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66화 (66/147)

<-- <로그인>키스는 영화처럼 달콤하게 -->                               그녀를 슬쩍 쳐다보니. 침을 삼키며 그 장면을 몰입해서 본다. 귀여워 보여서 계속 쳐다보자 그녀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빤히 바라본다.

평소 같았으면 5초도 못 마주쳤을 눈이지만, 어두운 영화관의 영향인지, 흘러나오는 로맨틱신의 영향인지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진주 가루처럼 반짝이는 눈매. 틴트 바른 연분홍색 입술. ‘화장도 참 잘하는구나’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드는 한편, 영상 빛에 반사된 그녀의 모습이 문득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하연이의 입술이 그렇게나 탐스러워 보일 수 없다. 지금 저 영화 속 주인공이 내가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든다. 나는 살며시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을 포갠다.

그녀의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그녀는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지만 내가 눈을 살며시 감자 그녀도 따라 감기 시작한다.

금방 만들어진 순두부처럼 부드러운 입술. 피부에 감도는 향기로운 꽃내음. 피부를 맞댈 뿐인 단순한 입술의 접촉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신경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의견을 물어야 했을까? 하는 뒤늦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이제 와서 멈추거나 되돌릴 순 없다. 순수한 그녀와 입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약을 투여한 것처럼 쿵쿵 뛰기 시작한다.

“츄웁……. 츄웁….”

그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교감 신경들이 입맞춤에 함축되어 서로의 마음을 오간다. 하연이의 한 손은 내 손을 맞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린다.

키스에 서투르다. 그녀는 내 움직임에 따라 주춤주춤 반응할 뿐이지만, 이 키스는 나에게 그 어떤 입맞춤보다 더 큰 충족감을 주고 있다.

“츕…. 응, 응……♡”

그녀의 사랑스러운 음색. 목소리에 담긴 매력이 우리만의 무대를 연무처럼 가득 채운다. 신이 새로운 생명을 만들 듯, 그녀의 숨결은 내 안에 죽어 있던 사랑이란 감정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츄읍…. 츕…….”

우린 그렇게 영화의 키스신 배경음악이 끝날 때까지 깊고도 진한 입맞춤을 나눴다.

*

영화가 끝나고 하연이네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다. 오늘은 자취하는 방이 아닌, 어머니 집으로 간다고 한다. 그곳에 어머니와 동생이 같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몰려드는 이 침묵을 어쩌면 좋을꼬. 그녀와 걸으면서 제대로 된 대화를 못 나누고 있다. 침묵을 깨기 위해 뭐라도 말을 건네야지, 안 되겠다.

“영화……. 재밌었어. 그치?

“아……. 네.”

사실 영화 내용은 내 머릿속에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려 5배 비싼 티켓이었건만 영화 내용이 머리에 남지 않는다니……. 그래도 만족스러움은 평점 10점을 채워주고 싶을 만큼 뛰어났다.

영화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았더라도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푯값이 50배는 더 비싸도 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으니까.

현실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하는 키스라 그런지 유독 설렘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흐음…….”

근데 막상 영화가 끝나고 나니 다시 첫 만남 때로 돌아간 느낌이다. 그녀의 감정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미쳤다고 입술부터 들이댔으니, 하연이는 당황한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지?”

“마지막… 이……. 아, 네. 그랬… 던 것 같아요…….”

기억도 안 나는 영화 내용을 억지로 포장해서 말했는데, 막상 하연이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다.

“집, 여기에요.”

어느덧 하연이네 어머니 집에 도착했다. 불이 켜져 있고 동생 하란이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럼 들어가 봐.”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영화관…….”

하연이는 말끝을 흐리더니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는 하려던 말을 이어서 한다.

“앞으로 자주 가고 싶어요.”

그 뒤에 작게 한마디 덧붙인다.

“오빠랑…….”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하게 들었다. 내 귀는 밝은 편이라 이런 건 또 기가 막히게 들을 수 있다.

하연이는 그런 말을 남기고 부끄러웠는지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중간에 문이 안 열려서 당황한 듯 행동했지만, 거의 힘으로 밀어붙여서 문을 열고는 들어간다.

너무하네. 진짜……. 기습적으로 심장에 강펀치를 때려 넣고는 저렇게 도망가는 게 어딨냐? 누군 심장이 아파서 꼼짝도 못 하겠는데…….

이런 감정 느껴본 게 대체 얼마 만이지?

결국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야단난 심장이 잠잠해질 때쯤에야 걸음을 옮긴다.

*

“여태까지 모아 온 노예 전부 다 해서 1790만 셀. 이구먼.”

-‘소지금 17,900,000셀을 획득하였습니다.’

-‘브랜드 명성이 179 증가하였습니다.’(현재: 4304)

“후우…….”

노예상에게 노예를 팔아넘긴 대가로 두둑한 돈주머니를 건네받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2주 전 셀리안과 첫날 밤을 신나게 보낸 후, 우리는 아이셀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그란트월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란트월의 길목인 페레나부르에 도착하자마자 던전 안내원이 하는 말에 우리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란트월에 가기 위해선 최소 메가급 이상의 우올로가 필요하다는 말. 메가급은 현재 타고 있는 킬로급 우올로보다 1단계 높은 우올로였다. 그런 만큼 가격도 몇 배는 비쌌다.

가장 저렴한 우올로를 산다고 해도 최소 5천만 셀 이상은 필요했으니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우리는 우올로를 사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악당들에게서 노예를 털어야만 했다. 그렇게 몇 주간 노예를 털어서 수중에 모인 돈이 고작 3407만 셀,

이 노예 털기라는 게 하면 할수록 난이도가 올라가고 희소성이 떨어지는 것인지, 처음보다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많이 안 쳐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셀리안이 도와줘서 편했는데, 한 번 죽을뻔한 위험에 처한 뒤부터는 그냥 나 혼자 다니고 있다.

그녀는 자진해서 돕겠다고 하지만, 더는 내가 불안해서 못 데리고 다니겠더라. 전투에 능한 여인이 아니다 보니 그녀가 위급상황에 처하면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전투 전에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 도움 되는 버프가 생기니 그것만으로도 나쁘진 않다.

“이제 노예상 털고 다니는 것도 힘들어서 못 하겠네.”

노력한 것에 비해 적은 금액을 보며 재차 한숨을 내쉰다. 노예 시장을 나오니 드웍프가 양손을 비비며 나를 마중한다.

“형님, 돈 좀 많이 줬습니까?”

“그 개고생을 했는데 이거 쥐여주더라”

“아……. 뭐, 조금 덜 받으면 좀 어떻습니까? 시작이 반 아닙니까?”

“그래, 일단 이번엔 너도 고생 많았다.”

열심히 정보를 물어온 드웍프에게 고생했다는 의미로 300만 셀을 건넸다. 처음엔 마음만 받아도 된다며 푼돈에도 감격하더니 이제는 감흥도 떨어졌나 큰 반응도 없다.

“형님 그럼 이제 노예상은 안 터실 겁니까?”

“돈을 더 벌긴 해야 하는데……. 지금 근처 노예상 놈들이 단합해서 내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게 문제야.”

노예상 몇 군데를 털고 다녔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놈들도 단합해서 내가 오기도 전에 발견하고 선공하는 경우가 생겼다.

지금 나에겐 심연의 팔찌가 필살기인데 적의 수가 많고 워낙 단체로 몰려들다 보니, 전투당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심연의 팔찌도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른 왕국으로 넘어가거나 브랜드 명성을 조금 더 올려서 경매하던가 해야 할 것 같아.”

노예 경매는 브랜드 명성이 5,000 이상일 때부터 할 수 있단다. 그때부터는 자잘한 노예상 털 필요 없이, 한두 명만 집중적으로 교육해서 팔아도 꽤 짭짤한 금액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700만 더 올리면 되는데……. 브랜드 명성 700을 달성하려면 무려 7000만 셀을 벌만큼 노예를 팔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노예 털기가 힘들어진 날에는 그것이 무리라는 걸 깨닫는다.

더군다나 우올로 탑승 인원이 적어서 노예를 별도로 가둬서 옮기는 철창을 쓰고 있는데, 그마저도 크기가 작아서 노예가 많은 경우에는 노예시장을 몇 번이나 왕복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여러모로 지금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 * *

사교계에서 우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멜시엘 자작부인. 그녀에게는 남들에게 떳떳하게 말하고 다니지 못하는 취미가 있었다. 품위에 걸맞은 그녀의 고상한 취미는 바로 강인한 남자를 컬렉션처럼 수집하는 일이었다.

마귀 같은 여인네들처럼 말 못 할 성벽을 남자 노예로 채우려는 속셈은 아니었다. 뭐, 본인 말로는 적이 많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렇다고 하지만, 진실은 멜시엘과 그녀의 노예만이 알고 있을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는 강인한 노예들을 사들여 콜로세움에 출전시키는 일을 즐기곤 했다. 어쩌면 자신이 산 노예가 승리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그런 부류인지도 몰랐다.

여느 때처럼 멜시엘은 싸움꾼들이 모여드는 노예시장에 방문했다.

그녀는 얼굴 가리개 위로 드러난 고혹적인 눈매로 오늘 경매에 올라오게 될 노예들을 찬찬히 살폈다.

“으음……. 탄탄하네, 좋아.”

이곳의 노예들은 일반적인 노예들과 달리, 허리를 굽히는 법이 없었다. 주인에 대한 예는 지키더라도 부당한 일을 권고 당하면 스스로 의견을 내세워 거절하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도망가기도 했다.

멜시엘은 오히려 그런 부분이 좋았다. 강인한 싸움꾼 노예가 자신 앞에서 스스로 무릎 꿇을 때야말로 최대의 행복감을 느꼈으니 말이었다.

“넌 어떠려나? 잘 싸우니?”

싸움꾼은 자신의 탄탄한 복근에 손을 가져다 댄 멜시엘을 보며 위협적인 말을 했다.

“당신 손을 1초 내로 아작 낼 수 있을 만큼은 싸우지.”

상대가 귀족이건 누구건 이미 노예가 된 상태에서 그들에게 무서울 건 없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싸움꾼의 기가 센 말에 한걸음 물러서겠지만, 멜시엘은 달랐다. 여태까지 수십 명의 노예를 무릎 꿇린 장본인이었기에, 상대가 누구든 어떤 성격을 갖고 있든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훗, 미천한 노예 주제 입만 살았구나. 네가 마음에 드니, 너로 결정해야겠다.”

멜시엘은 눈앞의 남자만큼은 반드시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경매가 시작될 경매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한 가지 좋은 방법을 떠올린 뒤 유저가 많은 도시인 ‘에드 하이리스’로 왔다. 처음 시작한 마을이자, 여러 수모를 많이도 겪었던 곳. 오랜만에 오니 느낌이 새롭다.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해? 죽으려고 작정이라도 했어?”

“죽으려고 했으면 진작 죽었겠죠.”

페로렌이 나를 걱정하며 말한다. 말투는 누가 들어도 그렇지 않지만, 저 정도는 말투는 확실히 날 걱정하는 게 맞다. 내가 하려는 행동이 그녀에겐 그 정도로 위험하게 보이긴 하나 보다.

“뭘 님. 제 생각에도 그건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이 방법이 오히려 안전하고 빠를 수도 있어.”

셀리안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 나를 걱정해주는 미녀가 둘이나 있다는 게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그 반면에 아이디어를 제시한 드웍프는…….

“돈 많이 벌어오십쇼. 형님.”

얘는 분위기 못 읽는다고 때릴 수도 없고…….

아무튼, 이건 드웍프 말대로 돈 벌러 가는 건 아니다. 단기적으로 명성을 가장 빨리 올릴 방법. 바로 콜로세움 아레나다. 1:1결투를 펼치는 경기말이다.

일반적으로 유저들끼리 하는 콜로세움이라면 레벨 30이 넘어야 하기에 입구조차 못 들어간다. 그러나 약간의 꼼수를 이용하면 레벨이 1인 나도 콜로세움에 들어갈 방법이 있다.

바로 노예가 되어 시합에 참전하는 것. 자진해서 노예가 되겠다는 거야?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라 하겠다. 그래, 사실 이건 미친 짓이다. 그러나 미친 생각도 때로는 사고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콜로세움은 한 번의 승리당 무려 100의 명성을 준다. 그러므로 딱 7번의 승리만 거머쥐면 빠르게 브랜드 명성 5,000을 모을 수 있다. 온갖 것들을 신경 쓰면서 노예를 털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거다.

거기다 부가적으로 승리 금액까지 들어올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7번의 승리만 가져오자. 나는 나를 믿는다.

“그럼 갔다 올게.”

그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나를 배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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