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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사기단-62화 (62/147)

<-- 비 오는 날 밤의 연주 -->                               그녀의 가게는 전부 불에 탔지만, 그 사정까지 백작에게 말하자 전부 배상해줬다. 이전보다 거의 3배는 큰 식당으로 말이다. 그 백작 생각보다 진국이다.

“저번에 말씀 못 드린 게 있어서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났네요.”

“무슨 말이요?”

“죄송하고 또,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덕분에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졌어요. 그리고……. 아무렇게나 말했던 거 죄송해요. 저 같은 게, 뭘 님께 실망해서 뭐 어쩌겠다고 그런 말을…….”

나는 기억조차 안 나는 말을 그녀는 내내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이렇게 사과하는데 거절할 순 없지.

“괜찮아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문득 그녀의 장바구니에 담긴 달걀에 시선이 간다.

“아! 셀리안 씨. 그럼 사과받아드릴 테니까 거기 계란 3개만 줄래요?”

“계란이요……?”

셀리안은 영문모를 표정을 지으면서도 계란을 꺼내준다. 나는 그중 하나를 드웍프에게 건넨다.

“드웍프 단판으로 가자.”

드웍프는 내 말이 끝나자 그랑즈를 향해 계란을 힘껏 던진다. 계란을 빙글빙글 날아가더니 상의를 더럽히며 퍼졌다.

“으! 어떤 녀석이! 내 옷에 이따위 걸! 니들은 경비병이라는 놈들이 가만히 서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저런 새끼들 잡아 쳐넣지 않고!!”

그랑즈의 성난 외침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 반응해줄 하수인들은 더는 없다.

“그럼 내 차례!”

내가 던진 계란이 그랑즈의 머리에 맞고 팟! 터지며 노른자가 줄줄 흘러내린다. 그 축축하고 끈적한 느낌에 불쾌함을 한껏 느끼는지 미친 사람처럼 나를 보고 소리친다.

“너! 너!! 나를 이 꼴로 만든 거 두고두고 갚아주겠어! 내가 풀려나는 순간 네놈을 잡아서 사지를 절단하고 몸뚱이는 과녁으로 걸어서 피부가 문드러질 때까지 쏴 죽이겠어!”

귓가에 왱알앵알하는 소리를 가뿐히 무시하고 마지막 달걀은 셀리안에게 건넨다.

“마지막은 당신 차례에요.”

“저요? 이건 너무…….”

“왜요? 이것도 바람직하지 못 한 일 같아요? 아직도 저런 인간 벌하는 게 마음에 걸려요?”

셀리안은 고개를 흔든다. 그런 의미가 아닌 듯하다.

“그게 아니라……. 저런 인간한테 던지기에 너무 좋은 재료들이라…….”

반전 있는 셀리안의 말에 무심코 웃음이 터졌다. 그녀는 내 모습에 따라 웃더니 곧 그랑즈를 향해 힘차게 던진다.

계란은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신 내린 듯 욕을 바가지로 쏟고 있는 그랑즈의 입에 정확히 안착한다.

“너희……! 커학! 크헉! 콜록! 콜록!”

계란이 기도에 들어가서 사레가 걸렸는지 죽기 살기로 기침을 해댄다.

“와……. 제대로 던졌는데요?”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요.”

“셀리안……. 앞으로도 그렇게 밝게 웃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살아요. 당신은 웃을 때가 정말 이뻐요.”

“아, 네.”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다. 내가 너무 노골적인 말을 꺼낸 모양이다.

“그러면, 이만 가봐야겠네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시 오게 되면 가게 놀러 갈게요.”

“어……? 떠나시는 거예요?”

원래 떠날 생각은 맞지만 이런 말을 굳이 꺼낸 이유는 그녀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다. 나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만약 따라오겠다고 한다면 나로서는 좋은 전력이 하나 생기는 것이니 두 손 들고 환영할 생각이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페로렌과 달리 전투에서도 쓸모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전투에 익숙지 않다면 괜한 짓을 하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미녀 악사가 한 명 추가되는 것이니 어떻게 되더라도 나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떠나야죠. 저는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아……. 모험가셨죠.”

노예상이라는 특성상 어느 한 곳에만 매여 있을 수는 없다. 그녀는 아직 내가 노예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동료가 된다면 얘기를 꺼낼 생각이다. 그녀의 성격상 호감도 떨어지는 건 감수해야겠지만, 혀만 잘 놀리면 많이 떨어질 것 같진 않다.

여기서 승부수를 한번 띄워볼까?

“셀리안, 나랑 같이 갈래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서 나와 눈을 마주친다. 이런 제안을 할 줄 몰랐던 얼굴이다. 긍정도 부정도 하진 않지만, 가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거절은 않는 것 같다. 나는 셀리안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문지른다.

“당신의 고운 손으로 연주하는 곡을 매일 듣고 싶어요. 그리고 셀리안이 원하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어요.”

“이야, 형님. 작업 솜씨가 보통이…….”

나는 조용히 다가와 훼방 놓는 드웍프의 입을 틀어막고 페로렌과 함께 우올로로 먼저 보낸다.

“저도 같이 가고 싶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버지께 허락도 못 받았고요. 아마, 반대하실 거예요.”

“아버님 허락만 떨어지면 된다는 거죠?”

그런 거야 내 전문이지…….

*

“설마 아버지께서 진짜 허락하실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덕분에 셀리안 임신시키는 건 힘들어졌네요.”

“아아으……. 그 말은 제발 잊어주세요.”

셀리안이 얼굴을 감싸며 새빨개진 양 볼을 숨긴다. 그녀의 레스토랑에 들러 그녀의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으러 들렀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의외로 쉽게 허락했다. 만약 안 되면 각인이라도 걸어서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한 건지 벌써부터 나를 사위 취급하고 있었다.

덕분에 자네라는 호칭을 얻은 것도 모자라, 한 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전까지는 임신시키지 말라는 특명을 받았다. 애초에 임신이 가능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매뉴얼을 찾아본다.

혹시 구현해놓은 건 아니겠지?

음, 다행히 그건 아닌가 보구만. 현재 미구현이라는 거 보면 업데이트 예정에는 있는 건가? 대체 얼마나 사실적으로 구현할 생각인 거야?

“다들, 인사 나눠요. 이쪽은 셀리안, 여긴 드웍프, 페로렌.”

“아,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셀리안이라고 합니다.”

셀리안의 인사를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이 어째 좋지 않네…….

“하아…….”

페로렌이야 원래 사람 북적이는 걸 싫어하니까 그렇다고 쳐도, 드웍프까지 웬 한숨? 이유를 물으니 따로 불러서 나에게 조곤조곤 얘기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었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니 말입니다. 동료가 늘어날수록 제 지분이 많이 약해지지 않나 싶어서요.”

“웬 지분?”

“솔직히 그렇잖습니까. 이제 페로렌도 돈 다 쓴 것 같고, 저 여자도 돈이 없을 텐데, 결국 형님이 저까지 먹여 살리려면 허리가 굽지 않겠습니까?”

당당하게 자신을 먹여 살리라는 식으로 말하다니, 이놈의 철면피는 망치로 내리쳐도 흠집 하나 안 나겠다. 그렇지만 드웍프의 말을 심각하게 고려해볼 필요는 있다. 게임 시스템상 NPC가 동료가 될 경우 플레이어에게 웬만하면 돈을 보태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간혹 페로렌이 여관비로 50만 셀을 보탠 것 같이 특별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별한 경우고 일반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 같다.

일례로 페로렌이 집에서 들고나온 금액이 무려 1억 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살뜰히 챙기신 건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많은 돈을 전부 증발시키셨다. 앞으로 그녀의 여관비, 밥값, 옷값 전부 내가 내야 하니, 허리가 휠 것 같긴 하네.

목걸이를 업그레이드하는 대로 돈부터 벌어들여야겠어.

*

몬드리호프 도시를 떠나 지나가는 마을에서 묵어가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인 그란트월로 가기 위해선 그 길목인 페레나부르에 가서 자세한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날씨가 좋지 못해서 우올로 조종이 힘들다.

조금 큰 우올로라면 운행해도 무리가 없겠지만, 고작 킬로급 우올로로는 선체가 뒤집히는 불상사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나는 새근새근 잠에 빠진 페로렌에게 들키지 않게 바닥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방을 빠져나온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페로렌하고는 항상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다. 신의 농간인지 뭔지 방이 항상 그렇게밖에 남지 않는다.

페로렌은 셀리안이랑 같은 방에서 자도 될 테지만, 페로렌도 은근히 낯을 가리는 편이라, 차라리 익숙한 내가 같은 방에서 묵고 있다. 덕분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기에 저절로 눈이 저절로 떠졌다.

“으 추워…….”

우르릉 쾅-! 창문을 거세게 뒤흔드는 빗줄기.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울리는 천둥소리. 오늘 같은 날은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밀려온다. 복도 창가에 붙어서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청승맞게 바라보는데 근처 방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셀리안의 방인 것 같은데……. 나는 조용히 그녀의 방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

잠겼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열리고, 조용히 지켜보는 광경이 연출되어야 하는데 멋없게시리…….

조용히 방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저에요. 셀리안.”

그녀가 문을 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뭘 님!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잠도 안 오고, 어디선가 멋진 연주 솜씨가 들려서 와 봤어요.”

“들으셨어요……? 죄송해요. 잠이 안 와서…….”

그녀는 바이올린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줄 사이에 손수건을 끼워 연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좋은 소리가 나다니. 대단하다.

“아, 어떡하지……? 일단 여기 앉으세요. 아, 여긴 너무 더러운데……. 이, 이쪽에 앉으실래요?”

그녀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나 때문에 허둥지둥하며 침대 이불을 깨끗이 정리한다. 그 모습이 꼭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사람처럼 정신없다.

“대충 앉을게요. 셀리안도 옆으로 와요.”

“아, 네. 네?! 네…….”

보기와 다르게 하는 행동은 수선스러운 면이 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내 옆에 다소곳하게 앉는다. 시선은 천장을 바라보고. 손가락은 무릎에 두고 피아노를 치듯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오늘 아버지와 떨어진 지 첫날인데 어때요?”

“아, 네? 아……. 괜찮아요. 좋아요. 아! 아버지랑 떨어져서 좋다는 게 아니라…….”

단순한 물음일 뿐인데 갈팡질팡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손을 마구 움직인다. 그런 셀리안의 손을 붙잡는다.

“흣?!”

“긴장 풀어요. 왜 이렇게 떨어요?”

내가 손을 잡고 있자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지. 손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줄어든다. 반응 재밌네. 한 번 찔러볼까?

“셀리안……. 나 좋아하죠?”

“네. 네에?! 어떻게 아셨어요?”

둘러대면서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부정을 안 하네? 하지만 만약에 부정을 했다 하더라도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름: 셀리안 / 레벨: 22 / 몸 상태: 건강함

직업: 마음을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체력 630 마력 340

힘: 19 / 민첩: 50 / 지력: 33 / 건강: 30

감성: 8 매력: 3 창의: 2

기분: 어떻게 떨려서 죽을 것 같아…….

각인정보 1차 각성

호감: 91(+) /애정: 0(=) /헌신: 0 /굴복: 86(+) = 복종: 44%

신체 정보

키: 162cm

가슴: 87cm / 밑가슴 71cm / 허리 59cm / 엉덩이 89cm

〈기교〉

바이올린(MAX), 요리(1)

그녀의 호감이 무려 91이다. 참고로 그녀와 따로 만나서 뭔가를 더 한 적은 없다. 그냥 각인만 걸고 내버려 두니까 그녀와 만나지 않았던 동안에도 쭉쭉 올라서 어느새 91이 됐다.

NPC도 그 성격별로 복종도 오르는 수준이 다른 것 같다. 확실한 건 셀리안이 페로렌보다 5배 정도는 올리기 쉬워 보인다. 그걸 알았으니 돌려 말할 필요는 없겠지.

“셀리안, 당신한테 키스해도 될까요?”

“키스……. 저한테요? 정말……. 저한테요? 갑자기 왜……. 저한테…….”

“그야, 당신이 좋으니까요. 당신이 싫다면, 안 할게요.”

-‘셀리안의 굴복이 1 상승했습니다. (현재 87 +)’

“아니에요! 아니에요! 싫은 게 아니라……. 안 믿겨서……. 정말 제가 좋아요……?”

“당신이 좋으니까 같이 오자고 했죠.”

그녀는 내 말에 침을 삼키며 입술에 침을 바른다. 무의식중에 건조한 입술을 내주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재밌는 생각을 하며 슬며시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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