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39화 (39/147)

<-- 하늘을 나는 배 -->                               드웍프는 내 말에 따라 미리 준비해둔 작전대로 혼자 대본을 외듯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곧 존경심 가득한 눈빛을 담아 보낸다.

“와, 근데. 다시 생각해도 형님 멋져요. 진짜 이번 건 제가 한 수 배워갑니다.”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 사기꾼 가르쳤단 소리 들을까 무섭다. 잘할 수 있지?”

“제 전문 분야입니다. 믿어주십쇼.”

나는 우올로 뒤편에 얌전히 누워있는 페로렌에게 다가간다.

“읍!! 으으읍!!!”

다시 보니 얌전히 누워 있진 않고 상당히 버둥거렸던 모양이다. 그녀가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페로렌의 입을 막은 천 쪼가리를 살짝 내리자. 곧 성깔 있는 고양이처럼 앙칼스레 소리친다.

“너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빨리 이거 안 풀어?!”

“아가씨, 협조하기로 했잖아요? 그냥 얌전히만 있으면 아무도 안 다치고 끝낼 수 있다니까? 진짜 조금만 도와주면 돼요. 미안해요.”

“너 진짜 가만 안 둬! 이거 빨리 풀어!! 읍?! 으으!!”

페로렌의 불같은 화를 애써 무시하며 다시 입을 봉쇄한다. 그렇다. 아무도 안 다치고 끝낼 방법. 그것은 해적들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거래하는 척이지만…….

작전은 이렇다. 여자에 굶주린 작은 해적선에 노예 상단인 척 다가가 조심스럽게 접선을 시도한다.

드웍프가 그들의 시선을 끌며 대화하는 사이 나는 코어 실에 접근해 몰래 접근해 코어를 빼내 온다.

그 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단가가 안 맞는다는 등의 갖은 핑계를 대며 페로렌을 데리고 유유히 빠져나온다.

뒤늦게 코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려도 코어가 빠진 상태로는 쫓아올 수도 없을 테니,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보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을 터.

물론 페로렌한테는 미안한 역할을 시켰지만, 죽음 횟수가 초기화되기 전까진 나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려야 할 상황이기에 비겁하다 욕해도 별수 없다.

파란색 깃발을 내걸고 접선 신호를 보내자, 그들 역시 파란 기로 신호를 보낸다. 우리 배보다 4배는 더 커 보이는 해적의 우올로가 서서히 다가온다.

살짝 긴장되네. 실제 해적을 마주한 적이 없으니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함께 있는 드웍프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

접선에 무사히 성공해서 그들의 배에 올라탄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먼저 공격하진 않았다. 우리처럼 작은 배를 공격해봤자 이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갑판에 올라서니, 흉악함을 얼굴로 표현하는 해적 선원 열댓 명이 우리를 둘러싼다.

약간 긴장한 내 모습과 달리, 드웍프는 그들 앞에 떳떳하고 과감하게 나선다.

“안녕하시오. 나는 팔머리스 유르스핀드 길드의 마스터 루맨 벡스터라하오. 그리고 이쪽은…….”

“아, 뮬린이라고 합니다.”

“제 수족이지요.”

드웍프는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목소리뿐 아니라 말투 표정, 행동거지까지 전부 뒤바뀌었다. 요놈 보게? 재주가 상당히 뛰어나지 않은가? 다시 봤다.

해적 선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약에 취한 듯한 퀭한 눈으로 드웍프의 말을 제대로 못 들었는지 반문한다.

“팔머리스 유르…… 뭐?”

“팔머리스 유르스핀드 길드의 루맨 벡스터지요.”

“유른지 뭔지, 아무튼 그래서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냐?”

“우리는 세계를 유랑하며 수많은 단체에 그 가치에 걸맞은 특별한 상품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소.”

드웍프는 해적들의 우올로는 쭉 둘러보더니 입을 연다.

보아하니 이 배에는 모든 게 좋아 보이지만 부족한 것이 딱 하나 있구려. 지금 나한테 이 배에 꼭 필요할 법한 상품이 하나 있소.”

“뮬린. 상품을 가져와라.”

나는 드웍프의 명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족 노릇을 해주고 있다. 누가 보면 환상의 콤비라도 되는 줄 알겠다.

“읍! 으으읍!!”

페로렌이 묶인 몸을 버둥거리며 벗어나려고 안간힘이다. 페로렌을 옆에 세워놓자 드웍프가 세 치 혀를 놀리기 시작한다.

“발데린 공화국 고르곤테스 국왕의 다섯째 딸 폴라리스 공주입니다.”

세상에……. 단순히 돈만 많은 평민을 국왕의 딸로 둔갑시키다니, 뻔뻔함도 정도가 있지. 그렇지만 공주라는 말에 퀭하던 해적의 눈이 크게 떠진다.

“공주라고?”

하기야 첫째도 아니고 다섯째 딸 정도면 공주라고 해도 인지도가 높지는 않을 터. 정세에 밝지 않으면 국왕의 공주가 남자로 밝혀졌건, 침팬지랑 결혼했건. 알기 힘들 것이다.

“입마개 때문에 잘 안 보이는데 그걸 어떻게 믿어?”

“이봐 뮬린. 살짝 보여드려.”

“으읍! 이거 풀! 읍! 읍!”

나는 페로렌의 입마개를 잠시 내렸다가 재빨리 올린다.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선장은 순식간에 지나간 페로렌의 얼굴에 머리를 긁적인다.

“너 봤어? 공주 얼굴 알아? 저 여자 공주 맞아?”

“아니요. 저도 잘 몰라요. 근데, 이쁘긴 하네요. 피부도 곱고 고상하게 생긴 게… 공주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

선장은 다소 미심쩍은 듯 부하에게 물으면서도 페로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페로렌이 공주는 아니라고 해도 외모로만 보면 공주 못지않게 이쁜 건 사실이니까 흥미가 동할 수밖에…….

그럼 나도 이쯤에서 슬슬 움직여 볼까? 나는 구석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해적 하나 붙잡아 끌고 간다.

“아, 아오. 배 아파. 당신 잠깐……. 화장실이 어딘지 좀 가르쳐줄래요?”

*

“더럽게 남에 배에서 똥질이야? 빨리 싸고 나와!”

“하하, 친절도 하셔라.”

미간에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듯 인상이 펴질 줄 모르는 해적의 말에 화장실 문을 닫고 냉큼 들어간다.

“여기 화장실은 또 최신식이네…….”

푸세식인 몇몇 화장실들과는 달리 여긴 수세식으로 깔끔하다. 이 해적들은 이미지와 달리 깨끗한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도 나중에 큰 우올로를 사면 이런 식으로 해 둬야지.

일단, 지도 좀 보자.

지도를 켜니 우올로 내부의 지도가 보인다. 현재 지나온 부분은 밝혀졌으나, 아직 안 간 곳은 아무런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 지도를 입체적으로 돌려보자 지하에서 갑판까지 총 3층의 구조로 되어있는 것 같다.

현재 위치는 1층의 선실 부근. 드웍프가 말하길 코어는 주로 우올로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했으니까 여기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중앙부를 쭉 훑어봐야겠다. 계획을 짰으니 실행에 옮기자.

문을 열고 옆에 감시 중인 해적을 불러들인다.

“저기 죄송하지만, 변기 물이 안 내려가네요?”

“뭐?! 아, 이 더러운 자식이 얼마나 싸 재꼈길래. 나와 인마!”

그가 나를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간다. 주변엔 아무도 없는 것 같지?

“뭐야? 막히긴 뭐가…….”

퍽-!

“크헉!”

지팡이를 꺼내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뒷무릎을 밟아 무릎 꿇게 한다. 이후 머리통을 잡아서…….

“크흑 아욱……! 훕! 부악!”

수세식 변기에 그의 머리통을 집어넣자 얼굴을 빼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종아리를 밟은 채 등을 무릎으로 누르고 있는 터라 쉽게 일어나긴 어려울 거다.

“조금만 있으면 막힐 겁니다. 선생님!”

“부루라악! 푸학! 부구루루루…….”

이내 의식을 놓은 듯 바닥에 힘없이 팔을 툭 떨군다.

“후우, 이제 막혔죠? 하아… 그것 좀 뚫어주세요.”

과격한 행동 이후 잠시, 숨을 고르며 옷매무새를 정돈한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지하로 향한다.

*

여긴 왜 이렇게 어두워? 응? 저건 뭐지……?

지하 1층을 지나 지하 2층까지 내려온 나는, 중앙선을 따라 이동하다 척 봐도 중요해 보이는 장치 하나를 발견했다.

장치 안에는 어두운 주변과 달리 청명한 빛을 오로라처럼 흩뿌리는 부품이, 특별한 힘으로 인해 공중에 떠서 회전하고 있었다.

〈스트롱 타이머 코어〉

기본 출력 60 / 출력 방출 100

루츠 수용량 200 / 루츠 충전 시간 200

희소성: 마법

이것이 코어라는 물건인가? 내 우올로에도 달린 물건일 테지만, 실물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이 거대한 배를 움직인다기에 엄청나게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다. 기껏해야 야구공만 한 크기다.

그럼 어디…….

마음에 준비를 끝내고 코어에 선뜻 손을 뻗는다. 그 순간.

파지직-!

“앗! 따가워.”

-‘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어우 깜짝 놀랐네. 코어에는 보호 마법이 걸려있다고 했지 참. 만지는 순간 손끝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엄청 아프네. 진짜…….

맨손으로는 안될 것 같고…….

지팡이를 꺼내 들어 코어를 톡 건드려 본다. 파지지직-! 푸른색 스파크가 지팡이 끝을 침입자로 감지하여 마구 공격한다. 철로 만든 것이 아니기에 손까지 전기가 전달되진 않는다.

생각보다 잘 안 빠지네. 다시 지팡이 좀 제대로 잡고……. 응? 갑자기 인벤토리에서 뭐가 번쩍이길래 봤더니, 코볼트 족장이 건넨 저주받은 보석에 스파크가 잠깐 번쩍거리다 사라진다.

이거 왜 이래? 방금 전기 때문인가? 보석을 꺼내 든 채 지팡이로 코어를 다시 찔러보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잘 못 본 건가…….

그때,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뭐야 이거?”

인벤토리에 도로 집어넣기 전, 혹시나 해서 보석을 코어 근처에 가져가 봤는데, 보석이 코어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보석을 떼자 보석 주위로 스파크가 지직-! 지직-!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조심스레 건드려보는데 내 손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뭐지 이 현상은? 정말 흡수한 건가? 나는 이 의문의 보석을 손에 든 상태로 코어에 손을 뻗어본다.

파지직-! 파직-! 스파크가 접근하는 내 손을 찌르려 사납게 형체를 키우지만, 손에 들린 이 보석은 단 한줄기의 전기도 자신의 영역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기한 광경에 놀라움이 식도를 타고 꿀꺽 삼켜 들어간다.

코어를 그대로 움켜쥐어 본다. 파지지지직! 찌르르르-! 코어를 맨손으로 잡자 정제되지 않은 힘이 손아귀에서 맹렬히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위력적인 힘이라는 게 육안으로 봐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을 손에 쥐고 있는 나는 정작 아무렇지 않다.

보석이 닿지 않는 곳은 약간의 아린 느낌이 들긴 하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 어떠한 피해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

“거기 누구야?”

“헉!”

달그락-! 코어가 제 위치에서 빠져나와 바닥을 구른다. 그와 동시에,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삼켜진다. 오직 코어와 스파크를 일으키는 이 보석만이 작은 빛을 발하고 있다.

“거기 있던 녀석 누구야!”

나는 조심히 스파크를 일으키는 보석을 바닥에 떨어 뜨려 놓고 구석에 몸을 숨긴다.

“나 다 봤어! 나오는 게 좋을걸!”

그가 접근해 온다. 그는 어두워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소리를 느낄 수 있다.

그는 나와 불과 5걸음 떨어진 곳에 있다. 그가 코어를 줍고 나서 바닥에 떨어진 보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 앞을 경계 지나간다. 바로 지금이다.

“워!!!”

“꺄아악!”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화들짝 놀라는 그의 다리를 지팡이 손잡이로 걸어 한 바퀴 굴린다. 이후 넘어진 그의 얼굴을 강하게 밟아 의식 끊어 놓는다. 비명만 들으면 천생 여잔 줄 알겠어. 아주…….

코어와 목걸이를 챙겼으니 이제 올라가자. 아, 위층에 또 누가 있나……? 사람 소리가 들리네. 걸리지 않게 조심히 가자.

* * *

“그, 그건 분명히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소만…….

“후, 흐흐흐. 우리가 상품을 구매하려면 상품의 상태가 어떤 직접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 얘들아 잡아둬라.”

해적 선장의 명령에 따라 부하들은 드웍프를 붙잡았다.

애초부터 그들은 드웍프와 거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해적이 왜 해적이겠는가? 바다의 도적이기에 해적 아니겠는가? 비록 바다가 아닌 하늘 위라지만, 그들이 배 위의 날강도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흐읍!! 으읍으!!!”

선장은 음흉하게 실실거리며 페로렌에게 다가갔다.

“어어, 무서워하지 말라고. 첫발은 살살해줄 테니까.”

괴악하게 생긴 사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에 페로렌의 두 눈엔 공포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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