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59화 (59/147)

<-- 죽어가는 창관 살리기 -->                               작은 레스토랑의 요리 재료를 사 오는 일은 항상 셀리안의 역할이었다. 그녀는 비록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요리에 일가견 있는 아버지의 옆에서 보고 배운 터라 싱싱한 재료 구하는 것만큼은 일류요리사 못지않게 뛰어났다.

이튿날도 셀리안은 여느 때처럼 요리 재료를 사러 시장에 다녀왔다. 별다를 것은 없었다. 매일 인사를 나누는 고양이가 눈에 띄지 않고 불길한 검은 새 한 마리를 본 것 빼고는 한치도 다를 것 없던 하루였다. 평소와 다른 것은 단지 그 정도뿐이었다.

그런데…….

“불이야!!!”

“어머! 어머! 무슨 일이야 이게?!”

자신의 레스토랑 앞에 사람들이 모여서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화아악-! 레스토랑에서 무시무시한 화마가 검게 휘모는 연기 사이로 거세게 치솟으며 온갖 집기를 집어삼켰다. 뜨거운 열기가 10m 떨어진 곳에서도 느껴질 만큼 거대하게 타올랐다.

셀리안은 자신이 봐온 장바구니를 그 자리에 턱-!  떨어뜨리고는 불타오르는 레스토랑을 향해 뛰었다.

“아버지……? 아버지!”

그녀는 애타게 아버지를 찾았다. 언제나 주방에서 손님들에게 낼 음식을 만들고 계셔야 할 분인데, 주방이 있어야 할 장소는 이미 흉악한 불의 손길에 완전히 훼손된 뒤였다.

“아, 아버지!!! 어딨어요?! 아버지 흐윽……. 어딨어?!!”

불길하게 떠오르는 생각에 그녀의 눈에서는 정결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버지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뜨거운 불길에 막혀 한 걸음도 진입할 수 없었다.

“안돼, 제발……! 아, 아버지! 어디 있어?!”

믿기 힘들었다. 장을 봐오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가게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셀리안은 간절히 바랐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그저 끔찍한 악몽이길 바란다고.

만약 이것이 신이 계획한 수많은 페이지 중 한 부분이라면, 최소 자신의 아버지만은 살려서 마지막을 장식해주길 원했다.

“흐윽……. 아버지…….”

누군가 애타게 아버지를 찾는 셀리안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셀리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돌아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럴수록 셀리안의 좌절감은 더해만 갔다. 그는 곧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을 비집고 지나자 자신의 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레스토랑 직원이 그를 돌봐주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내 딸! 내 딸, 셀리안……. 살아있었구나!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살아있었어…….”

셀리안은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셀리안을 꼭 껴안았다.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지만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하늘에 절을 올리고 싶을 만큼 감사한 순간이었다.

“아버지, 누가이랬어요? 누구예요, 누구!”

셀리안은 살아계신다는 안도와 속상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짜증 내는 듯한 말투가 버럭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그런 딸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누가 그랬는지 뭐가 중요하겠니, 내 딸이 이렇게 무사한데……. 그놈들이 널 어떻게 한 줄 알고, 이 아비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셀리안의 아버지는 입은 상처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딸이 무사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랑즈에요……? 그 인간이 그런 거예요?!”

아버지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듯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랑즈……!”

셀리안은 화난 얼굴로 자신의 바이올린을 꽉 쥐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셀리안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 말거라 셀리안…….”

아버지의 피 묻은 손에서 느껴지는 떨림. 움직이기조차 힘든 손을 뻗어 자신을 막으려는 아버지의 손길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자 속상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와락 쏟아져나왔다.

‘나 너무 힘들어요. 이런 거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함. 정말 참고 당하면서 살아야 할까? 살아생전 어머니께서 그렇게 당부하셨던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불러온 결과가 이런 거라면, 더는 정의롭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뭘이 했던 말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잘 생각해요! 셀리안! 때로는 눈먼 정의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그의 말이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크게 와닿았다.

‘그래…….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정의는 이게 아니야. 내가 그동안 행했던 건 눈먼 정의에 지나지 않아…….’

‘그런 놈은 결코 스스로 깨닫지 못해요! 내 말 명심해요. 셀리안!’

‘맞아……. 그런 인간은 스스로 깨닫지 못해. 그렇다면 누군가는 깨닫게 해줘야 해…….’

사실 셀리안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랑즈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다만 지금껏 자신이 믿어왔던 신념을, 어머니가 당부하셨던 말씀을 거역하려는 것 같아서 스스로 외면해온 것뿐이었다.

마음을 굳힌 셀리안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레스토랑의 직원에게 아버지를 잠시 부탁했다.

“셀리안……!”

걱정스러운 얼굴로 부르는 아버지였지만, 셀리안은 웃는 얼굴로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전 아무 짓도 안 해요. 아버지 착한 딸이니까……. 나 한 번만 믿고 기다려줘요. 아버지 실망시키는 일 없을 거예요.”

셀리안은 비장한 표정에 아버지는 그녀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자신의 딸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의 능력으로 네가 피해받을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셀리안…….’

셀리안의 아버지는 음유시인이었던 어머니를 꼭 닮은 셀리안의 뒷모습을 보면서, 부디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 * *

〈목표〉

1.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세요.

└ A급 이상의 상급 여급을 확보하세요. (10/5)

└ B급 이상의 중급 여급을 확보하세요. (28/20)

*추가 목표 - A+급 이상의 최상급 여급을 확보하세요. (1/1)

2. 프리지아의 창관 고객을 유치하세요.

└일일 고객 80명을 달성하세요. (97/80)

*추가 목표 - 일일 고객 150명을 달성하세요. (97/150)

3. 창관의 랭크를 B 이상으로 끌어 올리세요. (현재 D)

일일 순이익 2천만 셀까지 15만 셀 남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됐다……!

“좋아! 드디어 달성이다!!!”

“읏?! 깜짝아……. 자기 왜 그래? 갑자기, 뭘 달성해?”

“퀘스트 깨셨어요? 형님?”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삼창을 외쳐주고, 재차 퀘스트 창을 확인한다. 역시나 일일 순이익 2천만 셀! 확실하다. 이대로 3일만 버티면 퀘스트는 성공적으로 완료한다.

직접 쳐들어가서 여급들을 빼 온 보람이 있었어. 수준 높은 여급들만 빼 왔기에, 그녀들의 단골 VIP로 인해 매출이 급상승했다. 비록 그랑즈의 하수인들에게 들키면 안 되기에 빼내온 여급들은 VIP만 몰래 받도록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순이익 2천만 셀을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을 정도다.

“으흐흐흐.”

“맨날 이 저급한 곳에 처박혀 있으니까, 미치기라도 한 거야?”

어디선가 익숙한 욕지거리가 들려온다. 그 방향을 돌아보니 새침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페로렌이 서 있었다. 최근 일주일간 바쁘기도 바빴고 그녀가 날 만나기를 거부한 탓에 얼굴을 못 봤었는데, 간만에 다시 보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샘솟는다.

그녀에게 달려가 벌떡 안으며 이 마음을 표현한다.

“페로렌 아가씨!”

“앗?! 뭐, 뭐 하는 거야! 멍청아 이거 안 내려놔?!”

-‘페로렌의 호감이 1 상승했습니다. (현재 60+)’

호감도가 오르는 걸 보면 페로렌도 은근히 반갑긴 했나 보다. 그래도 만회하려면 한참 남았다. 70까지 올려놨던 호감도는 어느새 60까지 떨어졌으니까…….

그런데 절대 이곳에 안 오겠다고 선언한 그녀가 갑자기 무슨 일일까?

내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가 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서 내민다.

어? 이거 설마……?

“아이셀……?! 완성한 거예요?”

“어머, 이쁜 목걸이네?”

페로렌이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분석하던 아이셀이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만든 아이셀의 그릇과 신비로운 아이셀이 합쳐지자 휘황찬란하게 예쁠…… 줄 알았는데, 사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

이 세계에 이쁜 목걸이가 워낙 많기 때문에 눈이 높아졌나 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마음에 든다. 나는 그녀가 건넨 아이셀을 받아든다.

“형님, 근데 그거 전부터 궁금했는데 뭐에요?”

“있어. 최강 사기템.”

드웍프의 물음에 사기템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하지만, 사실 효과가 어떤지는 지금부터 확인할 예정이다.

[아이셀]

요구 레벨 제한 1

*아이셀 소유 시 레벨업 할 수 없습니다.

희소성: ???

〈소질〉

-여신의 방패-

피해 종류에 상관없이 사용자의 잠재 능력에 해당하는 양만큼의 피해를 전부 흡수합니다. 해당 능력은 방어 무시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내용〉

태초의 여신, 그레이아의 최상위 보호 마법 아이셀을 가공하여 만든 목걸이. 세계 최고의 세공사 페론드의 유산 아이셀의 그릇과 합쳐진 이 목걸이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페론드의 손녀인 페로렌이 1차 조율을 마쳤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야. 제대로 조율하려면 특별한 재료도 필요하고, 목걸이를 조율하는 능력도 길러야 하니까…….”

아직 미완성이라는 페로렌의 말에도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비록 다른 효과는 없고 소질 딱하나 붙었을 뿐이지만 그 소질이라는 게 어마어마하게 사기급이라 다른 건 붙을 필요도 없어 보인다. 드웍프한테 말했던 것처럼 최강 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효과임은 분명하다.

여신의 방패라니……. 잠재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내 잠재는 현재 101. 근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허리만 놀렸는데도 잠재가 꾸준히 올랐다. 그것도 운동이라고 잠재가 오르는 건가……?

아무튼 잠재 수치만큼 방어된다는 걸 보니 현재 101 이하의 피해는 전부 무용지물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더군다나 잠재가 오를수록 막을 수 있는 피해가 높아진다는 거니까……. 와, 웃음이 떠나질 않네 이거. 페로렌 요 이쁜 것!

나는 페로렌을 재차 안아 들고 볼에 뽀뽀한다.

“아가씨! 너무 고마워요! 쪽! 쪽! 아유 이뻐! 쪼옥!”

“꺄악?!! 미쳤어!!!”

-‘페로렌의 호감이 1 하락했습니다. (현재 59-)’

-‘페로렌의 호감이 2 상승했습니다. (현재 61++)’

-‘페로렌의 애정이 1 상승했습니다. (현재 3+)

볼때기를 세게 얻어맞아도 기분이 좋다. 근데 무슨 호감도 상승 하락이 동시에 일어나냐……?

페로렌은 내가 입 맞춘 볼을 사정없이 문질러 닦는다.

그나저나 요구 레벨 제한 1과 아이셀 소유 시 레벨업 할 수 없다는 문구가 마음에 걸리는데……. 설마 그동안 레벨업 못한 게 설마 아이셀 때문이었나? 페로렌한테 아이셀 넘겼던 동안 레벨업 시도해봤으면 이거 못 낄 뻔했네……. 와, 이건 운명이야.

사실 그냥 깜빡한 걸 운명이라고 자위하는 거지만 말이다.

“으……. 아까도 말했지만, 그거 미완성이니까 안 쓸 때는 나한테 다시 줘. 아직 그 보석에 대해서는 10%도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네, 아가씨!”

“그리고…….”

할 말이 더 남았는지 몸을 뭉긋거리며, 뜸을 들인다.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연다.

“나 돈…….”

“돈……?”

그녀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나에게 귀를 가져오라고 손가락질한다. 얼굴을 가까이하자 페로렌이 조용히 속삭인다.

“나 돈… 다 떨어졌어…….”

페로렌이 나한테 이런 소릴 꺼낸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이런 얘기를 또 어렵게 꺼내는 페로렌을 보니 참 못 말린다는 생각이 든다. 제 딴에는 자존심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귀여울 뿐이다.

“프리지아 혹시 방 남는 거 하나 있어?”

“방? 자기한테 준 거 벌고는 접대용 방밖에 없는데……. 그 아가씨 머물 곳 필요한 거면 내 방에서 같이 자도 돼.”

나는 프리지아의 말을 듣고 페로렌을 쳐다봤다. 그러나 페로렌은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나보고 저 여자랑 같은 방에서 자라고?”

“별수 없잖아. 이제 곧 일도 끝나니까 3일만 머무르면 돼.”

“아가씨 너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거 아니야? 나도 우리 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하는 거니까 싫으면 말고…….”

프리지아의 강경한 태도에 페로렌은 약간 고민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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