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가는 창관 살리기 --> -‘당신만의 노예 브랜드를 창설하였습니다. 기존의 ‘명성’수치는‘브랜드 명성’으로 통합됩니다. 브랜드 명성이 오를수록 판매하는 노예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브랜드 창설 비용이 무려 500만 셀이라니……. 아깝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서 썼다.
“형님! 감축드리옵니다! 드디어 어엿한 노예상이 되셨군요. 이제 떼돈 벌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 너도 수고 많았다. 자, 이건 수고비.”
나는 그동안 고생한 드웍프에게 300만 셀을 건넨다. 번 돈에 비해 턱없이 적긴 하지만, 나도 먹고살아야지. 그리고 솔직히 위험한 건 내가 다했기 때문에 이정도 주는 것도 꽤 양심적인 거다.
드웍프도 받은 돈에 만족하는지 그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 수중에 있는 돈은 2,312만 셀. 페로렌한테도 뭐 하나 사다 줄까……? 비록 한 건 없지만, 나를 위해 열심히 보석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
돌아가는 우올로 위에서 책을 읽으며 저주받은 보석을 열심히 파고 있는 페로렌에게 공수해온 귀걸이 세트를 건넨다.
“이게 뭐야?”
“저번에 귀걸이 잃어버린 거요. 그게 좀 마음에 걸려서……. 작은 성의라고 생각하고 받아요.”
“진짜 작은 성의네. 이거 살 바에 차라리 옷이나 사 입지그래?”
역시 보석 감정 기술에 숙달한 만큼,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가치의 귀걸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낸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사치품을 무려 100만 셀이나 주고 샀다고…….
“기껏 준비했는데 그냥 받아요.”
“그래 뭐, 아무튼 잘 받을 게. 끼고 다닐진 모르겠지만…….”
그 말과 함께 바로 보따리 속에 집어넣는다. 그래도 귀걸이를 선물 받았으면 한 번은 착용해 보는 게 예의 아니냐……? 너무하네. 정말.
-‘페로렌의 호감이 3 상승했습니다. (현재 70+++)’
음? 말과 행동은 그래도 내심 좋았던 모양이네. 뒤늦게 떠오르는 호감 상승 메시지를 보니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진다.
*
틸프리아 고트윌 거리에 위치한 페두마의 여관. 나는 방구석에 있는 작은 침대에 누워 상사병에 빠진 사람처럼 정신을 반쯤 놓고 있다.
“프리지아…….”
아아, 프리지아. 사람을 홀리는 마력을 지닌 그녀여. 다시 한번 그대를 이 몸에 안을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리라…….
“아아, 프리지아…….”
“야 너 아까부터 시끄럽게 뭘 중얼거리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해 안 하겠습니다.”
나는 저주받은 보석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페로렌을 피해 내 사랑 프리지아의 정보창을 슬그머니 열람한다.
이름: 프리지아/ 레벨: 24 / 몸 상태: 건강함
직업: 프리지아 창관의 여주인
체력 290 마력 360
힘: 20 / 민첩: 24 / 지력: 56 / 건강: 44
기품: 3 / 매력: 5
노예 랭크: A+
기분: 알 수 없음
각인정보 1차 각성
호감: 70(+) /애정: 25(=) /헌신: 0 /굴복: 84(+) = 복종: 45%
신체 정보
키: 165cm
가슴: 94cm / 밑가슴 72cm / 허리 60cm / 엉덩이 91cm
〈기교〉
경영(4), 안목(3), 춤(max), 안마(max), 노래(max),
화술(max), 화장(max), 연기(3)
〈성기교〉
손(max), 발(max), 가슴(max),
입(max) 음부(max), 항문(4)
외모도 몸매도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그녀.
그날의 그 엄청난 일과 이후, 우올로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약간의 대화를 나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프리지아는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몬드리호프라는 도시에서 창관을 운영하는 여주인이라고 했다.
나는 창관의 여주인이 왜 거기 있었는지 궁금하여 그녀에게 잡혀 들게 된 경위를 물었고 그에 대한 대략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최근 창관 운영이 난항을 겪으며 그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듯했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 남자를 만났고, 그게 바로 그 날 건너편 감옥에 갇혀있던 파랑 머리였다.
문제는 그 파랑 머리 남자가 자신과는 너무 안 맞았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프리지아는 헤어지려고 했지만, 그가 너무 매달리는 탓에 마지못해 받아주고 있었나 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만났던 남자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프리지아는 결국, 그에게 이별을 고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별을 고하려던 그 날 인신매매단 눈에 띄어 그곳까지 잡혀 들고 말았다는 게 그녀의 사연이었다.
최종적으론 내가 둘의 사이를 끼어들어서 프리지아에게 자유를 준 상황인 것이다.
그녀의 능력치를 살펴보니 확실히 창관의 여주인이라 그런지 노예 랭크부터가 A+ 에서 시작한다.
이 랭크가 높을수록 노예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차이 난다는데, 만약 그녀를 풀어주지 않고 그대로 경매에 올렸으면 못해도 몇천만 셀은 받지 않았을까 싶은데…….
물론 내 예상일뿐이다. 중개인 도르몰이 나 몰래 얼마를 당겨먹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
하아……. 그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보고 싶은 열망이 더욱 간절해지는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여색에 빠진다는 것인가…….
“아아! 프리지아 보고 싶다!”
“야! 시끄럽다고 했지?!”
프리지아에 대한 열망을 무심코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페로렌의 갈퀴진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대체 프리지아가 뭔데 그래? 저번에 그 천박한 여자 말하는 거야?”
“에이, 아가씨 아무리 창관을 운영한다지만, 천박하다니요.”
“하! 몸 파는 여자를 천박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몸은 프리지아가 파는 게 아니라 프리지아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파는 거라고요.”
“아무튼, 난 그 여자 진짜 마음에 안 들어.”
그날 우올로를 통해 프리지아를 가까운 도시로 데려다주면서 페로렌과의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프리지아가 페로렌과의 첫 만남에서 그녀를 내 귀여운 여동생으로 오인한 것이 발단이었다. 애 취급을 싫어하는 페로렌이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었겠는가?
페로렌은 그 즉시 프리지아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프리지아는 뭐 어떠냐는 식으로 대충 넘겼고, 이에 열 받은 페로렌은 복장이나 화장의 수준을 걸고넘어지더니 기어이 그녀를 창녀로 매도한 것이다.
관련 직종에 있긴 했지만, 그녀로서도 창녀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
그렇게 서로에 대한 흉흉한 덕담이 한참을 오고 가다 도시에 도착해서야 그 살벌한 말싸움이 중단됐다.
여자들 사이에 내내 끼어 있던 나와 드웍프는 피가 말라 죽을뻔했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괜히 등골이 시리고 손발에 땀이 차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페로렌을 생각하면 이래선 안 되는 걸 알지만, 난 왜 자꾸 그녀가 보고 싶은 걸까……? 그녀가 혹시 나한테 각인이라도 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떠올라 미칠 지경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다른 걸 하면서 정신을 환기하자.
나는 머리 위에 책 3권을 얹고 방안을 천천히 돌아다닌다. 페로렌에게 기품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머리에 책을 얹어주면서 이거나 하란다.
기품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몸에 밴 것이 자연스레 나오는 거라고, 하다 보면 조금의 기품은 생길 거라고 말이다. 근데, 정말 이런 걸로 배울 수 있는지 모르겠네……. 틈틈이 해봐야지 뭐.
* * *
포드 미하스 몬드리 백작의 차남, 그랑즈 미하스. 그는 몬드리 호프 도시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매일 같이 하수인들과 거리를 거닐며 난동을 부리고, 여자를 거느린 채 아무 곳에서나 난봉을 피우기도 하며, 당장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거라면 범죄든 뭐든 무엇이든 저지르고 보는 극한의 천둥벌거숭이였다.
그의 유명세가 어느 정도냐 하면 길 가던 사람에게 그랑즈 이름의 그랑만 꺼내도 10m 반경의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자리를 피할 정도였으니, 악명으로는 여느 살인범보다 더한 수준이었다.
*
기분 좋은 악기 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몬드리호프내의 작은 레스토랑. 바깥으로 이어진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빈 접시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채 이를 쑤시고 있는 한 무리가 있었다.
“꺼억……. 하아 잘 먹었다. 어이!”
“아, 예! 예. 그랑즈님…….
그랑즈의 부름에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옆에 다가섰다. 그랑즈는 식사 테이블에 발을 떡하니 올려놓으며 주인의 귀를 자신의 입 근처로 잡아당겼다.
“꺼어억……! 아오, 트림이 자꾸 나오네. 디저트 갖고 와.”
주인장은 1년 묵힌 음식물 잔반 쓰레기 같은 그의 역겨운 트림 냄새를 참으며, 준비해놓은 디저트를 헐레벌떡 가져왔다.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스크림. 지금 당장 황궁의 공주에게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이쁘게 만들어놓은 장식이 눈에 띄는 디저트였다.
그랑즈는 그 정성스러운 장식이 별 볼 일 없다는 듯 마구 으깨더니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스크림의 마지막 남은 한입을 입에 털어 넣고는 손가락질로 주인장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러더니…….
“퉤! 퉷! 퉷! 카아아악! 퉤!! 더럽게 맛없었어!”
그는 입속에 머금은 아이스크림을 주인장의 얼굴에 분무기처럼 뱉어댔다. 주인장의 얼굴엔 아이스크림 이외의 걸쭉한 액체도 함께 묻어 흘러내렸다.
그랑즈는 한 입 씹어먹은 빵으로 주인장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잘 좀 하자. 도시 질 떨어뜨리지 말고. 응?”
“예,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랑즈의 화나는 행태에도 그를 비롯한 주변 손님들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는 게 맞을 터였다.
그가 가진 배경이 이 도시 내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랑즈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에 무서울 것 하나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다녔다.
“그만 가자 얘들아. 끄어억! 어우, 음식이 맛대가리가 없으니까 트림만 나오네.”
그랑즈는 자신의 4명의 하수인과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물론 음식값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의 태도에 열 받은 한 여성이, 가게 안에서 달려 나오더니 그랑즈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한 손에는 작은 바이올린이 들려있었다.
“이봐요! 돈 내고 가요! 음식 먹은 값! 그리고 우리 아버지한테 한 행동도 당장 사과해주세요!”
그녀는 해당 레스토랑의 주인장 딸인 셀리안이었다. 그녀는 이 레스토랑에서 아침엔 홀 서빙 저녁엔 악기 연주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의 연주 솜씨는 뛰어나다 못해 황홀할 정도여서 저녁 시간마다 그녀의 연주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줄을 섰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시간대를 바꿔 아침에 먼저 악기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 아버지의 부탁 때문이었다. 도시의 무법자 그랑즈가 가게로 오고있다는 소식에 그녀의 아버지는, 셀리안의 정의로운 성격이 걱정스러웠다.
그녀가 올바른 사고를 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선 앞뒤 생각 안 하고 나서는 경향이 있어서 일이 커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같은 불의의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녀가 못 봤으면 하는 마음에 가게 안쪽에서 악기 연주를 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열 걸음이면 둘러볼 법한 자그마한 가게에서 이 소란이 일어났는데, 그녀가 못 알아챌 리 없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말아 쥐고 그랑즈를 노려 봤다. 사파이어처럼 영롱한 그녀의 밝은 청빛 눈동자에는 그랑즈에 대한 분노가 어려있었다.
정작 그랑즈는 자신의 어깨를 잡은 손을 태연히 흘겨보고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건 또 뭐지? 혹시 지금 나한테 그러는 거 맞아?”
“그럼, 당신 말고 이 가게에서 돈 안 내고 가려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세, 셀리안! 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빨리 사죄드리고 이리 오지 못해?!”
그녀의 아버지는 갑자기 나타난 셀리안의 모습에 식겁하며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셀리안은 오히려 떳떳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막았다.
“아니요, 아버지! 잘못된 행동을 했으면! 잘못됐단 걸 이 사람도 알아아죠!
그랑즈는 머리를 긁적이며 뭔가 잘못되긴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랑즈 입장에선 잘못된 것은 자신이 아닌, 자신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이 소녀라고 굳게 믿을 뿐이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랑즈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