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69화 (69/147)

<-- 콜로세움의 챔피언 -->                               결투는 시작됐다. 그러나 둠페일은 환호성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다. 적이 안 올 때는 선공하자는 주의지만, 이번만큼은 그가 내뿜는 위압감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가 겁난다.

그래도 챔피언 전이라고 체력 회복력을 높여주는 음식도 챙겨 먹긴 했는데, 아직은 상대가 얼마나 센지 모르니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다.

주변을 쭉 둘러보던 그가 주변이 조금은 잠잠해지자 서서히 입을 연다.

“지금까지 만난 상대를 모두 한 방에 쓰러뜨렸다지?”

우린 한 번 만난 적 있지만, 둠페일은 내가 누군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반쪽짜리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도 있고, 막스핀의 우올로에서 잠깐 만난 것 말고는 그와 접점이 없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때 우올로로 등판을 들이받았던 걸 기억 못 하니까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그가 팔짱을 낀 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기회를 주지. 먼저 공격해라.”

강자들이 전형적으로 하는 말이구나.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덥석 받아 무는 게 제일이다.

“좋다! 네가 진짜 남자라면 2번 때릴 기회를 줘라! 챔피언으로서 그 정도 아량은 베풀겠지?”

그가 코웃음 친다. 그냥 권유해보는 거다. 거절하더라도 한 대는 확보해둔 셈이니 괜찮지 않은가.

“재밌는 녀석이군. 좋아. 해 봐라.”

어? 생각보다 쉽게 받네? 한 5대 정도 부를 걸 그랬나……?

아쉬운 마음을 애써 숨기며 그의 앞으로 다가간다. 바로 앞에서 보니 정말 위압감이 대단하다. 키가 한 2m 30cm는 되는 것 같은데 앞에선 내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가장 강력한 공격을 날려야 해. 나한테 가장 강력한 기술이라면 딱 하나다.

나는 빠르게 그의 뒤로 돌아 팔뚝으로 목을 조른다. 그리고 나의 절정 비기인 각인을 시전한다.

“고통받아라!!!”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바로 다음에 일어났다.

-‘대상과의 격차로 각인에 실패하였습니다.’

격차 때문에 처음으로 각인을 실패한 것이다. 격차라는 것은 레벨 경험치, 능력치, 명성 등 많은 것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수치기에 지금까지 레벨은 낮더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각인에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둠페일은……. 격차 때문에 각인을 실패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당혹스러움을 숨길 수 없는 위로 둠페일의 거대한 손이 들어온다. 미처 대비할 틈 없이 그의 손아귀가 머리채를 턱- 잡는다. 그리고 그 손에 힘을 싣는다.

-‘42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끄아아아악!!!”

엄청난 악력에 고통이 뼛속까지 잠식해 든다.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나를 바닥에 쿵-! 내려찍는다. 엄청난 힘에 내 몸은 서너 차례 튕기면서 날아간다.

거친 흙바닥에 바닥에 피부가 쓸려 내 몸은 금세 피범벅이 된다.

“커억!

-‘1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음을 1회 견뎌냈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않았는데 벌써 1회의 죽음을 맞았다. 정신이 멍해진다. 몸이 너무 아프다. 뼈가 으스러진 것 같은 느낌이야…….

“제법 세다고 들었건만, 목 조르기 같은 시답지 않은 짓거리를 하다니. 그런 게 나한테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그는 실망스럽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나는 비틀거리는 채로 몸을 일으킨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데……? 이거 큰일 났네.

“약속이 다르잖아! 아직 한 번밖에 공격하지 않았다고!”

“너무 시시해서 마음이 바뀌었어. 그냥 빨리 끝내주지.”

젠장……. 그가 걸어온다. 마치 호랑이가 저주파를 내뱉으며 걸어오듯 오금이 저려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때와 마찬가지다. 내가 강해졌듯 둠페일도 강해진 것일까? 아니면 그때도 이 정도의 수준이었던 건가?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싸워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의 각인 실패로 자신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후웅-! 얼굴 크기의 주먹이 뺨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다.

“흐앗!”

하마터면 목이 떨어져 나갈뻔했다. 저 덩치에 저 속도라면 반칙 아닌가?!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그에게 반격을 시도한다.

파악-! 그의 얼굴까지 뛰어올라 턱을 후린다. 그러나 간지럽지도 않은지 곧장 팔을 휘둘러오는 둠페일에 밀려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약한 애들하고 할 때 이 정도면 공격이면 턱이 찢어졌을 텐데 역시 둠페일은 꼼짝도 안 한다.

최대한 관절 위주로 공격해서 타격을 누적해야겠어. 그 방법밖에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일단 피가 찼으니까 한 대는 더 견딜 수 있을 거야. 최대한 안정적으로 피해를 주자.

그가 달려들고 그의 우측으로 돌면서 내지르는 주먹을 피한다. 그리고 그의 왼 다리를 발로 가격하는 그 순간……!

파악-! 쾅!

“커허억-!”

-‘241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음을 2회 견뎌냈습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샌가 나는 움푹 패인 바닥에 얼굴을 묻고 쓰러져 있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는 후속 공격을 대비해 죽기 살기로 일어나 거리를 벌린다.

“제법 맷집은 쓸만하군?”

-‘상태 이상 ‘혼미’를 견뎌냈습니다.’

“허으으윽……. 하아…….”

방금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나는 분명 그의 무릎을 발로 차려고 했다. 그런데 둠페일이 순간적으로 다리를 빼더니 내 머리를 거대한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그 공격으로 내 머리통과 함께 돌바닥이 쩍-! 갈라지며 나는 순간적으로 기절했다.

어떻게 저 정도 덩치에 그런 속도가 나오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어마어마한 파워는 또 어떤가? 121이나 되는 내 잠재력이 모두 체력으로 가는데도 불구하고 한 방에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음식 버프를 믿고 있었는데, 둠페일을 상대로는 피가 한 순간 바닥나니 전혀 소용이 없다.

비록 카운터에 치명타로 들어갔다는 걸 고려해도 무시무시한 힘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죽음 저항도 두 번이나 발동됐으니, 이제 근성이고 뭐고 더는 바랄 수도 없고…….

“하아…….”

진짜 둠페일 말도 안 되는 인간 같으니! 너무 짜증 나고 화가 나는데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안 보인다는 게 더 열 받는다.

지금까지 나한테 당한 애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처음엔 쉽다고 좋아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의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미안함을 텔레파시로 전달하면 둠페일이 나를 용서해주려나?

둠페일이 손목을 풀며 다가온다.

그래, 아마 그럴 일 없을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최대한 야비하게 하겠어. 나는 관중석을 쭉 둘러본다.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관중들 걱정스레 지켜보는 페로렌과 셀리안. 그리고 제발 걱정하는 척이라도 했으면 하는 드웍프.

그래, 좋은 방법이 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보자.

둠페일이 나를 쫓으면 나는 그에게서 멀어진다.

“어디 계속 쫓아와 보시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왜 몸이 무거워서 따라오기가 버거운가?”

나는 가볍게 뛰며 따라오는 그를 도발한다. 후웅-! 큰 주먹이 내 주변을 스칠 때마다 몸을 옴츠러들게 하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느려서 누굴 잡겠다는 거야?”

내가 도망 다니자 나를 향한 거센 비난이 관중석으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다. 화끈한 싸움을 기대한 사람들은 겁쟁이처럼 달아나는 내 모습에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쓰레기나 음식물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경기장에 베리어가 쳐져 있기에 이곳까지 들어오진 못한다.

이기려면 그들을 무시하고 더욱 뻔뻔해져야 해.

둠페일도 도망가는 내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나 보다.

“강단 있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계집처럼 놀고 있군.”

“아 맞아. 생각해보니까, 너 여자한테 싸움 진 적 있지? 근육만 돼지처럼 키워 가지고는, 자기보다 3배는 작아 보이는 여자한테 힘도 못 쓰고 얻어터졌지. 안 그래?”

인신공격에 둠페일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좋아, 약하다는 말에는 반응이 좀 온다 이거지……?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인다.

“천하의 둠페일이! 여자한테 알몸으로 피떡이 되도록 쥐어 터져놓고는 여자를 비하하는 식의 발언을 하다니! 이거 말세로구만!”

“음모를 꾸며낼 생각이냐! 내가 누구한테 졌다는 말이냐! 나 둠페일이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져본 적 없는 인류 최강의 남자 둠페일이란 말이다!”

관중들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웅성거린다. 피 튀기는 혈투를 기대하고 콜로세움에 들어온 관중에게 지금의 상황은 영 달갑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나 무패의 챔피언 둠페일이 여자한테 얻어터졌다는 사실은 이 볼썽사나운 상황을 감수하고서라도 꽤 흥미로운 가십거리였기에 자리를 떠나는 이는 없었다.

“진 적이 없다……? 아주 이젠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둠페일이 이렇게 약아빠진 인간이었나? 내가 다 봤는데, 거짓말할 거야?”

“……너 누구야?”

“내가 누군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여자랑 혈전을 벌여서 졌다는데 중요한 거지! 전력을 다해서 싸웠는데도 여기저기 찢어지고 코피까지 터지고 아주 못 봐주겠던데!”

그가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며 나를 향해 달려든다.

“그 마스크를 벗기고 주둥이를 발목까지 찢어주마!”

“아주, 입만 살아가지고, 어디 하려면 해보시지?”

그가 분노에 차서 나를 향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조금만……. 그래 조금만 더 와라. 조금만 더! 지금이다!

-‘셀리안! 지금이요!’

-‘네!’

관중석에 있던 셀리안의 연주가 시작되자, 둠페일이 머리를 움켜쥐더니 관중석 벽에 그대로 머리를 들이받는다.

“윽……! 크윽!”

시끄러운 관중들 사이로 작게 새어 나오는 연주지만, 둠페일에게는 선명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그는 거대한 신체를 좌우로 비틀거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조금 전 나는 둠페일을 도발하면서 도망치는 동안 관중석의 셀리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의 연주는 주변인 모두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려면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나는 그녀가 둠페일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발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그녀의 창작이 마무리되자 근처로 유인해 연주를 듣게 했다.

그 결과 둠페일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하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남은 건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둠페일에게 다가가 경기를 마무리 짓는 것뿐이다.

-‘[공격권]이 발동됩니다.’

“으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이것도 음모로 보여? 맞아. 너 같은 괴물을 쓰러뜨리려면 별 수 없잖아?”

그의 분한 표정에 웃음이 절로 난다.

“이젠 내가 챔피언이야. 둠페일.”

*

“크윽……. 이 자식 용서 못…….”

풀썩-!

-‘파생 기술 ‘공격권’ 2단계 자질이 개화되었습니다.’

바닥에 힘없이 몸을 눕히는 둠페일의 앞에 서서 거친 숨을 내쉰다. 정말 보는 것처럼 괴물 같은 인간이었다. 설마 셀리안의 연주를 저항하면서 싸우려고 할 줄이야.

그렇지만 이번 경기의 승리자는 나다.

“무적의 둠페일을 꺾고!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했습니다! 뮬린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새로운 챔피언 탄생에 대한 관중들의 우렁찬 박수가 이어진다. 어처구니없이 벽에 부딪혀서 쓰러진 둠페일에 대한 야유도 있었다.

둠페일쪽에 돈을 건 혹자는 승부 조작이 아니냐며 따지고 들었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뭐 어쩌겠는가?

이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둠페일과의 격차가 없었더라도 각인은 사용 수 없었다. 내가 참가한 콜로세움의 경우에는 아이템과 마법 모두 금지라는 규칙이 있었기에 각인 자체가 의미 없는 시도였다.

그래도 나한텐 셀리안이라는 이쁜이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정말 멜시엘의 노예로 남을 뻔했어. 나중에 격하게 안아줘야지.

*

선수 대기실에서 옆방으로 건너가며, 새로 개화한 파생권을 살펴본다.

둠페일과의 접전을 펼치면서 개화된 공격권 2단계. 이제부터 공격권을 이동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중심으로 공격권이 자동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대신 지속시간이 생겼는데, 5분이면 꽤 긴 편이니 괜찮은 것 같다.

멜시엘은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들어오기도 전부터 치마를 팔랑거리고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다. 이쯤 되면 이제 무슨 말 할지 예상은 간다. 뻔하지. 빨…….

“박아.”

“예? 잘못 말씀하신 건가요?”

“어서 박아……. 네 경기롤 보고 나니 몸이 뜨거워졌어. 내 몸을 식혀 봐!”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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