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의 정령 아이즈 --> 이 던전은 다른 던전들과 달리 조금은 특이한 구성이다. 일반 잡몹들 잡는 구간은 인던으로 구성돼서 파티원 이외의 다른 유저가 없는 반면, 보스방은 던전에 들어온 모든 유저가 들어가서 싸우게 된다.
보스는 일정 시간마다 젠이 되는데 그때마다 피 튀기는 경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어떤지는 직접 봐야 알 것 같지만…….
“어! 저깄다. 저기 아이슈먼 있어요.”
새로 파티를 맺게 된 에르에니 말대로 몬스터가 있다. 이름은 아이슈먼. 전신이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로 보이는 부분에는 척 보기에도 뾰족한 얼음들이 잔뜩 튀어나와 있다. 마치 철퇴의 머릿 부분을 얼굴이라고 붙여 놓은 것 같다.
“버프 걸게요!”
그녀가 멈춰서서 주문을 영창한다. 곧 그녀의 주변에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여러 개의 짧은 빛무리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곧.
-‘에르에니의 버프 마법이 발동됩니다.’
-‘얼음 저항력 15% 상승합니다.’
-‘공격 시 30% 확률로 불 속성 피해를 입힙니다.’
-‘공격 시 100% 확률로 추가 신성 피해를 입힙니다.’
-‘적에게 입히는 반사 피해가 5% 상승합니다.’
-‘이동속도가 30% 상승합니다.’
-‘점프력이 50% 상승합니다.
-‘방어력이 50 상승합니다.’
-‘공격력이 30 상승합니다.’
-‘약점 공격 시 30%의 피해를 추가로 입힙니다.
-‘행동불능 시 30초 후 되살아납니다.’
-‘1분마다 체력이 10%씩 차오릅니다.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버프가 나를 강화해준다. 뭐지, 이 엄청난 양의 버프는?
“버프가 굉장한데요……?”
“별말씀을……”
칭찬에 부끄러운지 그녀가 헤실헤실 웃는다. 버프 사제의 경우 자신이 지정해놓은 버프를 마음대로 설정해놔서 한 번만 걸면 모든 버프가 순차적으로 걸린다고 한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파티에서 환영받는 존재지만, 그것 말고는 체력도 약하고 전투에는 하등 도움 되는 게 없어서 욕도 은근 많이 먹는 듯하다.
그래도 이 정도 버프라면 데려갈 만하지 않나? 1시간 동안이나 파티원을 못 구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꺄아아악!”
-‘파티원 ‘에르에니’가 행동불능에 빠졌습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맞고 에르에니가 행동불능에 빠졌다. 정확히는 공격이라기보단 천장에서 떨어진 고드름에 맞고 그렇게 됐다.
저래서 안 데려간 건가……? 무슨 고드름을 맞고 쓰러져?
“저 자동 회복 버프 걸려있어요. 30초만 고드름 좀 막아주실래요……?”
그녀가 살아나는 동안 기다리며 고드름을 막아주고 있는데 어깨에 고드름이 푸욱-! 꽂혀 들어간다.
“어윽!”
-‘666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드름이 생각보다 엄청 아프구나……? 체력이 1 남았지만, 에르에니의 버프 덕에 다시 조금 차오른다. 최대 체력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좋았으련만…….
“몬스터만 위험한 게 아니라더니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천장 잘 보고 다녀야겠다.”
행동불능에서 금세 회복한 에르에니는 고드름이 없는 위치로 몸을 피했다. 그런데…….
“꺄아아악!”
-‘파티원 ‘에르에니’가 행동불능에 빠졌습니다.
얼음을 밟고 넘어진 에르에니가 고드름이 떨어지는 위치까지 미끄러지더니 회복한 지 10초 만에 두 번째 행동불능을 맞이했다.
…당신 대체 뭐가 문제야? 세상에 대한 불만이야 뭐야?
*
“근데 혹시 저것들 레벨 몇인지 알아요?”
“여기 몬스터 레벨 평균이 85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레벨이 80대라고? 내가 레벨을 올렸다 해도 43인데, 이거 잡을 수는 있을까? 직접 시도해보는 수밖에…….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공격권]이 발동됩니다.’
개화 효과로 인해 이동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공격권을 발동한 뒤 몬스터 근처로 다가가 얼굴로 보이는 얼음덩어리를 냅다 내리친다.
파삭-! 시원한 소리와 함께 얼음이 깨져 나간다. 뒤이어 버프로 얻게 된 신성 추가 피해가 연속으로 들어가며 얼음 파편이 잘게 쪼개진다.
그리고 아이슈먼이 나를 인지하고 돌아보는 그 짧은 순간. 파각-! 소리와 함께 조금 전과 같은 동일한 피해가 연속으로 들어가면서 단 한방에 아이슈먼의 머리통이 바스러진다.
머리가 깨졌다고 해서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혼란에 빠져 아무렇게 나 공격을 휘두르는 몬스터를 잡는 것쯤은 간단하다.
-‘경험치 9.76% 누적되었습니다.’
레벨 차이가 나서 그런가 경험치를 꽤 많이 주네. 누적된 경험치는 던전을 완료하면 한 번에 몰아받는 모양이다. 렙업도 못하는 마당에 경험치 따위가 무슨 의미겠느냐만…….
“와……. 엄청 세잖아요?”
에르에니가 몬스터를 간단히 처리하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움의 감탄을 내뱉는다. 비록 잡몹이라 해도 레벨 80이 넘는 몬스터 한 마리를 평타 5방으로 처리하는 건 꽤 강하다는 증거겠지.
나는 며칠 전보다 두 배는 더 강해졌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신스메이너]
〈소질〉
-통증의 메아리
해당 무기로 적 대상에게 피해를 주면, 1초 후 동일한 피해를 줍니다.
-뼈아픈 타격
해당 무기로 주는 관절 피해가 2배 증가합니다.
바로 내 무기 신스메이너의 소질을 드디어 전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은 기품 능력치가 없어서 사용하지 못했지만 얼마 전 페로렌과 싸웠던 파티가 끝나고 나니 기품을 자동으로 습득했다.
기품을 얻기 위해선 귀족처럼 걷는 법 따위가 필요한 게 아니라 기품 있는 복장을 하고, 기품 있는 파티에 가면 되는 거란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그동안 기품 얻기 위해 걸음걸이 따위를 연습한 게 별로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는 게 슬플 뿐이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통증의 메아리’효과가 버프로 추가된 모든 효과까지도 같이 준다는 점인데……. 이것 덕분에 입히는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것 같다.
이러면 꽤 싸워 볼 만하겠어.
* * *
차르륵- 움직일 때마다 낯설게 들려오는 묵직한 철제 수갑 소리. 팔목을 단단하게 옥죄는 그 느낌에 일레이나는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졌다.
‘손목이 빠질 것 같아.’
잡혀 온 지 며칠 됐음에도 사람 한 명 들어앉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이 철장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머무는 방을 몇 차례나 옮긴 것도 그에 한몫했다.
이름도 모를 그 남자에게 잡혀 와서는 평생 와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한 노예시장에 오게 되다니……. 일레이나는 정말 끔찍하고 진귀한 경험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그 남자 너무 싫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대체……. 빨리 돈도 모아야 하는데…….’
게임에 이상한 유저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하필이면 자기가 그런 인간한테 걸려들 줄이야……. 주변을 돌아보니 자신과 같은 처지의 많은 사람이 있었다.
공포에 떠는 사람.
미쳐가는 사람.
담담한 사람.
멍한 사람.
개중에는 인간이 아닌 듯한 외모의 이종족도 있었다. 일레이나는 게임을 제법 오래 해왔지만, 인간이 아닌 타 종족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인간보다 인구가 적고 숨어 사는 게 그 이유였다.
대륙 너머에는 이종족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장소가 있다고 들었지만, 일레이나에게는 그런 장소까지 둘러 볼 여유가 없었다.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닌가 봐. 예쁘다.’
그렇게 생각하던 일레이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미모 때문에 잡혀 온 거겠지……. 다들 너무 지쳐 보여…….”
일레이나는 어두운 방 가장 안쪽에 잡혀 있었는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겉에 드러난 표정은 너무도 힘겨워 보였다.
곧 어두운 방의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밥 먹어.”
그는 볼품없게 말라서 엉겨 붙은 죽을 갇힌 사람들 앞에 툭툭 던졌다. 일레이나의 앞에도 잔뜩 식어버린 죽이 놓였다. 숟가락을 꼽아두면 세워질 정도로 차갑고 딱딱했다. 그렇지만 배를 곯느니 이거라도 먹고 힘내는 게 훨씬 나았다.
사내가 죽을 다 돌리고 나서 앞을 지나갈 때 일레이나가 그를 불렀다.
“저, 저기요. 저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원하시는 게 돈이라면……. 드릴 수 있어요.”
일레이나는 돈이 많이 필요했지만, 이대로 다른 이에게 팔려간다면 앞일이 어떻게 풀려갈지 몰랐다. 그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돈까지 주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사내는 조금의 흥미도 없다는 듯한 얼굴로 일레이나를 쳐다보더니 비소를 지었다.
“얼마나 줄 건데?”
“저…….”
얼마를 줘야 할지 생각하던 일레이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의 입이 열렸다.
“1억.”
그가 요구하는 금액은 1억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벌어들이기엔 턱없이 많은 금액이었다. 역시나 일레이나는 그만큼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지금껏 벌어들인 돈을 합쳐도 1억이 될지 의문이었다.
“저, 그렇게 큰돈은…….”
“그만큼 주기 힘들면 어쭙잖은 소리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널 팔았을 때 우리가 얻게 될 이점은 1억도 넘을 테니까.”
사내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방을 나갔다. 다시금 방에는 고요한 정적이 따라붙었다.
‘하아……. 내가 왜 그 사람 말을 들었던 거지? 스스로 잡혀 들어가다니 미쳤었나 봐.’
이해할 수 없던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나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한순간이지만, 자신을 욕보이던 그 남자에게 모든 걸 주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 치솟더니 몸이 의도하지 않았던 대로 움직였다.
‘분명, 마법 같은 걸 쓴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그럴 리 없잖아.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자기 자신을 이해시키며 안정을 취하려던 그때, 옆 철장에서 한 여인의 훌쩍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레이나는 궁금함에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흐윽……. 밥…….”
다른 사람들 앞에는 저마다 식어버린 죽이라도 놓여있는 반면 그녀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이곳에 잡혀 들어오기 전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다. 그 때문에 보복으로 그녀에겐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안쓰러워…….’
그녀는 밥이라는 단어만 반복하며 유리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저기, 이거라도 괜찮으시면 드세요.”
일레이나는 철장 사이로 그녀에게 한 숟가락 떠먹은 자신의 죽을 밀어주었다. 그녀는 일레이나가 건넨 죽을 받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 체하겠어요.”
잔뜩 낡아서 부랑자처럼 보이는 옷에 오랫동안 씻지 못했는지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는 여성이었다.
죽그릇의 밑바닥까지 핥아먹은 그녀는 일레이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내내 가만히 있다가. 고양이가 인사하듯 눈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그녀의 입가에 죽이 묻은 것을 본 일레이나가 입 주변을 가리키자 손가락으로 닦아 핥아먹었다.
‘귀여우신 분이네.’
일레이나는 그녀가 유저이거나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근방에서 저런 구릿빛 피부색을 본 적이 없던 탓이었다.
그녀가 곧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 하나를 일레이나 쪽으로 던졌다.
“이거 뭐예요?”
“나. 너…….”
“아, 이거 혹시 선물이에요?”
일레이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꺼림칙한 모양으로 생긴 목걸이를 주워들고 살펴보니 이게 뭔가 싶었다.
[막스핀 - 노예의 목걸이]
요구 레벨 1
희소성: 마법
착용 시 귀속
〈내용〉
막스핀의 노예임을 증명하는 증표입니다.
‘이……. 이런 걸 왜 주신 거지?’
그래도 마음이 고마워서 내색할 순 없었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아, 저는 일레이나라고 해요.”
“나……. 미실트.”
“미실트……. 이름이 참 예뻐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또 언제 옮겨갈지 모르는 방이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기쁜 마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