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50화 (50/147)

<-- 죽어가는 창관 살리기 -->                               “잘못됐어? 내가? 큭큭. 얘들아 내가 잘못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 계집이 뭔가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랑즈는 하수인들의 대답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다는데?’라는 말을 표정으로 대신 하고 있었다.

“당신 하수인들이야 주인인 당신 말을 들어야 하니까 그렇죠!”

그녀의 말에 그랑즈는 고개를 떨구고 얍삽한 톤으로 실실거리더니. 레스토랑 식당에 앉아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청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

“너, 방금 상황 보고 있었지? 예, 아니요로만 대답해. 지금 이 상황에 내가 잘못한 상황인가?”

“아, 아, 아니요.”

대답을 들은 그랑즈는 바로 옆 테이블로 걸어갔다.

“너희가 보기에 내가 잘못 했어?”

그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옆 테이블로 가서 물었다. 대답은 역시나 같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랑즈는 최종적으로 셀리안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주인장. 지금 상황 내가 잘못된 게 맞나?”

눈꺼풀을 크게 열고 물어오는 그랑즈의 물음에 주인장은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지금까지 대답한 모든 이들은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랑즈가 분명 잘못했다.’라는 생각.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것은 셀리안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랑즈님께서 잘못하신 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제 잘못이죠…….”

“아버지!!”

셀리안은 잔뜩 움츠러든 아버지의 어깨를 보니 속상한 마음만 들었다.

“자, 어때? 네 아빠도 그렇다는데? 내가 물어본 사람들은 모두 내 말에 동의했어. 그 말이 뭐겠어?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말 아니겠어?”

“모두들 당신의 권력 때문에 이러는 거 몰라서 그래요?!”

그랑즈는 빳빳한 머리칼을 양손으로 쓸어넘기며 셀리안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음, 권력 좋지. 근데, 내가 무슨 권력이 있다고? 나 아무 힘도 없는데? 권력은 우리 아버지나 있지. 난 아무것도 없어. 가진 돈도, 명예도. 지은 죄도 아무것도 없다고.”

그랑즈는 뻔뻔스러운 말을 한 치의 부끄럼 없이 내뱉었다.

“몬드리 백작님의 권력을 당신이 전부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어요! 누구보다 당신이 그걸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이런 짓을 하는 거잖아요!”

그랑즈의 부담스러운 얼굴에 셀리안은 얼굴을 살짝 뒤로 물리면서도 시선은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함이 이글거렸다.

셀리안이 물러서지 않자 그랑즈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아, 들켰네? 비밀이었는데 너도 잘 알고 있었네?”

그러나 장난스럽게 웃던 그랑즈의 표정이 곧 싸늘하게 식었다.

“……근데 왜 건방지게 구는 거야? 이곳에선 내가 선이고 내 말이 법이야. 네 깟게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내 인생에 1셀짜리 동전만큼의 영향도 못 끼친단 말이야!”

그랑즈는 오른손으로 셀리안의 양 볼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내 말 알아들어……?! 지금 당장 내가 이 자리에서 널 공개적으로 강간해도 아무도 나! 못 건든다고……. 원하면 보여줄까?”

추악한 말들을 거침없이 던져대며 손을 밀어붙이자, 셀리안은 그의 손을 쳐내고는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다가오지 마요! 신고할 거예요!”

“으음, 신고? 어흐, 무서워라! 또 잡혀가겠네! 그래, 어디 할 테면 해봐. 신고.”

수천 번에 달하는 신고 수십번에 달하는 체포, 그러나 그가 지금껏 감옥에서 보낸 총 시간은 1시간도 채 안 됐다. 그에게 이 도시의 경비는 거리를 안내하는 안내원일 뿐이고, 감옥은 마음껏 들락거릴 수 있는 쉼터에 불과했다.

그랑즈가 악한 기운이 폴폴 흐르는 걸음을 뗄 무렵, 셀리안은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바이올린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 두 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작은 크기였다.

남들 눈엔 평범한 악기일 뿐이지만, 그 모습을 목격한 그녀의 아버지는 뭐가 그리도 두려운지 다급한 모습으로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는 셀리안을 향해 다가오는 그랑즈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그랑즈님!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습니다!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주신다면 다시는 이런 일 벌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교육하겠습니다.”

“아버지!”

그녀의 아버지는 셀리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바이올린을 들지 말라는 의미였다. 아버지가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는 오직 셀리안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셀리안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성급히 나서지 않았다.

앞으로 주인장의 태도를 보며 그랑즈는 씩 웃었다.

“음……. 좋아, 그럼 교육 잘못한 네가 벌 받자. 음… 뭐가 좋을까? 나를 굉장히 치욕스럽게 했으니까…….”

그랑즈는 눈을 감고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는 좋은 생각이 났는지, 곧 손가락을 튕기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왼손 딱 하나만 자르자.”

“그, 그런 심한 처사를…….”

“이게 심해? 네 딸이 나한테 모욕준 건? 그러니까 이 꼴 당하기 전에 자식 교육을 제대로 했어야지. 이 땅에서는 자식을 싸지르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야.”

그랑즈는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뺨을 툭툭 치며, 말로써 심장에 대못을 박고 있었다.

“빨리 정해라. 이 몸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손목을 자를래? 아니면, 네 딸 강간당하는 거 보고 있을래?”

셀리안의 아버지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평생을 요리의 길만 걸어왔고 죽을 때까지 그 길을 고수할 생각이었지만, 요리 할 수 있는 손을 잃게 된다면 자신은 꿈도 앞날도 같이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셀리안을……. 자신의 하나뿐인 딸, 셀리안을 눈앞의 파렴치한 망나니한테 빼앗길 순 없었다. 셀리안은 자신이 평생토록 걸어온 길을 수백, 수천 번도 더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귀한 자식이니까…….

셀리안의 아버지는 굳은 결심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몬드리호프. 드디어 당도했구나. 이곳에 온 이유. 바로 내 사랑 프리지아를 만나기 위해서!

물론 표면적 이유는 프리지아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다. 그녀가 나중에라도 찾아오면 노예상인을 직업으로 했을 때 유용한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했기에 그걸 핑계로 들른 셈이다.

프리지아도 보고, 특별한 가르침도 얻고. 그녀가 뭘 가르쳐 줄지는 모르겠다. 특별한 가르침이라니……. 상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구나.

“그래서 목적지가 어딘데?”

말을 타고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을 때 뒤에 탄 페로렌이 물어온다.

“목적지……. 가보면 알아요.”

가보면 알기는 하겠다만,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다. 프리지아와는 상극인 페로렌이 그녀를 맞닥뜨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살짝 두렵기도 한데……. 다른 곳에 잠깐 두고 갈까……?

“근데 그 작은애는 어디 갔어? 맨날 붙어있더니?”

“드웍프? 글쎄. 잠깐 어디 좀 갔다 온다길래 보내 줬어요.”

드웍프는 매번 때만 되면 자리를 비우곤 한다. 뭐 하러 어디를 돌아다니는 건지 말은 안 해준다. 궁금하긴 하지만 죽어도 입을 안 열길래 그냥 놔뒀다.

강제로 입을 열게 하면서까지 녀석의 사생활이 궁금한 건 아니니까. 대충 예상하는 바로는 어디서 사기 좀 치면서 일당이나 채우고 있겠지, 뭐…….

그래도 매번 필요할 때 되면 잘 찾아오긴 하더라. 사실 필요할 때 아니면 시끄럽고 귀찮아서 없는 게 낫긴 하다.

“슬슬 배고픈데 밥 먹고 갑시다. 아가씨.”

“그 배는 시도 때도 없이 고프지? 뱃속에 마족 귀라도 들은 거 아니야?”

이제는 안 들으면 서운할 페로렌의 독설을 들으며 괜찮은 음식점을 물색해본다.

*

“제 손목을 자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왜?! 왜 저런 인간한테 굴복하는 거예요!”

“셀리안. 인생은 정해진 대로만 가는 게 아니란다. 이제 너도 성인이 되었으니 깨달아야 하지 않겠니?

“크으, 명언인데 그래? 아주 바람직한 사고방식이야.”

난 그냥 먹거리를 찾으려고 이곳에 들렀을 뿐인데, 엄청난 광경을 목격 중이다. 어떤 재수 없게 생긴 인간이 밥을 먹고 나서 진상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한 부녀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아닌가?

요리사 복장을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자, 뒤에서 있던 여인이 그를 막아선다.

“아버지가 할 바엔 내가 해요! 내가 해! 아버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 자식 평생 수치심 안고 살아가는 꼴을 내가 볼 것 같으냐?! 넌 그냥 내가 하란 대로 해.”

“아버지 평생 요리 못하는 것보단 나아! 나 바이올린 들게 하기 싫으면, 내 말대로 해요. 아버지.”

“셀리안 너 정말…….”

얼추 보긴 했지만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건지 제삼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결정을 무슨 하루 종일 하는 거야? 그거 선택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내가 도와줘?”

“그럴 필요 없어. 내가 할 테니까…….”

방금 입을 연 그랑즈라는 녀석.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경비병들이 기억해 두라고 단단히 일러둔 녀석이다.

이곳 몬드리 백작령을 소유한 백작의 자식인 듯한데, 재수 없기가 하늘을 찌르다 못해 뚫고 지날 정도다.

그랑즈의 말에 셀리안이라고 불린 아가씨는,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에게 바이올린을 맡기고 떨리는 손으로 상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한다.

“오오, 생각보다 좋은데 그래?”

단추를 풀어가는 여인의 속살이 조금씩 드러나자 그랑즈의 얼굴엔 음흉한 미소가 얼굴에 만연한다. 그러나 결국 보다 못한 그녀의 아버지가 나선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더 이상 단추를 풀지 못하게 자신의 요리 가운으로 덮어주고는 그랑즈에게 말한다.

“그냥 제 손목을 자르겠습니다.”

그랑즈는 짜증 난다는 듯이 한숨 쉰다.

“하, 참…….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손 자르자. 얘들아!”

“안 돼! 안 돼요! 아버지!”

그랑즈의 명에 따라 하수인들이 움직인다. 그들은 다가오는 여인을 막고 그녀의 아버지를 양쪽에서 붙잡는다. 그리고는 곧 굽이진 도 모양의 시미터 하나를 꺼내 든다.

“아, 참. 미리 충격받지 않게 얘기하자면 당신 손목 자르고 나면 당신 딸 강간하려던 거. 그냥 할 거야.”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말씀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냥 마음이 바뀌었어.”

그 모습을 미간 찌푸린 채 지켜보던 페로렌은 그냥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그렇지만 저 장면을 그냥 보고 지나치자니 마음에 걸려서 도저히 그냥 갈 순 없다.

“지금 뭐 하려는 거야? 아까 경비 말 못 들었어?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말고, 그냥 가.”

페로렌의 만류에도 나는 어느새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가고 있다. 소란 일으키는 거? 물론 싫어한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지나치고 후회하는 것보다, 일단 저지르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약장수 앞의 구경꾼처럼 서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모자랑 스카프 좀 빌립시다.”

“엇? 내 모자! 내 스카프!”

챙이 긴 모자를 쓴 여인의 모자를 빼앗아 얼굴에 한껏 눌러 쓴다. 스카프로는 지팡이를 꺼내든 채, 둘둘 감는다. 그리고는 휘두르기 적당한 무게를 양손으로 느껴본다.

“안돼! 아버지! 이거 놔! 당장 그만 둬!”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쐐애액-! 바람을 가르며 손목을 내려치는 사내. 나는 재빨리 그 손목 아래 지팡이를 살며시 끼워 넣어 행위를 막는다.

처렁-! 날이 얇은 시미터가 지팡이에 가로막혀 땅에 떨어진다. 사내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고통에 자신의 손목을 움켜쥔다.

“어윽! 웬 놈이냐!”

“어멋! 놈이라니욧! 이 우아한 모자 안 보이세욧? 저는 숙녀라고욧!”

“목소리 변조한다고 못 알아들을 줄 알아?”

티 났나……? 뒤를 슬쩍 돌아보니 페로렌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정체를 안 들키려면…….

“크흠, 저는 맛집 탐방 중이었다고요. 방해하지 말아 주실래요? 여기 주인아저씨 솜씨가 소문나서 와봤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하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걸리적거리는 애들이 많아? 얘들아, 빨리 좀 처리해라.”

그랑즈의 부추김에 앞의 사내가 무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무기도 없는 게 그렇게 노려봐서 어쩌겠다는 거야?

“네가 진짜 여자든 아니든 방해하면 죽여버릴 거니까 당장 꺼져.”

“어멋! 무서워라. 숙녀한테 실례되는 말씀을 하시다니요!

“스스로 못 비키겠다면 비키게 해주지.”

사내가 땅에 떨어진 시미터를 주우려 하자 나는 모르는 척 그의 발을 밟는다. 온 체중을 실어서 밟자, 이내 굵직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끄아아악! 발! 발 치워!!”

“어멋? 실수! 그럼, 발 치우는 김에 너희도 같이 치워 줄게.”

나는 밟았던 손을 뗌과 동시에 스카프로 감싼 지팡이를 힘차게 휘두른다. 사내가 지팡이에 맞고 쓰러짐과 동시에 공격권을 펼친다. 이후 그랑즈의 하수인에게 관절 마디마디에 고통을 각인시킨다.

“으허윽!”

“아악!”

잠시 뒤, 그곳은 응급실과 같은 모양새로 4명의 긴급 환자가 바닥에 퍼질러져 통증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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