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56화 (56/147)

<-- 죽어가는 창관 살리기 -->                               나는 잠시 방에 누워 라니타가 남겨놓고 간 유리구슬을 멍하니 보고 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은 유리구슬을 통과해 찬란한 빛을 뿜고 있다. 그 오묘한 빛깔을 보며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해 본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한다…….

경매에 참여해서 7명을 구해온다면, 전보다는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나는 살짝 열린 문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랑즈의 하수인일 거라 생각되는 인간들이 여기저기 있다. 그들은 손님을 가장한 채 프리지아의 창관을 들락거리며 정보를 캐고 있다. 저렇게 한 명씩 여급과 가게에 방문한 VIP에게 접근해 창관 운영을 좀먹고 있었던 거다.

몇 시간 전 그들이 그랑즈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녀석을 발견해서 바로 쫓아냈지만, 분명 그 한 명만 있진 않을 것이다. 티 나지 않게 고객으로 가장해서 이젠 누가 진짜 그랑즈의 하수인인지도 모르겠다.

대놓고 뒤집어엎자니 실수로 일반 고객을 잡았을 때의 가게 평가가 마음에 걸려서 그러지도 못하겠고…….

그래, 어차피 지금 저들을 막는 건 소용이 없어. 지금은 그랑즈라는 뿌리를 꺾어야 할 때야.

그랑즈를 막으려면 무슨 방법이 필요할까……?

돈? 무력? 방해? 그 어떤 것도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에선 무용지물이다. 놈의 권력만 없었더라도……. 흐음…….

“잠깐……. 권력……?”

권력…….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거다! 권력이다! 놈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프리지아를 호출한다.

“자기, 왜 불렀어?”

“프리지아! 혹시, 몬드리 백작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전에 당신 언니가 몬드리 백작을 이용해서 그랑즈를 가게에서 쫓아냈다고 했었지? 당신 언니 힘 좀 다시 빌릴 수 없을까?”

놈은 권력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그 권력을 이용해서 그랑즈를 역으로 짓누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내 요청에 프리지아는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언니……. 지금 대륙 건너에 있어서 연락하기가 어려워.”

“아…….”

그녀의 언니가 결혼한 이후 멀리 간 모양이다. 그럼 이제 그녀 언니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타파하는 방법은 물 건너갔고…….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겠네.

“근데 갑자기 몬드리 백작은 왜? 혹시 그랑즈 때문에?”

“응. 그랑즈를 우선 막아야 할 것 같아서.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가게 운영이 계속 어려워질 테니까. 우린 백작을 이용해야 돼. 백작의 정보가 최대한 필요한데…….”

내 얘기에 공감하듯 프리지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그럼 몬드리 백작에 대해서는 내가 정보를 모아볼게.”

“응, 최대한 빠르게 부탁해.”

*

몬드리 백작. 그는 백작 중에서도 꽤 큰 백작령을 가진 귀족이라고 한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제법 힘이 있는 존재이다 보니, 같은 백작끼리 있어도 은근히 추대받는 인물인 듯하다.

성격이 칼 같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자식이 무슨 짓을 하든 그건 제 인생이라 생각하고 크게 건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 때문에 지금의 그랑즈 같은 망나니 자식이 탄생한 거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그에게도 자식으로 인해 얼굴에 먹칠이 크게 될 경우는 한 번씩 움직이고는 하는데, 그게 바로 그랑즈가 프리지아 창관에서 난동을 부렸던 사건이었다.

해당 사건이 프리지아 언니의 영향으로 의회 귀족들의 입방아에 오르자. 자신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걱정한 몬드리 백작이 그랑즈를 직접 제재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쉽게 끓은 물이 금방 가라앉듯 지금은 귀족 사이에서 더 이상의 이에 대한 얘기가 언급되지 않자 흐지부지된 것 같지만, 그래도 그랑즈를 유일하게 막아설 방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이점을 이용할 생각이다. 몬드리 백작을 움직여서 그랑즈를 제재하는 것.

“아, 셀리안! 여기예요!”

“엇?! 먼저, 와 계셨네요?”

작은 레스토랑의 직원 셀리안이 환한 미소와 함께 다가온다. 여전히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작은 바이올린이 매여있다. 나는 그 바이올린을 곁눈질하면서 공원 벤치에 앉아 그녀를 환대한다.

“뭘 씨, 혹시 식사……. 하셨어요? 제가 먹을 것 좀 싸 왔는데.”

그녀가 들고 온 음식 바구니를 양손으로 꼭 쥐고 보여준다. 먹을 거라……. 아직 몬드리 백작이 근처를 지나려면 10분 정도 남았으니까 그 전까진 괜찮겠지.

“마침 배고팠는데, 잘됐네요! 이거 저 주려고 싸 오신 거예요?”

“네! 아……. 네.”

조금 전 대답이 너무 발랄했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얌전하게 대답한다. 보는 것처럼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나는 그녀가 만들어준 음식을 음미한다.

“음! 진짜 맛있는데요?”

“아! 정말요? 다행이다……. 성공해서…….”

“이거, 전부 직접 만드신 거예요?”

“아버지 도움 조금 받았어요.”

그녀가 민망한 듯 볼을 긁적인다. 나는 새싹처럼 싱그러운 그녀의 반응 즐기며 정성 갸륵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몬드리 백작이 이 거리를 곧 지날 순간만 생각한다.

-‘프리지아 몬드리 백작 혹시 보여?’

-‘응. 아직 조금 멀리 있긴 하지만 지금 시작해도 될 것 같아.’

프리지아의 말에 나는 앞에 놓인 맛있는 샌드위치와 소시지, 튀김 요리를 서둘러 흡입한다. 정성껏 싸준 음식인데 치울 순 없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여기 물이요.”

“하하……. 셀리안 씨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맛있어서 막 먹게 되네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미소 짓는다. 이게 순수하게 그녀와의 데이트일 뿐이었으면 좋겠지만……. 미안하게도 그녀에게 털어놓지 못한 속셈이 하나 있다.

“셀리안. 날 위해 바이올린 좀 켜줄 수 있어요?”

“네, 그럼요. 얼마든지요. 혹시 원하시는 노래 있어요?”

“음……. 곡에 이야기가 담겼으면 좋겠는데 혹시 그런 것도 가능해요?”

“음악에 이야기를 담는 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걸요?”

나는 머리를 굴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녀가 머릿속으로 그려나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낸다.

“권위 있는 멋있는 백작이 한 명 있었어요. 그리고 평범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도 한 명 있었죠. 어느 날 그 아가씨는 우연찮게 멋진 백작을 보고 첫눈에 반했어요. 관심을 끌고 싶지만, 권위 있는 백작은 주변의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요.”

셀리안은 흥미로운 듯 아결히 빛나는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를 경청해준다.

“그래서 아름다운 아가씨는 자신의 특기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멋진 백작이 자신을 향해 다가와 주기를 기대하면서……. 일단은 여기까지, 해줄 수 있어요?”

“음……. 조금 어렵지만 해볼게요.”

그렇게 말하며 요요연연한 손가락으로 바이올린을 부드럽게 켜기 시작한다.

* * *

“백작님. 이제 성으로 돌아가십니까?”

“그럴 생각이네.”

몬드리 백작은 말을 타고 거리를 거닐며,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쭉 둘러보았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에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백작령을 처음 하사받고, 머무를 곳으로 정했던 몬드리 호프.

당시엔 산세가 좋아서, 경치가 좋아서 거주지로 삼았던 이곳이지만, 자신이 노력했던 만큼 도시도 어느샌가 크게 성장해서 발데린 공화국 내에서도 꽤 많은 인구가 거주할 만큼 살기 좋은 도시가 됐다.

비록 지금은 자신의 둘째 아들인 그랑즈에게 넘겨줄 심산으로 다른 도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그래도 애착이 가는 도시임은 분명했다.

“백작님 이곳은 공사 완료된 지 얼마 안 된 지역입니다.”

“음, 확실히 깨끗하니 보기 좋군……. 으음?”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에 백작은 두리번거렸다. 작게 들려오는 소리임에도 마음 한곳을 찌르르 울리는 감성이 담겨 있었다.

“백작님? 왜 그러십니까?”

“어디선가 심장이 아릴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오는구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이었다. 그러나 한 번만 듣고 싶지 않은 곡이었다. 매일 문화생활을 누리며 좋은 명곡을 30분씩 감상하는 그에게도, 지금 들려오는 이 곡은 새로운 감성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아, 확실히 좋은 곡이군요.”

“이건 좋은 곡 정도가 아니야……. 자네 먼저 성으로 돌아가게. 난 누가 이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지 보아야겠네.”

그렇게 말한 몬드리 백작은 말을 돌려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우아한 선율에 빠져 다가갈수록 백작은 마음 한편에 잊고 있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설렘.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던가!

부족함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게 혼인하고, 부족함 없이 자식을 갖고,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들려오는 이 곡은 지금껏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깨닫게 해주는 듯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던 중 눈앞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곡이 바뀌며 백작의 눈에는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만이 찬란하게 비쳤다.

“어찌 저리도 아름다운 여인이…….”

백작은 무언가에 홀린 듯 말에서 내려 여인에게 다가갔다. 흘러나오는 곡은 마치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내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그녀는 하늘하늘한 몸짓으로 점차 멀어져만 갔다.

백작은 그녀를 쫓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 가진 사회적 지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 자신의 아내를 만났을 적에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게 이런 건가 싶을 만큼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는 노루를 쫓는 사냥꾼의 마음으로 그녀를 쫓았다. 이윽고 아무도 없는 곳에 단둘만이 남겨졌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쫓은 백작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고결한 움직임 매 순간이 사진처럼 백작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그대는 누구지?”

백작의 물음에도 그녀는 말이 없었다. 다만 백작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꼭 쥐고는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백작의 손에 말랑한 촉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금 몸을 떨어뜨렸다.

그녀의 행동은 백작의 마음속에 커다란 불씨 하나를 떨어뜨려 놓았다. 그 후, 백작은 자제심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평소 사생활에 대한 것이라면 하품하는 것조차 숨겨오던 그가, 자신의 집도 아닌 외부에서 처음 보는 여인을 겁탈하려는 것이었다.

“아앗! 이러지 마세요!”

여인의 비명이 인적 드문 공원 한편에 자그맣게 퍼졌다. 갑작스레 바뀐 태도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목소리마저 탐스러운 그녀의 거절에도 한번 불이 붙은 백작의 행동은 멈출 줄 몰랐다. 자제심을 잃은 백작의 모습은 자식 잃은 멧돼지보다 더 한 짐승처럼 보였다.

“이건 그대가 잘못한 것이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으흐윽!!”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 하나쯤 미쳐도 될 것이다. 백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잔잔하게 울려 퍼지던 곡은 어느샌가 빠른 템포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백작의 모습을 광적으로 뒤바꿔 놓았다. 백작은 여린 여인의 몸을 사정없이 유린하고 폭력적으로 다뤘다.

조금 전 느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완전히 결여된 뒤였다.

“끄하악!!! 아파!! 아파요!! 흐흑…!”

백작은 조금도 젖지 않은 그녀의 안에 자신의 물건을 거칠게 쑤셔 넣었다. 여인은 바짝 마른 장작으로 하복부를 쑤시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도 배려도 없는 거친 관계 속에 그녀는 끊임없이 흐느꼈다.

“하악!!! 윽!! 살려주세요!! 끄윽!! 누구 없어요?! 끄흑!!”

조금의 쾌락도 느낄 수 없는 이기적인 성교. 백작은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분비되는 그녀의 점액을 자신이 좋아서 나오는 애액이라 굳게 믿으며 최악의 성행위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귓가에 맴도는 의문의 곡이 끝날 때까지 계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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