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의 정령 아이즈 --> 아이슈먼 3마리가 기습적으로 몸을 날린다. 인간 형태를 하고 있는 주제 몸놀림은 표범처럼 빨라서 버프가 없었더라면 피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바닥이 곳곳이 얼음인 것도 한몫한다.
슈확-! 찔러 들어오는 얼음 주먹을 그대로 쳐 내리며 박살 낸다. 그 뒤 지팡이를 낮게 휘두르자 지팡이 끝에서부터 불길이 화악-! 치솟는다.
불길이 감도는 지팡이로 놈들의 다리를 쳐부순다. 파자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놈들의 다리가 시원하게 터져나간다. 조금 전까진 상당한 추위를 느끼고 있었지만, 몸을 잽싸게 움직이고 있는 덕에 슬슬 땀이 나기 시작한다.
“뭘 오빠 님! 저쪽이요!”
에르에니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펴보니 드웍프가 아이슈먼들에게 쫓기며 열나게 뛰고 있다.
“형님! 제 뒤에 애들 좀 쫓아주세요!”
“야 왜 너한테만 애들이 몰리냐……? 자식, 인기쟁이네.”
“장난하지 마시고 빨리요!!! 죽겠어요!”
언제 얻은 건지 모를 망치는 왜 들고만 다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냥 드워프 컨셉으로 들고 다니는 건가?
드웍프 뒤에 쫓아오는 7마리의 아이슈먼들을 마지막으로 뒤를 정리하고 나니, 인던 내의 잡몹은 대부분 처리했다. 에르에니가 짝짝짝 손뼉 치며 다가온다.
“뭘 오빠 님. 진짜 멋있어요. 약하다더니 순 뻥이었네? 나 데려가기 싫어서 거짓말한 거죠?”
“사실 사냥을 별로 안 해봐서 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몰랐어요. 그냥 아이템이랑, 능력치로 밀어붙인 거죠, 뭐.”
“오오……. 그 유명한 템빨러? 직업은 뭐에요? 지팡이 들고 싸우는 건 처음 보는데……. 직업 비공개로 돌려놓은 거 보니까 혹시 히든 직업?”
“상인입니다.”
대충 둘러댄다. 유저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노예상이라고 했다가, 안 좋게 볼 수도 있으니……. 에르에니는 무슨 상인이 그렇게 세냐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노예 상인도 상인이니 거짓말은 아니지…….
*
에르에니가 척 봐도 범상치 않게 생긴 포탈을 보며 나에게 소리친다.
“뭘 오빠 님! 저기가 보스 방 아니에요?!”
문득 드는 생각인데 ‘뭘 오빠 님’은 대체 어디서 나온 호칭이며, 이 여자는 몇 살이기에 나에게 오빠 소리를 이렇게 쉽게 하는 것일까?
“근데, 에르에니님은 몇 살이에요?
포탈로 걸어가면서 그녀에게 나이를 물었다.
“여자 나이 함부로 묻는 거 아닌데, 뭘 오빠 님 여자를 너무 모르신다. 그래도……. 뭘 오빠 님이 마음에 드니까 특별히 말해줄게요. 대신 말해주면 나랑 친구 해주는 거?”
“네, 그래요.”
“저는 열일곱 같은 스물일곱입니다.”
“스물일곱이면 그쪽 저보다 누나인데요? 저 스물다섯이에요.”
27살이면 적은 나이도 아니면서 오빠 소리를 왜 저렇게 쉽게 하고 다니는 거야? 듣는 사람 민망하게…….
그녀는 내가 자기보다 어리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듯 얼빠진 표정이다.
“정말?! 몇 년생인데요?”
내가 태어난 년도를 말해주자. 확인사살당했다는 듯 동공에서 빛이 사라져간다.
“그 시절에도 사람이 태어났다니……. 아니얏! 그럴 리 없어! 난 키 크고 잘생기면 다 오빠야. 그러니까 잘생긴 뭘 님도 오빠야.”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캐릭터잖아요.”
“키는 많이 조절 못 하니까 그 정도 키면 최소 180 넘는다는 건데, 키 크면 잘 생겼을 거고 그러면 그냥 오빠로 하죠.”
대체 키 큰 거랑 잘생긴 거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지? 키와 관련된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드웍프에게 시선이 꽂힌다.
얘는 게임 캐릭터 키가 140인데 실제 키도 이렇다는 거야?
“아 형님……. 진짜, 인성 어떻게 되신 거예요?”
“내가 뭘?”
“방금 저 키 작다고 쳐다보셨잖아요.”
이런 감 좋은 꼬맹이가 있나?
“그쪽 드웍프 오빠 님은 실제로 보면 귀여울 것 같아.”
쟤는 고등학생인데 왜 오빠래……. 그냥 저 아주머니는 어려 보이고 싶어서 아무나 다 오빠라고 부르고 다니는 것 같다.
“누님도 한 귀여움 하시네요.”
“꺄핫! 드웍프 오빠 님. 사람 기분 좋게 할 줄 안다니까?”
둘이 아주 죽이 척척 맞는군…….
“
보스 방에 입장하니 커다란 장소가 하나 나왔다. 원형의 장소에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형태 얼음 기둥이 사방에 세워져 있다. 장소가 어찌나 큰지 기둥 하나만 해도 사람 20명이 둘러싸도 전부 가리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다.
그곳엔 곧 나타날 아이즈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오히려 외부에서 파티를 짜고 있던 인원보다 많아 보인다.
“와, 이렇게 많으면 먹기 힘들겠는데……?”
“형님, 이렇게 경쟁이 세면 가격도 상당하겠는데요?”
“확실히…….”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경쟁도 어마어마하고 드랍률도 낮다고 하니 타오르는 서리한의 가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타오르는 서리한 말하는 거면 현 시세로 5억 정도 할걸?
“5……. 5억?!”
에르에니의 말을 들은 나는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5억이라니…….
“그거 무슨 재료에요?”
“여러 가지라고 하는데 대표적으로는 소질 부여할 때 쓴다고 들었어. 그거 재료로 사용하면 얼음 저항력 대폭 올려주는데, 100렙 유저들이 자주 가는 사냥터가 얼음 사냥터라 그거 하나 있으면 거의 무적이라나? 덕분에 저거 있는 사람들한텐 내 저항력 올려주는 기술이 쓸모가 없쪄. 흑흑…….”
“아……. 27살 누님. 제발 애교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부끄러워하지 마아. 옵빠.”
늙은 마귀가 저주를 읊듯 내 귓가에 공포가 젖어 든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한 십년지기 친구 같은 느낌이 드네. 무슨 소리냐면 허물없이 때리고 싶다는 거다.
“으…… 형님……. 갑자기 좀 춥지 않습니까?”
한참 수다 떨면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온다. 처음엔 땀이 식어서 추운 건가 싶었는데, 사람들의 입에서 보스의 이름이 터져 나온다.
“아이즈 나왔다!”
“다들 준비합시다.”
“서리한 드신 분 미리 축하드려요.”
“서리한 먹자 제발!”
곧 전장의 중심부에서 이글이글하는 힘 결정체가 희미하게 생겨나더니 그 중심으로 눈서리가 세게 휘몰아치며 뭉치기 시작한다. 그때 한 사내가 나타난 힘 결정체의 모양을 보더니 소리친다.
“어?! 저거 왜 저렇게 크지? 설마 초월인가?”
“오 대박!! 초월이다!!!”
“초월이 뭐야……?”
나의 궁금증에 에르에니가 곧 답해 주었다. 초월 급 몬스터. 레이드 몹에서만 나오는 초월 급 몬스터는 일정 전투력 수준을 만족하고 유저가 많으면 랜덤으로 발생하는 몬스터 등급이라고 한다.
초월 급 몬스터는 떨어뜨리는 아이템의 드랍률이 100%며 드랍양도 최소 5배 이상이라고 한다. 즉, 운 좋게 서리한이 2개가 떨어진다고 한다면 이번에 떨어지는 서리한의 양은 최소 10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뭐, 뭐 저렇게 커……?”
초월급 몬스터는 그 크기도 속도도 강력함도 모두 기본 레이드의 배는 높아서 도저히 쉽게 잡을 수 있을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쉬이이익-!
지금도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즈는 몸집을 더욱 불리더니, 이윽고 열기구 풍선만큼이나 거대해졌다. 정령이라면 작고 귀여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제 틀에 박힌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공격!!!”
공중에 떠 있는 동그란 구 형태의 아이즈 몸체가 완성되고,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공격에 나선다. 판타지의 대표 격 마법인 화염 구부터 시작해 소용돌이치는 불회오리까지. 대부분 얼음의 약점이라고 여겨지는 불로써 휘황하게 타격을 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얼음 정령에게 얼음 빔 따위를 날리는 아둔한 인간도 있었지만, 커다랗게 일어나는 화마에 묻혀 금세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뭘, 공격 안 해?”
“아, 공격해야죠…….”
워낙 많은 마법이 오가다 보니 나는 들어갈 타이밍을 제대로 못 잡고 있다. 레이드 때는 시스템상 같은 유저끼리의 공격에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는 해도, 화려하게 펼쳐지는 마법 이펙트 때문에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탓이다.
“조심해 기술 쓴다!”
한 사내의 외침과 동시에 아이즈가 서서히 움직인다. 그 육중한 움직임에 한순간 압도된다. 천천히 움직이던 아이즈는 곧 멈춰서서 회전하기 시작한다.
느리던 회전은 순식간에 빨라지더니 위협적인 소음을 내뱉는다.
후웅-! 후웅-!
회전하는 아이즈로부터 차가운 냉기의 기류가 뻗어 나오자 사람들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촤아앙-!! 기류가 단번에 뻗어 나오더니 불을 모조리 끄고 근처에 붙어있던 수십 명의 유저를 한순간에 얼려버렸다.
-‘아이즈의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듭니다. 1분간 불 속성 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켈바인 님! 젤리 님 해동시켜줘요!”
“지금 불 마법 못 써요!”
불에 하도 맞아서 열이라도 받은 모양이다. 불 속성 공격 자체를 차단하다니……. 대단한 녀석이다.
아이즈의 몸이 일순 공중으로 높게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제자리에 내려찍었다.
쿠우웅-! 엄청난 중량감에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가 난다. 그러나 단순히 소리만 큰 것은 아니었다. 아이즈로부터 뻗어 나오는 충격파에 근처의 얼어붙은 유저가 산산이 부서져 죽음을 맞이했다.
“뭐야 이게……?! 뭐 저렇게 세?”
“초월이라서 쓰는 기술도 다른가 본데. 저 기술은 처음 봐. 나도…….”
강력한 힘의 과시에 유저들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수십 명의 유저가 쓸려나간다니…….
앞뒤 안 재고 공격했다가 나도 저 꼴 날 뻔했다. 공격을 한 번 해서 그런지 아이즈는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이 기회다.
서리한의 드랍률을 높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딜을 넣어야 하니까.
“누나! 버프 걸 수 있는 건 다 걸어줘요!”
“알았어!”
“형님, 전……. 죽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 있을게요.”
이번만큼은 드웍프한테 강요하지 않는다. 정말 죽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차피 렙도 낮아서 피해도 별로 못 입힐 것 같고…….
파작-! 파작-! 아이즈의 몸체를 지팡이로 쳐내자 작은 파편이 튄다. 이렇게 때려서 죽일 수는 있나? 거대한 빙산을 때리는 기분이다. 이놈도 약점이 있을 건데, 그걸 어떻게 드러나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통찰이라도 껴보는 건데…….
“또 움직인다!”
“어우 쟤 너무 무서워!”
위력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보니 아이즈의 작은 움직임에도 유저들은 혼비백산이다. 나는 놈의 움직임에 일단 거리를 벌렸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아이즈의 몸체에서 내 쪽으로 뾰족하게 얼음이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들어간다. 방금 뭐였지?
그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 이쪽으로 돌진할 거라는 경고였단 걸 조금만 일찍 깨달았더라면…….
“헉?!”
콰아아앙-!!!
-‘287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음을 1회 견뎌냈습니다.’
“뭘! 일어났어?”
“형님 괜찮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드웍프와 에르에니가 나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있었다.
정말 빠르다……. 도저히 움직여서 피할 수준이 아니었어. 차라리 총알을 피하라면 그게 더 쉬울 만큼 빠른 속도였다. 순간이었지만, 진짜 죽음을 맞는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더라…….
“진짜……. 깜짝 놀랐네. 저거 엄청 세네.”
“난, 거기서 살아나온 네가 더 놀라운데……? 너 10분 넘게 기절했었어. 알아?”
“10분이나……?”
근성으로 죽음을 견뎌냈기에 피해량이 내 최대 체력까지만 표기됐지만, 피해 정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무려 15000이 넘는 피해였다.
이건 내 레벨이 100이더라도 한 방에 죽을 것 같은 피해량인데……. 놈을 잡으려면 패턴을 파악하고 한 대도 안 맞는 식으로 플레이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