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을 나는 배 --> 티잉-! 청명한 쇠붙이 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어이없게 손에서 빠져나간다. 힘을 너무 썼더니, 손에 힘이 풀려버린 탓이다.
“크으…….
그도 피해가 전혀 없던 건 아닌지 고통을 이겨내려 손가락을 탈탈 털고 있다.
지팡이를 놓쳐버렸으니 이젠 어쩔 수 없다. 결국, 스스로 공격권을 풀어낸 채 떨어진 지팡이를 줍는다.
“하아, 미치겠네! 드웍프 개자식! 진짜…….”
몸이 힘들어지니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드웍프에게, 악다구니가 한 사발로 터져 나온다.
가슴에 차오른 속앓이를 전부 털어낼 겨를 없이 구르텐이 몸을 거칠게 밀고 들어온다.
나는 그의 속도를 이용할 심산으로 지팡이를 훅-! 휘두른다. 그러나 고개를 급히 숙여서 피해낸 그가 역으로 주먹을 내지른다. 그의 주먹이 코앞의 바람을 사정없이 가르며 위협적인 소리를 낸다.
“후읏!”
재빠른 반응 덕에 주먹은 간신히 피했지만, 내내 가만히 있던 선장이 던진 올가미에 어느새 내 다리가 묶여 있었다.
“흐흐.”
그가 변태같이 히죽거리며 올가미를 홱 끌어당기자 묶인 신체가 버티지 못하고 나자빠진다. 넘어진 내 위로 구르텐이 덮쳐 들어온다.
“이런!”
쾅!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피하자 조금 전 내가 있던 자리에 칼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진다.
일어나려고 몸을 뒤집어보지만, 선장이 올가미를 확 끌어당기는 바람에 다시 철퍼덕 엎어진다. 구르텐은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공격을 개시한다.
피하고 싶지만, 발에 묶인 올가미 때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대로 죽는가……?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 한 그 순간……!
쿵-! 선체에 큰 충격 가해지며, 구르텐은 공격하려던 자세 그대로 고꾸라진다. 우올로가 좌우로 크게 흔들린다.
“으윽! 뭐야?!”
나는 상황을 판단한 겨를 없이 발에 묶인 올가미부터 풀어낸다. 뭐지? 무슨 일이지?
“형님!!”
“드웍프?!”
드웍프다. 그가 돌아왔다. 우올로를 이끌고 선체에 들이받은 모양이다.
“너 이 자식아! 혼자 도망을 쳐?!”
반갑지만 따질 건 따져야지.
“어쨌든 돌아왔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해?!”
변명을 안 하는 거 보니 진짜 도망쳤던 모양이다. 이런 망할 자식을 봤나……. 그래. 아무튼, 돌아왔으니 한번 봐주마. 그런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포스티온! 저놈들부터 잡아!!”
포스티온? 선장이 내 뒤편을 보며 그렇게 소리친다. 그곳을 보니 뱃머리 방향에서 한 척의 우올로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 씨……. 드웍프! 일단 도망……! 커억!!”
잠시 한눈 판 사이 구르텐이 내 몸뚱이를 콱 부여잡는다.
“으흐흐! 잡았다.”
우두두둑-! 허리에서 활액낭 터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그로부터 느껴지는 고통은 결코 시원한 정도가 아니다.
-‘36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악! 이 망할!”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이 내장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다.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구르텐! 그놈의 허리를 그대로 작살내버려!”
나는 그의 머리를 지팡이로 세차게 내려친다.
“이거…… 놔!!”
퍽-! 퍽-! 그의 머리에선 피가 튀며 고통스러워함에도 내 허리를 끈질기게 붙든다.
“으윽!! 부러뜨려주마!”
이윽고…….
뚜두둑! 착즙기처럼 쥐어짜인 허리가 괴특한 소리를 내지르며 통증을 유발한다. 이건 분명 골절이다.
“끄어윽!!”
-‘죽음을 1회 견뎌냈습니다.’
안돼! 진짜 죽는다. 오른손의 지팡이로는 그의 머리를 계속 내려치면서, 왼손으로는 무심코 그의 눈을 찌른다. 그 순간……!
파직-! 파지지직-!
“끄어어어억!!!”
구르텐이 발정 난 개처럼 온몸을 떨어대더니 이윽고 의식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진다.
“허억……. 헉.”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네…….
그에게서 떨어져 거친 숨을 내쉬면서 조금 전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그리고는 곧 왼손에 들린 보석을 향해 시선이 떨어진다.
“이거……?”
전기를 흡수만 한 게 아니었어? 내 손에 쥐어도 멀쩡하기에 흡수만 하고 마는 건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통하는 모양이다. 그걸 왜 이제서 깨달은 거지?
“하아……. 하아…….”
멍청했던 자신을 쥐어박으며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선장은 쓰러진 구르텐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다.
“구르텐이 쓰러졌다고……? 이건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
나는 보석에 달린 얇은 가죽 줄을 지팡이 끝에 풀리지 않게 꽉 동여맨다. 이제 믿을 건 이거 하나뿐이다.
“포스티온!! 돌아와!!! 이쪽을 지원해!
선장의 말에 드웍프의 뒤를 쫓으려던 포스티온의 우올로가 이쪽으로 돌아 붙는다.
곧 수십 명의 해적이 탄산음료 리필하듯 쭉쭉 차오른다.
“다시 시작해볼까?”
“마드로프 선장 표정을 보니까. 사냥감이 제법 날뛰나 본데?”
해적 졸개 하나가 눈앞에서 그렇게 떠든다.
그렇지만 틀렸어. 사냥감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 이번만큼은 이쪽이 사냥에 나설 차례다. 숨을 돌린 나는 즉시 몸을 박차고 튀어나간다. 그리고 다른 우올로에서 건너오는 해적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간다.
“끅아아아아악!!!”
한 번의 스침. 그리고 한 번의 쓰러짐. 힘을 실을 필요도 없다. 지팡이 끝에 달리 보석으로 가볍게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해적들은 맥없이 쓰러져 나간다. 그것은 부선장같이 이름 있는 적들도 마찬가지다.
“끄어어어억!! 이, 이게…….”
“안돼! 포스티온!”
선장이 소리친다. 부선장 포스티온이 이쪽 우올로로 건너옴과 동시에 쓰러지자, 해적들은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해간다.
“저 인간… 대체 뭐야?”
“마, 마법사?”
해적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에 젖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그래 이 기분, 이 느낌이다. 이렇게 짜릿할 수가 없구나. 비록 보석빨이지만 포식자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게 색다른 충족감을 불러일으킨다.
“모두 뭣들하고 있어! 저 새끼를 죽여!! 빨리!”
“…다들 가자! 저놈 모가지를 썰어버리자고!!”
“이야아아아!!!!”
선장의 말을 시작으로 수십 명의 해적 단원들이 나를 향해 맹렬히 돌격해온다.
그 모습에 나는 씨익. 미소 짓는다.
“지금부터 살고 싶으면 신께 기도드려라. 말린 생선이라도 내려 달라고 말이야.”
말과 동시에 내 신체는 사방으로 날뛰며 갑판 위를 휩쓸기 시작한다.
*
“호우! 형님 정말 멋졌어요!”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드웍프가 양손으로 손뼉을 쳐올리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후우…….”
갑판 위에 4, 50명 정도 되는 해적들이 사방으로 엎어져 있다. 몇 명은 정도가 심했는지 신체가 바싹 타들어 가 피부마저 검게 변해 있다. 나는 올가미를 손에 든 채 벌벌거리는 마지막 표적을 향해 걸어간다.
“후우……. 후우…….”
나는 보석을 지팡이에서 풀어 인벤토리에 집어넣는다. 이런 녀석은 보석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다. 직접 패줘야 속이 후련하지.
“이, 괴물 같은 놈!! 크엑!”
지팡이로 선장의 목을 짓누른 채 쪼그려 앉아 얼굴을 마주한다. 지금까지 몇 사람이나 겁먹게 했는지 모를 해적의 얼굴에 반대로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너한테 하나 묻자. 저기 아가씨 보이지?”
나는 우리 배에 타고 있는 페로렌을 가리킨다. 선장은 자신의 목을 꽉 누르는 지팡이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가 가리킨 방향을 슬쩍 쳐다본다.
“혹시, 너나 네 부하가 저 아가씨 뺨 때렸어?”
페로렌의 붉게 부어오른 왼쪽 뺨. 그렁그렁한 눈, 좋아 보이지 않는 기분. 사소한 것들이지만 상당히 신경 쓰여서 그냥은 못 넘어가겠다.
선장이 대답 대신 몰래 허리춤에 손을 얻는다. 자기 딴에는 몰래 한다고 하는 행동이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나, 무기 꺼내요.’ 하고 있으니 모른 척해주기도 어렵다.
“죽어!”
퍽-! 지팡이로 그의 손목을 찍어 누르자, 그 손에 들린 송곳 같은 무기가 처렁거리며 떨어진다.
“큭!”
“이게 네 대답이라는 거지? …알겠어.”
나는 이를 꽈득-! 물며 선장의 손목을 누른 지팡이에 그대로 힘을 싣는다.
우직-!
“끄아아악!!!! 아흐아윽!”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가 손목을 붙잡고 뒹굴며 죽겠다고 소리친다. 나는 바닥을 뒹구는 선장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내 우올로 앞까지 질질 끌고 간다.
“페로렌 아가씨. 얼굴, 혹시 얘가 그랬어?”
페로렌은 말이 없다. 그러나 옆에 있던 드웍프가 대신 대답해준다.
“예 형님! 그 자식이 아가씨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성기를 찢어놓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뭐?!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을 봤나?”
“흐아윽! 네놈들 내가 가만히 둘 거 같아?! 너뿐 아니라 너랑 너도 전부 갈가리 찢어 놓을 거야!!”
나는 거친 말을 사정없이 내뱉는 선장을 무릎 꿇리고 페로렌을 바라본다.
“페로렌 아가씨. 이 자식한테 복수해야지. 뺨 한 대 시원하게 날려버려요.”
페로렌은 잠깐 말없이 선장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결심한 듯 일어서서 다가온다. 그리고는…….
짝-! 소리와 함께 내 볼때기가 아려오기 시작한다.
“아가씨……?”
“킥킥. 계집한테 대우도 못 받는 별 볼 일 없는 놈이었구만!”
뺨을 맞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에 선장은 낮잡아 조롱한다.
그렇다. 페로렌은 내 뺨을 때렸다. 화가 많이 났나 보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팔려나가는 노예 역할을 시켰으니 화낼 만도 하지. 더군다나 무모한 행동으로 목숨까지 위험할 뻔했으니……. 이번 건 나도 지은 죄가 있으니 뭐라고 하기가 껄끄럽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말로 그녀가 내 죄를 이 정도로 용서해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쟤는 더러워서 직접 못 때리겠으니까, 네가 확실하게 전달해.”
“아……. 네. 아가씨! 분부대로 합죠.”
이후, 고소한 듯 웃고 있는 해적 선장의 뺨을 행성의 내핵에서부터 끌어올린 힘으로 사정없이 난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팅팅 부은 그의 얼굴은 아픈 표정조차 짓지 못할 정도로 망측해졌다.
*
[퀘스트 완료! - 천상천하 유아독존] [난이도: 어려움]
〈보상〉
명성 100 획득 / 경험치 획득 / 잠재 3 획득 / 500,000셀 획득
-‘명성이 100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명성:575 )
-‘경험치가 224%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33레벨 업 가능)
-‘잠재를 3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67)
-‘500,000셀을 획득하였습니다.
“마드로프 해적단 그놈들이 정말 골칫거리였는데 이렇게 처리해줄 줄이야. 모든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서 고맙단 말을 전해야겠군. 정말 고맙네.”
해적단을 처리하고 나서 코어 2개와 마드로프 해적 선장과 부선장 생포했고, 덤으로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 셀까지 추가 획득했다. 제법 힘든 싸움이긴 했지만 얻은 게 많으니 뿌듯하구나.
선장과 부선장은 일단 잡아 두긴 했는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을 주민이 데려갈 줄 알고 잡아 온 건데, 불어터진 얼굴을 보더니 됐다며 거절하더라.
지금 우올로에 묶어 놨는데, 부하로라도 써야 하나……?
드웍프가 보상을 받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붙인다.
“형님 잠깐 저랑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무슨 얘기를 또 하려고 이게……. 아까 도망간 일에 대해 변명이라고 하려고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이 녀석은 사기꾼 기질이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난다는 거다. 그 사실을 항상 가슴에 새겨두면서 드웍프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하자.
페로렌을 잠시 혼자 두고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드웍프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어딘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아……. 형님 저 혹시, 저한테 마법 같은 거 거셨습니까?”
“마법?”
갑자기 웬 마법 타령인지 모르겠다. 드웍프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자신의 속에 꿍쳐둔 말을 하나씩 털어놓는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 분명 아까 도망치려고 했거든요? 근데 돌아온 이유가 뭔지 아세요?”
“잡혀서 뒈지기 싫었나 보지.”
그 정도 추측밖에 할 수 없는 내게 그것을 물어보면,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어찌 알겠는가? 더군다나 남자 마음 따위 알게 뭐람?
그런데 드웍프의 입에서 참 뜻밖의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뭐 그런 것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자꾸 형님 얼굴이 아른거려서 돌아왔어요.”
“뭐?”
아른거리다니 무슨 의미로 하는 소리야 이거……?
“그러니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형님을 두 번째 만났을 때 있잖아요? 제가 형님한테 목걸이 드렸을 때요. 그때부터 비슷한 증상이 있긴 했는데 오늘은 조금 더 확실히 느껴지더라고요.”
“뭐가 느껴진다는 거야?”
“저도 남자한테 이런 감정 느낀 적 없고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게임에만 접속하면 형님이 떠오르고 형님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고요. 그러니까……. 그것은 마치…….”
드웍프의 눈망울이 유레카를 외치기 직전의 소년처럼 또렷해진다. 그리고 곧 그의 입에서 내 소름을 쫙 끼치게 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첫사랑처럼 말이에요.”
“……너, 제대로 미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