고 하시는군요.
“당신은…….”
나에게 검은 초대장을 건넸던 바로 그 사내다. 그는 팔뚝 길이의 짧은 완드로 내 지팡이를 막아 내고 있었는데, 마법진 같은 형상이 바로 앞에 나타나는 걸로 봐서는 마법사 계열인가 보다.
“왜 방해하는 거죠? 당신 아는 사람이에요?”
“방해라기보다, 당신이 필요해서 도와드리려는 겁니다. 아무리 법에서 자유로운 곳이라 해도 어느 정도의 규칙이 없으면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운 곳이 될 테니까요.”
그는 내 대신 우올로에 대한 금액을 지급하고 우올로를 나에게 돌려줬다. 원래 내 물건을 돌려받기 위해 금액을 재차 지급한다는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나로서는 손해 볼 것 없으니 감사히 받았다.
“그래서 그 큰 금액을 들여가면서까지 절 도와준 이유가 뭐죠?”
“당신이 아직 플로어에 적응이 안 된 듯하여 의뢰를 하나 맡길까 합니다.”
“의뢰요? 내용은 뭐죠?”
“당신이 가장 잘하는 걸 해주시면 됩니다. 마스터께서 당신이 며칠 만에 왕녀를 조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흥미를 보이셨습니다. 이번에 할 일도 비슷합니다. 한 명을 납치해서 말 잘 듣도록 조교 해주시면 됩니다.
납치해서 조교라니……. 의뢰 내용만 보면 나 완전 쓰레기처럼 살고 있나 본데……? 해온 짓이 있으니 전혀 아니라고 말 못 하겠지만…….
“의뢰라면 보상은 있나요?”
“착수금 1억 셀. 의뢰를 마치면 2억 셀을 더 드리겠습니다.”
착수금 1억에 2억 셀이면 총 3억 셀을……?!
“하겠습니다.”
안 시켜준다면 떼를 써서라도 받아가야 할 의뢰다. 나는 그의 의뢰를 수락하고 제대로 구경 못 한 플로어를 둘러보기로 했다. 드웍프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
플로어의 장소를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바닥 시장이라는 장소에 방문했다. 시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꽤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그런데 더욱 신기한 건 윗사람들은 이곳에 대한 존재 자체를 거의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다들 알고 있는데 언급을 안 하는 건가?
“무기 소질 부여해드립니다! 나오는 소질에 따라 가격협의 합니다.”
“노예 팝니다! 값싸고 좋은 노예 있어요!”
노예도 길거리에서 파네……. 지상에서는 개인이 나와서 저렇게 따로 노예를 판매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게 개인 노예상이다.
“뭘! 나 잠깐 저 가게 한 번 둘러봐도 될까?”
페로렌이 아까부터 한 가게를 주시하더니 꼭 가고 싶은 얼굴로 내 팔을 잡아끈다. 지상이었다면 혼자 보냈어도 상관없지만, 여긴 분위기부터가 혼자 다니면 잡아 먹힐 것 같은 느낌이라 그녀와 함께하기로 했다.
‘심연’가게 이름이다. 여긴 간판에 적힌 이름만으로는 뭘 파는 곳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페로렌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창가에 진열되어있는 상품에 관심을 보인다.
겉보기에는 페로렌이 세공할 때 쓰는 확대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신기한지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아, 어서 오세요! 물건 보러 오셨나요?”
곧 카운터에서 한 소녀가 작은 드라이버를 손에 쥐고 걸어 나왔다.
“저, 이것 좀 볼 수 있을까요?”
소녀는 페로렌이 가리킨 확대경을 진열대에서 꺼내주었다. 페로렌은 확대경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할아버지가 쓰시던 거랑 똑같아……! 우리 할아버지가 쓰시던 건 부서졌는데……. 저기! 이거 혹시 여기서 만든 건가요?”
“네, 여기서 파는 제품은 전부 저희가 직접 만들어요.”
페로렌은 뭔가 한참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소녀에게 말했다.
“저……. 이거 주세요!”
“혹시 세공 일을 하시는 분이면 같이 살만한 도구들이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네……! 보여주세요.”
페로렌은 마치 보물섬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저렇게 흥분한 표정은 또 처음 보네.
*
나는 페로렌의 세공 도구와 처음 보는 이상한 장구류 하나를 사서 가게를 빠져나왔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미안하지만 다신 올 일 없을 것 같네요…….
기분 좋게 마중하는 소녀의 인사를 건네받으며 든 생각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로렌이 산 세공 도구를 사는데 무려 2,400만 셀이나 들었다.
그뿐 아니라 내 신발에 부착하는 이상한 장구류까지 사는 바람에 총 2900만 셀이라는 거금이 들었다. 특별한 기능이 있어서 그렇다는 건 알겠지만, 이건 비싸도 너무 비싸잖아…….
선급 받은 돈 날아가는 거 정말 순식간이구나.
“미안해……. 나 때문에 돈 많이 써서…….”
“하하, 아니에요. 아가씨. 내가 아가씨를 위해 그 정도도 못 해 드리겠습니까?”
페로렌은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눈치다. 본인도 이렇게 비싼 금액이 들 줄 몰랐나 보다.
본디 페로렌 같은 자산가에게 이 정도 금액은 한 끼 식사비 밖에 안 될 테지만, 저렇게 미안해하는 걸 보면 그동안 여행하면서 돈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깨달은 것 같다.
그래도 저 도구를 이용해 아이셀을 업그레이드해준다면야 그리 아까울 것도 없다.
생각해보니까 저 가게 이름이 심연이었지……? 내 심연의 팔찌도 혹시 저 가게에서 만든 건가……? 한 번 물어볼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