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가는 창관 살리기 --> “일단, 우리 이쁜 꽃들 조교는 전부 마쳤고, 오늘부터 매출을 한번 봐야겠네.”
“일일 순이익 2천만 셀만 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 뭐, 지금도 괜찮지만.”
프리지아는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 순이익 2천만 셀을 찍고 랭크를 B까지 끌어 올려야 내가 퀘스트를 깰 수 있을 테니까.
지금까지는 940만 셀 정도가 일일 순이익의 최고치였다. 그러나 오늘 교육을 마친 여급들까지 창관 일에 투입한다면, 그 매출은 더욱 올라갈 터.
남은 건 7일간 열정적인 홍보와 입소문을 이용해 매출을 끌어올리는 것이 관건이다. 일일 2천만 셀을 충족한 이후부터 3일.
3일 동안만 평균을 유지하면 퀘스트는 완료할 수 있다.
“VIP 손님이 와야 할 텐데…….”
프리지아가 말하는 VIP. 그것은 가게 매출 상승의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들은 가게에 한 번 방문할 때마다 일반 손님 열 명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쓰며, VIP 수준이 높고 가게의 서비스가 좋을수록 그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일반 손님으로 이목을 끌고 그 이목으로 가게가 어느 정도 유명해지면 차츰 VIP 손님이 방문하기 시작한다. 물론 운이 좋다면 초반부터 오는 경우도 있다. 이 기회를 잘 살리면 가게가 성장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나 상당히 드문 경우고 가게가 유명해지면서부터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VIP는 주로 귀족이거나 돈 많은 상인, 페로렌 같은 부르주아로 구성되어있다.
간혹 목돈 잡은 모험가들도 큰돈을 쓰긴 하지만, 도시에 머무는 동안만 짧고 굵게 치고 빠지는 게 특징이기에 그들을 VIP로 분류하진 않는다.
“그러고 보니 VIP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프리지아의 가게는 비록 망해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이전에 쌓아온 명성이 있었기에 지금쯤 VIP가 최소 한 번쯤은 방문했어야 맞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매출이 상승한 이후에도 단 한 명의 VIP가 다녀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단 소린데……. 손님들 만족도가 높은 걸 보면 직원들 교육은 문제없는 것 같고, 외관이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 분위기를 잘 살려서 괜찮다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외관 문제도 아닌데…….
날 잡고 전수조사를 한 번 해야 하나?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드웍프가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형님! 어우……! 좋은 시간 보내시는데 죄송하지만, 큰일 났어요.”
드웍프는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살색의 향연에, 눈 만 빼놓고 얼굴을 전부 가린다. 그럴 거면 왜 가리는 거야?
그는 시선을 알몸으로 뻗어있는 여인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내게 말을 전한다.
“지금 여급들이 전부 떠나고 있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드웍프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 말도 안 되는 소식이 잘못된 정보일 거라 믿으며 옷을 대충 주워 입고 서둘러 나간다.
*
“죄송해요. 저흰 떠나려고요…….”
“아니, 갑자기 어딜 간다는 건데요?”
무려 7명의 여급이 떠나려고 짐을 싸서 문 앞에 대기 중이다. 드웍프가 간신히 잡아 놓은 상태인 듯하다.
A급 여급이 3명에 B급 여급이 4명. 이들이 빠지면 퀘스트 진행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그래놓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데 나간다니…….
그녀들에게 그 이유를 묻지만, 서로의 눈치만 살핀다.
“좋은 곳으로 가니까, 저희를 잡지 말아주세요.”
“그러니까! 이유라도 좀 알자고요.”
“…아무 이유 없어요.”
아무 이유 없이 일곱 명이 우르르 나간다고? 나더러 그걸 믿으라는 건가? 내가 그 개고생을 하면서 데려오고 훈련을 시켜놨는데?
“이유 없으면 당신들 아무 데도 못 가요. 잊었나 본데, 당신들 내 노예로 여기 잡혀 온 거예요. 자유롭게 풀어주니까 자유의 몸이 된 것 같아요?
“처음에 그러셨잖아요. 자유롭게 풀어주신다고……. 다만, 일자리를 주시는 거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이렇게 빨리 나갈 줄 몰랐기 때문에 한 소리다. 설마 퀘스트가 끝나기 전에 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차라리 각서라도 받아놓는 건데…….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까 일단 안에 들어가서 얘기 좀 해요.”
“저흰……. 할 얘기 없어요.”
그녀들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겁을 먹고 있다.
“그럼 정말 이유는 말 안 할 거예요?”
“그, 그냥 보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흐윽…….”
아주, 울기까지……? 지금 누굴 호구 취급하는 거야 대체?
이들은 분명히 뭔가 숨기고 있다. 그게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그들의 상태로 보아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살을 비빈 사이에 때려서 입을 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이들을 억지로 잡아둔다고 해서 일을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고, 언제라도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을 테니까, 일단 풀어주고 드웍프한테 뒤를 캐라고 시키던가 해야겠다. 앞에서 이러고 있으면 가게 평가가 낮아질 테니까…….
“그래요. 가려면 가요. 대신 경고하는데, 다신 받아줄 생각 없으니까 돌아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요!”
그녀들은 훌쩍거리며 다급히 그 자리를 떠난다.
“하아…….”
무작정 풀어주기는 했지만, 갑자기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앞으로 7일. 그 안에 그녀들의 뒤를 캐서 뭔가를 얻어낸다고 하면? 그러면 현 상황을 되돌릴 수 있을까?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하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일정인데, 큰 장애물이 하나 놓이니까, 길을 돌아가야 할지 뚫고 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손끝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생각해본다. 도대체 뭐 때문일까? 누군가 그녀들을 부추긴 걸까……? 그녀들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내 너머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쳐다보며 말로는 못 할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녀들이 왜 그런 표정을 지은 걸까?
말로는 차마 표현 못 할 공포 느꼈다…….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서…….
대체 누구를 보고 있던 거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슬며시 뒤를 돌아본다. 돌아본 그곳엔 안타깝게 노예들이 떠난 문을 보고 있는 프리지아와 소란을 지켜보는 손님과 여급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구석에서 무언가 끄적이는 라니타가 보인다.
모든 여급이 떠났음에도 망해가는 프리지아의 창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준 의리녀 라니타…….
모든 여급이 떠났는데 혼자 남았다고……?
왜 한 번쯤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방문한 노예시장마다 노예들이 전부 팔려 나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누군가 우리 일을 방해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랑즈는 프리지아 창관의 모든 베테랑 여급이 떠날 정도로 과격한 협박을 했다. 그 사실은 프리지아가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라티나 혼자만 그 협박에서 버텼다는 건 내 상식에선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내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 한 번쯤 그녀를 의심해보는 수밖에…….
“라니타.”
“앗?! 네? 네 왜요?!”
그녀에게 다가가자 조금 전까지 쓰고 있던 무언가를 허겁지겁 숨긴다. 얼핏 편지처럼 보였는데…….
“저랑 얘기 좀 할까요?”
“아……. 네.”
*
그녀를 데리고 어둡고 좁은 창고로 데려와 문을 잠근다. 그녀가 약간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문을 잠그시는 거죠?”
그녀의 각인 상태 창에 뜬 기분
‘절대 당황하지 마…….’
절대 당황하지 말라고? 충분히 당황할 법한 상황인데 당황하면 안 될 일이라도 있나 보지?
그녀를 향해 민들레처럼 퍼져나가는 의혹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 넓게 자리를 펴고 있었다.
“그냥 중요한 대화라서 누가 들으면 안 되니까요.”
“네……. 그렇군요. 무슨 말씀이길래 이런 곳에서……?”
그녀의 눈망울이 불안함에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마구 흔들린다.
내가 두려운 것일까?
그게 아니면 갇혀있는 이 상황이?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숨긴 무언가가 들킬까 봐?
내 머릿속의 생각 세포를 조금씩 감염시키는 의심 바이러스. 이것이 완전히 퍼져 내 생각을 전부 잠식하기 전에, 그저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만 끝났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최초로 민간 NPC를 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나는 살벌하게 치미는 감정을 숨긴 채 그녀에게 붙는다.
“혹시 나가는 여급들에 대해 뭐 들은 거 있어요?”
“꽃송이들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는 침을 삼키는 게 보인다. 짧은 시간에 무려 3차례. 나는 그녀가 보이는 불안증세를 관찰하며 조금씩 추궁해나간다.
“라니타. 당신은 관리인이죠? 여급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의 시선이 짧게 돌아간다. 내 눈을 잠시 쳐다봤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연다.
“어……. 사실 조금 힘들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남자들을 상대하는 게 조금 힘들다고…….”
“남자를 상대하는 게 힘들다……? 오늘 떠난 여급 중 3명은 손님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남자를 상대하는 게 힘들다면 나를 힘들어했다는 건가요?”
“네…….”
“아, 그래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물론 처음엔 힘들어했을지 몰라도, 그녀들을 조교 한 이후부터는 오히려 그녀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곤 했으니까.
그녀도 말실수했다 싶은지 재빨리 번복한다.
“아, 그게 아니라……. 앞으로 남자를 상대하는 게 조금 힘들 것 같다고…….”
그녀가 입을 만지작거리며 할 말을 계속 생각하는 듯하다. 말을 꺼내는 게 전보다 확연히 느려졌다.
“해보지도 않은 일이 두려워서 그 3명까지 동시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건가요?”
“그렇……. 아…. 저도 잘…….”
안절부절못하는 품새.
미약하게 찡그리는 얼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손가락.
그녀가 무심코 나타내는 모든 거짓말 증후들이 내 의심을 확신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 이상의 유도신문은 무의미하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턱을 잡고 올려 나와 강제로 시선을 맞추게 한다.
“으읏! 왜, 왜 이러세요?!”
“지금부터 말 잘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 언제부터 그랑즈 밑에서 일한 거야?”
그랑즈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린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작은 반응이 나에겐 그 어떤 반응보다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는 일단 발뺌이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있으세요?! 꽃송이들이 나간 걸로 혹시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정말 그것만 가지고 의심하는 것 같아? 당신이 전서구 보내는 거 몇 차례나 목격했어. 그게 의심스러워서 그 새가 어디로 날아가는지까지 다 파악했다고. 그게 어딘지는 당신이 제일 잘 알겠지!”
물론 거짓말이다. 아직 내게는 그녀의 명확한 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 그렇지만 이게 잘못된 심문이라 해도 더는 손해 볼 것도 없다. 어차피 퀘스트는 거의 망했으니까.
그녀는 내 말에 흥분하며 소리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 나갈래요. 놔주세요!”
그녀가 나를 지나쳐 나가려고 한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툭-! 나가려는 그녀의 팔을 홱 잡아당기자 탁구공 크기의 작은 유리구슬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진다. 그녀는 유리구슬을 보더니 성급히 주우려 한다. 그 반응이 수상해서 먼저 낚아챈다.
“이리 주세요!”
손에 쥐자 미약한 힘이 느껴진다. 마나로 작동하는 것 같은데.
“이게 뭐지?”
“아, 아무것도 아니니까 빨리 주세요!”
일반적이 유리구슬이었다면 라니타가 이렇게까지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이 구슬. 우올로를 시동 거는 구슬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힘이 느껴진다.
나는 혹시나 해서 우올로와 같은 방법으로 구슬을 두드려본다. 그러자…….
“이건…….”
“헉!”
라니타가 놀라는 반응은 둘째치고 작은 유리구슬에서 흘러나오는 형상으로 인해 그녀가 그랑즈의 내통자였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유리구슬 안엔 조금 전 그녀와 내가 대화했던 내용과 지금까지 우리가 창관을 살리기 위해 회의했던 내용. 노예 구매를 위해 나와 드웍프와 소통하는 내용. 창관의 여급들을 훈련시키는 내용까지 전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아……. 그랑즈님. 부족해요. 조금 더 세게 해주세요. 흐응…….”
“하아… 감도가 꽤 좋아졌는데, 그래? 어디서 특훈이라도 받은 거야? 혹시 새로 온 그 자식인가?”
“으응…! 하아…. 말 못 해요. 아읏…….”
“내 정보원주제 나한테 뭘 숨기겠다는 거야? 네가 내 사람이란 걸 프리지아가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랑즈와의 라니타의 사통 사실. 나는 라니타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녀는 얼어붙은 얼굴로 마법 구에서 흘러나오는 영상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걸로 모든 증거는 확보됐어. 나는 끌어 오르는 살인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간다.
“따라와!”
“자, 잘못했어요! 꺄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