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87화 (147/147)

<-- 그녀를 구하라 -->

“미실트……!”

세파이어드는 잔해 속에 파묻힌 미실트는 내버려 두고 주저 없이 일레이나에게 향했다. 더는 자신을 방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예상을 뚫고 그녀는 잔해 속에서 걸어 나왔다.

“흐음…….”

놀라움에 작은 탄식이 일었다. 저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가진 적을 본 게 얼마 만인가? 적이지만 근성만큼은 손뼉 쳐주고 싶을 만큼 대단했다.

“적……. 죽음.”

그러나 평소 굳건한 목소리에는 힘이 없고, 다리는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미 신체의 한계에 부딪힐 만큼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그녀는 일레이나를 지켜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 있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죽 한 그릇을 건네준 일레이나를 지키겠다는 명분 때문에라도 그녀는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세파이어드는 미실트를 잠시 보더니 다시 일레이나를 향한 걸음을 계속했다. 그 독한 공격을 받아낸 뒤 잔해 속에서 걸어나온 것은 놀라웠지만 이미 한계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었다.

미실트는 이변 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미안해 미실트.’

일레이나는 힘없이 생기를 잃고 쓰러진 그녀를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잠시나마 자신의 기적이 되어준 그녀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크흐으…….”

검은 털로 뒤덮인 괴생물체가 자신의 앞에 서자, 미지에서 오는 공포가 신체를 떨게 했다. 고블린 잡는 것조차 두려워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전투하지 않았건만……. 눈앞의 존재는 고블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감을 풍겨 댔다.

남자를 두려워하는 것 이상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이윽고 세파이어드의 검은 손길이 일레이나를 향해 뻗어졌다. 그리고 그때, 일레이나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이 찾아왔다.

“감히 누구한테 손을 대!!!”

콰아앙-!!! 분노에 찬 남성의 외침과 동시에 작은 우올로 한 대가 하늘에서 날아오더니 검은 짐승을 그대로 들이 받아버렸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세파이어드는 순식간에 3m 크기의 우올로 바닥에 깔려 생사가 불분명해졌다.

“하연……. 일레이나 님. 괜찮아요?!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우올로를 타고 나타난 것은 뭘이었다. 그는 무심코 일레이나의 본명을 불렀지만, 조금 전 벌어진 상황으로 정신없던 일레이나는 듣지 못했다.

‘이 남자가 왜 또……?’

파렴치한 짓을 벌일 땐 언제고, 또 나타나서는 정의의 기사인 척 착해 보이는 웃음을 흘린다니. 그의 가식적인 모습에 치가 떨렸다.

“그쪽이 왜……. 다행이라는 건데요? 다시 팔아넘기려고요?”

역시나 반응은 싸늘했다. 뭘은 이 상황이 난감할 따름이었다. 송하연에게 자신이 강기단이라고 말하자니, 뭘로서 했던 일이 걸리고 말 안 하자니, 수습하기가 까다로웠던 탓이었다.

‘일단 구해주자.’

뭐가 됐든 그게 첫 번째였다. 뭘은 캘피언 일행을 노려봤다.

“거기! 그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는데! 이 아름답고 고아하신 여성분께서는 내 일행이거든?”

캘피언은 미간을 찌푸려 뭘을 살펴보더니 곧 누군지 떠올렸다.

“아, 누군가 했더니! 뭘이잖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뭘은 당황했다.

‘내 아이디를 말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내 노예 중에 네 브랜드가 박힌 노예들이 꽤 있다고. 안 그래도 한번 보고 의뢰 좀 맡길까 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

“의뢰? 무슨 소리야 그게?”

뭘은 몰랐지만, 그동안 뭘이 열심히 팔아 나른 노예들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질적으로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개인으로서는 꽤 많은 양의 하급 노예를 공급했기에 브랜드 명성이 많은 이에게 알려져 있었다.

“혹시 모르는 거야? 너 이 바닥에서 꽤 괜찮은 새내기로 이름 날리고 있다고. 거기 뒤쪽 노예는 이번에 처음으로 경매에 올린 거지? 그런 수준급 노예를 시장에 공급하는 거 보면 안목은 제대로 된 것 같은데 나와 일대일로 계약 맺는 건 어때?”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말에 부끄러우면서도 신기했다. 브랜드 명성이 단순 수치상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반응으로도 보인다는 게 놀라웠다.

그렇지만 마냥 좋아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캘피언과 뭘이 하는 얘기를 듣던 일레이나의 표정이 벌레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아, 하연이……. 안 돼!’

뭘은 재빨리 표정 관리에 신경 썼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나 같은 순수 청년이! 이 여성을 경매에 올린 건! 너희 같은 악당의 근거지를 알아내서 뿌리 뽑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누가 보더라도 대본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를 단번에 처단하리라는 내 예상이 틀어졌으니! 이 여성은 내가 데려간다! 작전상 후퇴하는 것이다! 알겠나?!”

“지금 뭐 하자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 그 여자 3억 주고 샀어. 다시 데려가겠다는 말이면 그냥 못 보내지. 돈을 더 원하는 거면 더 줄 테니까 그 여자 나한테 보내.”

3억이라는 말에 뭘은 눈깔이 뒤집힐 뻔했다. 선수금으로 받은 3500만 셀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3억이라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거기다가 더 줄 수도 있다고……?

계약이란 거 해볼 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뭘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대상이 송하연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보냈을 테지만, 뭘은 그 이상으로 돈에 미친 괴물이 아니었다. 최소한 좋아하는 여자를 몇 푼에 팔아버리는 만행을 저지를 순 없었다.

“말했다시피 보낼 생각 없으니까 돌아가.”

“나도 말했잖아…….”

캘피언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못 보낸다고.”

그의 말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와 동시에 세파이어드를 들이받은 우올로가 번쩍 뒤집히며, 뾰족한 들짐승의 주둥이가 뭘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흣?!”

뭘은 목걸이를 쥔 왼손을 뻗어 세파이어드의 냄새나는 주둥이를 틀어막았다.

퉁-!

-‘1284의 독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세파이어드는 뭘의 목걸이에서 느껴진 이상한 반발력에 그를 물지 못하고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뭘은 목걸이를 내려봤다.

‘좋아……. 제대로 막았어!’

목걸이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활용 범위를 알게 된 이상 목걸이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뭘은 자신의 손에 목걸이 끈을 둘둘 감고 세파이어드를 노려봤다.

‘강해. 그렇지만 해볼 만하다.’

“크흐으……. 이상한 기술이군…….”

세파이어드가 말했다. 뭘은 놀란 눈치였다. 설마 짐승같이 생겨서 말할 줄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지팡이를 꺼내서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격권을 발동시켜 피해량을 폭증시키고 세파이어드의 가슴팍을 세차게 때렸다.

파악-! 그러나 두껍게 자란 털 때문인지 미동조차 없었다. 뭘의 공격 이후 세파이어드는 기다렸다는 듯 역습을 가했다. 그러나 가슴에 연이어 느껴지는 타격에 세파이어드의 공격은 어이없게 빗나가고 말았다.

분명히 지팡이를 한번 휘둘렀는데 통증이 두 배로 느껴졌다.

‘뭐지 이건?’

조금 전 싸웠던 여자보다 공격력은 떨어졌지만, 이상한 기술을 많이 보유한 것 같았다.

‘빨리 끝내야겠어.’

그에게서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낀 세파이어드는 땅을 박차고 네 발로 달려들었다.

뭘은 달려드는 세파이어드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 자리에 서서 공격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세파이어드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의 팔뚝이 급격히 두꺼워지더니 보다 강력한 힘으로 손톱을 휘둘렀다.

뭘은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목걸이를 들었다. 그의 손톱이 아이셀의 정중앙에 맞부딪혔다.

퉁-!

-‘2673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이럴 수가……?!’

근력 강화를 통한 공격이었음에도 단번에 막히는 공격에 세파이어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목걸이에서 일어나는 반발력으로 자신의 공격이 튕겨 나오는 순간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오면서 강대한 힘이 터져 나왔다.

파앙-!

“크흐으윽!!!”

물리 공격을 50% 감소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무려 2천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 몸에는 검붉은 색 진득한 액체가 달라붙어 있었는데, 그 액체 때문에 털이 녹아들어 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건……. 내 독?’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지만, 자신의 털을 태울 정도로 강력한 독. 분명히 자신의 독이었다. 아이템? 기술? 무엇으로 자신의 능력을 되돌릴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다가갈 필요는 있었다.

세파이어드는 체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스스로 차오르는 체력은 트롤의 재생력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나 그걸 보고 있던 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다시 한번 큰 접전이 일었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 수십번의 공방이 이어지고 뭘의 숨은 전력 질주를 마친 사람처럼 거칠어졌다. 반면 세파이어드는 여전히 생생했다. 가지고 있는 기술의 특성 덕분에 온종일을 싸워도 지치지 않는 몸을 보유했다.

그것은 어느 면에서 천상의 몸 상태를 지니고 있는 뭘보다 뛰어나다고 볼 수 있었다.

‘뭐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있어……? 지친 기색이 전혀 없잖아?’

뭘의 입장에서도 세파이어드는 괴물이 따로 없었다. 일반적인 타격에는 거의 꼼짝도 안 하고 회심의 기술인 〈여신의 거울〉조차 견뎌내는 막강한 체력이라니…….

오죽하면 강화한 업그레이드한 쓸모 없다고 생각될 수준이었다.

[아이셀]

요구 레벨 제한 1 *아이셀 착용 시 레벨업 할 수 없습니다.

희소성: ???

〈소질〉

-여신의 방패-

더 이상 잠재로 건강이 증가하지 않는 대신에, 피해 종류에 상관없이 사용자의 잠재 능력 30배에 해당하는 수치만큼의 피해를 전부 흡수합니다. 해당 능력은 방어 무시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여신의 거울-

여신의 방패로 2회 누적한 피해를 방출할 수 있습니다.

-여신의 자비-

여신의 거울이 피해를 방출할 때 누적한 속성을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무려 3번을 업그레이드한 아이셀. 느끼기에도 사기급 아이템임은 분명하지만, 저런 적과 상대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먼저 성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번엔 최대한 피해를 누적해서 공격한다.’

세파이어드의 신체가 허공을 향해 날랐다. 뭘은 다시 한번 방어를 준비했다. 현재 뭘이 목걸이로 막을 수 있는 피해는 4100정도. 아직까지 그것을 뛰어넘는 공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이번 공격을 막아내고 한 번 더 누적시켜 피해를 방출시킨 뒤 체력이 회복되기 전에 연속 타격으로 적을 쓰러뜨릴 심산이었다. 만약 그래도 쓰러지지 않는다면……. 남는 건 각인뿐이지만…….

그건 기회가 제대로 왔을 때 사용하고 싶었다. 최근 각인을 무리하게 쓰다가 죽을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세파이어드가 공중으로 높이 뛰었다. 태양 빛이 그의 뒤편을 밝게 비추며 눈을 시게했다. 그 순간…….

‘뭐?!’

세파이어드의 형체가 사라지며 웬 새 한 마리가 뭘의 어깨에 그대로 박혀 들었다.

“커헉!!”

-‘62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음을 1회 저항했습니다.’

목걸이로 막아내지 못한 피해는 그대로 죽음을 불러왔다. 어깨에 박힌 새는 곧 황소처럼 거대한 형체로 변하더니 뭘의 몸을 다리로 짓눌렀다.

‘몸을 변형시켜? 무슨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송하연과 운동했던 주짓수의 기술로 따진다면 풀마운드 포지션을 잡혀 그대로 끝날 판이었다.

세파이어드가 주먹을 높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내리찍을 기세였다. 뭘은 재빨리 목걸이를 들어 주먹을 방어했다.

-‘3,140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3,220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퉁-! 퉁-! 조금만 삐끗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뭘은 그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자신의 몸통보다 두꺼운 그의 허벅지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대상과의 격차로 각인에 실패하였습니다.’

뭘은 공황에 빠졌다. 각인 3단계 개화로 얻은 ‘격차로 인한 실패확률 감소’ 그것만 믿고 있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그르으어어어!!!”

-‘3,251의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더군다나 세파이어드는 공격을 하면 할수록 웬일인지 공격력이 증가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뭘이 막을 수 있는 한계를 넘는 것도 금방이었다.

‘어떡하지? 살아날 방법이 전혀 안 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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