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38화 (38/147)

<-- 하늘을 나는 배 -->                               발데린 공화국의 수도 틸프리아.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로 무역과 상업이 크게 발달한 도시다. 발데린 공화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는 도시답게 거리는 밤낮없이 많은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페로렌의 집이 있는 도시이지만 한동안 바깥나들이라고는 미란델 영애의 집을 찾아갈 때나 드웍프를 찾아 돌아다닐 때 빼고는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자유를 만끽하며 둘러보니 감회가 또 새롭다.

틸프리아의 도시 중심부는 여러 상인의 주요 활동 무대이며, 중심부에서 멀어질수록 조용한 환경을 좋아하는 귀족이나 돈만 많은 부르주아가 많이 살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수없이 나다니는 마차에 발이 묶여 느릿느릿 말을 이끌어 가는 중이다.

설마 말을 타면서까지 교통체증 느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는데 세상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페로렌만 없었다면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를 지경.

그 와중에 불필요하게 걷는 걸 극구 거부해 온 페로렌이 말의 뒤편을 흘끗흘끗 쳐다보며 나에게 물어온다.

“근데 저건 누군데 저렇게 매달고 가는 거야?”

“제 수행원이죠.”

“수행원……?

페로렌은 내 입에서 나온 수행원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말의 안장에는 짧은 다리를 뒤뚱거리며 쫓아오는 인간 하나가 묶여서 질질 끌려오다시피 하고 있다.

“헉……. 허억……. 형님……! 잘못했습니다.”

특색 있는 난쟁이. 드웍프다. 저택을 떠난 온 즉시, 여기저기 사기 쳐서 돈을 뜯고 다니는 드웍프를 찾아 바로 낚아챘다. 언제나처럼 초보자를 상대로 돈을 뜯고 있던 그가 내 얼굴을 보더니,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린 꼬마아이처럼 얼굴이 짜그라지더라.

만일 드웍프가 페로렌의 장신구를 찾았더라면 그대로 풀어주려고 했으나, 결국 장신구를 찾지 못한 것 같다. 그래 놓고 못 찾으면 매일 10만 셀씩 보내라는 명령까지 어기다니, 말을 안 듣는 못된 18세 소년의 최후는 지금과 같다.

“근데 저거 인간이야?”

드웍프의 인간 같지 않은 생김새에 페로렌이 물어온다. 생김새는 저래도 인간은 맞으니까 일단은 끄덕여준다.

드웍프는 나와 동행하는 페로렌을 처음 봤을 때 사레가 들릴 정도로 기겁을 했지만, 정작 페로렌은 자신의 장신구를 훔쳐간 진범을 눈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드웍프의 생사를 보존시키기 위해 당분간은 비밀로 해두는 편이 좋겠다.

*

“드디어 도착했구나.”

“여긴?”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곧 있으면 알게 될 테니까.”

지독한 교통 체증을 물리치고 당도한 이곳. 어차피 곧 알게 될 것이기에 구태여 설명하진 않는다.

가로 형태로 길게 뻗은 수십 개의 문 중 아무 곳이나 들어가자, 겉보기와 다른 내부 장경이 펼쳐진다. 건물 풍경만 있던 조금 전과 달리 내부에 들어서자 광활한 하늘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우올로 좀 보러 왔는데요.”

“아, 그러시군요!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한 직원을 따라 장소를 이동한 뒤 하나의 목록을 받아 든다. 그러자 상점 창이 열리며 수많은 우올로 정보가 눈앞에 나타난다.

우올로는 체급별로 나누어져 있고 또 체급 안에 티어별로 나누어져 있다.

“아 참, 우올로 산다고 했었지?”

“근데 어떤 걸 사는 게 좋으려나.”

“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 음, 이걸로 해. 가격도 저렴하네.”

페로렌이 가리키는 품목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이 아가씨는 돈에 대한 감각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2억 7000만 셀이 저렴하다고……?

“꿈도 못 꿀 거 건드리지 마시죠. 아가씨? 정 그거 타고 싶으면 한대 사주던가.”

“말했을 텐데? 내가 가져온 거 이외 쓰지 않겠다고.

“그럼, 조용히 계세요.”

페로렌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걸 외치지만 수중에 620만 셀뿐인 나는 그런 우올로를 구매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노려볼 만한 게 비트급, 킬로급 우올로인데, 킬로급부터는 대부분 천만 셀부터 시작하니 사실상 가장 작고 저렴한 비트급으로 사야겠네…….

근데 종류가 워낙 많아서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직원한테 물어봐야겠다.

대충 원하는 가격대와 용도를 그에게 전달한다.

“음, 그럼 탑승 인원은 몇 명 정도가 좋으십니까?”

“2명이면 됩니다.”

2명이라는 말에 사기 칠 대상 물색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드웍프가 다급히 다가온다.

“형님? 2명이라니요? 전 어떻게 하고요?”

아, 참 얘도 있었지. 앞으로 끌고 다닐 거라고 못 박아 두었기 때문에 겁나나 보다.

“별수 없잖아. 돈이 없는데. 너는 몸집이 작아서 우올로 짐짝에라도 들어갈 거야. 걱정하지 마. 정 안되면 밧줄로 묶어서라도 끌고 다니지 뭐.”

“아이, 형님 그건 아니죠. 에이…….”

-드웍프의 굴복이 2 올랐습니다.(현재 47++)

내 진심 어린 대비책을 단순 협박으로 받아들인 건지 드웍프의 굴복이 착실하게 오른다.

현재 드웍프의 복종도는 24%. 수치가 너무 낮기 때문에 언제든지 각인이 풀릴 위험이 있다. 유저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잘 안 듣는 것 같고 말이다.

최소한 복종도를 50%는 만들어 놓고 장신구를 찾아오게 시켜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때까지는 이런 식으로 끌고 다니는 수밖에……

“형님 그러지 마시고 이거 추천해 드립니다. 이거 진짜 가성비 최고예요.”

드웍프는 직원이 뽑아놓은 우올로 목록 중 하나를 콕 집어 말한다.

“그쪽 분이 물건 볼 줄 아시는군요. 이 우올로가 굉장히 좋은데 사람들이 외형이 못생겼다고 그 진가를 잘 몰라주시더라고요. 킬로급 5티어중에서는 유일하게 베리어가 기본 장착되어있어서 굉장히 튼튼합니다.”

외형은 확실히 호버보드를 보듯 투박하게 생겨서 인기 없어 보인다. 상세 정보 좀 살펴볼까?

[킬로급 우올로 - 칼로그G]

〈기본 정보〉

등급 킬로급 - 5티어

최소 탑승자 1 / 최대 탑승자 5

전장 7.5m

〈성능 정보〉

평균속도: 22 / 코어추진속도: 35 / 선회력: 상

충돌력: 20 / 원거리 무기: 없음

방어력: 10 / 내구도: 150 / 보호막: 50

루츠 수용량: 180 / 루츠 충전 시간: 180

베릴: 30

〈상세 부품〉

코어- 블라스터ASP(여유 공간 1)

베리어- 하스먼30

장갑 재질-마스탄

〈발휘 능력〉

하스먼30 - 보호막 파괴시 30초간 이동속도가 30% 상승합니다.

우올로 정보 창을 처음 보는 거라 아직은 이게 좋은 건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다른 건 대충 알겠는데 루츠는 뭐지……? 도움말 좀 확인해 봐야겠다.

평균속도: 평균 비행 속도를 나타냅니다.

코어 추진 속도: 코어 추진 사용 시 비행 속도를 나타냅니다. 추진 사용 시 루츠가 초당 1씩 소모됩니다.

선회력: 동체 회전 수준을 나타냅니다.

충돌력: 전면으로 충돌 시 주는 피해 정도를 나타냅니다.

방어력: 동체가 공격당할 때 감소시키는 피해양을 나타냅니다.

동체의 장갑이 부서질 경우 방어력이 하락합니다.

내구도: 동체가 피해를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나타냅니다.

보호막: 외부에서 오는 모든 공격을 수치만큼 막아냅니다.

루츠가 가득 찬 경우, 보호막이 파괴돼도 재생됩니다.

루츠 수용량: 루츠는 코어 추진, 보호막 생성 시 각각 소모됩니다. 모두 소진 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충전됩니다. 루츠가 모두 소진 되지 않더라도 일정 시간 동안 루츠의 소모가 없으면 자동 충전됩니다.

충전 시간: 루츠 소진 후 가득 충전되기까지 시간을 나타냅니다. 수치 1당 1초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수치가 낮을수록 충전이 빨라집니다.

베릴: 우올로의 연료입니다. 하루에 1씩 소모됩니다.

이런 거구나. 칼로그 G라……. 수용 인원도 초반용으론 적당하고 튼튼해 보이는 게 나쁘지 않다. 외형이 뭐 크게 중요한가? 성능만 좋으면 됐지. 그럼 이걸로 시작할까?

근데, 가만 가격이……. 공이 하나, 둘.

“1,100만 셀?”

내가 가진 돈으로는 터무니없잖아?

“너무 비싸.”

“그럼 형님 제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아니.”

어디서 사기꾼의 아이디어를 은근슬쩍 끼워 넣으려고……. 이런 건 단칼에 싹을 잘라내는 게 현명하다.

“와, 형님 거절하시는 속도가 무슨……. 그러지 마시고 진짜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래, 원래 사기꾼들이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들었어. 좋은 건 써먹을 줄도 알아야 하니까.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이게 말입니다. 약간의 투자금이 필요하긴 한데…….”

곧바로 지팡이를 꺼내 드웍프의 목을 위협적으로 찌른다.

“그 투자금, 네 목숨으로 대신해도 되는 거지?”

이런 녀석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하여간 틈만 나면 사기를 쳐대려고…….

“아, 아니 형님 잠시만 진짜로……. 응……? 근데 형님 칼 잘못 꺼내신 거 아니에요?”

얘 봐라? 지팡이 들었다고 무시하네? 어디 이래도 무시하나 볼까? 지팡이로 드웍프의 미간을 가볍게 빡-! 때린다.

“아아아악!!!”

지팡이 끝부분에 무게가 있어서 가볍게 쳤어도 고통은 상당할 것이다.

“와하하핰. 아!!! 진짜!! 큭큭! 아 너무 아파! 크흐흐흥!”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실성한 듯 웃어 재끼는 드웍프를 보니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잠시 후, 드웍프는 미간에 뿔 하나가 돋아난 채 다른 제안을 건넨다.

“형님, 그럼 이렇게 합시다. 형님 지금 훔치기 기술 있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이, 그런 거야 뭐 척하면 척이죠. 제 덕에 아마 배우셨을걸요? 일정 금액 이상 털면 배우는 거거든요.”

음, 확실히 드웍프 덕분에 배운 기술이긴 하다. 페로렌의 장신구를 털다가 얻어냈으니까. 위험부담 때문에 제대로 써먹은 적은 없지만…….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우올로는 부품 중에 코어가 가장 비싸거든요? 그러니까 해적 놈들을 털어서 코어만 빼 옵시다. 코어만 그걸로 갈아 끼우거나 팔아서 보태면 우올로를 쉽게 맞출 수 있을 거예요.”

음, 해적을 상대로 도적질을 한다라……. 위험하긴 해도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일 테니 나쁘지 않겠다.

“그거 괜찮네. 근데 그럴 바엔 해적들이 타고 다니는 우올로 자체를 강탈하면 되는 거 아니야?”

“에이 형님도……. 우올로 같은 건 강탈하면 한 달간은 판매도 안 되고 직접 몰 수도 없어요. 보관할 공간 따로 없으면 돈 주고 공간을 대여하거나 직접 끌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죠. 대신 분해해서 부품만 따로 훔치면 즉각적으로 판매나 사용이 가능하단 말씀! 물론 훔치기 기술이 없으면 그것도 장물처리 돼서 가격이 팍팍 줄어들지만요.”

“아……. 그래?”

녀석, 이런 쪽으로는 제법 박학다식 하단 말이야? 역시 사기를 치려면 머리가 어느 정돈 돌아가야지.

“해적선이라면 하늘에 있을 텐데 무슨 수로 털어?”

“여기 우올로 대여도 해줘요. 십 분의 일 가격으로 일주일은 빌릴 수 있어요.”

십 분의 일이라……. 그 정도는 투자금으로 생각해볼까?

*

틸프리아에서 북동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인구 1800명의 큰 마을 톨로픈. 나는 틸프리아 우올로 정박장에서 120만 셀의 거금을 주고 대여한 우올로를 끌고, 톨로픈의 주변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청청한 하늘을 우러러봄은 언제나 싱그러운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더군다나 그것이 날고 있는 우올로 만끽하는 것이라면 그 기분은 배가 되는구나.

드웍프가 표시해준 위치를 따라 한참을 날자, 곧 거무튀튀한 배경에 독사 같은 문양을 잔뜩 그려 넣은 깃발이 두 눈에 들어온다.

“저놈들이 바로 그 해적이라는 거지?”

“네, 그나마 이 근처에서 만만한 해적들이에요.”

“그럼 준비하자.”

“예,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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