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가는 창관 살리기 --> “셀리안……. 이, 이제 그만……. 연주 그만해도 돼요…….”
“헉……! 괜찮으세요?”
그녀가 연주를 멈추고 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준다. 다시 느껴봐도 그녀의 연주는 어마어마하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느낌을 연주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 연주에 영향을 받게 된다.
내가 이러한 그녀의 능력을 확신하게 된 것은, 식사 겸 작업을 걸기 위해 혼자 그녀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그녀를 만나 첫 만남 때 제대로 듣지 못한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그녀의 연주에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엔 정해진 악보대로 연주하다가 그녀만의 느낌이 곡에 가미되자 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춤을 추지 못하는 나조차도 어느샌가 그녀의 연주에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때는 남자만, 또 어떤 때는 여자만, 모두가 합이라도 맞춘 듯 그녀의 연주 아래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자 굉장히 나른한 기분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기분을 내게 보여준 거라고 했다.
타인의 마음을 다루는 연주. 내 각인과 비슷하지만,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내 능력보다 훨씬 고수준의 능력이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연주는 마법이 아닌 태생적인 자질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악기만 있다면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러한 점을 높게 사 그녀에게 각인을 새겨 놓았다. 그녀의 능력이 지금 같은 상황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말이다.
“역시, 당신의 연주는 대단해요…….”
“죄송해요……. 중간에 저도 정신이 없어져서……. 정말 괜찮으세요?”
“그럼요. 하하…….”
솔직히 말해 괜찮지 않다. 그녀가 들려준 현혹, 사랑, 욕망에 대한 연주를 순차적으로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달려들 뻔했다.
전에 익힌 특별능력치 의지를 이용해 간신히 버티긴 했지만, 근처로 유인한 백작은 내가 심어 둔 꽃송이에게 심한 짓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쯤 됐으면 작업이 끝났을 테니 셀리안에게는 다음을 기약하고 먼저 떠나보내야겠다.
* * *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셀리안은 뭘의 선약으로 인해 먼저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사실 셀리안은 단순 식사보다는 조금 더 데이트다운 것들을 하고 싶었지만, 선약이 있다니 셀리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얼굴 봐서 좋다……. 혹시 내 볼 빨개지진 않았겠지?’
셀리안은 가게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 보였을 만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다음에는 머리 모양을 다듬어 볼까? 으음……. 지금 보니 이 옷도 너무 촌스러운 것 같아.’
뭘의 얼굴을 본지는 이제 고작 세 번일 뿐이지만, 셀리안의 마음은 이미 그와 신혼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땐 단순히 고마움에서 시작된 흥미였지만, 두 번째 그가 찾아왔을 땐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였다.
그리고 오늘 그가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고 나니,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고백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다음엔 더 맛있는 음식으로 준비해서 호감을 사고……. 앗, 맞다! 음식 바구니!’
다음번에 뭘에게 만들어 줄 음식을 생각하다 보니 자신이 가지고 왔던 음식 바구니를 공원 벤치에 그대로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셀리안은 남자에 빠져 바구니를 놓고 온 자신을 질책하며 몸을 돌려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 * *
공원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곧 프리지아 창관의 여급 한 명이 다가온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마중한다.
“괜찮아요? 백작이 심한 짓 하지 않았어요?”
“하아, 말도 마세요. 약에 취한 사람처럼 눈이 돌아서 제 거기에 막 쑤시는데……. 아프기만 하고 끔찍했어요. 정말…….”
셀리안의 연주가 백작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피해자 역할을 맡았던 여급은 울상을 짓는다.
“미안해요. 그런 일 시켜서.”
“저희 구해주시고 일자리 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프리지아 씨도 너무 좋고요. 아, 여기요. 부탁하셨던 거.”
그녀가 건네는 마법구를 받아 든다. 라니타에게서 빼앗은 유리구슬이다. 곳곳에 퍼진 마나를 이용해서 현상을 기억하고 재생시킬 수 있는 마법 아이템.
마법구를 재생시키자 백작이 여급을 겁탈하려고 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마법구 속의 여급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극심한 저항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백작은 성욕에 눈이 멀어 허리만 흔들 뿐이다.
이걸 보니 그녀가 울상 짓는 이유를 알 법도 하다. 무리한 일을 부탁한 나로선 더욱 미안할 따름이다. 나도 셀리안의 연주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그렇지만 덕분에 생생한 겁탈 장면이 찍혔으니, 백작을 조종할 무기는 제대로 건진 것이다.
“잘 나왔어요?”
“너무 잘 나와서 미안해질 정도로요. 고생 많았어요. 먼저 돌아가서 오늘은 푹 쉬어요.”
그녀가 떠나간 뒤. 복수의 성공적인 시작에 미소를 띠며 마법구를 손에 꽉 쥔다.
“백작……. 당신은 이제 내 꼭두각시가 되어줘야겠어.”
비장한 말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보는데 문득, 그곳에 누가 서 있다는 걸 깨닫는다.
“세, 셀리안……? 아직……. 안 갔어요?”
당혹스럽게도 셀리안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표정.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에서 전부 느껴진다.
“나를……. 이용한 거예요……?”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떤다.
“셀리안,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아니요! 말하지 마세요! 듣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듯 심호흡한다. 그러더니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그 구슬 내놔요. 내 능력을 악한 곳에 이용하는 거 난 용납 못 하겠으니까. 당장 내놔요!”
그녀가 다시 흥분하며 소리친다.
이게 문제였다. 그녀의 정의로운 성격. 아니, 정의로움을 가장한 꽉 막힌 성격. 그녀 아버지도 이 점을 항상 걱정스러워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약간의 불합리조차 견뎌내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은, 이러한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각인을 걸었음에도 그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복종도가 50%만 넘겼어도 말 한마디로 설득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의 복종도를 올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미안하지만, 이 구슬 줄 수 없어요. 그랑즈를 막으려면 이 방법밖엔 없다고요. 당신도 그랑즈한테 당한 게 있잖아요. 난 이 도시를 위해 좋은 일을 하려는 거예요.”
“뭐가 좋은 일인데요? 마법구로 사람 협박하는 게 좋은 일인가요? 이 방법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조금만 용기 내서 잘못된 행동을 집어주면 그 사람도 스스로 깨달을 거라고요!”
그렇게 당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 답답한 여인 같으니라고…….
“그런 놈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요! 이미 잘못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박혀있는 인간이에요. 그런 인간이 바뀌려면 때로는 독한 특효약을 쓸 필요가 있다고요!”
“저는 당신이……. 정말 멋진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은……. 제가 생각했던 그분 같지 않아요.”
그녀는 내게 무척이나 실망한 눈치다.
“셀리안, 당신이 이런 일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착하고 좋은 사람인 거 알아요. 그렇지만……! 이번 한 번만 눈감아줘요. 비록 올바르지 못한 방법이라고 해도, 이 도시의 암 덩어리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요.”
나의 열성적인 설득에도 그녀는 반복해서 고개를 저을 뿐이다.
“저는 싫어요. 구슬, 자진해서 돌려주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직접 받아 갈게요.”
“셀리안……? 이런……!”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다. 곧 그녀의 악기에서 음울한 곡조가 흘러나온다. 서둘러 귀를 틀어막지만, 이미 그녀의 연주가 귀에 들어온 순간 나의 정신은 잠식되고 말았다.
-‘셀리안의 연주를 저항하기 어렵습니다.’
“크으으윽…….”
고작 1밖에 안 되는 의지로는 간신히 정신만 차릴 뿐, 그녀의 연주를 완전히 막아내기 어렵다. 내 무릎은 이미 땅바닥에 처박혀 있다. 다리를 일으킬 힘도 없다. 온몸의 힘이 빠지고 마법구를 꽉 쥔 손은 스스로 손을 펴 그녀를 향해 굴린다.
무력감이 느껴진다. 정신이 쇠퇴하고 있다는 게 피부에 와 닿는다. 이대로 그녀의 연주를 계속 듣고 있으면 정신이 완전히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녀가 다가온다. 내 앞에서 연주를 멈춘 그녀는 무척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내 앞에 떨어진 마법 구슬을 손에 쥔다. 그녀가 연주를 멈췄음에도 나는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나는 말 없이 돌아서는 그녀에게 남은 기운을 짜내 소리친다.
“잊었어요?! 당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당신 아버지 손목이 잘릴 뻔했다는 걸 말이에요! 잘 생각해요! 셀리안! 때로는 눈먼 정의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그런 놈은 결코 스스로 깨닫지 못해요! 내 말 명심해요. 셀리안!”
잠시 서서 듣던 그녀는 이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녀가 떠나고 나니 그제야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아……. 빌어먹을 진짜.”
열 받아서 괜한 벤치만 발로 찬다. 그 뒤로 발이 아파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나름 회심의 작전이었는데, 이걸 실패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말이다.
*
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 유명한 속담이다. 한국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한다. 해를 입은 만큼 앙갚음하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이지.
“이야, 화려하게도 꾸며 놨네.”
프리지아의 창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그랑즈의 창관 입구를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가 여기를 왜 왔느냐? 뻔하지. 그랑즈 그놈이 했던 그대로 할 생각이다. 놈이 내 여급들을 빼갔으니 나도 놈의 여급을 빼간다. 놈이 우리 고객을 빼돌렸으니 나도 놈의 고객을 빼돌린다.
그런 단순한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어울리지 않게 왜 머리를 굴렸을꼬? 내 각인기술과 뻔뻔함만 있다면,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거늘……. 나는 당당히 창관의 입구로 들어간다.
평소 그랑즈는 창관에 머무르지 않는다. 애초에 프리지아를 곤혹에 빠뜨리기 위해 만든 가게라 딱히 애착이 없는 듯하다. 그렇기에 내가 들어가더라도 나를 알아볼 사람은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이 넓은 분홍색 모자와 스카프를 두른 채다. 저번에 모르는 여인에게 빌려 놓고 깜빡 돌려주지 않았다.
NPC와 유저들로 이루어진 긴 줄을 따라 들어가자 창관의 직원이 나를 보며 인사하다 말고 멈칫한다.
“어서오십……. 시오.”
여성도 남성도 아닌 것 같은 모습 때문에 그런 듯하다. 여성치고는 키가 크고, 남성치고는 복장이 이상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 복장은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이런 곳에 오면 안 될 사람이다 보니, 숨겨야 하거든?”
“아, 예.”
직원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창관이라는 가게 특성상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방문하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특별하게 볼 건 아니다.
특히나 VIP들은 자신의 신분 노출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하니까…. 이런 것 때문에 우리 창관에서는 별도의 VIP 전용문도 만들어 놓았다. 물론 VIP가 방문을 안 해서 사용을 못 하고 있긴 하지만…….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팁을 꺼내 주며 말을 건넨다.
“좋은 여인들로 둘러봤으면 좋겠는데.”
돈을 받은 직원의 눈이 세 배는 더 커진다. 무려 100만 셀. 팁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월급 수준의 금액을 팁으로 받게 되면 저런 표정이 나올 수밖에 없지.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이곳에선 거물로 보여야 하기에, 애써 태연한 척이다. 근데 왜 자꾸만 목이 타지……?
“그,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태도가 극진해진 직원이 방을 나가더니 곧 열 명의 여급들을 데려온다. 척 봐도 수준이 높은 여급들이다.
“원하시는 여성을 지목하시면 나머지는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보통 이런 곳에선 한두 명을 지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일반적인 고객이 아니라는 거지.
“그럴 필요 없어.”
“예?”
“데리고 나갈 필요 없다고.”
나는 그에게 100만 셀의 팁을 한 번 더 주면서 나가게 한다. 원래 한 명의 손님이 많은 여인을 독식하는 건 여급들의 순환 문제로 웬만한 창관에선 금지하지만, 지금처럼 담당 직원만 구슬리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100만 셀의 팁을 아무렇지 않게 내는 나를 보며, 여급들도 놀란 눈치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는가 싶더니 곧 경계를 풀고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한다. 본능적으로 내가 거물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럼 모쪼록 즐거운 시간을 지내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