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의 눈을 떠라 --> “봐, 괜찮잖아.”
그녀는 아이셀을 손으로 받아들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 짓는다. 그러나 그 순간…….
“앗!”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지더니 보석을 냉큼 떨어뜨린다.
보석을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다. 마치 사나운 괴수가 눈앞에서 집어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몸을 한껏 움츠리고 겁먹은 표정을 짓는다.
곧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안색이 새파래진다.
“왜 그래요?!”
“모르겠어……. 이 보석 안에…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 같아……. 의미를 알 수 없는 환각 같은 걸 봤어. 아무래도 이거……. 네 말대로 맨손으로 만지면 안 될 것 같은데……?”
“어? 왜 갑자기 왜 울어요?
“울어? 내가? 어?!”
페로렌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도 갑자기 흐르는 눈물에 놀란 모양이다.
“이거 한번 자세히 좀 알아봐야겠어. 시간이 꽤 필요할 거야…….”
페로렌은 다시금 조심스럽게 떨어진 보석을 주워든다. 보석은 결국 그녀에게 맡기기로 하고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한다.
*
톨로픈 마을에서 떠난 뒤, 틸프리아에 도착한 우리는 코어 2개를 처분하고 총 6백만 셀의 거금을 거머쥐었다. 그 금액으로 우올로를 구매한 우리는 작은 식당에서 앞으로 무엇을 해 나갈지에 대한 의논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앞으로 노예 상단을 꾸려 갈 것이다. 뭐 말은 거창하게 상단이지만, 초반에는 주변 해적이나 산적들에게 잡혀있는 노예들 털면서 조금씩 자금을 모으고 적당한 메가급 우올로를 하나 구매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해야겠지.”
“형님!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이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 정보를 물어 나르는 충견이 되겠습니다. 대가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물론, 약간의 보수라도 쥐여주신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입니다. 헤헤…….”
내 결정에 드웍프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얘는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페로렌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없는 모양이다. 이쪽 일엔 관심도 없다는 듯, 이곳에 오면서 구매한 세공 도구로 아이셀을 요리조리 살피고 있었다. 그 열정만 보면 공시생 안 부러울 정도다.
“그럼 먼저 톨로픈 마을에서 얻은 해적들부터 노예시장에 팔고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예, 형님!”
*
틸프리아 외곽지역에 조그맣게 위치한 틸프리아 환락가. 이곳은 각종 성인 술집. 각종 퇴폐, 향락업소, 노예시장 등이 난립해 있는 장소다.
인구가 많은 틸프리라의 향락가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성적 향락을 추구하는 인파로 발디딜틈 없이 북적북적하다.
페로렌은 이곳 입구에서 도저히 들어올 수 없던지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드웍프와 나만이 이곳에 들어왔다.
“어우 형님. 여긴 언제 와도 좋네요. 노예시장은 저쪽이에요. 따라오세요.”
생각해보니까 드웍프 미성년자였지……? 그런데도 꽤 많이 와본 듯한 말투다. 참된 어른이라면 야단이라도 쳐서 버릇을 고치겠지만, 난 참된 어른이 되기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
더군다나 얘는 어둠의 경로에 빠삭하다 보니 오히려 이런 곳에선 절로 의지하게 된다.
드웍프를 따라 한참을 걷자, 3층 높이의 꽤 높은 건물이 하나 나온다. 짙은 갈색의 나무로 만든 외관에 주황색 천장, 벽면엔 선팅이라도 한 듯 어두컴컴한 창문들이 잔뜩 달려있다.
저곳이 바로 노예 시장. 건물의 모양이지만 그냥 노예 시장이라고 통칭하는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법 확성기로 떠들어대는 사내의 목소리가 고막에 때려 박힌다.
“자, 자! 현재 50만 셀!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안 계십니까?! 아! 저기 55만 셀 나왔습니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 기회! 이렇게 저렴하게 팔려나갈 노예가 결코 아닙니다! 가치를 알아보는 분만이 좋은 노예를 사들이실 수 있습니다! 아! 60만 셀! 나왔습니다!”
사내는 화려한 입담으로 한 명의 여성 노예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의 입담에 팔려나가는 노예 한 명의 값어치는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을 처음 보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계속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드웍프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드웍프! 아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온 거야……?”
“하하, 그동안 사정이 조금 있었어요. 요즘 일은 잘 되십니까?”
“나야 뭐 언제나 똑같지, 근데 갑자기 어쩐 일로……?
“다름이 아니라 사람 하나 소개 시켜드리려고 하는데…….”
*
[직업 퀘스트 발생! - 노예 상인의 첫걸음] [난이도: 어려움]
〈내용〉
당신은 노예 상인이 되려 합니다. 노예 중개인에게 신뢰를 얻어서 정식 노예 상인으로서의 발돋움을 시작하세요.
*특정 노예 중개인이 아니더라도 달성 달성이 가능합니다.
〈목표〉
1-1.노예 100명을 판매하세요. (0/100)
1-2.가치 1,000만 셀 이상의 노예 한 명을 판매하세요.
〈보상〉
명성 50 획득 / 노예상인 직업 획득
나는 드웍프가 소개해준 ‘도르몰’이라는 노예 중개인에게 노예상인으로 전직하는 퀘스트를 받았다.
노예상인이 되면 노예를 훈련시킬 수 있는 권한이 생기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노예의 기본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 퀘스트를 받은 뒤 톨로픈에서 잡아 들인 해적들도 넘겼다.
“그리고 오늘 데려온 두 노예는 두당 50만 셀씩 쳐 줄게. 드웍프 지인이라 후하게 쳐주는 거야.”
“경매 올리는 건 조건이 따로 있는 건가요?”
“우리 가게에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남자 노예를 경매에 부치진 않아. 그냥 즉석에서 사드리는 게 전부야.”
애초에 이곳 노예시장도 대부분이 남자 손님이라 남자 노예를 찾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듯하다. 남자 노예를 경매에 부치려면 다른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것까진 귀찮아서 못 하겠다.
1-1.노예 100명을 판매하세요. (2/100)
이제 수중엔 200만 셀 조금 넘게 있다. 이걸로 장신구나 하나 사 볼까……?
“드웍프. 여기도 혹시 장신구 상점 같은 거 있어?”
“장신구 사시게요? 중고 장신구점이 있긴 한데, 사람들이 대부분 쓰다가 성능 딸려서 파는 것들이라 별로 추천은 안 드려요.”
“둘러나 보지 뭐.”
*
중고 액세서리 상에서 100만 셀을 들여 팔찌 하나를 샀다. 드웍프의 말과 달리 재밌는 장신구들이 꽤 보여서 사고 싶은 건 많았지만 레벨 1 때 착용할 수 있는 건 얼마 없었다. 난 왜 자꾸 그 사실을 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간신히 건진 게 이것뿐인데…….
[심연의 팔찌]
요구 레벨 1
희소성: 마법
〈소질〉
-심연의 부름
사용자를 중심으로 반경 7m의 깊은 심연을 끌어들입니다. 심연 속에서는 모든 시각을 차단합니다. 적 대상뿐 아니라 사용자도 해당 효과에 영향을 받습니다. (하루 1회 사용 가능)
〈내용〉
심연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팔찌.
나의 개복치 같은 생존율을 높여줄 수 있는 심연의 팔찌다. 위험에 빠졌을 때 심연을 뿌리고 도망가는 식으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100만 셀짜리 장신구치고는 효과가 저거 하나뿐이라 아무래도 바가지를 쓴 느낌이다. 추가 능력치도 안 붙었고……. 그래도 별수 있나? 아무것도 안 끼는 것보단 낫겠지.
*
틸프리아에서 조금 떨어진 인구 500 정도의 작은 마을 라메다. 드웍프가 얻어온 정보에 의하면 이 근처에 인신매매단이 둥지를 튼 모양이다.
인신매매단 기지를 직접 턴다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도 있으나, 100명의 노예를 빠르게 채우려면 이 방법이 가장 빠르다. 이미 몇 일간 인신매매단 기지를 두 차례나 털어본 이력이 있기 때문에 잘 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우올로를 타고 산중 높은 위치 곳에서 인신매매단 기지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대충 숫자가 20 정도라고 했지? 직접 보니까 곳곳에 퍼져있어서 그렇지, 그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적들 수준은 어때 보여?”
“레벨 분포는 25에서 35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번 놈들이 15에서 20이었습니다. 여긴 상당히 강해요.”
“진짜 여기가 훨씬 더 세구나. 후우…….”
내가 레벨업만 할 수 있었다면 저들과 레벨이 비슷했을 테지만 지금으로선 틀렸다. 평균 레벨 30이라……. 정면돌파로는 어렵겠는데……?
몇일 전 해적선에서 싸울 때처럼 목걸이로 어떻게 헤쳐나가면 할 만하겠지만, 지금 페로렌이 열심히 만드는 중이니 어쩔 수 없다.
싸워나갈 방법에 대해 생각하던 중 드웍프가 조심스럽게 나를 부른다.
“형님. 저는 빠지면 안 되겠습니까? 저, 전투 전문이 아니라 싸움 못 하는데…….”
“지옥의 구덩이로 한 번 빠져 볼래?”
“아, 아니요. 싸우겠습니다. 싸울게요.”
이전 인신매매단 기지 두 곳을 털 때는 운이 좋았던 건지 적의 머릿수도 적었고 평균 레벨도 높지 않았다. 그만큼 노예의 질이 떨어지긴 했지만, 노예 퀘스트 머릿수 채우는데는 충분히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번 장소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적들 레벨도 높고 쪽수도 생각보다 많다. 나도 웬만하면 혼자 처리하겠지만, 여기는 적들의 수준이 나에 비해 높은 편이라 혼자 가긴 두렵다.
드웍프가 다른 건 몰라도 몸 하나는 제법 단단해서 지원군 역할은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정작 드웍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형님, 계획은 있습니까?”
“먼저 노예들 위치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넌, 일단 저기 무기 저장고 보이지?”
“아, 예.”
“넌 혹시 모르니까 저기로 숨어들어 가서 무기 좀 최대한 많이 빼돌려. 나는 그동안 노예들 위치 좀 확인할 게. 노예 찾으면 데리고 몰래 빠져나가자.”
말을 마치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노예들이 있을 만한 위치를 가늠해본다. 그러나 드웍프는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뚫어지라 쳐다본다.
“그리고요? 그게 다인가요. 형님? 뭔가 조금 허술하지 않습니까?”
“내가 제갈량도 아니고, 뭐 환상의 전술이라도 바라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형님도 저도 하드코어 캐릭터인데 전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뭐 있어? 생각이 무거울수록 몸도 무거워지는 거야. 잔말 말고 어서 준비해 내려가게.”
노예 퀘스트를 깨는 동안 페로렌은 참여시키지 않았다. 작전이 안 좋게 흘러가서 페로렌이 잘못되면 내 보석도 영원히 그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신조차 부술 수 없는 아이템이라……. 빨리 그 실체를 보고 싶구나.
*
“이봐 오늘 대장이 외부에서 잡아 온 여자 봤어?”
“누구?”
“그 있잖아. 파랑 머리랑 같이 잡아 온…….”
“아, 봤지. 극상품이던데? 그 정도면 내가 봤을 때 대장이 팔아넘기진 않을 것 같은데…….”
나무 울타리를 높게 둘러싸서 외부의 침입을 철저히 막고 있는 인신매매단의 기지. 아무리 촘촘히 막아 놓는다 해도 어느 한 곳은 물이 새기 마련이다.
그런 곳을 찾아 어떻게든 기지에 숨어드는 것까진 성공했는데, 이것들은 왜 이 앞에 와서는 잡담이야……?
현재 잔디밭에 바짝 누워서 코앞에서 떠드는 인신매매단의 일원들을 비명횡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다. 놈들은 뭔 놈의 수다를 하루 종일 떠는 건지 벌써 10분째 이 앞에서 이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건 내 쪽인데……. 잔디의 높이가 낮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걸릴 것 같고, 이대로 계속 있자니 허리에 쥐가 나서 행동에 지장이 생길 것 같다.
어떻게 한담? 돌멩이로 유인해볼까? 눈앞의 잡담 중인 사내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다.
“나도 그런 이쁜 여자랑 한번 하룻밤 보내면 소원이 없겠네.”
근처의 돌 하나를 주워든다. 그리고 내 반대편으로 홱 집어 던진다.
덜그럭-! 돌멩이가 큰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그럼 대장한테 한번 부탁이라도 해봐 혹시 알아?”
“미쳤어?! 누구 목 날아가라고?”
“킥킥. 대장 성격상 그렇기야 하지.”
……이것들은 돌멩이를 던졌는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어? 집중력이 좋은 거야? 아니면, 인지력이 떨어지는 거야? 첫 번째 유인이 허무하게 실패한 관계로 한 번 더 시도한다.
이번엔 조금 더 세게……!
“아니, 그래도 혹시 알아? 대장이 인심 써 주실지?”
덜그럭-! 툭! 툭!
“아주 퍽이나 써 주시겠다!”
“흐음, 아니면 몰래 접근해보는 건 어때?”
이 것들이 진짜…….
“야! 니들 귀먹었냐?!”
“뭐, 뭐야?! 너 누구욱…….
“저, 적!!”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팡이를 4차례 휘둘러 두 명을 제압한다. 은밀하게 움직이려고 했더니만, 참 안 도와주네! 더 이상은 몸이 근질거려서 못 숨어있겠다. 행동 개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