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04화 (103/147)

<-- 심연 속으로 -->                               “무슨 편지야?”

“옷 제작 의뢰 들어왔어.”

최근 하연이의 재봉 기술이 많이 좋아졌는지, 알게 모르게 전서구로 맞춤제작 의뢰까지 들어오는 모양이다.

“멜시엘 남작 부인 이번에 또 챔피언 전 치르나 봐. 아마 이길 것 같아서 새로 옷 만들어 주려는 것 같아.”

“오, 그래……? 이야, 챔피언 그 녀석 누군지 참 부럽네.”

“챔피언이 왜……?”

“어? 아……. 네가 만들어주는 옷 입게 될 건데, 당연히 부럽지.”

내가 멜시엘의 챔피언이었을 때 겪었던 밤일이 떠올라서, 무심코 부럽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여간 이놈의 조동아리가 문제야…….

“오빠는 제가 멋있게 만들어 드릴 테니까. 부러워하지 마세요?”

“하하… 그래…….”

미안해 하연아, 너같이 이쁜 아이를 바로 옆에 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니.

앞으로 옆에 없을 때 할 수 있도록 조심해야겠…….

“형님, 저희 저쪽 길로 가죠? 저쪽이 더 빨라요.”

드웍프가 급작스럽게 팔을 잡아챈다. 얘가 왜 이래?

“아니, 뭐하러? 그냥 쭉 보면서 걸어가면 좋지.”

잠시 후,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한 명의 사내가 다가온다. 다시는 볼 일 없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 사람이 왜 또 여기 있는 거지? 설마 축제를 즐기러 온 건 아닐 테고…….

“안녕하십니까 뭘 씨.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 기쁩니다.”

그는 내게 검은 초대장을 처음 건넸던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신에게 전해드릴 물건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물건이요?”

그가 품속에서 검은 초대장을 꺼내서 나에게 건넨다. 혹시나 해서 내용을 확인하니 그때 받았던 것과 완벽히 똑같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초대장 이름 난에 ‘뭘’이라는 이름이 선명히 적혀있었다.

“이걸 왜 저한테…….”

“당신의 경쟁자인 막스핀님께서 초대장을 양도하셨습니다.”

막스핀이 이걸……? 그 인간이 무슨 꿍꿍이야?”

“그럼 초대장을 전했으니, 전 이만…….”

“아, 저기! 어떻게 가는지는……!”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그새 사라지냐? 엄청 빠르네.

초대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떤 장소의 위치가 자그맣게 적혀 있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다.

“형님. 정말 가실 겁니까……?”

“가야지 그럼. 이겨서 얻은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고생한 대가로 얻은 초대장인데. 왜? 넌 안 궁금하냐? 플로어가 뭔지?”

“그냥 조금…….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형님……. 때로는 진한 호기심이 독이 될 수 있는 법입니다.

“드웍프……. 이 자식이 어디서 멋진 척이야? 드웍프 주제.”

*

조금은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한 드웍프의 말을 조금 더 귀담아들을 걸 그랬다. 이 녀석이 왜 갑자기 안 하던 소리를 한 건지……. 그래, 생각해보면 며칠 전부터 그런 낌새는 있었어. 애초에 멀쩡한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겼던 게 문제지…….

“어떡해요? 뭘 님? 우리 우올로 정말 도난당한 거예요?”

“나는 처음부터 걔 마음에 안 들었어.”

“없어…… 우올로……. 내 머핀…….”

“오빠……. 괜찮아?”

나는 텅텅 비어버린 우올로 정박장 앞에서 무릎 꿇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내 우올로가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 전 재산 5억이라는 금액이 인벤토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단순 [훔치기] 기술이라면 이 정도까지 턴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드웍프 그 자식이 대체 무슨 수로……?

아니야 아직 확실하진 않아 드웍프가 그랬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어. 우선 차분하게 생각하자.

-‘야 드웍프! 너 왜 말 안 해?’

드웍프에게 의지 전달을 통해 계속 말을 걸어봐도, 아까부터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이 전달되는 걸 보면 접속은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대화를 피한다는 것은 자꾸 불길한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드웍프. 듣고 있지? 만에 하나라도 정말 네가 그런 거면…….’

정말로 그런 거라면…….

-‘너 반드시 찾아서 캐릭터 삭제시켜 준다! 이 개자식아!!!’

“하아…….”

나 진짜 등신인가……. 각인을 너무 맹신하고 있었어. 애초에 유저한테 각인 걸린다는 거 자체가……. 아니야. 아무리 유저라 해도 각인의 효과는 분명 있었어. 그럼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건가? 그래서 드웍프가……? 하아 모르겠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요?”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 내가 이끌어온 팀인 만큼 어떻게 하면 된다고 확신 있게 말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랄랄라랄라! 어라?! 이런 인연이! 플로어에 안 가고 아직도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기껏 양도했더니…….”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끼어드는 인간이 누군가 싶어서 보니 막스핀이다.

“당신…….”

“보아하니 곤란한 일을 겪으셨군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신 제 부탁 좀 들어주실래요?”

“필요 없으니까 좀 꺼져 줄래요?”

“하하,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욕을 먹어도 마냥 즐겁기만 한 지, 계속 실실거리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게, 플로어에 가게 되면 낮은 곳을 경계하시라니까.”

낮은 곳……? 막스핀이 떠나가면서 내뱉는 말에 나는 당장 그를 멈춰 세웠다.

“당신 뭐 알고 있는 거 있죠?”

“제가 뭘 알아요? 드웍프가 어디 있는지요?”

드웍프……! 막스핀이 드웍프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사라진 드웍프에 관해 뭔가 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냥 장난으로 저런 소릴 내뱉을 리는 없으니까.

“이제 도움받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내 머리 위에 서 있다는 기분 나쁜 웃음…….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다.

*

나는 동료들과 함께 그의 우올로에 올라타서 플로어로 향하고 있다.

“어차피 플로어로 갈 거라면서 왜 나한테 초대장을 양보했죠?”

“아, 원래 하려던 일이 있는데. 계획이 좀 틀어져서 말이에요.”

그의 부탁은 이거였다. 자신을 임시 동료로 맞아, 플로어로 들여보내 달라는 것.

“그나저나, 내 말이 하나씩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낮은 곳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같이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거.”

“난 아직 우리가 같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단지 필요에 의해, 협조할 뿐이죠.”

“그렇군요. 필요에 의해……. 제가 좋아하는 말이네요. 다 도착했네요. 저기에요. 플로어 입구.”

그가 가리키는 장소를 쳐다봤다. 우리는 현재 레마테리어에서 떠나 목적지로 항해하는 중간에 배를 멈춰 세웠다. 그 말 그대로 중간에 멈춰 세운 거라,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땅 밑은 보이지도 않을 심연에 삼켜져 까마득한 어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스핀의 손가락은 모순되게도 저 땅 밑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뭐가 있다는 거야?

“농담이죠?”

“아닌데요?”

“초대장에 적힌 장소랑 다른데요?”

“지름길이니까요. 그럼 지금부터 떨어질 거니까 다들 꽉 잡아요.”

그 순간 우올로의 엔진이 꺼지고 우리는 땅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후우웅-!!!

“으아아아아아!!!

“꺄아아아!!!”

*

“허억……!”

번지점프 하는 기분을 1분 넘게 느끼고 나서부터는 정신을 놓았던 것 같다.

“크으윽……! 다들 괜찮아……?”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니 다들 살아는 있는 모양이다.

“으……. 머리야…….”

떨어지면서 세게 부딪힌 모양이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그 망할 인간은 일을 벌여놓고 어딜 간…….

“도착했어요!”

“으아악!”

“왜 이렇게 놀래요? 사람 무안하게.”

사람이 아니라 귀신인 줄 알았다 이 양반아! 저놈의 단발머리 좀 어떻게 안 되나?

“후우……. 여기가 어디죠? 여긴 왜 이렇게 어두워요?”

“플로어요. 도착.”

여기가……. 플로어라고……?

갑판에 서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꽤 놀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이곳을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환한 아침이었지만, 밝게 내리쬐던 태양 빛은 겹겹이 쌓인 구름을 투과하며 삭막한 회색빛으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중간중간 심어진 오렌지 빛깔의 전등 불빛이 곳곳을 밝히며 오히려 몽환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죠?”

“전등이 있잖아……?”

“여긴 조금이지만 전기도 사용하거든요.”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보니, 적응이 쉽게 되지 않는다. 동료들도 전등을 보고는 무척 놀란 눈치다. 유저인 나도 놀라운데 NPC인 동료들은 어떻겠는가…….

“저 아래는 뭐길래 저렇게…….”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듯 망가진 우올로나 의문의 잔해가 수두룩했다.

“여긴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거든요. 위에서 잘못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요?”

푸악-! 그 순간 공중에서 무언가 떨어지면서 우올로 날개에 그대로 충돌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의 형상인 것 같은데,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몸통이 분리되어있었다.

“으…….”

그 끔찍한 모습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저렇게 되는 거죠. 뭐.”

떨어진 사람은 우올로의 날갯짓에 밀려 수많은 쓰레기 잔해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혹시나 사람이 또 떨어질까 봐 동료들과 함께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두운 쓰레기 잔해를 따라 한참을 이동하고 나니, 멀찍이 탑의 그림자 실루엣이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저것 좀 봐…….”

“와…….”

높게 솟은 첨탑. 불규칙하게 얽혀 있는 건물.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무수히 뻗은 빛줄기. 마치 상상을 그려낸 그림을 현실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장관에 입이 떡 벌어진다.

정말……. 그 아래 이런 도시가 있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떨어지면 지옥이라고 생각했던 그 장소에 이렇게 신비롭고 기묘한 장소가 있었을 줄이야…….

우올로가 어둠의 도시에 들어섰다. 어둠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밝은 느낌이긴 했어도 분위기 자체는 어디서든 범죄가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자, 이제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자, 잠깐만! 나한테 뭐 알려줄 거 있지 않아요?”

“알려줄 거……? 그런 거 없는데요?”

이 인간이 지금 장난하나…….

“표정 펴요. 농담이니까. 제3 구역 2번 길. 루드라는 가게에서 소시크라는 사람을 찾아요. 그 사람이 알려줄 거예요.”

제3 구역 2번 길 루드의 소시크? 외울 것도 많네…….

“드웍프도 지금 플로어에 있어요? 여긴 어떻게 나가죠?”

“말했다시피 그 영감 찾아가 봐요. 당신이 원하는 거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막스핀은 그걸 끝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니까…….

우리는 그 길로 표지판을 따라 막스핀이 말해준 소시크를 찾아 이동했다. 동료들은 저마다 신기한 도시 전경에 빠져들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따라오고 있었다.

“여기가 2번 길 루드…….”

전기로 된 간판이 반짝이며 정직하게 루드라고 쓰여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뭐 하는 가게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일단 들어가 볼까?

“실례합니……. 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딱 다섯 사람 정도 겨우 서 있을 공간이 나왔다. 여기 무슨 가게지? 들어오고 나니 정체를 더 모르겠다. 잠시 후 블라인드가 쳐진 바로 앞 카운터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가게도 좁은데 뭐 이리 와글와글이야?”

노인은 똥그란 안경에 흰 백발을 주렁주렁 따서 어깨까지 내린 모습이었다. 키가 큰 건지 아래 발판이 있는 건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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