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78화 (78/147)

<-- 눈의 정령 아이즈 -->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즈가 이미 유저의 절반 이상을 죽여놨다. 그러나 지금 남아있는 유저 대부분은 아이즈의 공격을 잘 피해내고 있다. 확실히 패턴을 익히고 있는 유저들은 잘 살아남고 있는 듯하다.

“영창 끝!”

룬 따위가 잔뜩 박힌 검은 로브를 둘러쓴 마법사 유저의 외침에 사람들은 거리를 벌리고 뭔가를 준비했다. 그의 온몸엔 검은 아우라도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겁나 멋있네.”

이윽고 그가 손바닥을 마주치자 그의 뒤편에서 화려한 마법진이 펼쳐지며 블랙홀같이 검은 포탈이 열렸다. 포탈 주변은 알 수 없는 힘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검은색 포탈은 점차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아이즈의 몸집만큼이나 커졌다. 그 모습에 옆에서 깔짝깔짝 딜을 넣던 유저가 소리친다.

“님들! 쟤 껍데기 벗겨지면, 중앙 핵에 극딜 넣어요!”

곧 마법사의 포탈에서 거대한 검날이 쑥-! 튀어나와 아이즈의 몸체에 세게 찔러넣는다.

콰가가각-!!!

어둠의 기운이 폴폴 흐르는 검날이 아이즈의 몸에 닿자 그 단단해 보이던 얼음덩이 몸체에 깊은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아이즈는 검날로부터 버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강대한 힘에 밀려 거대한 얼음 기둥을 부수고 벽에 처박힌다.

“형님 저거……. 워우……. 죽이는데요?”

너무나 멋있어 보이는 모습에 드웍프도 나도 에르에니도 다 같이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나름 세다고 믿어왔는데, 갑자기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구나…….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지 나는.

콰지직-!

아이즈의 몸체가 부서지면서 함께 마법의 지속시간도 끝났는지 거대한 검은 사라졌다. 그런데도 조금 전 공격의 여파가 꽤나 강력했는지 아이즈는 기색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다들 공격해요!”

누군가가 소환한 불타오르는 늑대가 가장 먼저 아이즈의 핵으로 뛰어올라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것을 필두로 모든 유저가 합심해서 핵을 집중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때만큼은 드웍프도 옆에서 깨알같이 딜을 넣는다. 서리한의 가격을 듣더니 탐이 나기는 했나 보다.

나도 아이즈의 부서진 몸체로 쏙 들어가 핵으로 보이는 물질을 힘껏 강타하고 있다. 아이즈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즉각적으로 달려온 덕에 마음껏 공격을 퍼붓기 딱 좋은 장소를 손에 넣었다.

아이즈의 핵이 지팡이와 맞부딪힐 때마다 7가지 빛의 스펙트럼을 아름답게 발산하며 눈을 부시게 한다.

“왜 이렇게 단단해 이거?”

훈련장의 허수아비 때리듯 자유롭게 핵을 난타하는데도 그 단단한 물질은 조금의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강력한 기술이 없는 게 참 아쉽다니까? 지금 남아있는 애들은 딜량이 엄청날 텐데……. 그렇게 되면 결국 서리한도 그들의 차지가 될지 모른다.

아까 쉴 때 들어보니 누구는 한 대만 때리고 운 좋게 먹었다던데……. 나는 그 정도로 운 좋은 인간이 아니니까. 열나게 핵을 쥐어패도록 하자.

그때 문득, 이런 궁금증이 뇌리 스쳐 간다.

혹시 몬스터도 각인에 걸릴까?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아마 몬스터에게 각인이 걸린다고 해도 격차 때문에 실패할 거라곤 생각하지만, 확실히 걸 수 있는지만 확인해보고 싶다.

렙차나 전투력으로 인한 격차는 약해지면 상쇄 가능하다고 했지? 이 녀석도 지금 힘이 빠져 있으니 어느 정도 격차를 무시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호기심에서 비롯된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다. 그러자…….

-‘각인의 흔적이 ‘아이즈’의 몸에 새겨집니다.’

걸렸어?! 그때, 아이즈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서히 깨어나는 모양이다. 아이즈의 핵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화려하게 발광하며 다시 공중에 붕 뜬다.

일단 각인의 흔적이 새겨졌으니 대략 10분만 이러고 있으면 녀석은 내 노예가 되는 것이다. 몬스터는 각인 걸면 어떻게 정보가 어떻게 나오려나? 근데 생각해보면 어차피 죽여야 하니까 쓸모없는 짓인가?

이 녀석을 조종해서 휩쓸고 다녀도 재밌겠는데. 그러려면 여기 유저들하고 한판 붙어야겠지만…….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이즈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핵을 보호하는 얼음 막이 하나 생기더니 아이즈 몸에 갇혀 나갈 수가 없게 됐다.

단순히 나갈 수만 없으면 다행이지…….

“저기 사람 갇혔는데……?

“저기 갇히면 어떻게 돼?”

“얼어 죽어.”

젠장……. 귀가 좋아서 유저들이 떠드는 얘기를 듣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내부 온도가 점점 낮아져서 극심한 추위가 몸을 덮어간다.

“후우……. 후우……. 추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내가 느끼는 추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 준다.

한 손으로는 핵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음 막을 내리친다. 그러나 꼼짝도 안 한다. 핵에서 손을 떼고 싶지만, 손바닥이 딱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손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아이즈의 한기가 심장을 파고듭니다. 8분 47초 후 동사합니다.’

살고 싶다. 간절하게 살고 싶다. 죽을 때 죽더라도 얼어 죽는 것만큼은 겪고 싶지 않은 죽음 1순위다.

“후으……. 살려줘……!”

난 항상 추위에 약했다. 겨울을 좋아했지만 막상 추위를 느끼면 따듯해졌으면 하는 성냥팔이 소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견디기 힘든 이 추위는 나를 너무도 미치게 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지금은 냉정함 그 이상의 추위를 느끼고 있으니까 곧 적당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내 바람과 달리 머릿속엔 온통 추워 죽겠다는 생각만 반복 떠오르고 있다.

“공격 온다! 방벽 칠 테니까 제 뒤로 와요!”

놈의 주변에 얼음으로 만든 뾰족한 고드름 수십 개가 생기더니 유저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쾅! 쾅! 쾅! 고드름이 유저의 방벽을 부수고 심장을 관통해 들어간다. 그 뒤에 숨어있던 3명은 이게 뭐냐며 따지지도 못한 채 절명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아이즈의 폭풍 같은 공격은 계속되었다.

*

-‘아이즈가 그란트월의 냉기를 끌어들입니다.’

“30초 후 전체 동결이에요! 기둥 뒤로 숨어야 돼요!

30초라고……? 누군 동사하기까지 10초 남았는데……. 나는 비천한 목숨을 연명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킹킹에게 구매한 샤이스의 눈물을 꺼내 든다.

차가운 숨이 흐르듯 샤이스의 눈물이 식도를 타고 전신의 혈관으로 사악 퍼져가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몸이 따듯해졌다기보다 추위를 느끼지 않는단 말이 정확하다. 효과가 좋긴 하구나.

그러나 손은 여전히 아이즈의 핵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강제로 떼려 하니 피부가 먼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연명한 시간 1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살기 위해선 나도 뭔가를 해야 해……. 그래, 각인의 2단계 자질. 그걸 풀어야겠다. 이 녀석이 고통을 느끼면 날 내보내 줄지도 몰라. 부디 그러기를 바라면서 각인 2단계 자질을 해제한다.

그러나 그것은 심각한 오판이었다.

“헉?! 뭐……!”

“컥!”

“아악!!!”

“패턴이 바뀌었어!”

각인의 고통 때문인지 이 녀석이 이곳저곳 부딪히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원래의 공격 패턴을 깨고 공격한 터라 예측하지 못한 유저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뒤늦게 각인을 2단계 자질을 다시 발동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단 10명 남짓한 유저만 남겨 놓고 대부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려 나갔다.

그나마 살아있는 유저도 멀쩡하게 보이지 않는다. 죽지 않고 행동불능에 빠지거나 피부가 반쯤 뜯겨 나간 채 간신이 서 있는 유저도 있다.

에르에니는 이미 이전부터 죽은 듯하고, 드웍프는 하반신이 통째로 날아가서는 살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다. 쟤도 곧 죽겠는데……. 본인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지 아이즈를 향해 갖은 욕설을 막 퍼붓고 있다.

그래도 개인적인 성과는 있었다.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인해 핵과 접합돼있던 내 손은 떨어져 나왔고, 아이즈의 몸체에 균열이 가면서 내가 나갈 곳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아이즈의 몸체에 구멍을 내고 상반신을 반쯤 내밀었을 때, 아이즈의 몸에 이상한 띠가 생겨나더니 확 퍼져나간다. 무슨 공격을 하는 모양인데, 샤이스의 눈물 덕에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나 유저들도 나와 같은 건 아닌 모양이다.

“아아윽!!”

“왜 동결패턴이 지금 나와?!”

이전에 상쇄된 동결패턴이 지금 발생해서 숨지 못한 유저들을 전부 얼리기 시작했다.

드웍프는 얼어붙는 자신의 몸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는지 아이즈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품을 뒤적거린다.

“죽을 때 죽더라도! 혼자 안 가 이 개자식아!!!

이윽고, 꺼낸 작은 구슬을 아이즈를 향해 던지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구슬이다.

작고…….

빨간…….

헬파이어 구슬……?!

“야 이 미친놈아!?!”

드웍프가 저걸 왜 가지고 있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나는 아이즈의 몸에서 재빨리 뛰쳐나와 이제 막 바닥에 떨어진 헬파이어 구슬을 바로 집어 든다. 안 그래도 붉게 이글거리는 헬파이어 구슬이 뜨겁게 요동하며 더욱 붉은 빛을 발한다.

반경 1km 면 어디에 던져도 죽는다. 그럴 바엔…….

아이즈의 몸체를 쳐다본다. 두터운 얼음벽을 깨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금세 핵을 보호하려는 얼음 막이 재생성되고 있다. 저곳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구슬을 집어 던진다.

제발……. 제발 들어가기를…….

헬파이어 구슬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여부를 확인도 못 한 채, 아이즈의 가장 단단해 보이는 아랫부분으로 뛰어가 숨는다. 혹여 깔려 죽는 것 따위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다.

들은 게 사실이라면 헬파이어 구슬이 터졌을 때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깔리는 것 정도로 끝날 수 있다면 오히려 감사할 지경이다.

팟-!

헬파이어 구슬이 터졌다. 순간 아이즈의 몸체에 붉은빛이 번쩍이더니 아이즈의 푸른 몸이 회색빛으로 변한다. 그리고 아이즈의 몸체가 쩌적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곧…….

파아아아아앙-!!!

강대한 파열음이 일면서 뜨거운 지옥 불과 초월 아이즈의 얼음 핵이 만나 화려한 장관을 일으킨다. 그러나 나는 뿜어지는 충격파에 휩쓸려 그 장관을 끝까지 감상하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

에드 하이리스 백작가 차남 데모즈의 저택. 지난 며칠간 에드 하이리스의 별장에서 하인들과 머물던 페로렌은, 데모즈의 권유로 그의 저택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페로렌 양이 그 유명하신 페론드 준남작님의 손녀였다니 믿어지지 않는군요. 저희 아버지께서 페론드 준남작을 얼마나 뵙고 싶어 하셨는지 몰라요. 아마 페로렌 양을 보면 무척 좋아하실 거예요.”

“아……. 네.

“사실 저는 차남이라 아버지께서 형님께 작위를 물려 주실 것 같지만, 페로렌 양을 보시면 제게 작위를 주실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

그의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페로렌은 애써 웃어 보이며 앞에 놓인 차를 홀짝거렸다.

‘왜, 지루하게 느껴지는 거지……?’

대상이 누구라도 언제나 수다 떠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건만 오늘따라 느껴지는 지루함은 그와 보내는 1분 1초의 시간을 따분하게 만들었다.

분위기를 환기하듯 주방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케이크 두 접시를 놓고 나갔다. 설산처럼 새하얀 빵 위에 부드러운 크림을 결대로 뿌려 모양을 내고 얇게 간 초콜릿을 겹겹이 쌓아 올린 케이크였다.

“저희 주방장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케이크입니다. 페로렌 양.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페로렌은 포크로 케이크를 한입 떠먹었다.

“와! 정말, 맛있어요.”

빵과 크림의 고소한 맛과 초콜릿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며 부담스럽지 않은 맛을 선사했다.

‘뭘이었다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겠지……?’

케이크를 먹던 페로렌은 보고 환장하는 뭘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 지었다.

“웃는 모습을 보니 케이크가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다행이네요. 입맛에 맞으신다니.”

“아…….”

문득, 자신이 뭘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자꾸 왜 그런 녀석을……. 생각하지 말자. 정신 차려 페로렌!’

사실 뭘이 떠오른 건 이번 한 번뿐이 아니었다. 최근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가 떠오르고, 잘 때조차 항상 곁에서 들려오던 그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전부 자신이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인데…….

‘바보 같아.’

페로렌은 그렇게 자신을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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