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60화 (60/147)

<-- 죽어가는 창관 살리기 -->                               “아니면 내가 우리 자기랑 같은 방에서 자고, 아가씨 혼자 내 방 쓸래?”

“안 돼! 그, 그건 안 돼.”

불같이 튀어나오는 거절 대답에 나도 프리지아도 페로렌을 쳐다본다. 왜 안 된다는 거야? 페로렌이 나를 좋아하나……? 아, 아니야. 이건 남자들의 흔한 착각이야. 이런 착각은 몸에 해로우니까 정신 차리자.

“안 될 게 뭐 있을까……? 아가씨 정말 우리 자기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아무튼 그건 안 돼. 며칠간 당신이랑 같이 머무를 테니까……. 당분간 신세 좀 질게. 부탁해…….”

페로렌이 나를 원수 보듯 째려보고는 프리지아의 안내에 따라 방을 찾아간다. 나를 왜 째려보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해봐도 전혀 알 수 없다. 하여간, 여자의 마음이란…….

“형님, 근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내내 여급들과 수다 떨던 드웍프가 개처럼 코를 킁킁대더니 냄새 타령을 시작한다.

“무슨 소리야? 이상한 냄새라니? 난 아무 냄새도……. 윽!”

곧 내 코에도 드웍프가 맡은 냄새가 흘러들어온다. 머리가 아찔할 정도의 냄새다. 꼭 기름 냄새 같은데……’

손님들도 그 냄새를 맡았는지 불편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냄새야?!”

“어우 역겨워.”

프리지아와 페로렌도 냄새를 맡았는지 로비로 걸어 나오면서 냄새 때문에 두통까지 호소한다. 페로렌은 지독한 냄새에 힘까지 풀렸는지 로비 한편에 마련된 의자 앉아 헛구역질까지 한다.

손님들도 차마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창관을 벗어나려 한다. 그때…….

“어디 가려고?”

“다들 들어가!”

“꼼짝 말고 있어!”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입구를 막더니 가게 곳곳에 액체가 담긴 병을 깨뜨리기 시작한다. 지금 가게에 퍼져있는 냄새의 원인이 바로 저 액체인 것 같다.

곧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녕들 하신가? 거기, 오랜만이군……! 이름이 뭘이라고 했던가? 제법이야. 망해가던 가게를 이렇게까지 살려놓다니…….”

그랑즈. 언제나 저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나는 놈에게 이름을 말해준 기억이 없지만, 그는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 아마 라니타나 누구한테 들었겠지. 놈의 첩자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사실 대견해 이 도시에서 나한테 이렇게까지 대항했던 인간이 없었거든? 싸구려 음식점에서 나를 무릎 꿇린 것도 모자라, 내 창관에 대놓고 침입해서 내 창녀들까지 빼돌리다니……. 내가 한 방 먹었어. 분홍 모자는 네놈의 또 다른 성 정체성인가?”

“그럴 수도 있지.”

놈이 전부 알고 있다. 하기야 빼돌린 여급들이 전부 우리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무리 숨겨 놓는다고 해도 모를 리가 없지. 사실상, 이 도시안에서 그의 눈을 피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드니까.

“이거 뭔지 알아?”

놈은 액체가 든 병을 열어서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와……. 이거 냄새가 정말 고약한데 그래? 작은 불씨만 떨어뜨려도 활활 잘 타는 물질이라, 일반적인 기름보다 냄새가 훨씬 심한 것 같아. 내 하수인이 한번 써보니까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고.”

역시 기름인가 보다. 이거 예감이 영 좋지 않은데.

뒤에 있던 프리지아가 앞으로 나선다.

“그랑즈! 이게 무슨 짓이야?!

“아……. 우리 이쁜 프리지아!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알기나 해? 왜 내 맘을 이렇게 몰라주는 거야! 그것 때문에 요즘 내가 얼마나 슬픈데 크흐흑…….”

그랑즈는 고통스러웠다는 걸 보여주듯 머리를 움켜쥐고 우는 척을 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리지아 역시 그랑즈를 흉측한 괴물 보듯 노려볼 뿐이다.

자신의 우는 척이 먹히지 않자 얼굴을 쓸어내리며 표정을 뒤바꾼다.

“흐읍……. 좋아! 알겠어! 내가 졌어! 내가 졌다고 프리지아. 당신이 나한테 오길 바라는 건 내가 너무 건방졌던 것 같아. 그럼 이렇게 하자고……. 내 전부를 당신한테 줄게. 당신은 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그랑즈는 인심이라도 쓴다는 양 뻔뻔스레 행동한다.

“하아……. 세상에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변화시킬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당신이 그걸 해내고 말았어! 그러니까……. 이제 당신이 내 마음을 받아줘! 사랑해 프리지아!”

여태껏 봐왔던 어떤 고백도 이보단 최악일 순 없다. 한 번도 고백해본 적 없는 사람도 이보단 잘할 듯싶었다. 지켜보는 이들도 응원해주기는커녕, 공포에 떨고 있을 뿐이다.

프리지아는 그랑즈가 벌여 놓은 일에 이를 꽉 물었다.

“제발 헛된 꿈 좀 깨시지 그랑즈! 내가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하고 만날 일 없으니까.”

“왜……? 내가 어디가 부족해서?!”

“당신은 부족한 거 없어. 오히려 너무 넘쳐서 탈이지. 자만도! 오만도! 그 끔찍한 심보도! 이 세상에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여자가 있을 것 같아?”

고백을 거절하는 프리지아의 모습에 그랑즈는 고개를 떨구고 실성한 듯 웃기 시작한다. 그 웃음에서 오한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흐흐흐흐. 하아…….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그러지 말지 그랬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 그의 시선에 프리지아조차 식겁해서 식은땀이 흐르는 듯하다.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되나? 프리지아? 당신 그렇게 멍청한 여자야? 천박한 년이 감히 누굴 거부하려 드는 거야?”

그랑즈가 본색을 드러내며 주머니 하나를 꺼내 정체불명의 가루를 손에 바른다. 저게 무엇이든 간에 착한 일에 쓰는 가루는 아닐 것이다.

“사냥감이라는 것도 적당히 도망가야 잡을 맛이 나는 거야. 너무 도망가버리면……”

그가 가루 묻힌 손가락을 탁-! 튕긴다.

“숲을 전부 태워버릴 수밖에 없잖아.”

손에 바른 가루가 손가락 마찰열에 불꽃을 튀기더니 이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가루의 영향인지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에도 그는 조금의 뜨거움조차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가 타오르는 손을 과시하듯 흔들며 이쪽을 노려본다.

조짐이 안 좋게 흘러가자 프리지아는 초조한 듯 입을 연다.

“내 가게를 태워버릴 생각이야?”

“프리지아. 나도 정말 이러기 싫었다고, 애들도 아니고 불장난 좀 했다고 아버지한테 혼나는 건 딱 질색이거든……?”

그랑즈가 손을 아래로 휙 떨구자 바닥에 불이 붙는다. 다행히도 기름에 옮겨붙지 않았기에 불길은 금방 사그라든다. 하지만 저런 행동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 되는 건 사실이다.

“윽! 지독한 냄새로군! 이게 무슨 냄새야?!”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지?”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방에서 여급들과 일을 치르던 손님도 하나씩 로비로 나오고 있었다.

그때 귀족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입구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길을 열어라. 나는 의회인이다!”

의회인이라면 아마 그랑즈의 아버지와 관계가 있는 귀족일 거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랑즈는 관심도 없다는 듯 다가오는 의회인의 배를 발로 차버렸다.

“으억!”

“네가 의회인이고 뭐고 내가 알 게 뭐야? 지금은 이 짜증 나는 창관을 먹여 살린 죄인일 뿐이야! 알겠어?! 네놈들 모두 날 열 받게 한 죗값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전부 화형 시킬 생각이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설마하니 그가 진짜로 태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나 또한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악한 짓을 많이 하고 다니긴 하지만, 설마 자신의 도시에서 사람을 가둬놓고 불을 지르는 행악을 저지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최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의 눈에서 저런 살기를 본 적은 없다.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내 움직임을 감지한 그랑즈가 재빨리 손을 기름 쪽으로 향하며 경고한다.

“어, 어. 너. 조금도 움직이지 마. 네가 움직이는 순간 이곳 사람들은 즉시 잿더미가 될 거야. 마음에 준비라도 하고 싶으면 허튼 짓거리 하지 마.”

이런, 젠장……. 마법 같은 거라도 배워뒀으면 좋았을 텐데……. 이대로면 꼼짝없이 죽게 생겼잖아?

심연의 팔찌를 써봐? 아니야……. 놈이 당황해서 팔을 잘못 휘두르기라도 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거야.

나는 저번 죽음으로부터 한 달이 지났기에 한 번의 죽음은 버틸 수 있다. 그렇지만 페로렌과 프리지아. 다른 NPC들은 그게 아니다.

어떡하지? 이 순간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지? 떠오르지 않는 해결 방안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동안, 그랑즈가 프리지아를 향해 최후의 제안을 건넨다.

“프리지아. 네게 마지막 기회를 줄게. 이리 와서 내 손을 잡고 내 연인이 돼라. 그렇게 하면 여긴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랑즈가 불이 붙지 않은 왼손을 내민다.

프리지아는 고민한다. 모든 이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프리지아를 향해 있다. 프리지아도 그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프리지아의 등을 떠밀며 간단한 일을 왜 어렵게 만드냐는 사람도 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막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곳,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쭉 들어보고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랑즈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조소를 머금는다.

저 비열한 면상에 주먹이라도 날려 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는 지금으로써는 참는 수밖에 없다.

이윽고 프리지아가 그의 손을 잡는다.

“그래, 그래야지…….”

뒤에서는 그녀의 표정을 볼 순 없지만, 무척 분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이 상황을 막아줄 수 없다는 게 답답할 뿐이다.

“당신 뜻대로, 당신 연인이 될 테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풀…… 읏?!”

프리지아가 말을 꺼내던 와중 그랑즈가 손을 확 잡아당겨 프리지아를 뒤로 보낸다. 그 순간 입구에 서 있던 그의 하수인들이 프리지아를 붙잡아 가게 밖으로 완전히 내보낸다. 그와 동시에 그랑즈는 불이 붙은 오른손을 바닥에 턴다.

“그럼 잘 가라고!”

“이런……!”

오른손의 불길이 창관 마루에 떨어지며, 뜨겁게 불린 몸집을 기름을 향해 키운다. 손을 쓸 수도 없이 벌어진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불길이 기름에 닿을 무렵 그의 하수인들이 우악스럽게 달려들더니 불을 과격하게 끄기 시작한다. 그랑즈의 황당함이 깃든 외침에는 나도 공감하는 바다.

저놈들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그랑즈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건가 싶던 그때, 귓가에 자그맣게 들려오는 선율이 내 정신을 일깨운다.

“이건 설마…….”

설마 했던 마음은 곧 현실로 바뀐다.

“셀리안……?”

셀리안. 마음을 연주하는 그녀가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바닥의 불을 끈 하수인들은 어떤 말도 없이 창관을 빠져나간다.

“니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그랑즈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당혹스러움이 이곳까지 전달된다. 상황을 이해할 틈 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셀리안이 그랑즈의 앞에 다가와 선다.

“이건 또 뭐야? 갑자기 웬…….”

그랑즈는 말을 하다말고, 굳어진 표정으로 말을 멈춘다. 셀리안도 그를 따라 연주를 멈추더니 그랑즈에게 묻는다.

“우리 구면인데, 나 누군지 몰라요?”

그러나 그랑즈는 그녀 물음에 대한 대답보다,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끄으으윽!!!”

“움직이지 말아요. 고통스러울 거니까.”

그랑즈는 손을 든 채 그대로 멈춰 있다. 움직일 수 없는 듯하다. 나도 당해봤기에 저게 어떤 기분인지는 잘 알고 있다. 가위에 5중으로 눌린 느낌. 쇳덩이가 온몸에 들러붙어 굳어버린 느낌.

억지로 저항하려고 몸을 움직이면 내 몸을 붙잡아 둔 신경들이 투두둑 끊어지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온다. 그 모든 게 단순히 그녀의 연주 하나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당신이 최근에 불태운 레스토랑 기억하죠?”

셀리안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장 떠올린 듯하다.

“레스토랑? 하……. 그 집 자식이었구만.”

“당신 때문에 가게는 완전히 타버렸고, 저희 아버지는 크게 다치셨어요.”

그랑즈가 셀리안의 가게에 찾아가서 또 무슨 짓을 벌인 것 같다. 그러나 자기반성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지, 그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머금더니 감정 없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저런……. 안타깝군. 그런데 어쩌지……? 불태운 건 내가 아닌데? 내 수많은 하수인 중 한 명이지. 그걸 따지고 싶으면 그놈한테 가서 따져.”

“끝까지 이런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시겠다는 거군요. 당신이 정말 증오스럽지만…….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에 제 손으로 당신을 벌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한 행동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이제 난동 그만 부리고 돌아가세요.”

“네까짓 게 뭔데 대가를 치른다는 소릴 해? 돌아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제가 돌아가라고 했으니까요.”

“뭐? 푸흐흐! 너 지금 제정신이 박혀있는 거야? 감히 누구 앞에서 건방을 떨……!”

돌아가라는 말에 큰 소리로 비웃던 그랑즈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들리기 시작하자, 동공에 빛을 잃고 흐느적거리며 몸을 돌린다. 저건 결코 그랑즈가 거부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는 결국 정신을 지배당해 스스로 생각을 포기한 채 가게를 떠났다. 모두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 난리를 피우던 그랑즈가 한순간에 고분고분해졌으니 놀라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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