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씨! 소원을 들어주세요 --> 그렇지만 뭘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 가, 갑자기 왜요? 소원을 왜 못 들어준다는 거예요? 약속하셨잖습니까? 제가 결투에서 이기면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잖습니까?!”
“감히 수행원 따위가 주인한테 조건을 건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꽤 잘 싸워줬으니 넓은 방도 따로 내주고 앞으로 잠잘 시간도 1시간 늘려줄게. 이제 그만 나가봐.”
‘내가 왜 풀어줘야 해? 미란델 좋은 꼴 보게 내버려 두라고?’
페로렌은 미란델이 너무나도 얄미웠다. 앞에서는 절친한 척, 뒤에서는 하찮은 짐짝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수행원인 뭘까지 넘보려 하다니……. 결코 그녀의 뜻대로 둘 순 없었다.
단지 그러한 이유로 뭘의 소원을 거절했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현재로선 그 이유만을 탓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페로렌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뭘은 분노에 머리끝까지 차올라 소리쳤다.
“지금 장난해요?! 소원 들어준다면서요! 저 잡아 와서 장신구 돌려받는 게 원래 목적 아니었어요? 최근엔 장신구 찾으려고 해도 내보내 주지도 않고! 대체 저한테 진짜로 원하는 게 뭡니까?! 제대로 말 좀 해봅시다!”
“너 미쳤어? 지금 어디서 소리를 높이는 거야? 귀 따가우니까 조용히 나가.”
“정말 그렇게 나오시겠다? 내가 그냥 넘어갈 것 같죠? 아니! 천만에! ”
뭘은 페로렌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더니 이내 방을 뛰쳐나갔다.
건방져. 평소라면 그런 소리와 함께 뺨 10대 정도는 맞았을 법한 뭘의 행동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뭘에 미란델에, 한 가지만 생각하기도 벅찬데, 두 가지가 머릿속에 한 번에 들어차니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차라리 하나만 생각할 수 있도록 바보가 됐으면…….’
페로렌은 그렇게 생각하며 욱신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 * *
“하아……! 하아……!”
감히 날 엿먹이다니! 절대 가만 안 둬. 내가 뭐 때문에 아까운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그 결투를 뛰었는데. 뭐? 수행원 따위가 어쩌고저쩐다고?
단 한 순간이라도 그런 인간을 안쓰럽게 생각한 내가 등신이지! 이번만큼은 나도 그냥 안 넘어가. 아니 못 넘어가!
마침 테드도 하수인 교육을 위해 별채에 가 있겠다, 페로렌이 혼자 있는 지금이 복수의 적기다.
이 저택의 정원을 전력 질주로 달리며 혹사한 몸뚱어리를 이끌고 페로렌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너 지금 이게 무슨 무례한……. 윽!”
그녀는 땀으로 흠뻑 젖어 문을 잡고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린다.
“당장 못 나가?! 더럽게 어딜 그냥 들어와? 빨리 씻고 오지 못 해?”
극렬한 거부 반응. 그래 그래야지. 그럴수록 내가 복수하는 맛이 나거든? 방의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건다. 그리고는 욕실로 직행해 수도를 튼다. 이것이 바깥으로 빠져나갈 소리를 조금이라도 막아줄 것이다.
“하아……. 하……. 내가 그냥… 안 넘어간다고 했지……? 당신한테 마지막 기회 주는 거야. 나 풀어준다고 말해.”
“시, 싫어! 내가 이런 협박에 넘어갈 것 같아?”
나는 페로렌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그녀는 끔찍한 괴물을 맞닥뜨리는 듯한 모습으로 뒷걸음질한다.
“뭐 하려는 거야? 오지 마! 진짜 가만 안 둬! 한 걸음만 더 와! 아까 해준 제안도 전부 무를 거야!”
“무를 테면 물러. 그딴 건 신경 안 써!”
“테! 테드……. 읍! 읍! 음음!!”
테드를 부르기 전 손으로 입을 막고 그녀를 바닥에 자빠뜨린다. 페로렌은 양팔로 나를 떼어내려고 몸부림치지만, 깃털처럼 미약한 몸짓으로는 나를 막아낼 수 없다.
나는 한 손으로 내 상의를 뜯어서 탈의한다. 거친 행동에 옷에 달린 단추가 후두두 떨어져 나간다.
“읍으! 으!!”
난데없이 옷을 벗는 내 모습에 그녀가 기겁하며 소리친다. 어느새 눈물까지 고여있다.
“벌써 울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나는 그대로 페로렌의 드레스를 움켜쥔다. 내 행동에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읍?! 읍읍으!!”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녀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두 팔로 나를 사정없이 할퀴고 때린다. 하지만 사전 운동으로 열이 오른 몸은 그런 정도로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이윽고 그녀의 드레스가 완전히 뜯어내자 감춰있던 새하얗고 여린 피부가 드러난다. 그리고는 그녀의 가슴을 가리고 있는 천 쪼가리를 완전히 벗겨낸다. 봉곳한 가슴 중심부에, 만개한 벚꽃의 예쁜 분홍빛이 감돈다.
뒤이어 그녀의 소중한 부위를 가린 속옷마저 전부 벗겨낸다. 그런데……. 이런 무모한 여인을 봤나?! 그녀의 비밀스러운 장소를 보니 그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무것도 없이 보송한 그녀의 그곳을 보고 있자니 어째 보고 있는 내가 더 민망하다.
페로렌은 황급히 손으로 가리며 다리를 꼬아 자신의 부끄러운 중요 부위를 숨기기 급급하다.
“으흐으……. 읍. 읍으!”
그녀가 흐느낀다. 그 모습에 지난날 나를 끔찍하게 괴롭혔던 그녀 모습이 겹쳐 보이며 내 심장에 독기를 가득 채워 넣는다.
그러나 미리 다짐한다. 나는 그녀를 겁탈할 생각이 없다. 그동안 함께해온 미운 정 때문에라도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못난 성격에 데인 게 많기에 이번만큼은 제대로 혼쭐 내줄 생각이다. 나는 적정선을 지키며 그녀에게 최대한의 치욕을 맛 보여줄 것이다.
나는 페로렌을 일으켜 세워 등 뒤에서 끈적하게 끌어안는다.
“읍브으!! 으으읍!!!”
땀투성이가 된 내 몸이 그녀의 맨 살결에 닿자 몸서리치며 기겁을 한다. 나는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두고, 온몸에 그녀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내 체취를 골고루 묻히며 나의 비기‘각인’을 사용한다.
내 손에 짙은 보랏빛이 잠시 감돌더니 그녀의 몸에 곧 각인의 흔적을 새긴다.
“읍읍! 으으으읍!”
각인의 흔적이 서서히 복종의 각인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아파하진 않는다. 각인의 시전 시 대상이 인지하기 어려워지는 2단계 자질을 발동시켰기에 고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더럽다고 느끼는 것들이 피부에 직접 맞닿아있으니 그걸로 인한 심적 고통이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으으으으!!! 읍으!!!”
그녀가 고개를 마구 저으며 손발을 동동거린다. 남한테는 별것 아닌 것이 그녀에게는 피부를 도려내는 것 이상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페로렌, 너는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있어.
이제 몇 분만 버티면 페로렌에게 각인이 새겨진다. 각인의 효과를 제대로 시험해본 적은 없지만, 도박을 거는 것이다. 그녀가 내 말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한 채 테드에게 죽임을 당할 것인가.
“읍읍으!!”
이렇게 떠들면, 각인이 새겨지기도 전에 테드가 돌아올 것 같다.
아무래도 아무거나 입을 막아야겠다. 처음에 벗어 던진 상의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한 뼘이나 겨우 넘을 것 같은 페로렌의 가는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상의를 주워든다.
“흐윽…! 더러워! 싫어!! 테드!!! 테… 듭! 읍읍!!”
이런……! 그 잠깐 사이 페로렌이 크게 소리친다. 나는 주워든 상의를 재빨리 그녀의 입에 재갈처럼 물린다. 그리고 그 위를 여분의 옷으로 다시 틀어막는다.
“조용히 해!”
나는 페로렌의 몸을 돌려 포동하게 오른 볼기를 찰싹 때린다.
“므으으읍!!! 흐으……!”
상황이 역전된 기분을 최대한 만끽하며 그녀에게 치욕스러운 체벌을 가한다.
“큰 소리 낼 때마다 엉덩이 한 대씩 맞을 줄 알아.”
“므으읍!! 흐므으!!!”
방금 경고했는데도 소리치다니…….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게는 사랑의 매가 필요한 법.
짝-! 손바닥으로 달라붙게 때리자 자그맣고 탱글탱글한 엉덩이가 탐스럽게 요동친다.
“흡프!!! 므음흡므……!”
앙칼지게 터져 나오는 페로렌의 비명.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가학성을 일깨우는 페로렌의 비명에 소중이가 또 꿈틀거린다. 바지를 벗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바지까지 벗어 던졌다면, 반쯤 남아있는 정신마저 유지하긴 힘들었을 거다.
그녀가 이상형이 아니라곤 해도 나의 성욕은 그것과 별개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있으면 각인이 완성된다. 그때…….
똑. 똑.
“아가씨. 혹시 조금 전에 부르셨습니까?”
문을 두드리며 테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놀라서 나도 페로렌도 순간 얼어붙는다. 별채에서 벌써 돌아온 건가?
평소에는 가볍고 경쾌히 느껴지는 문의 노크 소리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왜 이리도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문이 잠긴 채로 그녀가 아무 말 없으면 테드가 의심할 것이다. 차라리 확실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두는 편이 안전하다. 나는 페로렌의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이거 풀어줄 테니까, 돌아가라고 해. 지금 이 모습 테드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면…….”
재갈을 풀자 페로렌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매섭게 쏘아본다.
분한 듯 입술을 깨물지만, 남에게 희롱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은지, 결국 내 요구대로 행한다.
“괜찮아……. 돌아가.”
“…정말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테드가 평소와 다른 듯한 페로렌의 목소리에 끈질기게 물어온다. 역시 감이 좋은 노인이다. 하지만 페로렌이 괜찮다고 한 이상 더는 이쪽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잠시 후…….
써걱-! 문의 잠금장치가 깔끔하게 썰려 나가더니 곧 테드가 문을 힘껏 쾅-! 박차고 들어온다. 그는 왼손에 괴상하게 생긴 생명체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
“너…….”
테드가 무릎 높이 정도의 생명체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알몸의 페로렌을 인질로 잡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와 마주하는 찰나의 시간이 영원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경악, 분노, 살의 따위의 감정들이 테드의 안에서 뒤섞이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 이내 테드의 내면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우악스러운 감정들이 잠들어 있던 시간을 흔들어 깨운다.
“……네가……. 네가 아가씨를!!!”
그의 분노가 폭탄처럼 터져 나온다. 그가 지팡이를 일직선으로 던진다. 쾌속으로 치닫는 지팡이. 그 끝에 브랜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한 순간, 바로 그 부분이 내 어깨를 그대로 관통해 들어온다.
푸욱-!
“크으윽…….”
-‘596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젠장.”
페로렌은 내 손에서 풀려나자마자 줄이 끊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는 곧 훌쩍이며 자신의 몸을 가린다. 안쓰러움을 유발하는 그 모습에 테드의 분노는 더 맹렬한 기세로 표출된다.
다가오는 테드를 보며 어깨에 박힌 지팡이를 뽑아낸다. 뽑아낼 때의 추가적인 피해는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놔두면 상태이상에 걸릴 우려가 있기에 이런 건 빨리 제거해야 한다.
나는 뽑아낸 지팡이를 빼내 바닥에 떨어뜨리며 페로렌을 부른다.
“으윽……. 아가씨.”
그녀가 훌쩍이며 나를 올려다본다.
“하아……. 지금 집사님이 이러는 거……. 오해 맞죠?”
“오해?!”
내 뜬금없는 소리에 방안 모두가 나에게 주목한다. 테드와 페로렌, 테드에게 멱살 잡혀 온 그 이상한 생명체까지 말이다.
이제 내가 믿을 건 이것뿐이다. 테드가 방에 들어오기 바로 직전 페로렌에게는 각인이 새겨졌다. 내가 살 수 있는 시나리오라면 그녀가 이 모든 상황을 오해라고 단정 지어주는 것뿐.
“아가씨가 목욕하려고 옷을 벗는 도중에… 옷에 벌레가 들어갔다며 놀라서 뛰쳐나오셨습니다……. 크윽…….”
테드는 욕실을 곁눈질한다. 욕실 안에서는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틀어 놓은 수도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정말 그런 거라면……. 왜 네놈까지 옷을 벗고 있는 거냐?”
“그 벌레가… 제 옷으로 들어갔거든요. 저도 벌레를 무서워해서 말입니다.”
“아가씨가 목욕하시는데 왜 시녀를 호출하지 않았지?
페로렌은 목욕을 할 때 항상 시녀를 옆에 둔다. 어린 시절부터 습관처럼 해오다 보니 이제는 그렇게 안 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아가씨께서 혼자 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언제까지 도움받으며 할 순 없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제 나름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변명에도 테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테드가 페로렌에게 자신의 의복을 벗어 덮어준다.
“아가씨. 뭘이 하는 말이 사실입니까?”
테드의 물음에 페로렌은 슬픔에 젖은 눈으로 테드를 바라본다. 테드도, 나도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에 집중한다.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지에 따라 내 생사가 갈릴 것이다.
제발……. 제발 각인아……. 믿는다.