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75화 (75/147)

<-- 눈의 정령 아이즈 -->                               아, 괜히 팔았나……? 일레이나를 보낼 때 그 마지막 아련한 눈빛이 마음 깊이 남아있다.

“에이 씨!”

갑자기 왜 이렇게 후회할 짓만 하는지 모르겠네. 이게 다 페로렌 때문이야. 도저히 이대론 게임이 안 될 것 같다. 빨리 마무리를 하든가 해야지.

“와 형님……. 이거 완전…….”

“뭘 님! 이거 정말 우리 우올로에요?”

눈앞에 놓인 검회색의 우올로가 그 멋들어진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장 33m의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동료도 3명밖에 없는 지금은 넉넉하다 못해 남을 지경이다.

우올로는 총 2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1층 갑판에는 선원실, 상황실, 선장실이 있었고, 1층 후미에는 비트급 우올로를 한대 탑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지하 1층에는 선원실과 식당, 창고, 노예 수감실을 따로 마련해두었다.

어느 정도 공간을 꾸밀 수 있다 보니 어떻게 바꿔도 상관없지만, 굳이 더 손댈 필요는 없을 듯하여 창고 일부를 노예 수감실로 바꾼 것 말고는 없다.

“와……. 목욕탕이랑 화장실도 있어요!”

그토록 원하던 우올로 내의 목욕탕과 화장실도 생겼다. 셀리안이 이토록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흐뭇하구나……. 그동안 많이 불편했던 점을 고려하여 화장실과 욕실은 특히 최신식으로 옵션을 달았다.

페로렌도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다, 자기 복이지 뭐.

*

그란트월 산 정상. 그곳은 사시사철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장소다. 평생 겨울만 있다고 여겨지는 그곳에는 아이즈라는 얼음 정령인지 요정인지 뭐 그런 녀석이 살고 있다는데, 그걸 잡아서 나오는 ‘타오르는 서리한’이라는 아이템을 먹어야 내 목걸이 아이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한다.

듣기로는 서리한의 가격이 상당히 드높아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들락거린다는데 걱정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걱정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후우우웅-!!!

“하아아아악!!! 형님!! 너무 추워요!!!”

“꺄아앗!”

“으아아아!!! 다들! 들어가!!!”

무심코 갑판 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매섭게 몰아치는 눈폭풍에 피부가 살얼음처럼 조각나는 줄 알았다. 그 잠깐 사이에 얼굴에 하얗게 눈서리가 끼었다.

우올로 메가급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전에 있던 우올로를 타고 강행했더라면 온몸이 남아나질 않았겠어.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던전 근처에 거의 도착하긴 했는데……. 이대로면 내리기도 힘들겠는데?

그때 상황실 한편에서 전장을 주시하던 드웍프가 뭔가를 보고 소리친다.

“형님 저기! 뭔가 이쪽으로 오는데요?”

드웍프 말대로 자그마한 우올로 한 척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우올로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릿발 때문에 제대로 안 보인다. 그냥 공중에 떠 있으니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

조금 가까이 다가오자 그 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저게 대체 뭘까?”

드웍프에게 물어보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모르겠는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째 가까이서 보니까 그 정체를 더 모르겠다. 우올로라고 생각되는 그 형체는 무지개를 빨아먹은 카멜레온처럼 색이 화려한데, 그 선체에 다양한 물건들이 만물상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다.

곧 선체의 한 편에 거래를 원하는 파란 기가 올라온다. 우리도 파란 불빛을 틀어 그의 승선을 허용한다.

곧 한 명의 흰색 털북숭이가 이쪽 배로 건너오더니 우리가 있는 상황실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자 그 털북숭이가 산더미만 한 짐을 짊어지고 상황실 문을 간신히 통과해 들어왔다.

“안녕 킹킹. 나는 킹킹이다. 킹킹. 물건을 팔기 위해 이걸 낑낑 짊어지고 왔다. 킹킹.”

자신을 킹킹이라 소개한 그는 새하얀 털옷을 두른 고블린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짐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하나둘 풀어놓기 시작한다.

“이게 다 뭐야?”

“킹킹이 모아온 물건이다. 킹킹.”

킹킹이 풀어낸 짐보따리에는 포션, 무기, 보석. 말 그대로 오만가지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상인이라는 거지?”

“맞다. 킹킹.”

“물건을 팔러왔고?”

“그래. 킹킹.”

처음 예상대로 만물상이 맞았나 보다.

“근데, 그 킹킹소리 좀 안 할 수 없을까?”

“그러지.”

……? 안 할 수도 있는 거였어? 너무 시원스럽게 받아주는 바람에 오히려 당혹스럽네.

“필요한 게 있냐? 있다면 말해라.”

“아, 안 그래도 마침 필요한 게 있었는데. 추위를 견딜 만한 아이템 좀 있을까?”

“물론 있다. 기다려봐라.”

고블린은 품속에서 새끼손가락 크기의 포션 병 하나를 꺼내더니 나에게 건넨다.

“추위를 견뎌내는 약이다. 그거 하나면 어떤 추위라도 견뎌 낼 수 있다.”

“그냥 물처럼 보이는데, 정말 그런 효과가 있다고?”

“물론이다 나를 믿어라.”

“그래서 가격은 얼만데?”

“30만 셀이다.”

30만 셀이면 엄청 비싼 편은 아니네. 진짜 추위를 막아 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정식 상인등록 한 녀석이 아닌지 아이템 효과를 즉석에서 볼 수 없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멱을 딸 생각이니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다.

“3병 줘.”

“좋다. 3병이니까 2억 7천만 셀이다.”

“뭐……?! 한 병에 30만 셀인데, 어떻게 세 병이 2억이 넘어?!”

“한 병에 30만 셀 두 병에 900만 셀 세 병에 2억 7천만 셀 맞다. 평생 장사만 해온 킹킹이다. 무시하지 마라.”

뭐지, 이 기적의 수학자는……? 가격을 제곱으로 때려버리는 게 어딨어?! 어쩔 수 없으니 일단 한 병만 구매하고…….

“고맙다 킹킹.”

[샤이스의 눈물]

〈효과〉

복용 시 1분간 얼음 저항력 100%가 상승하여 모든 추위로부터 몸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병만 복용할 수 있습니다.

〈내용〉

눈의 신 샤이스의 눈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포션.

아……. 1분 지속이라고……? 장난하나 진짜…….

“킹킹, 이거 1분밖에 지속 안 되잖아?!”

“맞다.”

“아니 맞다가 아니라, 이 추위를 계속 견딜 수 있는 걸 줘야지. 1분이면 산책도 못 갔다 오겠구만! 이거 환불해줘.”

“용도를 제대로 말했어야지. 환불은 안 된다. 대신 추위를 오래 견딜 수 있는 걸 보여준다.”

그러더니 보따리 속에서 따듯해 보이는 털옷 몇 개를 꺼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런 걸 꺼냈으면 좀 좋아?

“알았어. 그거 살 테니까. 이건 환불해줘.”

“환불 못 해준다.”

이 자식이 내 피 같은 돈을 꿀꺽할 생각이야?

“환불 못 해주면 너 여기서 몸 성히 나가긴 힘들 건데?”

이건 협박이다. 나는 지팡이를 꺼내 위협적으로 돌리며 바닥에 쿵 내리찍는다. 이런 녀석은 착하게 해서는 말을 안 들으니 어쩔 수 없지.

“환불을 원한다면 나도 몸 성히 나갈 생각 없다.”

그런 말을 하더니 갑자기 털북숭이 옷을 열어젖힌다. 그러자 그 안에 빨간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구슬이 대롱대롱 달려서 흔들리는 게 보인다.

저게 뭘까 하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셀리안이 놀란 모습으로 작게 중얼거린다.

“헬파이어 구슬……!”

그녀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말을 들어보니……. 지옥의 불을 소환하는 구슬이란다. 악의 단체들이 테러를 자행할 때 사용하는 구슬인데 저 구슬을 던지면 4초 뒤 본인을 포함한 반경 1km 내의 모든 생물이 지옥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된단다.

더욱 끔찍한 것은 운 좋게 신의 은총을 받고 부활하더라도 몸에 붙은 불길이 언제 꺼질지 모르기 때문에, 헬파이어 구슬에 죽은 고위 사제가 부활하자마자 죽은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 같은 하드코어 캐릭터는 그냥 훅 갈 수 있다는 거지…….

워낙 강력한 무기라 일반인들은 구할 수 없고. 드웍프조차 눈을 빛낼 만큼 가격도 어마어마한데, 그런 걸 이 녀석은 어떻게 갖고 있는 거야 대체?

“환불 얘기 한 번만 더 하면 킹킹하고 같이 죽는 거다.”

성깔 있는 녀석일세……. 그냥 얌전히 찌그러지는 게 좋겠어.

“하하……. 환불이라니 그냥 농담한 거야. 나도 환불 같은 거 귀찮아서 안 좋아해. 다음 물건 좀 보여줄래?”

이후 킹킹에게 각자 따듯한 옷 한 벌씩을 사 입었다. 그 밖에 최대 체력치 300을 올려주는 목걸이 하나를 더 산 뒤 킹킹을 빨리 내보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헬파이어 구슬과는 한 시도 같이 있긴 싫으니까.

*

던전 근처까지 우올로를 타고 왔다.

“서리팟 풀 레이드 힐러 한 분 구합니다.”

“서리 스피드팟 극 딜러 오세요. 5인 구성입니다.”

갑판 위에서 지켜보니 저 아래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눈대중으로 6, 7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왕왕거리며 모여있는데, 경쟁이 세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이거 큰일일세…….

서리가 한 번에 두세 개씩은 나온다고 해도 이정도 인원이라면 파티 꾸려도 먹기 힘들겠는데…….

“드웍프 우리도 가자.”

드웍프를 부르니, 창백한 몰골로 입술이 다 터서 기침을 콜록거리고 있다.

“뭐하냐 너?”

“콜록콜록……. 형님……. 저 몸이 좀 아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감기 걸린 것 같아요.

이 녀석 아까 분명히 킹킹한테 몸이 아파 보이게 하는 이상한 분장템을 샀다. 그런 걸 뭐에 쓰나 했더니 여기에 쓰고 앉았네?

“몸 더 아프게 하기 전에 일어나라.”

“형님, 저 진짜……. 아아악!!! 알겠어요!!”

“뭘 님. 다녀오세요.”

드웍프의 귀를 잡은 채 끌고 나온다. 나는 셀리안의 배웅을 받으며 아이즈의 던전을 향해간다.

*

파티를 꾸려 볼까……? 근데 나는 딜러라고 해야 하나? 이 게임에서 파티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으니 내 포지션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

드웍프도 있어서 파티 구하기도 모호하고……. 그때 한편에서 파티 팻말을 들고 서 있는 귀여운 여성이 한 명 보인다. 딸기우유 같은 분홍빛 머리색상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띈다.

“버프 사제 생초보 데려가실 분. 헤딩팟도 좋아요. 던전 구경하고 싶어요.”

와……. 파티 권유해볼까 싶어서 가까이 가봤더니 떠 있는 팻말 정보에 레벨이 74란다. 꿇려서 안 되겠다. 여기 던전 몹 평균 레벨이 몇이길래 74짜리가 오는 거지?

생각해보니까 보스가 아이즈라는 거 빼고는 이 던전에 대해 아는 게 없잖아……? 살짝 몹들 맛만 보고 나와볼까?

“가자 드웍프.”

“후우…….”

한숨 쉬는 드웍프를 데리고 버프 사제를 지나 던전 입구로 향하려던 때 그녀가 나를 부른다.

“저기요!”

“네? 저요?”

“네! 방금 저 계속 쳐다보셨죠?”

이다음에 나올 말을 생각해보면 ‘어딜 봐 이 변태야 죽고 싶어?’ 등의 말이 아닐까?

“음흉한 눈으로 쳐다보셨으니, 던전에 절 데려가셔야겠어요.”

뭐, 얼추 비슷했네. 근데, 이게 말이야 당나귀야? 음흉한 눈으로 쳐다본 적 없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런 눈으로 본 사람한테 왜 던전을 데려가달래? 그녀도 민망했는지 눈웃음치며 재빨리 사과한다.

“아, 장난이었어요. 죄송해요. 근데 던전 가시는 거면 저도 데려가시면 안 될까요……? 버프 사제인데 한 시간째 아무도 안 데려가서요.”

“저 따라오시면 후회하실 텐데……. 저 엄청 약할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제가 버프 걸어드리면 돼요!”

“보스 못 잡고 구경만 하려는 건데요?”

“저도 구경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데려가 줘요. 아잉, 오빠아.”

뜬금없이 애교라니, 참 웃기는 여인일세…….

*

그 웃기는 애교에 홀려서 일단 데려오긴 했는데……. 체면 구기면 어쩌지.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약하다고 못 박아 놨고, 던전은 딱 맛만 볼 생각이니까……. 그래서 3인으로 온 거기도 하고 말이다.

아, 그리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퀘스트도 받았다. 몰랐는데 퀘스트가 있었다.

[퀘스트 발생! - 얼어붙는 공포][난이도: 매우 어려움]

그란트월 산 정상에는 무시무시한 눈의 정령 아이즈가 살고 있습니다. 아이즈를 쓰러뜨려 더 강력해지는 힘을 막아주세요.

〈목표〉

눈의 정령 아이즈를 쓰러뜨리세요. (0/1)

〈보상〉

브랜드 명성 200 획득 / 잠재 5 획득 / 경험치 획득 / 체력 성장 포션 획득 / 마력 성장 포션 획득

이걸 깰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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